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재벌개혁 사령탑 ‘물 먹이기’, 구호만 남고 사람 없어
[두런두런경제] 김광진 제정임의 경제카페

김광진(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진행자): 4.11 국회의원 총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는데요, 당초 선거에 앞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앞 다퉈 강조했던 여야 정당들이 갈수록 실천의지가 약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요.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무엇보다 경제민주화를 추진할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게 됐기 때문입니다. 당초 새누리당은 지난해 10.26 재보선 패배를 계기로 ‘환골탈태가 시급하다’며 경제민주화론자인 김종인씨를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했습니다. 그래서 경제민주화를 당의 정강정책에 새로 넣는 등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번 공천과정에서 재벌개혁과는 거리가 먼 성장주의자들을 대거 후보로 내세우면서 김씨가 지난달 22일 비대위원을 사퇴하는 사태가 빚어졌습니다. 민주통합당의 경우도 대표적인 경제민주화론자인 유종일 케이디아이(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를 당 경제민주화위원장으로 영입하고 재벌개혁 등의 공약을 개발했는데, 막상 유 교수에게 공천은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종일실종사건’이란 말까지 나오게 됐습니다. 여야 대표정당이 ‘경제민주화’를 떠들면서도 이를 밀고 나갈 인물들을 배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현 정부의 대기업 중소기업 동반성장정책을 상징하는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정부의 개혁의지부족을 성토하며 최근 사퇴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줄푸세’부터 한미FTA 선봉장까지... 여야 재벌개혁 의지 약화

김: 양당이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한 사람들 중에 경제민주화와 거리가 멀다고 지적되는 인물들은 어떤 이들입니까.

제: 새누리당의 경우 당선이 거의 확정적인 비례대표 10번에 이만우 고려대 교수를 배치했습니다. 이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의 ‘747’ 공약 등 재벌중심의 성장주의 정책을 개발했고 복지확대를 ‘포퓰리즘’으로 공격해 온 대표적 인물로 꼽힙니다. 이 때문에 가장 재벌개혁과 거리가 멀다고 비상대책위원들이 거세게 반대해 재심까지 했지만 공천심사위원회가 밀어붙였다고 합니다. 또 비례대표 12번에 배정된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는 지난번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줄푸세’ 공약, 즉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는 신자유주의 기조의 경제정책을 개발한 인물입니다. 지역구 후보로 공천된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의 선봉장이죠, 또 나성린 의원 등 상당수의 경제전문가들도 대부분 감세를 지지하는 성장주의자들이라 재벌개혁 방향과는 상반되는 인물들이라는 지적입니다. 민주통합당의 경우 유종일 교수가 낙천된 대신 또 다른 경제민주화이론가인 홍종학 교수가 비례대표 상위순번을 받긴 했지만, 김진표 의원 등 지역구에 공천된 경제전문가들 대부분이 재벌개혁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김: 여야 정당들이 총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를 앞 다퉈 외치다가 막상 후보 공천은 다른 방향으로 한 이유가 뭘까요.

제: 표심, 즉 선거 민심을 얻기 위해 경제민주화를 외쳤지만 원래부터 진정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당내 계파갈등이나 재벌눈치보기에 영향을 받으면서 실천의지가 급격히 약화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많습니다. 당초 여야 정당들이 재벌개혁과 복지확충 등을 골자로 하는 경제민주화 정책을 강조하게 된 것은 10.26 재보선 등을 계기로 ‘재벌독식의 경제구조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민심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표적인 경제민주화론자들을 사령탑으로 앉히고 재벌개혁정책을 수립했는데, 막상 국회의원 자리를 놓고 당내 계파간 싸움이 빚어지면서 공천은 엉뚱한 방향으로 됐다는 분석입니다. 특히 양당 지도부에게 진정한 재벌개혁의지가 없고, 정치자금 문제 등으로 재벌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습니다. 

출총제, 순환출자 여부 놓고 여야 간 입장 차 뚜렷

김: 그렇다면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이 내세웠던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 공약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관련 공약도 많이 약화됐나요? 먼저 새누리당부터 살펴보죠.

제: 새누리당의 경우 김종인씨가 비대위원으로 활동하는 동안에도 당초 의지보다는 약화된 정책들을 내놨습니다. 출자총액제한제도, 즉 순자산의 일정비율을 넘어서 다른 회사에 출자할 수 없도록 규제하는 제도가 지난 2009년 없어진 것에 대한 부작용을 보완하도록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는데,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흔적도 없어졌습니다. 또 재벌 계열사들 간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순환출자구조가 경제력집중의 원인 중 하나인데, 이것도 금지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와 하도급 횡포 등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고,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고, 중소기업고유영역을 보호하는 것 등을 제시했습니다. 그나마  이런 정책들이 선거가 다 끝난 후에도 살아남을지 미지수입니다.  
 
