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 칼럼]

제정임 원장
제정임 원장

“이것은 골리앗에 대항한 다윗의 역사적 승리다.” 지난 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시 스태튼섬의 아마존 물류창고 제이에프케이에이트(JFK8)에서 노조 결성 투표가 가결되자 <뉴욕타임스>에서 25년간 노동 분야를 취재했던 스티븐 그린하우스가 트위터에 쓴 말이다. 1994년 창사 뒤 ‘무노조 경영’을 고집해온 아마존은 조합 설립을 막는 컨설팅 비용 등으로 지난해 약 50억 원을 썼다고 한다. 반면 크리스천 스몰스 등 전·현직 아마존 창고노동자들은 크라우드펀딩으로 마련한 1억4천여만 원으로 8천여 명 대상 캠페인을 벌여 ‘과반 투표, 과반 찬성’을 얻어냈다.

이들은 주차장 천막에서 바비큐 음식을 나누며 노조의 필요성을 알렸고, 소셜미디어로 사측의 방해 공작에 맞섰다. 스몰스는 2020년 창고노동자들 사이에 코로나19가 급속히 퍼지는데도 회사가 방역을 제대로 하지 않자 항의하다가 해고된 사람이다. 고졸의 래퍼 출신인 그는 이제 아마존노동조합(ALU)의 대표로서 전국 물류창고별 조합 결성 투표를 돕고 있다.

월마트에 이어 미국 2위 고용주인 아마존은 여전히 직원 110만여 명을 대상으로 반노조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데, 한국 1위 재벌 삼성의 과거와 닮은 점이 있다. 고 이병철 창업주 이래 무노조 경영을 고수한 삼성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재판을 받던 2020년에 와서야 ‘무노조 경영 철폐’를 선언했다.

노동 3권을 헌법이 보장하는 나라에서 무노조 경영 방침은 그 자체로 반헌법적이다. 심지어 조합을 만들려던 노동자들이 미행과 사찰을 당하고 해고되는 일도 있었다. 생산공정에서 쓴 독성물질 때문에 암과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들은 대변해줄 노조가 없었다. 국정농단 수사 과정에서 삼성의 조직적 노조 탄압을 입증하는 문건이 발견돼 책임자들이 기소되고서야 무노조 경영에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노조를 억지로 인정한 탓인지, 삼성전자 등의 단체교섭은 최근에도 삐걱거리고 있다.

지난 1일 아마존 최대 물류 창고 ‘JFK8’에서 아마존 노조 설립 투표가 가결돼 노동조합 활동가 크리스 스몰스(가운데)가 조합원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 EPA연합뉴스
지난 1일 아마존 최대 물류 창고 ‘JFK8’에서 아마존 노조 설립 투표가 가결돼 노동조합 활동가 크리스 스몰스(가운데)가 조합원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교수는 지난 2일 <엠에스엔비시>(MSNBC) 방송 인터뷰에서 “대규모 방해 공작을 이겨낸 아마존 노조의 승리는 미국 노동조합이 부활하는 엄청난 역사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미국 노조 조직률은 1950년대 30%를 넘었으나 1983년 20.1%로 떨어졌고 2021년에는 10.3%가 됐다. 우리나라는 1989년 19.8%에서 이후 10%대로 떨어졌다가 2020년 14.2%가 됐다.

라이시는 저서 <자본주의를 구하라>에서 미국이 선진국 중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된 것은 노조를 포함한 ‘대항세력’이 약해진 탓이라고 진단했다. 대자본은 금권정치를 통해 조세 등 경제 제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조작하는데, 노조와 시민단체 등의 대항력이 너무 약해져 제동을 걸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반면 스웨덴, 독일 등 노조의 조직률이 높고 경영 참여가 활발한 나라에서는 불평등과 빈곤이 훨씬 덜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세계불평등보고서(WIR)에 따르면 한국은 2021년 현재 미국과 더불어 상위 소득집중도 기준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에 속한다.

아마존이 과연 미국 노조 부활의 기폭제가 될지, 삼성전자 노조가 한국 노동운동에 원기를 더하는 수액이 될지, 아직은 낙관하기 어렵다. ‘평생직장’이 당연했던 제조업 중심의 20세기 노조와 정규직·비정규직·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가 나뉜 21세기의 노조는 응집력에 차이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노동자가 못 뭉치면 비인간적 노동환경과 불평등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화장실도 제때 못 가는 알고리즘 통제 속에서 창고노동자들이 하루 10~12시간씩 일하고 겨우 최저임금 넘는 보수를 받을 때, 최고경영자는 연봉 2600억 원을 챙긴 아마존이 상징적이다. 국내외에서 아마존 같은 노조는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치열하게 뭉치고, 삼성 같은 노조는 비정규직·협력업체 노동자와도 연대하면 불평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기업들도 환경·사회·투명경영(ESG)이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는 지금,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인 노조를 배척하고 잘나갈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노조는 다양한 구성원을 끌어안으며 확장하고, 경영자는 노조를 진정한 동반자로 삼아야 21세기에도 발전하는 기업,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 4월 19일 자에 실린 [제정임 칼럼]을 신문사의 허락 하에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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