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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만 원 쓰며 눈칫밥, ‘허드렛일’ 실습
간호학과 대학생들 “부모님께 손 벌리기 죄송해요”
2012년 03월 16일 (금) 23:15:39 이지현 기자 easyhyun@live.co.kr

충북 지역의 한 사립대 간호학과 4학년인 권유미(22•여•가명)씨는 지난해 12월26일부터 경기도 일산의 한 종합병원에서 2주간 실습하는 동안 고시원을 빌려 잠을 잤다. 입원 환자를 돌보며 간호기술을 익히는 성인간호학의 필수 과정이었지만, 학교가 별도로 숙박시설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씨 학교의 간호학과 학생들은 2학년 겨울방학부터 졸업 때까지 한 과목 당 2주씩 총 22주간의 병원실습을 하지만, 학교재단 산하에 병원이 없기 때문에 충북은 물론 서울 분당 일산 등 각지의 병원을 찾아 다닌다. 그 때마다 머물 곳을 구하는 일이 학생들에겐 고역이다.

충북 제천시에 사는 권씨는 충주 등 가까운 병원의 경우 집에서 오갈 수 있었지만 서울 등 먼 지역으로 갈 때는 싼 숙소를 찾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병원에서 가까운 곳에 고시원 등 임시 숙소를 구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다른 학교에서도 병원실습을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일산에서 고시원을 구할 때도 실습 시작 2주전에 인터넷을 통해 겨우 방을 구했다. 식사비를 포함해 4주에 37만원인데, 보통 4주 계약을 요구하기 때문에 2주만 쓰고 나머지 2주를 쓸 다른 사람을 권씨가 직접 찾아 방값을 약간 손해보고 넘겨주었다. 밥도 병원 식당 등에서 대부분 사 먹어야 하기 때문에 2주 실습기간 동안 숙식비로 약 25만원이 들었다.

한 학기 등록금 400만원에 실습비 40여 만원 추가

실습 나가는 지역에 따라 비용에 약간 차이가 있지만, 한 학기에 4주 정도의 실습을 할 때 보통 40만~50만원 정도를 쓰게 된다. 하지만 학교에서 나오는 한 학기 실습비는 15만원에 불과하다. 권씨는 “이 정도는 식비로 쓸 수 있는 돈”이라며 “등록금이 400만원이나 되는 것도 부담인데 실습 비용까지 부모님께 신세를 져야 하는 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 근무 중인 간호사들의 모습. ⓒ 이지현
권씨와 동료학생들은 실습 때마다 겪는 숙박의 어려움 때문에 학교측에 기숙사 등의 대책을 요구한 일이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실습이 많은 지역에 아파트를 임대하는 형식으로 기숙사를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권씨의 학교측은 ‘특정 병원에서 진행되는 실습이 몇 개월 안 되기 때문에 나머지 기간에는 아파트가 비어 예산이 낭비된다’며 학생들의 요구를 일축했다.

병원실습 과정에도 어려움이 많다. 병원실습생의 일은 보통 아침 7시쯤 시작하는 낮 근무와 오후 2시쯤 시작하는 저녁 근무로 나뉜다. 실습생들은 하루 8시간씩 일하는 동안 대개 정해진 식사시간이나 휴식시간을 갖지 못한다. 담당 수간호사가 ‘밥 먹고 오라’고 하면 30분~1시간 정도 식사 시간을 갖는데, 수간호사가 바빠 챙겨주지 못하면 눈치껏 짬을 내서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 일과 시간엔 끊임 없이 움직여야 한다. 간호사들을 따라다니며 해당 진료과 마다 어떤 일을 하는지 보고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실습하는 일은 대개 환자의 시트(침대덮개)와 베개를 바꿔주거나 혈압, 체온, 맥박, 호흡 등을 측정하는 활력징후측정(V/S) 등 단순 업무가 고작이다.

권씨는 “병원실습을 하면서 아픈 친구들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밥을 제때 못 챙겨 먹고, 병원에서는 항상 긴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소화장애 등을 겪는 학생도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실습 태도를 해당 병원에서 평가해 학교측에 통보하는데, 이것이 성적에 반영되기 때문에 경쟁적으로 열심히 하는 분위기가 작용한 탓도 있다. 권씨는 실습자체가 고생스러운 것은 배우는 과정이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타지역에서 써야 하는 숙박비용은 학교측이 배려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교가 시설을 제공할 수 없다면 고시원 비용이라도 지원해 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환자 옷•시트 보관하는 데서 옷 갈아 입어요”

대구의 한 사립대 간호학과에 다니는 박은지(23•여•가명)씨는 병원실습을 갈 때 귀중품은 집에 두고 간다. 현금도 많이 들고 다니지 않는다. 병원실습생들을 위한 탈의실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간호사실을 못쓰게 하기 때문에 실습생들은 환자복이나 환자용 시트를 보관하는 린넨실에서 옷을 갈아 입는다. 개인 짐을 보관할 곳도 따로 없어 그냥 린넨실 한쪽에 모아둔다. 실습생들에게 탈의실을 제공하는 병원도 없진 않지만 그런 경우에도 간호사 탈의실의 개인용 사물함을 실습생 4명이 함께 사용하는 등 불편한 점이 많다. 박씨는 “100명이 넘는 병원실습생들이 동시에 한 탈의실을 이용할 때는 많이 힘들다”며 “실습생들이 보통 한 달도 안 돼 가버리니 병원에서 애착이나 관심을 안 갖는 게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박씨는 “간호학과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일이니 불편해도 그냥 참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 린넨실에 보관된 병원실습생들의 가방. ⓒ 이지현

이에 대해 대한병원협회 박형철 노사협력팀장은 “실습생들이 병원 업무에 일정부문 기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병원 소속도 아닌 학교 학생들의 권리를 병원에서 일일이 신경 쓰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학교 차원 실습 시설 늘리고 학생 스스로 권리 찾아야

지난 2월 전국보건의료노조와 청년유니온, 전국간호대학생연합은 보건의료계열학과 학생 795명을 대상으로 한 ‘병원실습생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재단병원이 없는 학교의 학생 344명 중 45%가 병원실습을 위해 고시원이나 모텔 등의 숙박시설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응답자의 91%가 병원에 실습생들을 위한 휴게시설이 없다고 답했다. 또한 14%만이 식사비를 제공받았고, 교통비를 받거나 셔틀버스를 제공받는 실습생들은 4%에 불과했다. 한국교육개발원 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간호학과 대학생 수는 2만6000여 명이고 이 중 병원실습을 나가는 3학년 이상 간호학과 학생들의 수는 1만2000여 명이다.

서울대 김진현(간호학) 교수는 “자체적인 실습병원이 없는 대학들이 실습시스템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입학 정원만 늘리고 있는 게 일차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병원이 학생실습교육을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기관이자 졸업생들을 고용하는 기관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실습생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교수는 대안으로 각 대학이 실습교육을 병원에만 의존하기보다 자체적인 실습이 가능하도록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학생들이 직접 등록금에 상응하는 실습교육제공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권리를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건의료노조 고대의료원의 조순영 지부장은 간호학과 실습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한 대안으로 “병원실습생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간호사들의 업무부담을 줄여 학생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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