김: 민주통합당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제: 민주통합당의 정책은 일단 당초의 강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재벌의 경제력집중을 억제하기 위해서 상위 10대 재벌에 대해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부활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순자산의 30%를 넘는 출자를 금지하겠다는 구상입니다. 또 계열사간의 순환출자도 3년간의 유예기간을 주면서 해소하도록 유도하기로 했습니다. 지주회사의 경우는 부채비율요건을 현재의 200%에서 100%로 낮춰, 남의 돈을 빌려 계열사를 주렁주렁 늘리는 일을 막겠다는 계획입니다. 또 재벌이 금융계열사를 통해 지배력을 확대하지 못하도록 금산분리규정을 강화하는 정책도 포함했습니다. 대기업의 하도급 횡포 등에 대해서는 손해액의 3배를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손해배상제를 도입하고 기업인 범죄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등의 대책도 내놓고 있습니다. 다만 재벌개혁을 내세우고 집권한 노무현 정부가 실제로는 재벌규제를 풀었던 것처럼, 민주통합당도 실천의지가 의심스럽다는 게 문제입니다.  

김: 가장 강력한 수준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내세우고 있는 곳은 통합진보당이라고 하던데요, 통합진보당의 정책은 어떤 것들입니까.

제: 재벌규제법인 ‘기업집단법’을 제정해서 재벌규제를 체계화하자는 구상입니다. 현재 상법 공정거래법 자본시장통합법 등으로 분산돼 있는 경제력집중 억제 제도들을 하나의 법으로 체계화해서 재벌이 큰 힘을 이용해 경제적 기회와 성과를 독식하지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감시하자는 것입니다. 통합진보당은 민주당이 제시한 출자총액제한제를 더 강력하게 시행하자고 요구합니다. 또 순환출자금지, 지주회사요건 강화, 금산분리강화를 추진하고 계열분리 명령제를 도입해서 과도하게 덩치가 커진 재벌 계열사는 그룹에서 분리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방안도 포함했습니다. 통합진보당은 이런 정책들을 통해 현재 30대 대기업집단 체제인 재벌들을 장기적으로 3000여개의 전문기업 체제로 변화시켜 나간다는 구상을 제시했습니다. 다만 통합진보당은 상대적으로 소수정당이기 때문에 개혁에 얼마나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재벌개혁 없으면 양극화 지속... 투표로 경제민주화 실현해야

김: 사실 지난 2월초 이 시간에 여야 정당들의 경제민주화 공약 경쟁을 다루면서 ‘이게 선거 후에 꽝이 되어선 곤란하다’는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막상 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후퇴하는 모습이라니 씁쓸합니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앞으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근로자의 형편이 나아질 것을 기대하기가 어렵지 않을까요.

제: 맞습니다. 우리 경제는 소수 재벌들이 생산 및 이익의 기회와 자산을 독과점하고 있고, 그런 힘을 이용해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기회까지 뺏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이대로 간다면 경제양극화가 더 심해지고, 성장 잠재력도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중소기업은 우리나라 고용의 88% 가량을 담당하고 있는데, 중소기업들이 어려우니 많은 근로자들도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비정규직의 불안정한 일자리와 저임금에 시달리는 게 현실이죠. 재벌의 독과점이 심하면 독과점 기업들이 담합을 통해 폭리를 취하면서 소비자는 바가지를 쓰게 됩니다. 나아가 지나치게 비대해진 재벌이 돈의 힘으로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자기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을 만들고, 광고주로서 언론을 좌우하면서 민주주의의 기반까지 훼손하는 게 현실인데, 이게 앞으로 더 심해질 수도 있겠죠. 

김: 그렇다면 시민들이 유권자로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제: 거대한 재벌의 힘 앞에 개인은 무력하기 짝이 없지만 유권자에겐 ‘표의 힘’이 있죠. 민주주의의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권자들이 선거에 관심을 갖고 반드시 투표로 선택권을 행사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자기 지역 후보 중에 누가 경제민주화를 추진할 사람이고, 누가 거기에 역행할 사람인지, 또 어떤 정당이 보다 진정성을 갖고 약속을 지킬 수 있을 지 잘 가려서 찍어야 합니다.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사람’을 잘 뽑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요즘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서 평범한 시민도 자기 목소리를 내고 공론장에 힘을 보태기 쉬운 시대가 아닙니까. 각자 생업에 바쁘고 살기 힘들더라도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치와 선거에 관심을 갖고 행동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 기사는 KBS2 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와 제휴로 작성했습니다. 방송 내용은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4월 4일 다시 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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