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특강] 이대근 <경향> 편집국장, ‘신문의 미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저널리즘특강>은 보도와 칼럼, 방송제작, 매체창업 등을 통해 한국사회의 담론형성과 의사소통에 크게 기여해온 분들이 진행합니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언론사의 핵심간부와 논객들이 한 특강을 <단비뉴스>가 중계합니다. 이 특강은 우리 저널리즘에 대한 생생한 경험담도 흥미롭지만, 학생이 쓴 기사를, 함께 강의를 듣는 강좌책임교수가 데스크를 봄으로써 ‘강연ㆍ연설기사 쓰기’ 수련을 겸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특히 언론인이 되려는 학생들의 관심을 기대합니다. <편집자>

“당파성이 아니라 편파성이 문제”

"단연코 말하건대, 신문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존 물량과 외형만 가지고는 한국을 대표하는 언론이 될 수 없습니다."

▲ 이대근 <경향신문> 편집국장이  '종이 신문의 미래'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안형준
최근 눈길을 사로잡는 1면 편집 등으로 혁신을 꾀하고 있는 <경향신문>의 이대근 편집국장이 신문사를 방문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에게 “종이 신문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아이패드 등의 스마트 기기들이 가져온 디지털 문화가 기존 언론 시장을 위협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위기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고 지적했다.

소크라테스의 일화를 예로 들며, 수사학이 발달한 고대 그리스에서도 문자가 처음 소개됐을 때, 당대 엘리트들은 현재 언론사들이 갖는 ‘디지털 공포’ 와 비슷한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고 한다. 문자가 갖는 ‘함축성’으로 ‘진실’에 대한 조작이 용이해져, 결국 인간 정신의 심각한 훼손으로 이어질 거라는 우려가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문자와 말은 각각 본연의 역할에 맞게 발전해왔다. 그런 사례는 굳이 먼 과거에서뿐 아니라, 라디오가 효과적 대중매체 수단으로 등장했던 근현대에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새 매체인 TV의 도입으로 라디오 시대가 종말을 고할 것이라는 예견도 빗나갔다. 결국 신문도 이와 비슷한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종이신문의 위기는 언론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신뢰도 하락에 보다 근본적 원인이 있다고 그는 우려했다.

그는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언론이라면 적어도 3가지 기본 전제를 충족시켜야 한다며, 사회적으로 쟁점이 되는 의제를 주도하고, 당대의 가치를 반영하고, 언론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전제들이 상당 부분 실종된 현실에서는 한국 언론, 특히 종이 신문의 미래 자체가 암담하다고 말했다.

“당파성 자체는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문이 주관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문제는 당파성에 내재되어 있는 편파성입니다.”

이 국장은 한국의 많은 신문들이 ‘비당파성’을 내세우지만 그 속에는 ‘편파성’이 노골적으로 깔려 있어, 시시비비를 가리는 언론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편가르기를 떠나서 의제에 대한 시시비비를 따지는 원칙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경향신문>이 곽노현 교육감의 선거비리를 비판한 사례를 들며, 곽 교육감이 추진하는 정책의 내용과 별도로 선거비리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향신문>이 ‘나꼼수’를 비판했을 때도 ‘나꼼수’ 애청자들의 항의 전화가 쇄도했지만 의연한 보도태도를 견지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런 공정성이야말로 한국 언론이 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진보가 <경향신문>의 보도성향은 아니라고 말했다.

과도한 ‘언론자유’ 아니면 ‘언론탄압’

