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교양특강]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기후위기는 모든 나라에 똑같은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가장 어려운 상황을 겪을 나라가 있을 텐데, 저는 대한민국이라고 봐요.”

하승수(54)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는 지난 9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인문사회교양특강에서 ‘언론이 주목해야 할 농업·농촌 현안’을 주제로 강연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기후위기는 식량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곡물자급률이 20%대에 불과한 한국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 대표는 이어 “정부가 지금 총력을 기울여도 될까 말까 하는 상황인데 말만 앞세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승수 농본 대표가 충북 제천시 세명대 학술관에서 ‘언론이 주목해야 할 농업·농촌 현안’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박시몬
하승수 농본 대표가 충북 제천시 세명대 학술관에서 ‘언론이 주목해야 할 농업·농촌 현안’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박시몬

기후위기는 곧 식량위기, 한국은 가장 취약한 나라

변호사이자 회계사인 하 대표는 2009년까지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소장,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등을 지냈으며 현재 충남 홍성군에 정착해 농민들을 지원하고 있다.

하 대표는 “각국이 모여 탄소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노력하는 방식의 기후위기 대응은 실패했다”며 강연을 시작했다. 1997년 교토의정서부터 2015년 파리기후협정까지 각국이 탄소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이행을 약속했지만 제대로 지켜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발효된 파리협정의 국가별 탄소감축목표(NDC)를 지킨다고 해도 사실상 ‘산업화 이전 대비 1.5℃ 상승’이라는 온난화 억제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운데, 이마저도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국제사회가 기후위기를 막는다는 ‘플랜A’가 사실상 실패했다면 생존을 우선순위에 둔 ‘플랜B’를 가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농업과 농촌을 살리는 게 제1의 과제”라고 말했다. 식량수급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최근 가뭄 등 이상기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인 러시아와 5위 수출국인 우크라이나에서 밀 반출이 어려워지면서 여러 나라가 이미 식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 대표는 앞으로 기후위기가 본격화하면 식량 자급률이 낮은 나라의 식량안보는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며 “식량 가격 상승 이상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쌀, 밀, 콩, 보리 등의 식용곡물 자급률로 계산하는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020년 기준 45.8%다. 사료용을 포함한 곡물의 자급률은 20.2%에 불과하다. 그나마 쌀 자급률은 80~90%에 이르지만, 전국의 분식집·빵집 등에서 ‘제2의 주식’으로 쓰는 밀의 자급률은 0.8%에 그친다.

역대 정부 ‘식량자급률 올리겠다’ 빈말만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재학생과 줌 화상회의를 통해 참여한 외부 청중 등 40여 명이 하승수 대표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 박시몬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재학생과 줌 화상회의를 통해 참여한 외부 청중 등 40여 명이 하승수 대표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 박시몬

역대 정부는 ‘식량자급률을 올리겠다’고 공언했지만 빈말에 그쳤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에서 2022년 식량자급률 목표를 55.4%로 정했으나 2020년 수치는 2016년의 50.9%보다 5%포인트가량 오히려 하락했다. 밀의 경우 2013년 당시 박근혜 정부가 자급률을 2022년까지 15%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으나 2020년 기준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정부는 이후 밀 자급률 목표치를 9.9%로 수정했다. 하 대표는 “만약 다른 분야에서 이렇게 일이 진행된다면 아마 심각하게 문제가 됐을 것”이라며 “희한하게 농업분야에서는 그냥 넘어간다”고 말했다.

식량자급률이 계속 낮아지는 데는 농지면적 감소의 영향이 크다. 하 대표는 우리나라 농지면적이 2002년 약 186만헥타아르(ha)에서 2022년 현재 150만ha로 36만ha가 줄었다고 말했다. 매년 서울시 면적(약 6만ha)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농지가 줄어든 셈이다. 농토가 사라진 자리에는 도로와 택지가 들어섰다. 하 대표는 “농지를 보존하려면 개발을 안 해야 하지만 선거철마다 정치인들은 식량자급률을 높인다면서도 산업단지 만들겠다는 공약을 엄청나게 내놓는다”고 꼬집었다.

농사를 지어야 할 농가 인구도 줄고 있다. 하 대표는 “농가 인구가 22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5%도 안 된다”며 “그중 60%가 이미 60대 이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서 농민은 정치적 소수자”라며 “철저히 정치나 여론의 관심에서 배제돼 있고 농민들이 겪는 일들은 그다지 사회에서 중요하게 취급이 안 된다”고 말했다.

