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2)]‘최저임금 권리 찾기’ 청년유니온 김영경 위원장

“지금 전국의 편의점에서 생계 때문에, 또 등록금 때문에 수많은 아르바이트생들이 24시간 돌아가며 일하고 있어요. 그런데 연간 수백억 원의 이익을 챙기는 편의점 대기업들이 이들에게 최저임금조차 제대로 주지 않습니다.”

     ▲ 청년유니온 사무실에서 만난 김영경 위원장 ⓒ황상호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이 법정 시한을 넘긴 채 막판 진통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최저임금 현실화’와 ‘최저임금 준수’를 외치는 청년유니온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 최초의 세대별 노조인 청년유니온을 이끄는 김영경 위원장(30)은 ‘최저임금 권리 찾기’를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지난달 25일과 4월 30일 등 두 차례에 걸쳐 이뤄진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은 “대기업 간판을 단 편의점들이 힘없는 아르바이트생들을 착취해도 되는 거냐”며 분개했다.

“지난 4월부터 2개월 동안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이 전국 427개 편의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의 실태를 조사했습니다. 훼미리마트의 73%, GS25의 62%, 세븐일레븐 57.1%, 바이더웨이 47% 등 전체 편의점의 66%가 4110원인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시급을 주고 있었어요.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의 경우 조사대상 편의점의 80% 이상이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대개 학생 신분인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은 경제적으로 급박한 형편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부당한 시급을 받아도 그냥 참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또 편의점 본사는 ‘직영이 아닌 가맹점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며 책임을 회피한다. 김 위원장은 대기업 본사가 당연히 가맹점들의 최저임금 준수를 감독해야 한다며, 이들 업체를 노동부와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자체적으로 ‘최저임금감시단’을 구성해서 위반 사업장에 대한 감시활동을 지속적으로 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저임금 수호대’를 자임하고 나선 청년 유니온은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혹은 구직 활동 중인 15~39세의 청년층이 ‘스스로 권리를 찾자’며 지난 3월 모여서 만든 법외 노조다. 법적으로 대부분 실직자여서 노조의 구성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설립신고를 세 번이나 퇴짜 맞았다. 그래도 이들은 ‘당사자 운동’의 깃발을 더 높이 치켜들고 있다.

 ▲ 지난 6월 25일 한국경영자총협회 앞에서 편의점 최저임금 실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청년유니온 제공
최저임금 권리 찾기 운동은 가장 피부에 와 닿는 ‘내 문제’ 여서 첫 번째 프로젝트가 됐다. 청년 유니온의 모델은 일본의 ‘수도권청년유니온’인데, 지난 2008년 실직한 파견근로자 등 2천여 명을 이끌고 도쿄 히비야 공원에서 6일간 시위를 벌여, 결국 후생노동성 장관의 사과와 사태 해결 약속을 받아 낸 일이 있는 조직이다.
 

불안한 청춘이 뭉쳐 당사자 운동에 나서다

청년유니온을 이끄는 김영경 위원장도 ‘불안한 청춘’이란 점에서 다른 노조원들과 다를 것이 없다. 대학 2학년 때 가세가 급격히 기울면서 학교식당 설거지, 고기집 서빙, 설문지 돌리기, 텔레마케터, 대형마트 파견 직원 등 닥치는 대로 일했던 경험이 있다. 보증금 12만원, 월세 12만 원짜리 자취방을 전전하면서 ‘없는 설움’을 톡톡히 겪었다. 2005년 대학 졸업 후 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학자금 빚을 갚아나가던 그녀는 2008년 광우병 반대 촛불 시위 현장에서 ‘청년들이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그렇게 뜻을 같이한 이들과, 대학 때 학생운동을 하면서 알고지낸 사람 등 10여 명이 공부모임을 갖기 시작했고, 지난해 5월부터 본격적으로 청년유니온의 설립을 준비했다. 이어 8월에 청년실업해결을 위한 서명운동, 12월에 청년인턴 실업급여 지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2월 초 <한겨레>에 청년유니온이 소개되자 한 달 사이 인터넷 카페 회원이 8백여 명이나 늘어 노조 설립에 자신감이 생겼고, 드디어 3월 13일 발기인 160명, 조합원 65명으로 청년유니온이 출범했다. 준비위원장이었던 그녀는 자연스럽게 노조위원장을 맡게 됐다. 
  