이 국장은 ‘언론 자유’에 대해서도 좀 색다른 견해를 피력했다. 한국 언론은 너무 많은 자유를 누리는 동시에 또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자유의 과잉’은 한국 언론 특유의 ‘폭로 저널리즘’이다. 비판 대상이 정해지면 끝장을 내는 방식은 때로는 사회 부패를 방지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모든 의제를 그런 식으로 다루면 공동체가 깨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편으로 자유의 제약에 대해서는 “최근 언론노조 파업이 보여주는 현실처럼 한국 언론은 정부와 대자본의 통제 아래 언론의 자유를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 강연 뒤 <경향신문> 제작국 등을 견학하고 있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생들. ⓒ 안형준
그는 한국 언론은 보수든 진보든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세력과 정책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1961년 미국 케네디 대통령 때 쿠바 피그만 침공사건을 예로 들며, 케네디 정권이 혈연과 학벌로 이어진 ‘그룹 씽킹’(집단 사고)의 위험성에 노출돼 정책의 실패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 내부 관계자만으로는 건강한 정책 실현이 힘들기 때문에 언론의 ‘감시견’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노무현 정부 때 <경향신문>이 정부 정책을 비판했더니 ‘왜 같은 색깔인데도 지원해주지 못하나’라는 비난을 받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오히려 ‘당파성’을 좇게 되면, 결국 권•언유착으로 이어지고, 언론으로서 본연의 역할을 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자는 새로운 사실을 추적하고, 논쟁적 주제를 파악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한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매일 반복하는 직업은 기자가 유일무이하다고 말했다. 특정 지식에서는 최고가 아닐 수도 있지만, 사실 검증에서만큼은 최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국장은 대표적 사례로 황우석 줄기세포 조작 사건을 들었다. 조작 의혹 초기 단계에서는 전문가도 아니면서 무분별하게 칼을 들이 대는 게 아니냐는 세간의 비판이 따랐지만, 관련 전문가들과 사실들을 꼼꼼히 추적해 나가면서 시시비비가 가려졌다. 언론의 역할은 이처럼 사실 전달의 수단으로 시작해, 궁극적으로는 의제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매체로 승화될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기자가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진다면, 한국 신문의 미래는 밝다고 말했다. 신문이 인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실의 전달 수단으로 돌아간다면, 그리고 ‘팬덤’에 따라 논조가 달라지는 게 아니라 시시비비를 따지는 공리성의 원칙을 유지한다면, 한국을 대표하는 언론사로 길이 남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에는 제대로 된 신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 위와 같은 원칙만 제대로 지켜도 독자들이 크게 호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가 <경향>의 보도성향이 아닌 이유

 ▲ <경향신문> 조호연 사회에디터가 세명대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의 질의에 응답하고 있다. ⓒ 안형준
이대근 편집국장의 특강이 끝난 뒤, <경향신문> 편집국을 이끄는 세 명의 부국장단, 곧 이중근 기획에디터, 양권모 정치ㆍ국제에디터, 조호연 사회에디터가 강의실에 와서 학생들의 질문에 답했다.

편집국장이 강의 도중 ‘진보가 <경향신문>의 보도성향은 아니다’라고 한 점을 들어 한 학생이 “독자들은 <경향신문>과 <한겨레>를 진보신문이라 생각하는데 괴리가 있지 않느냐”고 묻자 조호연 에디터는 명쾌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굉장히 간단한 문제인데 복잡하게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저널리즘은 상식에 의거한 판단을 해서 사실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상식이란 대체로 유사합니다. 사실을 전달하면 되지요. 물론 우리에게도 ‘약자 보호’ 같은 중점을 두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보 자체는 수단입니다. 진보는 사람이 행복해지는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고자 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언론이 되려면 국제뉴스 비중을 늘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양권모 에디터는 “국제면을 보강하자는 의견이 있지만 한정된 지면에서 독자가 원하는 기사를 취사선택해야 하는데 국제면을 늘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조호연 에디터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신문은 독자가 원하는 기사를 많이 쓸 수밖에 없습니다. 국제 기사를 많이 싣는다고 해서 독자들이 읽을 것인지 의문이 들어요. 미국이나 중국은 전 세계 국가와 연결되어 있어서 아프리카 뉴스도 심리적으로 가깝게 느껴지지만 우리나라 경우는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한 학생이 양권모 에디터에게 “실물보다 칼럼 사진이 젊어 보인다”며 “기자의 정년은 언제인가’라는 질문을 하자, 그는 웃으면서 “열정과 능력이 있다면 언제까지라도 지속할 수 있는 직업이 기자”라고 답했다. 덧붙여서 이중근 에디터도 “각 신문사에 ‘선임기자’나 ‘대기자’ 제도가 생겼고 데스크에서 일선으로 내려가 기자로 뛰는 사람도 있다”며, “머지않아 국내에도 외국처럼 백발이 성성한 기자가 현장을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비언론인이 언론인이 되었을 때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조건을 말해달라는 질문에 조 에디터는 ‘열정’이라고 답했다. 체력이나 지력은 누구나 갖출 수 있지만, 열정은 기자생활을 하다 보면 식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끝까지 최선을 다해 갖고 있어야 할 자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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