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제정임·단비뉴스 취재팀 '벼랑에 선 사람들'

나는 2008년의 반년을 충북 제천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에서 보낸 뒤 기자가 됐다. 이 학교의 단비뉴스 취재팀은 2010년 꾸려졌다. 그러니 이들과 대학원 생활을 함께한 기억은 없다. 그러나 <벼랑에 선 사람들>을 읽는 동안 현장에서 고생했을 그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학생 기자의 신분으로 이런 큰일을 저지르다니. 대체 언론사에 취직이라도 하면 얼마나 더 큰 ‘사고’를 치려는 걸까. 내심 질투도 나고 경계심도 생겼다.

▲  세명대저널리즘스쿨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한국 사회의 소외된 현장을 직접 뛰며 취재한 심층 보고서 <벼랑에 선 사람들>. 

이들은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으로 노동, 주거, 보육, 의료, 금융이라는 큰 주제를 잡고 구체적인 사례 속으로 뛰어든다. 첫 장부터 후끈하다. 가락시장 파배달꾼으로 보낸 14박 15일, 텔레마케터 2주 체험, 야간 출장청소부 21일 체험, 특급호텔 하우스맨 15일의 고군분투기. 근로빈곤의 현장으로 달려간 이들은 하루 종일 일하고도 최저임금을 밑도는 월급을 받는 노동자들의 삶과 마주한다. 술과 담배로 심신을 달래면 생활이 구멍 나는 힘든 현실, 희망이 거세된 일상이 거기 있었다.

▲ 단비뉴스를 이끌어가는 부장단. 좌측부터 취재부장 양호근, 영상부장 김승태, 전략부장 이지현, 편집부장 정혜정 기자. ⓒ 이준석

빈곤층의 주거현실 편은 ‘집은 곧 인권이다’라는 구호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김화영 기자는 쪽방, 만화방, 다방 등에서 직접 하루씩 묵는다. 하루 3000~5000원의 숙박비조차 없어 노숙하는 사람들을 취재할 땐 해병대 출신의 ‘깡’으로 접선을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한쪽 눈알이 없는 사내와 마주치고 본능적으로 꽁무니를 내뺐다는 일화가 등장한다.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면 ‘너무 영화적인 설정’이라고 꼬집었을 것 같다.

학생기자들은 노동과 주거 문제 외에도 아이 때문에 전쟁을 치러야 하는 사람들, 병마와 함께 무너지는 가정, 빚에 인생을 저당 잡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꼼꼼하게 취재했다. 400쪽이 넘는 책이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주거 빈민들을 취재한 송지혜 기자의 취재후기를 읽다가는 울컥했다. 6년간 10번이나 짐을 싸야했던 그녀는 “집은 사는 곳이 아닌 임시대피소였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주거 빈민들을 취재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그것이 바로 내 이야기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이건 나의 이야기다. 우리의 이야기다. 언젠가 우리의 일이 될지도 모를 이야기다. 그러니 외면해선 안 될 이야기다.

▲ 현재 단비뉴스는 세명대저널리즘스쿨 4,5기생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가고 있다. ⓒ 강신우

일찍이 당대의 외롭고 쓸쓸한,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보고서가 없었던 건 아니다. 당장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 떠오른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한겨레21> 기자들이 가난한 노동자의 삶 속으로 뛰어들어 써낸 <4천원 인생>도 있다. 어쩌면 <벼랑에 선 사람들>은 앞서 언급한 책들에 비해 체험의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고, 문학성은 덜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학생기자들의 문제의식과 해보겠다는 열정은 ‘프로’ 못지않다. 특히 각 장마다 전문가의견과 해외사례 등 대안을 촘촘히 제시한 실천적 의지가 돋보인다. 이런 시도를 단비뉴스에서 계속 보고 싶다. <벼랑에 선 사람들>은 그 시작을 보여주는 것이라 믿는다.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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