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성명 한국일보 기자
뒤에서 누군가 불쑥 덮칠 것만 같은 스산한 골목길이었다.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쓰레기가 널린 빈집에서 어두컴컴한 방문을 열 땐 심장이 몹시 요동쳤다. 반 지하방에서 들려오는 쥐들의 울음소리가 오싹했다.

지난 3월 9일 자정이 가까워오는 시간, 나는 부산 사상경찰서에 출입하는 지역신문 선배 한 명과 덕포 1동의 골목길을 뒤지고 있었다.

“잡으면 포상금, 놓쳐도 특종이다.”

바로 여중생 성폭행 살해범 김길태를 ‘잡기’ 위해서였다. 
 
20여 일 이상 진전 없는 사건에 매달려 지친 마음에, 그날 경찰서에서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눈 선배에게 무턱대고“현장에 같이 가 보자”고 제안했었다. 그런데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둘이면 잡지 않겠나!”

우리는 서로 큰 소리를 쳤지만 상대는 살인범이었다. 부닥치면 흉기를 휘두를 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내심 그를 멀리서만 보고 싶었다. 덕포동 곳곳에 경찰들이 잠복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힘껏 소리를 지르겠다는 심산이었다. 

부산 사상구는 공장 밀집지역이다. 사건이 일어난 여중생의 집은 공단에서 걸어서 30여분 정도로, 재개발이 추진되려다 10년 가까이 방치된 동네였다. 똬리를 튼 뱀 몸통처럼 골목길이 이리저리 꼬여 있었다. 또 좁은 비탈길에 주택들이 촘촘히 들어서다 보니 담벼락을 통해 이집 저집 옮겨 다니기 쉽게 돼 있었다. 실제로 김길태는 빈 집에서 잠을 자다 경찰이 손전등을 비추고 들어오자, 4m가 넘는 담을 뛰어 내려 도망하기도 했다.

그날 밤늦도록 쓰레기와 잡초, 야생 고양이와 쥐들을 스쳐 지나며 동네를 헤맸지만 행운은 오지 않았다. 밤새 꼭꼭 숨어 있던 그는 다음날인 10일 오후 덕포동 인근 시장에서 붙잡혔다.

헛수고를 한 셈이 됐지만, 김길태가 잡혔다는 소식에 나는 ‘이제 고생 끝’이라며 손뼉을 쳤다. 그러나 선배 기자들은‘고생은 이제부터’라며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무슨 얘기지?  당시 입사한 지 100일 밖에 되지 않았던 나로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다음날부터 구속영장 청구, 영장실질심사 등 줄줄이 이어지는 사법 절차를 다루면서 ‘잡은 게 끝이 아니다’는 말을 절감했다. 사법절차를 몰랐으니 실수도 많았다.

“실질심사, 아침 일찍 할 가능성 많다. 사진 찍어야 되니 잘 챙겨라.”

데스크의 말뜻을 몰라 멀뚱한 표정으로 되묻다가 혼쭐이 나기도 했다.
 
기자는 현장에서 몸으로 배워야 한다는 얘길 많이 들었다. 이렇게 큰 사건을 한 번 겪고 보니,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간다. 이 사건 하나로 범죄자가 거쳐야 할 절차를 속속들이 알게 됐으니 말이다.

때로는 맘을 졸이며, 때로는 지겨워하며, 때로는 혼이 나면서 김길태 사건을 감당했지만, 보람도 없지 않았다. 힘겨운 설득 끝에 피해자 어머니와의 단독 인터뷰에 성공했다. 그 기사가“사람이 이렇게 미운 적이 없다”는 제목으로 1면 톱에 올라갔을 때, 정말 뿌듯했다. 하지만 그 어머니의 고통을 떠올릴 때마다 두고두고 가슴이 아팠다. 

김길태는 지난 25일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제 그의 이름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조금씩 사라져갈 것이다. 그러나 한 달 이상 이 사건에 매달렸던 취재기자의 입장에서 과연 언론이 할 일을 다 했는지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다. 
 
재개발을 하려다 미루고 있는 지역, 또는 빈민가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방치되고 있는지, 특히 어린 아이와 청소년들이 얼마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지를 제대로 고발하고 대안을 이끌어 냈어야 한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김길태 사건을 한창 취재할 당시 한 라디오프로그램과 인터뷰를 하느라 외국 사례를 찾아본 일이 있다. 영국과 프랑스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개발사업을 허가하거나 정책을 수립할 때 반드시 범죄예방 차원의 고려를 하도록 하고 있었다. 만일 이를 소홀히 해서 범죄가 발생하면 피해자에게 배상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었다. 나중에라도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기사를 쓰고 싶다.

되돌아보면 당시 갓 100일 된 기자의 ‘용량’으로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쏟아지는 정보들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도 버거웠다.‘단독보도’를 욕심내며 벌이는 기자들의 경쟁 와중에서 다른 매체의 미확인 보도 한 줄에도 온 신경이 곤두서던 상황이었다.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자‘피해자가 변태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는 선정적 보도와 ‘납치 후 며칠 간 살아있었다’는 오보 등 무리한 기사들도 난무했다.

최근 서울에서 ‘제2 조두순 사건’이 일어나 속보 경쟁이 불붙었는데, 꼼꼼히 읽어보면 신문 방송 마다 기사 내용이 적잖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확한 보도’를 하면서 ‘해야 할 보도’를 놓치지 않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절감한다. 이런 경험과 교훈들이 기자로서 나를 성장하게 만들 것이라고 애써 위로해 본다. 
 
강성명/ 한국일보 기자(1기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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