[단비인터뷰] 박형대 전라남도의원

전라남도 남쪽에 위치한 장흥군은 전남에서도 전형적인 농업지역으로 꼽힌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장흥 제1선거구 농민들의 마음은 농민 출신인 진보당 박형대(52) 의원에게로 쏠렸다. 그는 8년 동안 장흥군 의원으로 의정활동을 펼친 더불어민주당 유상호 의원과 맞붙어 득표율 62%로 당선됐다. ‘의원 경력직’과 ‘신입’의 싸움에서 이긴 초선의원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아오면서 준비를 한 점이 당선의 이유”라고 추측한다. 지난 3년 동안 월평마을 이장을 지내면서 주민과 함께 농업 문제를 고민해온 것이 유권자의 마음을 살 수 있던 핵심이라는 것이다. <단비뉴스>는 지난달 27일 전남도의회에서 박 의원을 만나 인터뷰하고, 지난 27일에는 전화로 추가 인터뷰했다. 

농민운동에서 지방의회로

처음부터 정치를 생각한 건 아니었다. 농사를 짓는 집안에서 자란 박 의원은 고등학교 때부터 농업에 뜻을 두고 전남대 농생물학과 89학번으로 입학했다. 졸업 뒤 전남 장흥군 월평마을에서 농사를 시작했다. 1998년부터 농민회 활동을 시작해 2014년에는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정책위원장을 맡았다. 2014년 바로 그해 자유무역협정, FTA 협상이 잇달아 타결됐고, 이듬해에는 정부가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하겠다고 선언했다. 국내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설정했던 수입쿼터제 등 비관세 장벽을 허물고, 관세를 부과해 쌀 수입을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박 의원은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하면 한국의 식량주권이 없어지고, 그 피해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노동자와 서민에게 가장 먼저 올 것이라며 반대 운동을 벌였다. 전농 차원에서 시위도 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2014년은 중국, 뉴질랜드와 FTA 협상이 타결된 데 이어 캐나다, 호주와 협상도 진행된 해다. 정부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TPP에 가입하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FTA를 진행한다는 비판을 받을 때였다. 당시 수입산 농산물 파고에 대응하기 위해 농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정치를 시작하기 전 그의 가장 큰 불만은 아무리 목소리를 내도 변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며 “농민들이 아무리 외쳐도 정책에 반영되지 않았다”며 “정치인에게 농업 정책을 맡기기보다 농민이 직접 농민 권력을 만들어야 해결되는 문제라고 결론지었다”고 말했다.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지 못했던 농민은 농민운동을 넘어서 아예 지방의회 문을 두드렸다.

지난달 27일 전남도의회 의원실에서 인터뷰하는 박 의원. 이정민 기자
지난달 27일 전남도의회 의원실에서 인터뷰하는 박 의원. 이정민 기자

농민이 외치는 농민의 권리

박 의원은 2014년부터 전농 정책위원장을 지낸 4년 동안 농민들의 권익을 보장하는 데 앞장섰다. 2016년에 제안한 농민수당 정책이 대표적이다. 당시 그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농민수당이라는 개념을 제시해 공론화했다. 2018년 출마한 지방선거에서 공약으로 내보이기도 했다. 당시 선거에서는 졌지만, 전남도민 4만 3000여 명의 서명을 받은 주민조례안을 전남도의회에 제출했다. 주민조례안이 통과돼 현재 농민들은 농민수당으로 월 5만 원 가량을 받는다. 그러나 처음 제안한 월 10만 원보다 적은 액수인 데다, 소농이나 고령농, 신규 농민은 해당이 안 돼 이를 확대하는 것이 당장의 과제라고 그는 말했다.

2017년 전농이 제안한 농민헌법안도 박 의원이 위원장이던 정책위 작품이다. 그는 ‘농민 권리와 먹거리 기본권 실현을 위한 헌법개정운동본부’ 정책팀장을 맡아 연구팀을 꾸렸다. 정부에서 개헌 관련 논의가 나오던 때였다. 당시 그는 1987년 개헌 이후 FTA 등으로 위기에 처한 농민을 보호할 내용이 헌법에 없다고 지적했다. 농민기본권을 보장하고, 식량주권을 실현하기 위해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헌법에 구체적으로 명시하자고 요구했다. 이를 바탕으로 직접지불 방식으로 농가소득을 보전해줘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직접지불제는 정부가 농가에 직접 소득보조금을 주는 것이다. 농산물 시장개방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나온 제안이다.

“쌀 정책은 의외로 쉬운 정책이에요. 왜냐하면 쌀은 수요 공급 변동이 심하지 않거든요.” 

농민인 그에게 쌀 정책은 가장 잘 아는 분야이자 일생의 과업이다. 현재 농민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농협 미곡종합처리장 수매가에 대해 박 의원도 당사자로서 의견을 보탰다. 미곡종합처리장은 농민이 수확한 벼를 사들여 가공 뒤 판매까지 하는 곳이다. 농협마다 미곡종합처리장을 운영하다 보니 나중에는 서로 쌀을 싸게 팔려는 경쟁을 하게 된다. 쌀값이 떨어지면 그 피해는 농민들에게 전가된다. 박 의원은 지자체, 농협, 생산자 단체가 같이 수요·공급을 관리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출혈 경쟁에서 벗어나자는 요지다.

