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 건설에 맞서 싸우는 밀양 평밭마을 주민들

한옥순(65)씨는 20년 전 남편 이남우(70)씨와 함께 경남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로 이사왔다. 부산계성여상에서 회계교사로 일하던 이씨가 동맥경화증으로 뇌수술을 받게 되자 요양을 위해 산 좋고 물 좋은 동네로 집을 옮긴 것이다. 평밭마을은 밀양시내에서 차를 타고 15분가량 들어가야 하는 산골이다. 한씨 부부는 ‘평밭산장’이라는 간판을 달고 손님 50~60명 정도를 받을 수 있는 닭백숙 집을 열었다. 장사를 끝내면 동네 주민과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먹거나 마을회장 집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평화로운 나날이었다고 한다.
 
한씨네의 평화는 7년 전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평밭마을에 아파트 40층 높이의 송전탑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들렸다. 처음에는 그저 ‘전봇대 몇 개가 들어서는 것이거니’ 했는데, 2006년 면사무소에서 열린 전자파 관련 강의를 듣고 심상치 않은 일임을 알게 됐다.

“경기도 양주시 송전탑 주변 농가에서는 송아지가 죽어서 나온답디다. 충남 예산군에서는 6년간 암으로 죽은 노인이 15명이라고 하고요.”

 

▲ 한옥순 씨가 '데모꾼이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 강신우

한씨 집은 한국전력이 건설할 송전탑 129호 자리에서 5분 거리에 있다. 송전탑이 들어서면 우선 남편과 자신의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닭백숙 장사를 하면서 400여 마리의 닭을 기르고 고추, 마늘, 상추, 시금치 등의 채소도 재배했는데 철탑 주변에선 계속하기 힘들 것이란 걱정도 들었다. 송전탑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땅값은 뚝 떨어졌는데, 아무런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도 기가 막혔다. 1300평 규모인 한씨의 땅은 송전탑 129호와 가깝지만, ‘선하지(고압선 아래 땅) 3미터 이내’라는 기준에 들지 않기 때문에 한 푼도 보상을 받지 못한다.

한씨는 “땅을 팔려고 내놓은 지가 6년인데, 송전탑이 들어설 곳과 가까워 팔리지 않고 은행은 담보대출도 안 해준다”며 “논밭은 늙은이들이 평생 모은 재산이고 목숨과도 같은데,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사람 목숨 빼앗아도 되냐”며 울분을 토했다.
 
한씨는 지난해 봄부터 농사도 접고, 부북면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인 남편 이씨와 함께 송전탑 건설 저지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화악산의 송전탑 부지 근처에 컨테이너 움막을 짓고 동네 주민들과 교대로 밤을 새가며 공사를 막았다. 예림성당과 밀양성당이 한씨 집에서 15분 거리인 영남루 앞에서 공동 주최하는 ‘탈핵 미사’에도 매주 나가 발언한다.

“우리는 이제 ‘데모전문가’가 됐어요. 아침부터 밤까지 공사저지 현장에 있거나 집회에 나가니까. 늘그막에 이게 뭔 일인지.......”

 

 

▲ 송전탑 129호가 들어설 부지 아래에 있는 평밭마을 주민들의 컨테이너. ⓒ 김강민

 

 

▲ 컨테이너 내부. 평밭마을 주민은 이곳에서 먹고 자며 밤낮으로 공사를 막았다. ⓒ 강신우


한전 측 공사 강행하며 폭언과 폭행까지

밀양에 들어서는 송전탑은 한국전력공사가 2000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사업’의 일환이다. 울산시 울주군에 들어설 신고리 원전 5ㆍ6호기에서 생산하는 전력을 영남권에 공급하는 것이 목적이다. 경남 양산시, 밀양시, 창녕군 등을 경유해 총 161기의 철탑이 들어서는데 이 중 밀양시에 가장 많은 69기의 철탑이 들어설 예정이다. 밀양시 부북면, 산외면, 단장면, 청도면, 상동면 등 5개면이 경유지로 선정됐는데, 청도면을 제외한 4개면 주민들이 재산권 침해와 전자파 피해를 이유로 철탑 건설을 반대하고 있다. 한전은 지난해 11월부터 본격적인 벌목 공사를 벌였지만, 지난 1월 16일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에서 주민 이치우(74)씨가 공사 강행에 맞서 분신하자 밀양지역 작업을 전면 중단했다.