이제 서른. 취업과 결혼 등 제 앞가림도 바쁘다고 생각할 나이에 청년 운동의 선봉에 서게 된 것은 그녀에게 너무도 뚜렷한 스무 살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스무 살 어느 날 김영경은 선배들을 따라 안산시 고잔동 철거촌 농성장에 갔다. 철거민들과 계란을 쪄먹고 막걸리도 마시다가 잠이 들었는데 새벽녘 다급한 목소리가 그녀를 깨웠다. 용역들이 왔다는 외침이었다.

 ▲ 명동 거리에서 최저임금 권리찾기 캠페인을 벌이는 청년유니온 조합원 ⓒ청년유니온 제공
망루를 지키기 위해 철거민과 대학생 스무 명이 똘똘 뭉쳤다. 그때 그녀가 본 것은 수백 명의 용역 깡패와 전경들,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대형 포크레인이었다. 그들의 손에 한 사람씩 뜯겨져 밖으로 들려나갔다. 몸부림치며 저항해도 소용이 없었다. 포크레인이 집을 부수는 순간까지 망루를 지키던 한 아주머니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들이 당하는 일을 세상 사람들은 까맣게 모를 거라는 생각에 그녀는 진저리를 쳤다. 그 때부터 불의한 세상과 맞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살았다.



하지만 그녀와 청년유니온의 ‘운동’은 선배 세대인 386의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운동을 하면서도 ‘청년다움’을 드러내려고 한다. 머리에 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는 전통적인 방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노동부에서 1차 노조설립신고서가 반려됐을 때는 명동 한 복판에서 ‘액션데이’ 플래시몹(순식간에 연락해서 모인 뒤 짧은 순간 돌발 행동을 하고 해산하는 것)을 펼쳤다. 열 명 남짓 조합원들이 기타를 치고 컵라면을 끓여먹고 토익 공부하는 현장을 수십 명의 경찰이 둘러싸고 지켜봤다.

“두더지처럼 움직이면 언젠가 밖으로 나오겠죠”

운동을 발랄하게 하려 하지만, 서로의 생활을 들여다보면 사실 우울하기 짝이 없다. 
  
“핸드폰비가 월3만 원 이상 나오면 안 되기에 연애를 못한다는 조합원도 있어요. 방과후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매달 학자금 빚 50만원을 갚고 홀어머니까지 모시느라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이 거의 없다는 거예요.”

김 위원장 자신도 학원에서 파트타임 강사로 일하며 겨우 생계를 꾸려가는 형편이다. 그래도 그녀가 희망을 갖는 것은 청년들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경쟁구도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다’며 스펙(취업 등에 유리한 조건)쌓기에 목숨을 걸던 청년들 가운데서 ‘우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뭉쳐야 한다’는 의식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침묵의 세대’들이 이렇게 기지개를 켜고 깨어나면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노동부의 설립신고서 반려가 말해 주듯, 세상은 청년유니온에게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그녀는 더 이상 신고서 내는 것을 포기하고 7월 중 반려처분취소 행정소송을 낼 예정이다. 민변 소속 변호사들과 법률상담도 마쳤다. 

“프랑스 속담에 ‘혁명은 두더지처럼 갑자기 땅에서 튀어 나온다’는 말이 있대요. 보이지 않아도 땅 밑에서 열심히 움직이다 보면 어느 날 위로 툭 튀어 오르게 된다는 거죠.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오리라 믿어요.”

청년유니온도 두더지처럼 땅 밑에서 계속 움직일 모양이다. 언젠가 햇빛 아래 고개를 쑥 내밀게 될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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