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호텔 하우스맨 15일간의 고군분투기(하)

임금, 교육, 휴가.......비정규직은 당연히 차별 

“영어 못 하는데 어떻게 하죠?”

우중 씨가 저녁 근무를 들어가면서 걱정이 태산이다. 낮 근무와 달리 저녁엔 고객과 직접 마주쳐서 얘기를 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민수 씨가 끼어들었다. “그럴 땐 그냥 멍한 표정을 지으면 돼요.” 두 달가량 저녁 근무를 해 본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안 되는 영어로 더듬거리기보다 눈만 끔뻑이고 있다 보면 고객이 알아서 프론트로 연락한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처방이었지만, 서글펐다.

미니바 담당이자 하우스맨 관리자인 태준(가명,34) 씨는 내게 “호텔에서 계속 일하고 싶으면 영어공부를 꾸준히 하라”고 조언했다. 정규직 편성도, 승진도 영어실력이 뒷받침이 돼야 한다. 호텔에선 직원들에게 1주일에 두 번 영어교육을 했다. 서비스, 리더십, 독서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정규직 대상일 뿐, 하우스맨에겐 해당되지 않는 얘기였다. 하우스맨이 ‘호텔리어’로 신분상승을 하려면 스스로 영어공부를 해야 하지만, 시간도 돈도 없다. 대성 씨는 비교적 싸고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전화영어’를 몇 번 시도했다. 하지만 돈만 들고 별로 늘지 않아 그만 두었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은 교육 기회만이 아니다. 수당이나 휴가도 마찬가지다. 오후 1시 반부터 밤 10시까지인 저녁 근무를 하다보면 퇴근 1~2분전에 주문이 떨어질 때가 많다. 처리하다 보면 30분, 1시간씩 늦어지기도 한다. 이런 경우 정규직원은 추가수당을 받는다. 경우에 따라 택시비도 지급된다. 그러나 비정규직은 연장 근무를 해도 추가수당이 없고, 버스를 놓치면 집까지 갈 길이 막막하다. 나와 함께 일하던 하우스맨들은 모두 경기도 안양 등 시외에서 몇 시간씩 걸려 출퇴근하는 형편이었다. 월차, 연차 휴가도 남의 나라 얘기다. 1년에 한 번 용역업체와 재계약을 하느라 약간의 ‘퇴직금’을 받는 게 보너스처럼 느껴질 뿐이다. 

 

 

▲ 린넨처리는 하우스맨 일 중에서 가장 고되고 힘들다. 카트 속에 가득 차있는 린넨들 ⓒ 김상윤

 

 

하우스맨들은 밥도 느긋하게 못 먹는다. 1시간 동안 교대로 식사 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주문이 닥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밥을 천천히 먹으면 다른 동료가 그 만큼 고생한다. “밥 먹고 와서 문을 들어설 때, 쌓여있는 린넨을 보면 소화가 안 돼요.” 그래서 경민 씨는 일을 다 끝낸 후 편의점에서 김밥과 라면으로 한 끼를 때우기도 한다.


정규직 정착 확률은 2.5%

폼 나는 차이나 칼라 셔츠에 번쩍이는 단추가 달린 제복을 입는 태준 씨는 K호텔 정직원으로, 비정규직들의 ‘롤모델’이다. 첫 1년은 그도 하우스맨으로 일했다. 그는 운이 좋았다. 4년 전 호텔이 미니바 사업을 시작하면서 그를 정 직원으로 채용해 일을 맡겼다. 연봉 2천만원대 초반인 그가 지난해 혼자서 올린 매출이 6억 8000만원이다. 하우스맨 관리까지 맡고 있는 그는 늘 과로에 시달렸지만, 호텔은 인력 충원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미니바 담당 정 직원을 한 명 추가채용하기로 했다.

일을 시작한 지 5일째 되는 날 사내 게시판에 인사 발령 공문이 붙었다. 대성 씨가 태준씨와 함께 일하게 됐다.  그 자리를 내심 기대했던 경민 씨는 풀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경민씨는 한 지방대학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하다 중퇴하고, 한강 유람선 승무원 등 아르바이트를 하다 제대 후 첫 직장으로 하우스맨 일을 시작했다. 지난 4년 동안 정말 열심히 했다고 한다. 기술팀 일까지 가리지 않고, 밥 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최선을 다했다. 인정을 받으면 정규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대성 씨에게 밀린 것이 대학 졸업장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죠.” 경민 씨는 이제 호텔에 정착할 꿈을 접고 기술을 배우려 한다. 돈이 없기 때문에 정부가 실업자를 위해 무료로 제공하는 제빵, 미용 같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고 있다.

하우스맨은 항구를 오가는 배처럼 호텔에 잠시 머물렀다 떠난다. 태준 씨가 하우스맨 관리를 맡은 4년 동안 40여 척의 배들이 지나갔다고 한다. 모두들 적은 월급과 고된 노동, 불투명한 미래에 지쳐서 떠난 것이다. 그중 정착한 배는 대성 씨 하나뿐이다. 2.5%의 정착률인 셈이다.

