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막 내린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전석 매진’ 기록한 실화

한 커플이 실제 동거하는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면 누구라도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까. 특히 그들이 게이(동성애자)고, 게다가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감염자라면?

▲ 영화 <옥탑방 열기> 화면 갈무리. ⓒ 네이버 영화

영화 <옥탑방 열기(Summer Days in Bloom)>는 이렇게 평범하지 않은 두 남자가 옥탑방에서 동거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과정을 담아 낸 다큐멘터리다. 섭외도 촬영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 이 작품이 신인 감독들의 데뷔작이라는 데 또 한 번 놀랄지 모르겠다. 이 때문일까. 이 영화는 지난달 22일부터 7일간 열린 ‘인디다큐페스티발’ 상영작 중 유일하게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고유정, 노은지 두 신인 감독은 인디다큐페스티발 영화제측이 지원하는 2011년 봄 프로젝트로 후원을 받아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로서는 다소 짧은 70분 분량 속에 사랑과 갈등, 사회의 편견에 대처하는 상이한 태도 등을 옥탑방을 무대로 한 에피소드를 통해 매끄럽게 엮어냈다. 상영 내내 관객들의 웃음과 탄식이 끊이지 않아 ‘인디다큐는 재미없고 난해하다’는 편견을 시원하게 깨 주었다.

“당신, 힘든 과거가 있어서 좋아”

두 평 남짓, 작은 옥탑방 안에 앉아있던 두열(33)은 애인 가브리엘(43)을 향해 말한다.

“당신, 착해서 좋고, 성실해서 좋고, 그리고 힘든 과거가 있어서 좋아.”

둘은 성소수자를 위한 쉼터에서 만났다. 둘 다 에이즈에 감염됐는데, 둘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 21살에 서울 종로에서 성매매를 하다 감염된 두열은 이후 삶을 포기하다시피 했다.

“사람들이 편견으로 나를 피할 때 죽고 싶었어.”

쉼터에서 다른 에이즈 감염자들에게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기 전까지 그는 12년 간 치료를 거부했다. 그 결과 두열은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반면 감염된 지 8년이 되어가는 가브리엘은 감염 사실을 안 후 오히려 더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에이즈 및 성소수자 인권을 위한 시위를 이끌기도 하고, 쉼터에 있는 사람들에게 상담도 해준다. 지금까지의 삶을 책으로 쓰고 출판기념회를 열 정도로 자신을 내보이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가수 한영애씨의 팬이라며, 출판기념회에 와 준 그녀에게 설레는 모습을 보일 때는 소년 같은 감수성이 드러난다.

▲ 가브리엘이 쓴 책 <하늘을 듣는다> 출판기념 콘서트 포스터(왼쪽)와 책 표지. ⓒ 네이버 책

반면 두열은 늘 자신의 인생을 비관한다.

“운동을 해선 뭐해. 병 걸린 지 오래됐는데.”

가브리엘은 그런 두열을 다독인다. 늘어진 러닝셔츠를 입고, 문구점에서 3000원 주고 샀을 법한 검정색 슬리퍼를 똑같이 신은 이 커플이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아 티격태격 할 때는 삶의 태도가 맞부딪히는 순간이다.

“내가 애널(항문성교)로 남자에게 했을 때(감염된 거야). 좋은 일 하겠다고 헌혈하러 갔다가 감염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내 인생이 끝났구나 생각했지.”(두열)
“그냥 공사장에서 일하다 실수로 다쳤다고 생각해. 그것 때문에 네 인생을 버릴 수는 없잖아. 그냥 재수가 없었던 거야. 왜 네가 병에 걸렸다고 차별 받고 살아야 해?”(가브리엘)

떠났다가도 돌아올 수밖에 없는 그 자리

“이제 제발 나를 놔 줘...”

