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덕수궁 앞 추모기도회 “절망의 행렬 멈추게 할 수 없나”

지난 6일 오후 6시 무렵,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노란색 외투를 입은 경찰 20여 명이 둘러서 있다. 경찰 대오 안쪽에는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다. 지난달 30일 경기도 김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쌍용자동차 해고근로자 이모(36)씨의 분향소를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이씨는 2009년 쌍용차 대량해고 사태 이후 쌍용차 해고근로자와 가족 중 22번째로 목숨을 잃었다.

▲ 대한문 앞에 차려진 쌍용자동차 노동자 추모 분향소의 모습. ⓒ 월간 노동세상 윤성희

대리 운전 등으로 생계 꾸리는 해고 노동자들

상주 역할을 맡은 문기주(52) 전국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정비지회장은 듬성듬성 자란 수염에 푸석한 얼굴로 조문객들을 맞았다. 해고노동자인 문씨가 내민 명함에는 ‘쌍용자동차지부 재정사업’이란 설명 아래 대리운전 광고문구가 있었다. 해고된 조합원들은 생계유지와 투쟁 자금 마련을 위해 대리운전을 하거나 식당, 카센터 등에서 일한다고 한다. 

문씨 등 조합원들에 따르면 경찰은 이날 위령제를 위해 상단으로 쓸 작은 책상과 사망자 추모 현수막 등을 ‘불법시위용품’이라며 설치하지 못하게 했다. 문 씨가 입고 있던 상복도 벗으라고 명령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여, 조합원들과 한 차례 충돌도 있었다고 한다.

쌍용차 사태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는 해고조합원 이현준(42)씨는 “지금 이동식 발전기도 뺏겼고, 어제는 차가운 바닥에 얇은 은박스티로폼만 깔고 밤을 새웠다”고 말했다. 대한문 앞 분향소는 지난 5일 설치됐고 10여 명의 조합원들이 밤낮으로 지키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무관심이 낳은 사회적 타살”

대한문 앞에 어둠이 깔리고 저녁 7시가 되자 22개의 촛불이 초라한 분향소를 밝혔다. 진보성향 기독교단체인 ‘예수살기’ 등이 주관한 추모기도회가 시작됐다. 생명평화교회의 최헌국(51) 목사가 기도회를 이끌고, 노동예술단 ‘선언’의 노래공연이 이어졌다. 처음 30명 정도로 시작했지만 두 시간 남짓 동안 일반 시민들도 하나 둘 모여들어 60명 가까운 사람들이 촛불을 들었다.

▲ 밤 8시경 추모기도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월간 노동세상 윤성희

기독교평화연구소의 문대골(71) 목사는 연설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이라고 주장했다. 

“기독교는 원래 자살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여기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이유는 이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이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는 추모를 넘어 우리의 죄를 회개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그 죄는 바로 우리의 무관심입니다.”

노동자들이 갑작스러운 정리해고로 생존권을 박탈당하고, 노동조합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재취업도 어려워진 절망적 상황에서 어쩔 수없이 선택한 게 죽음이었다는 주장이다. 이 길로 노동자들을 내몬 쌍용자동차와 그간의 사태를 묵인해 온 우리 사회가 이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촛불을 든 시민 가운데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행사소식을 듣고 분향소를 찾은 사람들도 있었다. 서울 강남에서 퇴근 후 바로 대한문까지 왔다는 박희경(45회사원)씨는 “쌍용차 문제에 관심을 가져보니까 이 일이 비단 쌍용자동차의 문제만은 아니더라”며 “재벌이 제 이익만 챙기고 노동자들은 대량해고한 뒤 ‘나 몰라라’ 하는 것은 그들의 삶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밤 10시 무렵 기도회가 끝난 후 가진 인터뷰에서 최 목사는 “모든 죽음은 위로받을 권리가 있다”며 “분향소 설치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현 정부를 규탄하고, 대량해고로 생존권을 박탈당해 죽음에 이른 노동자를 위로하기 위해 기도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지금 현장에 나와 있는 조합원들이 매우 지치고 힘든 상태라는 게 걱정”이라며 “죽지 말고 힘내서 싸우자, 우리가 옆에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 추모 기도회를 모두 마치고 참가자들이 마지막으로 고인에게 조문하고 있다. ⓒ 월간 노동세상 윤성희

‘희망 텐트’로 응원했지만 또 다른 죽음....“방법을 모르겠다”

다음 날인 7일 오후 6시쯤 대한문 분향소에 나와 있던 고동민(38) 희망텐트청년회장은 “쌍용차 해고자들의 죽음이 숫자로만 누적되고 계량화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 사람의 죽음이 ‘22번째’라는 사회적 의미로만 부각되는 것 같아서 너무 슬퍼요. 지난해 12월 7일부터 쌍용차 평택공장 앞에서 저를 포함한 해고 조합원 30명이 텐트 노숙을 시작했는데, 이런 게 모두 연이은 죽음을 막기 위한 것이었는데... 솔직히 이제는 방법을 모르겠어요.”

역시 분향소에 나와 있던 사회진보연대 정지영(34) 사무처장은 “언론이 쌍용차 사태에 대해 잘 보도하지 않고 노동 현실에 대해 잘 써주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정확한 상황을 모른다”며 안타까워했다. 오는 21일에는 평택 쌍용차 공장에서 ‘희망텐트 4차 포위의 날’을 열고 이씨 등 쌍용차 희생자들을 추모할 계획이지만 사회가 얼마나 관심을 가져줄지 미지수라는 게 이들의 걱정이다.

한편 쌍용차 사태는 지난 2009년 회사 측이 재정위기를 이유로 2천7백여 근로자들을 정리해고하기로 하자 노조가 77일간 파업을 벌이면서 시작됐다. 노조 측에 따르면 그해 8월 회사 측이 무급휴직자 등을 1년 후 복귀시켜주고 조합원들에 대한 각종 고소고발을 취하하기로 해 파업을 철회했지만 회사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후 쌍용차 해고근로자와 그 가족 중에서 22명이 자살이나 사고, 질병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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