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보장률 높이는 ‘하나로’ 운동 절반이상 지지
[두런두런경제] 차미연 제정임의 유쾌한 리서치

병원비는 무시무시하게 비싼데 의료보험이 없어서, 사고로 잘린 두 손가락 중 하나만 접합할 수 있었던 영화 ‘식코(Sicko)'의 노동자를 기억하시나요? 병원사업과 의료보험에 지나치게 ’영리‘가 강조되는 바람에 인구의 15%인 4천만 명 이상의 서민들이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미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얘기였죠.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영리병원‘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정부 경제부처와 보험업계 등에서 지속적으로 나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의료관련 시민단체들은 영리병원제도가 도입되면 다음 차례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즉 모든 병원이 의무적으로 건강보험환자를 받는 제도가 무너지고, 비싼 민간보험에 가입하기 어려운 서민층이 심각한 의료소외를 겪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번 유쾌한 리서치에서는 바로 이 영리병원 도입 문제에 대해 시민들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차미연(MBC 손에 잡히는 경제 진행자): 이번 조사에는 얼마나 많은 분들이 참여했습니까.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전국의 20세 이상 남녀 2552명입니다. 지난 5일과 6일 이틀 동안 전화자동응답과 인터넷설문조사를 통해 참여해 주셨습니다. 이 가운데 여성 은 1188명, 남성은 1364명입니다. 

차: 지금은 의료인이나 비영리법인만 병원을 세울 수 있는데요, 기획재정부에서는 주식회사처럼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해 병원을 설립, 운영하고 수익금을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즉 영리병원을 허용하자고 주장하고 있죠? 먼저 이런 영리병원 도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봤는데요.

제: ‘영리병원 도입에 반대하는 편이다’가 34%로 가장 많고요, 다음으로 ‘적극 반대한다 ’가 27.8%로, 전체 응답자의 61.8%가 반대 의견이었습니다. 반면 ‘찬성하는 편이다’는 21.7%,
‘적극 찬성한다’가 8.1%로, 찬성의견은 전체의 29.7%에 그쳤습니다. 약 2대1의 비율로 반대가 많았습니다. ‘잘 모르겠다’도 8.5%로 상당히 높은 편이었는데, 아마 이 이슈 자체를 어렵게 생각하는 분도 꽤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찬성 의견이, 젊을수록 반대 의견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영리병원 찬성 이유는 ‘의료 서비스의 질 향상’  

차: 영리병원 도입에 찬성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찬성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입니까”하는 질문을 드렸죠?

제: 네. ‘의료 산업 발전과 의료 서비스의 질 향상이 기대되기 때문에’라는 응답이  43.3%로 가장 많았습니다. 이어 ‘치료 목적의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날 수 있어서’가 19.5%, ‘투자유인 확대로 인한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기 때문에’가 18.7%, ‘병원 간 경쟁으로 인한 의료비 지출 절감이 기대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17.5%로 나타났습니다.

차: 의료 서비스의 질 향상이 기대되기 때문이라는 의견은 ‘돈을 더 내더라도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고 싶다’는 욕구를 투영한 것이라고 하겠네요.

제; 네, 그렇습니다. 
 
반대 이유는 ‘서민층의 의료 소외 심화 우려’

차: 이번에는 영리병원 도입에 반대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반대하는 주된 이유가 무엇인지” 여쭤봤죠?

제: 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등으로 서민층의 의료 소외가 심화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50%로 가장 많았습니다. 다음으로 ‘대형병원 간 담합이나 불필요한 검사, 과잉 진료 증가 등으로 인한 의료비 인상’을 꼽은 분이 28.2%, ‘재벌이나 민간 보험사들의 의료시장 독식’이 15.8%, ‘수도권과 지방간 의료서비스 양극화 심화’가 5.6% 였습니다. 


 
차: 서민층의 의료소외를 걱정하는 의견이 50%나 되는군요. 그리고 요즘 일부 시민단체가 국민 1인당 건강보험료를 매달 평균 1만1천원씩 더 내고 건강보험 보장성 수준을 90%까지 높이자는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을 펼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도 여쭤봤죠?

제: 네. ‘1인당 월 1만1천원의 추가보험료가 부담스럽긴 하지만 찬성하는 편이다’ 하는 답이 36.2%로 가장 많았습니다. 또 ‘현재 큰 병이 났다 하면 본인부담금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적극 찬성한다’가 17.6%로 전체의 53.7%가 찬성 의견이었습니다. 반면 ‘건강보험 보장성 수준을 높일 필요는 있지만 개인과 기업의 보험료 부담이 커지므로 반대하는 편이다’가 27%,
‘건강보험 보장성이 강화된다는 보장이 없고 과잉 진료 우려도 있으므로 적극 반대한다’가 15.4%로 전체의 42.4%는 반대 의견이었습니다.