하 대표는 “획기적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며 ▲국가 차원의 농민수당(농민 기본소득) ▲농지보전 ▲농촌 공공주택 공급 등 세 가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우선 농민의 범주를 넓혀 농사를 짓지 않아도 농촌에 거주하면서 돌봄노동 등 농민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면 농민수당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각종 법률의 농지 관련 인허가 의제 조항을 폐지해 농지의 용도변경을 어렵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빈집은 많지만 살만한 집은 많지 않다는 게 농촌에서 뭔가 해보려는 분들의 공통적인 이야기"라며 ”농촌에 공공성 있는 주택을 공급하면 도시의 주거 불안도 해결하면서 농촌을 더 매력적인 선택지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농촌에 더욱 절실한 민주주의

하승수 대표는 해안지역에 밀집한 발전소 등을 예로 들어 위험성이 높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시설들이 농어촌에 계속 들어서고 있다고 걱정했다. ⓒ 박시몬
하승수 대표는 해안지역에 밀집한 발전소 등을 예로 들어 위험성이 높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시설들이 농어촌에 계속 들어서고 있다고 걱정했다. ⓒ 박시몬

하 대표는 “우리 농업은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지켜가야 한다”며 “그런데 땅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고령화된 농촌으로 각종 오염시설이나 개발사업들이 무분별하게 들어오고 있다”고 고발했다. 대표적인 문제가 발전소와 송전탑이다. 원자력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는 해안지역에 밀집했는데, 여기서 생산한 전기는 서울 등 수도권에서 주로 사용한다. 전기를 보내기 위해 국토 전역에 가설된 송전선은 산불 등 큰 재난이 발생하면 대정전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는 “사실 이번 울진 산불 때 그런 일이 벌어질 뻔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농촌에 버려지는 산업폐기물 문제도 심각하다. 하 대표에 따르면 국내 발생 폐기물 중 생활폐기물은 8.9%정도고 나머지는 산업폐기물인데, 석면과 같은 지정폐기물, 유해성이 높은 의료폐기물 등이 농촌에 밀려들고 있다. 산업폐기물은 유해성이 큰 만큼 처리사업의 수익성이 높다. 그래서 대기업과 사모펀드까지 폐기물 사업에 뛰어들어 농지·산지의 저렴한 땅을 매입한 뒤 매립지로 사용한다고 하 대표는 말했다. 그로 인한 환경오염과 건강피해는 지역 주민의 몫이다. 하 대표는 “산업폐기물을 둘러싼 비리가 대장동급”이라며 “일단 인허가를 받으면 매립장에서 떼돈을 버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폐기물로 인한 주민 건강피해는 이미 문제가 되고 있다. 충남 당진의 경우 지난해 현대제철의 자체 매립장에서 ‘시안’이라는 유독 물질이 검출됐다. 폐기물 소각장이 있는 충북 청주시 북이면의 한 마을에서는 지난 10여 년간 주민 60여 명이 폐암 등 각종 암으로 숨져 환경부 등이 진상조사에 나섰다.

하 대표는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도가 근본적으로 잘못됐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 대표에 따르면 1961년 5.16 군부쿠데타 이전 한국의 지방자치는 읍·면별로 이루어졌으나 5.16 이후 읍·면의 장들이 임명직으로 바뀌었다. 하 대표는 “읍면 단위의 자치권이 사라졌기 때문에 읍·면 주민들의 의견이 무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남 곡성군 겸면에서는 주민들이 채석장을 반대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는 이유로 곡성군청이 과태료 1800만 원을 부과했다. 하 대표는 “불법 현수막이 되면 그냥 떼가는 게 보통”이라며 “서울 강남아파트 주민들도 옆에서 공사하면 나와서 데모하는데 과태료 부과됐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일을 제대로 보도할 수 있는 언론이 없다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근거 없는 낙관보다 ‘정직한 비관주의’가 필요

강연에 이어진 질의답변 시간에 최은솔 씨 등 청중이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 박시몬
강연에 이어진 질의답변 시간에 최은솔 씨 등 청중이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 박시몬

하 대표는 “정직한 비관주의에 바탕을 둔 인식과 실천이 필요하다”며 “근거 없는 낙관을 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도록 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처럼 하면) 2050년까지 탄소중립 목표달성이 불가능한데 될 것처럼 이야기하고, 식량자급률이 올라갈 수가 없는데 올라갈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국민들을 기만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하 대표는 “최우선 순위를 기후위기 대응에 두고, 농업과 농촌을 살리는 것만이 (국민이 행사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권”이라며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면 결국 시민들이 마지막 선택권을 가지지 못하고 위기 상황을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질의답변 시간에 최은솔(25·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씨는 “주민자치 단위를 읍·면으로 쪼개야 한다고 했는데, 지역소멸을 막는 대안으로 메가시티를 만들자는 제안과는 배치되는 이야기인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하 대표는 “메가시티는 경제의 낙수효과와 비슷한 환상”이라며 “또 다른 불균형을 낳을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그는 “메가시티는 중심도시로 쏠리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고 오히려 농촌은 공동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진정한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정치·행정적 중심을 분산시키는 독일식 연방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 대표에 따르면 독일은 연방제 하에서 각 주 정부가 행정의 주요한 책임을 행사하고 생활에 밀착한 문제는 작은 지자체 단위의 풀뿌리 자치를 통해서 해결한다. 중앙 정부는 주 정부들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외교·국방과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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