농촌에서 절감하는 기후위기

박 의원은 기후위기 문제에 관심이 많다. 이는 농민이라는 그의 정체성과 관련 있다. 박 의원은 1999년부터 벼를 비롯해 표고버섯, 고추, 감자, 대추 등 여러 작물을 키워왔다. 그는 “기후위기는 농촌 현장에서 바로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표고버섯의 경우 예전에는 버섯을 키우기에 기후가 딱 맞았지만, 이제는 기온이 올라 표고버섯 수확량도 줄고 품질도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 지역에서도 키울 수 있던 사과는 이제는 주 재배 지역이 경북 북부에서 강원도까지 북상했다. 박 의원이 2020년에 아이스팩 재사용 운동을 주도하는 등 의정활동 이전부터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 나선 이유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권을 새로 쥔 고등학생들의 박 의원을 향한 지지율이 높았던 특이사항도 기후위기 대응 공약 같은 진보적인 공약이 젊은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끼친 것 같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2020년 아이스팩 재사용 운동 중인 박 의원. 당시 월평마을 이장을 지내고 있었다. 사용한 아이스팩을 수거함에 넣으면 수거 후 세척하여 필요한 상인에게 보내는 사업이다. 박형대 의원 제공
2020년 아이스팩 재사용 운동 중인 박 의원. 당시 월평마을 이장을 지내고 있었다. 사용한 아이스팩을 수거함에 넣으면 수거 후 세척하여 필요한 상인에게 보내는 사업이다. 박형대 의원 제공

박 의원이 앞으로 의정활동에서 주력할 분야는 재생에너지 사업이다. 그는 “기존의 에너지가 재생에너지로 전환되고 있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사업의 기본을 갖추고 있는 게 농촌”이라며 농촌이 밀고 나가야 할 특장점이라고 꼽았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사업을 위해 농촌에서 벌어지는 난개발은 해결해야 할 문제다. 장흥읍 같은 경우 철로나 도로 경사면에 태양광 시설을 하는 것만으로도 무분별한 개발을 막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전남은 일조량이 풍부하고 땅값이 싸 태양광 사업의 보고라고 불린다. 태양광 사업이 많이 추진되다 보니 39개 시군 가운데 13곳이 주민과 사업자 사이 갈등이 일어나는 ‘갈등지역’으로 분류된다. 농촌 현장에서 많이 발생하는 민원을 잡고, 탄소중립도 실현하기 위해 박 의원은 에너지 주권을 전남도가 직접 쥐는 ‘공립 태양광’을 주장했다. 지난 1월 주민 발의를 했던 전남 재생에너지 공용화 조례는 현재 검토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전라남도 재생에너지 공영화와 공존을 위한 지원 조례안’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진행했다. 현재 전남도 집행부와 협의 단계이며, 다음달 박 의원이 발의하는 1호 조례안이 될 예정이다. 

지난 1월 주민조례발안 당시 사진. 박형대 의원 제공
지난 1월 주민조례발안 당시 사진. 박형대 의원 제공

박 의원은 지난 선거에서 작은 고비를 몇 차례 경험했다. 우선 8년 경력의 도의원과 맞붙은 것은 쉽지 않았다. 박 의원이 살고 있어 표밭이라 생각했던 마을이 타 선거구로 넘어갈 뻔하기도 했다. 당시 하나의 선거구였던 장흥읍이 두 개로 쪼개지면서 생긴 일이었다. 그 지역 출신 후보가 다른 선거구로 넘어가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한 주민들이 국회에 의견을 내 다행히 박 의원이 사는 마을이 다른 선거구로 넘어가진 않았다. 선거 기간 박 의원은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장평군은 군민들의 평균 연령이 높아 노인들이 직접 군사무소에서 지원금 등의 서류를 신청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박 의원은 직접 연령이 높은 군민들의 집으로 찾아가 서류 신청을 도왔다. 이러한 ‘찾아가는 서비스’ 덕분에 군민들로부터 ‘정성을 다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의원은 쌀값이 연일 폭락하는 등 농민들이 타격받는 상황에서 이를 바로 잡는 것은 정치인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전농 정책위원장을 역임한 후 바로 정치권에 뛰어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를 이끌었던 게 경쟁, 개발, 이윤이었다면 이제는 연대, 협력, 공동체로 나아가야 합니다.” 의정활동을 시작한 지 두 달 남짓, 그는 도민이 지방의회와 의원을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는데 잘 모르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도민이 ‘도민청원제도’를 활용하면 그들의 요구를 의원이 바로 알고 의회에서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데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민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싶은 그의 바람이다. 다음달부터 농민들과의 만남을 시작하는 것도 그런 바람의 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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