▲ 벌목하려는 굴삭기를 막고 있는 평밭마을 주민들. ⓒ 한옥순 제공

 

▲ 지난해 11월, 공사를 막기 위해 주민들이 모여 있다. ⓒ 한옥순 제공

 공사를 반대하는 주민들은 ‘사업 진행 과정이 비민주적이었다’고 비난하고 있다. 2005년 8월 주민설명회가 밀양 상동면사무소에서 처음으로 열렸지만 3536명의 주민 중 동네 이장 등 38명만 참석했다고 한다. 나머지 주민들은 설명회가 열린다는 사실 조차 몰랐다고 주장했다. 한전은 ‘국책사업이니 주민의 양해를 바란다’는 우편물을 보냈는데, 이런 일방적 태도가 주민들을 더 화나게 했다. 평밭마을 주민 김순옥(49)씨는 “마을 주민들이 대부분 노인이라 전자파의 심각성 등을 잘 모르는 분이 많은데 이렇게 중대한 사업을 제대로 설명해 주지도 않고 강제로 진행하다니, 이게 민주주의 국가냐”고 성토했다.

주민들은 터무니없는 보상에도 화가 났다. 한전은 전원개발촉진법에 따라 선하지 기준 3m이내에 들어오는 땅에 대해 보상하지만, 송전선로가 공중으로 지나가기 때문에 땅은 원 소유자가 사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감정가의 25~35%만 지불하기로 했다. 분신자살한 이치우씨의 경우 시가 4억원 가량인 열 마지기 논이 보상 대상이었는데, 한전은 이씨와 합의에 실패하자 6000만원을 은행에 공탁하고 공사를 강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주민들은 ‘보상을 더 받기 위해 송전탑 건설에 반대한다’는 시선은 억울하다고 말했다. 이남우 위원장은 “보상에 대해 주민의 불만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반대 이유가 보상만은 아니다”며 “늙은이들이 바라는 것은 그저 예전처럼 평화롭게 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공사측 인부들이 공사 과정에서 주민들을 모욕하고 폭행한 것이 분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 주민 손달연(54)씨는 “지난 1월 나무를 자르지 못하도록 막는 노인에게 인부들이 개를 몰 듯 ‘워리 워리’라고 소리쳤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옥순씨는 “공사를 못하게 막으니까 내게는 ‘저 할매 불 붙여 죽이라’고 막말을 했다”고 말했다. 불교계에서 나온 50대 여성이 인부들에게 폭행을 당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 평밭마을 주민인 한옥순, 박정호, 이남우(왼쪽부터)씨가 한전의 폭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강신우

 

▲ 지난해 11월, 인부들이 주민 정인출 씨(71)를 끌어내고 있다. 이후 정씨는 실신해 응급차에 실려갔다. ⓒ 한옥순 제공


밀양시 “송전탑 반대는 전체 주민 의견 아니다”

평밭마을 주민들은 이치우씨의 분신 사건 등을 겪으면서 ‘삶의 터전을 지킬 수만 있다면 목숨이라도 바치겠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다. 주민들은 송전탑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라고 요구하면서 꼭 필요하다면 대신 ‘초전도 케이블’을 놓으라고 제안했다. 초전도케이블은 송유관처럼 지하에 설치할 수 있어 환경파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나아가 원전 추가 건설 계획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주민 박정호(59)씨는 “일본은 현재 총 54기의 원자력 발전소 중 2기만 가동하고 있고, 독일도 탈원전 국가를 천명했다”며 “이처럼 원전이 아니더라도 대안이 있는데 왜 정부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한전 측은 초전도케이블이 아직 상용화 단계가 아니라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밀양 한전사무소 관계자는 “송전탑 백지화, 탈핵을 외치는 주민들의 주장은 무리한 요구”라며 “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 보상을 해줄 수밖에 없는 한전 입장도 이해해 달라”고 호소했다.

행정관청인 밀양시도 송전탑 건설 반대는 밀양 시민 전체의 의견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밀양시 경제투자과의 한 관계자는 “현재 4개면 대책위원장과 한전이 논의를 진행하고 있긴 하지만, 전원개발촉진법에 따라 공사가 진행되면 우리가 개입할 여지가 없고 그럴 필요성도 못 느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2월 13일 박원순 서울시장 등 전국 45개 지방자치단체장이 내놓은 ‘탈핵·에너지 전환을 위한 도시선언’에 대해 “정치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일인데, 밀양시는 정치적 선동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밀양시정의 책임자는 새누리당 소속의 엄용수 시장이다.
 
한편 민주통합당 조경태 의원(부산 사하을)은 지난 2월 2일 ‘전원개발촉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주민의 재산권과 생존권 보호를 위해 해당 지역 토지소유자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송전탑 건설 등의 공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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