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민통선에서 만난 문현성 감독, 판에 박은 남북 해피엔딩 '싫었다'

"뭣 모르고 달려들었구나."
 
영화 촬영 초반부터 든 생각이었단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일본 지바에서 남북탁구 단일팀의 감동 실화가 있었고 그걸 영화로 만들자며 화이팅을 했지만 녹록치 않았던 것.

 

▲ 영화 <코리아>의 한 장면. 영화는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렸던 세계탁구선수권 대회를 배경으로 당시 경기에 참여한 남북탁구단일팀의 행적을 담았다. ⓒ 더타워픽쳐스

문현성 감독이 연출한 <코리아> 이야기다. 배우들을 탁구 선수에 준하게 보여야 하는 과정도 참 지난했고, 남북 선수들이 느꼈던 그 뭉클함 감정을 살려야 하는 부분도 영 자신이 없었다며 문 감독은 당시의 과정을 회상했다.
 
국내 최북단 마을이자 민간인 통제 구역 안에 위치한 '통일촌 마을'에서 <코리아> 시사회가 있던 26일 밤. 마침 마을회관에서 관객들에게 인사를 마치고 나온 문현성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탁구로 한국이 승리한 이야기?... "그럴 거면 <코리아> 만들지도 않았을 것"
 
"<코리아>가 아마 포털에선 스포츠 영화로 분류되긴 할 겁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국가대표> 등 스포츠 영화를 보긴 했어요. 하지만 정작 전 <공동경비구역 JSA>를 많이 보고 참고하게 되더라고요. 그 영화에선 남북의 이념과 정치 사회적인 대립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인물들이 그려지잖아요. 그 작품을 기준으로 이후 북한 소재 영화들이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기준점이 된 거죠. 만약 '남북이 만나서 열심히 훈련해서 단일팀으로서 금메달을 땄다' 이런 이야기를 할 거였으면 아마 <코리아>를 안 만들었을 겁니다."
 
사전 기획에서 배우들의 탁구 훈련 기간, 그리고 본격적인 촬영과 후반 작업까지 합하면 1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었다. 보통 영화 두 편은 만들고도 남을 기간이었던 것이다. 탁구를 소재로 했고 경기가 등장하기에 탁구 자세에 신경을 써야했지만 정작 감독은 다른 데 의미를 두었단다.
 
"결승전을 앞두고 선수들이 헤어지게 되는 장면만 3일을 찍었습니다. 후반 작업 때 그 장면을 수백 번 봐도 '저걸 어떻게 찍었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감독의 연출 때문이 아니라 신기하게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하나로 묶는 힘이었어요."

 

▲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국내 최북단 마을인 '통일촌 마을' <코리아> 시사회 현장. 문현성 감독이 영화 시사 전 마을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이선필

문 감독의 말을 빌리면 촬영 당시 중견 배우들은 물론이고 1991년을 기억도 못하는 신인 배우들까지 3일간 비를 맞으며 함께 울었단다. 절반은 연기라면, 그 절반은 진정 서로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올라와 있었다는 의미다.
 
문현성 감독에게 <코리아>는 승리의 스포츠 영화이기보단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에서 오는 감정을 전하는 드라마 영화였다. 특히 남북단일팀이라는 소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정서적 특수성에 대한 짙은 공명이 될 수 있을 법 했다.

신파와 최루성?...인정한다, 하지만 그게 리얼리티였다
 
분명 <코리아>는 스포츠 영화의 특성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고된 훈련과 승리의 갈망에서 오는 감정의 흐름이 있고 경기 장면에서 오는 박진감과 감동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문현성 감독은 소위 말하는 '인디 취향'이었다. 영화 <비포 선셋>에 감동 받고 인디 뮤지션 '짙은'을 좋아해 영화 OST 작업에 참여하게 하는 등 나름 마니아적 취향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국내 최고 배우들과 상업영화를 만들어냈다.
 
"영화적 전형성이라기 보단 관객에게 편하게 다가가고 싶었다고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소재 자체가 신파지 않나요? 분명 마음을 울리게 한다는 등 상투적인 표현이 있었겠죠. 실제로도 우리가 갖고 있는 북한에 대한 편견을 의도적으로 활용한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 현실이 그렇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울음을 참게 하려고 담백하게 하는 것보단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게 더 리얼하다고 생각했어요. 탁구 장면도 마찬가지에요. 영화가 재미는 물론 의미도 담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죠. 그걸 굳이 강조하지 않았지만 영화 곳곳에 담겨있습니다. 배우들이 46일 동안을 함께 하면서 느낀 감정도 그랬을 거예요."

 

▲ 영화 <코리아> 연출을 맡은 문현성 감독.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국내 최북단 마을 '통일촌 마을'에서 열린 <코리아> 시사회 현장에 문 감독도 함께 참여했다. ⓒ 이선필

현실 자체가 신파였다던 1991년 당시를 떠올린다면 문 감독의 설명은 충분히 이해할만했다. 이제야 말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문 감독은 촬영 전 리허설 때부터 배우들이 너무 울어 촬영이 곤란하기도 했던 때를 언급하기도 했다.
 
"배우들이 촬영 전부터 시나리오만 읽고도 눈시울이 붉어져 있기도 했어요. 지금부터 울면 안 된다는데도 우는 배우도 있었습니다. 영화 후반부에 보면 배우 오정세씨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예요. 그거 촬영 리허설 때 너무 울어서 눈물이 말라버려 그런 겁니다. 실제 촬영에서 눈물이 나지 않아 본인도 되게 난감해했어요(웃음). 보조 출연자 분들 역시 전체 시나리오를 본 것도 아닌데 해당 부분만 출연하는 데도 눈물을 흘리곤 했죠."
 
문현성 감독이 한 가지 예를 콕 짚어 얘기했지만, 여러 배우들이 촬영 당시 애틋한 감정에 잊지 못할 촬영이라고 했단다. 기억해야겠다. 영화 <코리아>를 볼 때 중요한 건 승리의 기억보다 남북 사람들의 인연에서 오는 먹먹함이라는 사실 말이다.
 
그러고보니 통일촌 마을회관의 시사회가 끝났을 무렵, "얼른 통일이 되든가 해야제"라고 말하며 유유히 자리를 떴던 동네 어르신들의 마음에도 문 감독의 마음이 전해졌던 것 같다.


* 이 글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재학중인 이선필 기자가 오마이스타에 보도한 기사를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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