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조정래 '황홀한 글감옥'

스스로 만든 감옥에 수감된 지 20년. 술 한 방울 마시지 않고, 아침 여섯 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밤늦은 시각 잠자리에 들 때까지 노역을 한 지도 20년이 넘었다. 한국문학의 거장, 조정래 선생이 바로 수인(囚人)이다. 하루 16시간, 원고지 30매를 원칙으로 하는 자신의 서재를 그는 ‘황홀한 글감옥‘이라 불렀다.

대작을 여러 편 완성시키면서도 자전소설은 한 번도 내지 않았던 조정래 작가가 ‘인생을 정리한 유서’라고 소개한 책이 바로 <황홀한 글감옥>이다. 젊은이들이 작가에게 묻고 싶었던 500개 질문 중 84개에 답변하면서 자신의 문학론, 인생론, 작품론을 풀어놨다. 꼼꼼한 답변들 중에서도 가장 ‘꽂히는’ 말은 아무래도 제목인 ‘황홀한 글감옥’. 도무지 형용모순일 것 같은 두 단어가 만나는 지점에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문학이 있다.

“이 세상 모든 노동은 치열함을 요구한다”

▲ 조정래 작가에게 던진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으로 이루어진 <황홀한 글감옥>.

조정래 작가는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한 번도 완성하기 힘들다는 대하소설을 무려 3편이나 써냈다. 대하소설만 다 합쳐서 32권이니 다작(多作)이다. 대표작인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은 치열하게 살아남아야 했던 어두운 역사와 갈라진 민족의 비극을 산맥과 장강을 따라가듯 유려하게 써내려 간 노작들이다. 대작들을 가능하게 한 것은 스스로를 ‘글감옥’에 가두고 엉덩이로 글을 쓰면서도 ’황홀한‘ 기분을 만끽한 덕분이다.

“이 세상의 모든 노동은 치열한 것을 요구할 뿐 감상적 기분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노동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느냐, 못 느끼느냐로 행‧불행이 갈립니다. 저는 그 숨 막히는 노동의 세월을 ‘글감옥’이라고 표현했고, 그 노동을 하고 있을 때 가장 행복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집필을 노동이라 이르고 스스로를 감옥에 가뒀다고 말하면서도 그가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 그가 문학의 힘을 믿고, 그 믿음을 따라 문학적 성취를 이뤄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기 때문일 터이다. 작가는 번뇌에 빠지고 심신이 지쳐갈 때, 석가모니가 6개월 정진 뒤에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변한 ‘고행상’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바로잡았다고 한다. <태백산맥> 11권만 따져도 원고지 1만6천5백 매. 석가가 해탈을 위해 고행을 자처했다면 그는 오로지 문학의 힘을 믿고 역사적 기록을 남기기 위해 6년간 고행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책보다 소설이 더 진실한 이유

“종교는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며, 철학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며, 과학은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학은 꼭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 조정래 작가가 “작가의 존재 의미와 사명을 성공적으로 실천한 모범”이라고 평가한 알렉스 헤일리 <뿌리>.

소설이 사랑 이야기로만 천대되는 요즘, 작가 조정래가 믿는 소설의 힘은 ‘꼭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미국 흑인 소설가인 알렉스 헤일리는 <뿌리>에서 오로지 미국인의 관점으로 쓰인 역사에 대한 반발로 미국의 치부라 할 수 있는 흑인 노예의 역사를 철저히 파헤침으로써 ‘떳떳할 수 없는 죄악의 역사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인류사의 진실을 밝히고자’ 했다. 조 작가는 이 책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느낀 충격은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였다. 그리고 이 충격은 그의 작가정신이 되었다. 승자의 역사가 묻어버린 패자의 역사를 복원하고, 감정적으로 동화하며, 세대를 아울러 후대에도 길이 남겨질 수 있다는 점이 그가 말하는 ‘소설의 힘’이다.

“아무리 자유를 보장하고, 인권을 존중하고, 평등을 유지하려는 민주주의 사회나 국가에서도 계층간‧계급간‧권력간‧집단간에 갈등과 모순과 대립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야기되는 것이 비인간성이며 불의이며 편법입니다. 옳고, 바르고, 참된 것을 위하여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저항하고 맞서야 하는 것이 작가의 소임입니다. 그 옳고, 바르고, 참된 것을 작품으로 지키고 실현하는 것이 곧 진실입니다.”

조정래 작가는 진실을 지키고 실현하기 위해 숨쉬는 미라이자 인간 화석인 빨치산 출신을 찾아 다니고, 위궤양을 달고도 러시아 연해주 벌판이나 베트남 더위 속을 헤매고 다녔다. 그리고 치열하게 수집한 사실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 이것은 인간을 향한 그의 애정을 드러낸다. 그는 스스로 ‘소설은 인간에 대한 총체적 탐구’라고 소설을 정의했다. 역사책에서 찾아볼 수 없는 민중의 실제 이야기, 억울하게 스러져간 사람들을 소설에서 사실보다 더욱 생생하게 살려낸다. 역사가 할 수 없는 일을 소설이 해내는 것이다. 그가 믿는 문학의 힘은 여기에서 나온다.

그래서 그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때는 독자들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거나 “가보로 자식들에게 물려주겠다”는 말을 들을 때라고 한다. 그가 위대한 작가 소리를 들으며 생전에 두 개의 문학관을 헌사 받은 유일한 작가라는 사실은 그가 작가로서 소설의 허구성에 기대는 게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치밀하게 파헤치고 복원하고 새롭게 살려낸 것에 대한 존경과 감탄의 표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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