대성 씨는 강원도의 한 대학에서 관광외식학을 전공했다. 대학 내내 아르바이트를 했다. 술집, 노래방, 조개구이집 서빙 등 안 해본 게 없다. 당장은 힘들지만 나중에 크게 되었을 때, 다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며 참아왔다고 한다. 그는 당분간 결혼할 생각도 없다. 현재 수입으로 10년 내에 결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평하지 않고 ‘배워나간다’고 생각하는 그를 관리직들은 아주 좋아했다.

민수 씨도 떠나기로 했다. 그는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을 통해 다음 달 일본으로 갈 예정이다. 그의 꿈은 관광가이드가 되는 것이다. 돈이 없으니 거기서도 이곳과 비슷한 일을 해야겠지만, 아무 미래가 없는 이 곳에 비해, 일본어라도 확실히 배우지 않겠냐고 생각한다.


“죄송합니다. 못 하겠네요.”

하우스키핑부서의 최 팀장이 하우스맨 지원자가 없다고 발을 동동 굴렸다. 한 사람이 면접을 보러 와서 한 시간 내내 하우스맨 일에 대해 설명했는데, 도저히 못하겠다며 일어났다고 한다. 일은 힘든데 겨우 최저임금을 넘어서는 수입에 비정규직, 매력적일 리가  없다. “주변에 일 하고 싶은 친구 없어요?” 최 팀장은 친구끼리 같이 일하면 좋지 않으냐며 우리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 일을 어떤 친구에게 추천할 수 있을까? 정말 급박한 사정이 아니면 이 항구에 정박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태준 씨는 “하우스맨을 하다보면 호텔 일의 60%를 알게 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많은 일을 하는 중요한 자리이고, 늘 필요한 일인데 왜 정규직으로 쓰지 않는지 사장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결국 누군가 지쳐서 나가면 새로운 사람을 재교육 시켜야 할 테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호텔로 돌아갈 텐데 말이다.


호텔경쟁력에도 도움 안 되는 파견근로

내가 쓴 근로계약서에는 K호텔 이름이 없다. 대신 L용역업체가 나의 고용주이자 사용주로 적혀있다. 나는 K호텔에 파견된 근로자인 것이다. 호텔 산업은 다른 어떤 분야 보다 인적 서비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데, 97년 외환위기 이후 인건비 절감을 위해 정규직을 대폭 줄이고 많은 업무를 외주로 돌렸다고 한다. 
 
하우스맨같은 파견 근로자는 여러 가지 부당한 대우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K호텔처럼 실제로는 한 사업장에서 몇 년씩 일하면서 ‘영원한 비정규직’으로 고용불안을 겪을 수 있다. 임금도 낮을 수밖에 없다. 중간에 용역업체가 일정한 이윤을 챙기기 때문에 노동자에게 돌아갈 몫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래도 호텔입장에서는 직접 고용할 때 부담해야하는 사회보험이나 퇴직금 등의 부담이 없고, 노조 등의 골치 아픈 문제를 피할 수 있기 때문에 간접고용을 선호한다. 특히 용역업체들을 경쟁 붙여서 저가 입찰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호텔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파견근로자들은 또 연봉 상승, 승진의 기회도 기대하기 어려워 한마디로 ‘미래가 없는 노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근로자 파견은 오랫동안 금지돼 왔고, 1998년에 합법화된 후에도 그 대상을 일부 업종으로 한정했다.

 

 

▲ 손님을 직접 대하는 직원들의 옷은 실크 재질이거나 화려한 색이 많다. 반면 하우스맨과 룸어텐던트 옷은 '잿빛' 계통이다. ⓒ 김상윤

 

 

하지만 법적 규제가 점차 약화되면서 파견노동자 규모는 확대되고 있다. 2009년 8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 따르면, 국내 파견노동자는 16만5천 명이다. 2008년에 비해 2만 6000명이 늘어났다. 그런데도 최근 노동부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 32개로 제한한 파견근로 허용 대상 업무를 최대 49개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김수정 씨의 논문 <호텔 비정규직 종사원의 근로 조건 및 관리 방안에 대한 만족도가 경영성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종업원의 고용상태가 불안정할 경우 호텔에도 손해가 된다고 한다. 호텔 같은 서비스 기업이 비용만 생각해서 비정규직 위주로 운영될 경우 결국 서비스의 질을 낮춰 고객 만족도를 저하시킨다는 것이다. 단 하루도 하우스맨 없이 돌아가지 않는  호텔이 그들의 열악한 처우를 방치하는 것은 호텔 자체의 경쟁력에 해가 된다는 얘기다.
 
최근 일본은 노동자 파견제도에 급제동을 걸었다. 전임 하토야마 내각은 지난 3월 제조업체 에 대한 파견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등 파견근로를 대폭 제한하는 내용의 관련법 개정안을 각료회의에서 의결했다. 파견 근로자들이 열악한 처우에 절망한 나머지 범죄까지 저지르고 있는 현실을 심각하게 본 것이다. 우리도 손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기업에 좋고, 노동자에게도 좋으며, 사회에 유익한 제도가 어떤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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