어느 늦은 밤, 두열의 고백으로 다큐는 갈등의 정점에 선다. 자신의 삶을 비관하던 두열은 가브리엘의 일방적 위로에 지쳤고, 가브리엘은 자신이 두열에게 부담이 됐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결국 가브리엘은 두열을 보내주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두열은 며칠 뒤 다시 옥탑방으로 돌아온다. 가브리엘의 빈자리를 절감한 것이다. 가출과 복귀를 계기로 둘의 사랑은 더욱 깊어진다. 동시에 삶에 대한 두열의 태도도 달라졌다. 편견으로 가득 찬 세상에 스스로 등을 돌렸던 두열은 이제 자신을 내보이기로 마음먹는다. 가브리엘과 함께 시청과 광화문을 다니며 ‘에이즈 감염자 등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말아 달라’는 전단을 뿌리며 울부짖기도 한다. “이런 시위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 감독에게 “나 같은 사람을 더 이상 만들기 싫어서, 차별 때문에 자신을 포기하는 사람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라고 답한다.

늘어난 바지와 러닝셔츠를 입고 트럼펫 연주곡에 맞춰 블루스를 추는 모습, 케이크를 앞에 두고 ‘새해엔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비는 장면, 쪼그리고 앉아 라면을 끓여 먹는 에피소드 등 옥탑방의 애정행각(?)은 여느 커플과 다름없이 귀엽다. ‘다른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영화관에 들어왔던 관객들도 어느 새 ‘이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구나’를 깨닫고는 알콩달콩한 사랑을 응원하는 마음이 된다. 그러면서 세상의 편견에 맞서는 이들의 삶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혹시 영화를 놓쳐 아쉽다면 오는 9월 20일 시작하는 디엠지(DMZ)영화제에 걸리는 것을 기다리시라.

세상을 향한 다양한 목소리가 허용돼야 

올해로 12번째였던 인디다큐페스티발은 <옥탑방 열기>와 같은 성소수자 문제부터 4대강 사업, 재개발 난민 등 기성 영화제가 외면한 목소리를 꾸준히 담아 왔다. 올해도 ‘공순이’라 불리는 공장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다룬 <아무도 꾸지 않은 꿈>과 용산참사 특별전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혹은 지나치고 싶었던 세상을 보여주었다.

이 영화제는 제작시기와 분량 같은 기본적 출품요건만 부합한다면 주제 제한 없이 누구나 국내 신작전 부문을 통해 작품을 낼 수 있다. 올해는 장편 27편, 단편 48편 등 총 75편이 출품돼 이 중 27편(장편 14편, 단편 13편)이 상영작으로 선정됐다.

▲ 인디다큐 상영관 앞에서 내년 영화제를 위한 후원금 모금행사가 이뤄지고 있다. ⓒ 이슬기

영화제 운영비는 정부지원과 단체 및 개인후원으로 충당되는데, 개인의 경우 5천원부터 원하는 금액만큼 매달 후원할 수 있다. 정부 지원은 공모제 형식으로 이뤄져 영화제의 안정적인 재원이 되지 못한다. 사실 후원금은 매년 영화제의 존폐가 거론될 정도로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특히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영화제를 열 수 없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컸다고 한다. 지난해 정부지원이 줄어든 데다 누적된 재정악화로 사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제 조직위는 그래서 지난 2월 초부터 모금 프로젝트 ‘11에서 멈출 수 없어!’를 시작했다. 다행히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져주어 올해 영화제도 성공리에 마무리 될 수 있었다.

“독립예술이 더욱 활성화하고 다양한 영상문화가 보다 폭넓게 대중과 만날 수 있도록 정부의 안정적인 지원과 대중들의 지속적인 이해와 관심이 절실합니다.”

▲ 후원금 내역을 확인하고 있는 최민아 사무국장. ⓒ 김인아

영화제 최민아 사무국장은 영화제가 계속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재정이 안정되어야 한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털어 놓았다. ‘실험, 진보, 대화’를 추구하는 다큐멘터리. 꾸미지 않은 민낯의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 준 인디다큐페스티벌이 ‘12’에서 멈추지 않으려면 더 많은 사람들의 진지한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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