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나의 빈자리 메워야 할 동료에게 죄책감

“여기 서비스 왜 이래?”

 

 

 ▲ 김상윤 기자

어쩌다 호텔을 이용하게 되면 비싼 돈을 낸 만큼 최상의 서비스를 기대했다. 청소상태가 어수선하거나 기계오작동이 있으면 곧장 직원들을 불렀다. 직원이 조금이라도 늦게 오면 금세 다시 전화해서 보채곤 했다. 직원들은 대개 무표정한 얼굴로 일했다. ‘고객만족’도 모르나. 손님을 위해 항상 미소를 지어야지. 가끔씩 짜증이 담긴 직원들의 얼굴을 보면 몹시 못마땅했다.

 

 

대학원 동기들과 근로 빈곤의 현장을 취재하기로 기획하면서, ‘1등 하우스맨’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손님의 주문을 신속하게 처리하고, 항상 미소를 날리면서 화려한 비즈니스맨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출근 첫날, 구두를 광나게 닦고 옷매무새도 단정히 했다. 복도에서 손님을 만나면 활짝 미소 지으며 공손히 인사했다. 며칠은 그랬다.

시간이 갈수록 웃음이 사라졌다. 손님 앞에서 애써 웃으려 해도 얼굴 근육이 굳어졌다. 발이 퉁퉁 붓고, 처리해야할 일이 쌓이면서 심리 상태도 불안해졌다. 기껏 ‘오다’를 처리했는데 고객이 추가로 요구를 하면, 서비스 정신보다는 원망스런 마음이 솟구쳤다. 이것저것 꼬치꼬치 따지거나 사소한 흠집도 그냥 넘어가질 못하는 사람, 빨리 해내라고 보채는 고객을 볼 땐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생각이 왈칵 솟았다. 어느새 나도 무표정하거나 어두운 얼굴로 변해갔다.

‘이제 며칠이면 끝이네. 조금만 참자.’

예정된 기간이 끝나길 하루하루 고대했다.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은데, 돌아오는 보상이 적어서 화가 났다. 영어를 잘 하면 정규직이 되기도 쉽고 진급에도 유리하다면서, 비정규직들에겐 사내 교육의 문을 닫아버리는 호텔이 얄미웠다. 화려한 유니폼에 잔뜩 멋을 낸 정규직들을 보면 누라 뭐라 하지 않는데도 주눅이 들었다. 최대한 예의를 갖춰 서로 인사를 나누지만, 먼지투성이의 잿빛 제복을 입은 나와 절대 어울릴 수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일을 통해 성취감과 보람을 느낀다는 기분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끝이 있다는 생각에 버텼다. 그렇다면 경민, 민수, 우중 씨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어쩌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네들의 속사정을 대변해 주는 신문기사가 아니라 당장 일손을 덜어 줄 동료일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오다’를 함께 처리하면서 속사정을 공감해 줄 친구 말이다. 근로 빈곤의 현장을 취재하겠다고 들어간 서툰 관찰자인 나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귀 기울이고 공감하기보다 핸드폰 메모장에 하루하루를 기록하기에 바빴다. 우중 씨가 린넨 정리를 할 때, 나는 일하는 현장을 사진에 담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메모를 하기 위해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마치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받는 것처럼. “상윤 씨, 만나는 여자가 왜 이렇게 많아요?” 민수 씨는 자신의 얘기에 집중하지 않는 내게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고작 보름간 일하고 ‘도망친’ 나의 자리는 다른 하우스맨이 새로 채용될 때까지 나머지 셋이 돌아가며 채워야 했을 것이다. 나 때문에 일하는 시간이 늘고, 처리해야 할 ‘오다’도 늘어 고생했을 그들에게 정말 미안하단 말을 전하고 싶다.

그들은 정말 필사적으로 일했고, 자신과 가족의 장래를 걱정하며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았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을 벗어날 길이 막막해 보였고, 이렇다 할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경험이 쌓이고 ‘달인’이 될 만큼 숙련되어도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바늘 구멍만한 정규직 전환의 기회를 기다리며 인내하기엔 하루하루의 갑갑함이 너무 컸다. 우리가 쓴 기사가 그들의 답답함을, 막막함을 조금이라도 풀어 주도록 세상을 움직일 수 있을까?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에 한 컵의 물을 붓는 것만큼이나 미약한 노력에 불과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컵 한 컵 자꾸 붓다보면 어느 새 불길이 잡힐 수도 있겠지. ‘세상이 움직이는 그 날까지’ 우리의 취재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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