 

 

차: 이번 조사결과, 전체적으로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제: 우선은 영리병원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전체의 62%로, 찬성 의견의 두 배나 된다는 것이 주목됩니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등으로 서민층의 의료 소외가 심화될 것이다’ ‘대형병원 간 담합이나 불필요한 검사, 과잉 진료 증가 등으로 의료비가 늘어날 것이다’하는 것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영리병원을 허용할 경우, 병원들의 돈벌이 경쟁이 심화될 것이고, 건강보험을 안 받는 비싼 병원이 늘어날 것이며, 이로 인해 돈 없는 서민들은 제대로 치료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들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동시에 건강보험료를 더 내더라도 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을 높이자는 운동에 절반을 넘는 54%가 찬성한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암과 같은 큰 병에 걸릴 경우 건강보험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아, 긴 치료과정에서 가정경제가 파산지경이 되는 경우를 주변에서 꽤 많이들 봤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 건강보험 보장성 수준 60%대, OECD 평균은 80%

차: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성, 즉 전체 의료비 가운데 건강보험으로 감당이 되는 금액의 비중이 선진국들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이라면서요?

제: 네 그렇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즉 OECD국가의 평균 보장률은 80% 이상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률은 2007년 64.6%에서 2008년 62.2%로 떨어졌고, 계속 하락하는 추세입니다. 병원들이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는 비싼 검사와 진료를 점점 더 많이 활용하는데, 아픈 입장, 급박한 형편에 있는 환자들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건강보험 보장률이 50%대로 추락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이렇게 공보험 만으로 의료비 감당이 안 되니까 민간의료보험과 사적의료비가 매년 12%이상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주변에 보시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라는 광고 많지 않습니까? 이런 보험회사들 광고가 부쩍 늘어난 것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차: 그래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90%까지 높이고, 큰 병에 걸리더라도 연간 최고 100만원까지만 본인이 부담을 하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 추진되고 있는데요,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꽤 있죠? 

제: 네. 이번 조사에서도 ‘취지는 좋지만 개인과 기업 부담이 너무 늘어난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반드시 강화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의견들이 꽤 나왔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이는 것에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건강보험의 지출구조, 즉 돈 쓰는 구조를 함께 개혁하지 않으면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즉 지금처럼 개별 의료행위에 따라 지급액이 결정되는 행위별 수가제가 아니라, 건강보험 수입에 맞춰 전체 지출을 억제하는 ‘총액예산제’가 도입되어야 과잉진료를 억제하면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란 얘깁니다. 이와 함께 부자들에 대한 감세 계획을 철회하고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높이는 방법으로 서민들의 보험료 상승 부담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생방송 모습

영리병원 실증결과 고용감소, 서비스 하락, 환자사망률 증가

차: 그렇겠네요. 돈만 더 내고 보장성 증가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곤란하겠죠. 영리병원 도입에 대해서는 여론도 부정적이고, 정부 내에서도 보건복지부는 반대하는데요, 그래도 기획재정부는 추진하겠다는 입장이 분명하죠?

제: 이번 조사에서도 지적됐듯이 의료산업 발전과 의료 서비스의 질 향상, 투자를 늘려 일자리를 창출하고, 치료 목적의 외국인 관광객을 늘리겠다는 취지에서 추진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영리병원을 도입했을 때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바람직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 캐나다 등에서 이뤄진 실증연구들을 보면 영리병원도입으로 의료서비스의 질이 높아진다는 증거가 없고, 병원들이 비용을 줄여서 이윤을 많이 내려다보니 오히려 의료 인력 고용이 줄고, 서비스의 질은 떨어지고, 환자 사망률이 더 높아지는 경우도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특히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장사가 될 만한 서울 등 수도권으로 병원이 몰려서 지방의 의료공백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없지 않습니다. 이런 반대 자료와 부정적 여론을 무릅쓰고 정부가 영리병원 도입을 강행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차: 영리병원 문제, 어쩌면 철학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의료를 사회 인프라로 봐야 할 것인지, 아니면 경쟁을 통해 질을 높일 수 있는 산업으로 봐야할지. 오늘 고맙습니다. 

 

정리 / 이승환 기자


 *이 기사는 MBC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와 제휴로 작성되었습니다. 방송내용은 7월7일 <손에 잡히는 경제> 다시 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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