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0시 발효....정착 여부는 양대 선거 ‘민의’에 달려
[두런두런경제] 김광진 제정임의 경제카페

김광진(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진행자): 그동안 수많은 논란을 겪어온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양국 정부간 합의에 따라 15일 발효됩니다. 그러나 여야 정당과 시민사회에서 이에 대한 이견과 갈등은 전혀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죠?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그렇습니다. 정부여당과 재계는 ‘한미FTA 발효를 경제도약의 계기로 삼자’며 환영하고 있지만, 야권과 시민단체는 발효 중지, 혹은 폐기를 요구하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재계단체들은 유럽 재정위기로 세계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무역수지 흑자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 FTA가 수출 둔화를 완화하는 안전판이 돼 줄 것으로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반면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등 야당들은 ‘발효절차를 중단하라’고 요구했고, 노동자단체와 농민단체들은 한미FTA가 실직 증가 등 노동자들의 처지를 더욱 어렵게 하고 농업을 피폐하게 만들 것이라고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ISD 재협상, 정부 '절차적 문제 수정', 야권 'ISD 폐기' 주장

김: 한미FTA의 핵심 쟁점 중 하나가 투자자국가소송제, 즉 ISD인데요, 정부도 반대진영의 문제제기를 일부 받아들여 FTA가 발효하면 재협상을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앞으로 ISD재협상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제: 정부는 투자자국가소송제가 우리 정부의 정책주권과 사법주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등의 문제제기를 받아들여, FTA발효 후 90일 이내에 재협상을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정부는 이에 따라 곧 정부인사와 민간 전문가등 15명으로 구성된 특별팀(TF)을 만들어서 전략을 세운 뒤, 조만간 구성될 한미서비스투자위원회를 통해 미국과 협상에 나선다는 방침입니다. 그러나 정부의 기본적 입장은 ‘일부 문제점이 있을 진 몰라도 ISD조항 자체는 외국인투자보호와 미국에서의 우리기업 활동보호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 의사결정 구조를 단심제에서 재심제로 바꾸거나 투명성을 강화하는 등 절차적 문제를 수정하는 수준으로 논의를 제한한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 ISD 재협상에 대한 야당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등 야당은 ISD와 관련한 일부 조항을 수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ISD자체를 폐기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야권은 또 ISD뿐만 아니라 한번 개방을 약속하면 어떤 상황변화가 생겨도 물러설 수 없도록 한 ‘역진방지조항’, 개방불가를 미리 정해두지 않은 서비스산업은 앞으로 새로 생기는 산업까지 모두 개방해야 한다는 ‘네거티브리스트’ 등 10개항을 ‘독소조항’으로 규정했습니다. 이 독소조항들을 모두 없애지 않으면 한미FTA자체를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양당은 특히 지난달 8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미국 상하원 의장에게 ‘한ㆍ미 FTA 발효 정지와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서한을 미국 대사관에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또 야권 연대 협상에서 ‘한미 FTA 반대’를 공약으로 채택했기 때문에 이번 4.11 총선에서 이 문제가 대표적인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입니다. 

김: 말씀하신 것처럼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한미FTA 반대’를 야권연대의 공약으로 내걸었는데요, 만일 이번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한다면 한미FTA를 폐기하는 것도 가능할까요?

제: 한미 FTA 협정문 24.5조의 '발효 및 종료' 항목을 보면 “이 협정은 어느 한 쪽 당사국이 다른 쪽 당사국에게 이 협정의 종료를 희망함을 서면으로 통보한 날부터 180일 후에 종료된다"고 돼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한국이 한미 FTA 폐기를 원할 경우 미국에 협정을 끝내자고 의사를 밝히는 것만으로 자동 종료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야당이 총선에서 3분의 2 이상 의석을 획득하면 일단 한미 FTA이행입법 폐지를 통해 FTA의 국내효력을  부인할 수 있고,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새로 출범한 정권이 한미FTA 종료를 미국에 공식 통보함으로써 폐기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미국과의 협정을 우리가 일방적으로 폐기 선언하는 데 대한 부담이 크기 때문에, 야당이 승리하더라도 ISD 등을 포함한 10개 재협상안을 중심으로 타협점을 모색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내일 발효하는 한미FTA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는 이번 총선과 대선을 통해 표현되는 민의에 달렸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경제양극화 심화 우려…완화하기 위한 정부정책은 ISD에 발목잡혀

김: ‘한미FTA 폐기’가 거론될 정도로 야권과 시민사회의 반발이 심각한 것은 상당한 피해와 부작용이 예상되기 때문일 텐데, 주로 어떤 피해 혹은 부작용이 예상되는지요.

제: 우선은 농수축산물의 수입개방 확대에 따라서 농업분야가 큰 타격을 입는 것 등 피해를 입는 산업분야가 많다는 것입니다. 또 ISD의 도입으로 복지확대와 경제민주화 등 경제양극화해소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는 데 제약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것, 공공서비스의 기반이 무너지고 문화종속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등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한미FTA라는 것은 한 마디로 국내를 기반으로 경쟁해왔던 모든 산업분야가 미국까지 포함된 넓은 시장에서 본격적인 경쟁에 노출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미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수출대기업들은 시장 확대의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미국에 비해 경쟁력이 약한 나머지 대다수의 산업에서는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이 때문에 수출대기업은 성장하는데 중소기업과 자영업은 피폐해지는 우리 사회의 경제양극화가 앞으로 더 심화할 우려가 있고, 이를 완화하기 위한 정부정책은 미국투자자들의 ISD제소 때문에 발목을 잡힐 가능성이 크다는 게 문제입니다. 이밖에 전기 철도 수도 가스 의료 등 주요 공공사업이 장차 민영화하면서 소비자들의 부담이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없지 않습니다.

김: 그러나 정부와 재계에서는 한미FTA 시행으로 인한 이익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 네. 세계 최대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한국수출상품의 관세가 낮아지거나 없어지니 가격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재계에서는 그래서 2003년 이후 하락세인 대미 수출 실적을 늘릴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미 FTA가 발효하면 서로의 수출에 대해 관세가 즉시 철폐되는 품목이 미국, 한국 모두 80%가량 되기 때문에 한국산이 다른 경쟁국에 비해 우위에 서게 됩니다. 특히 자동차 전자 섬유 석유제품 등의 수혜가 예상됩니다. 소비자 후생 측면을 보면 미국산 수입품의 가격이 싸지니까, 물가 안정 등의 이익도 기대할 수 있고요. 외국인 투자가 촉진되고, 경제는 물론 미국과의 안보협력이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체결한 기존 FTA의 효과를 분석해보면 무역흑자 대신 적자가 늘어난 경우 등 당초의 기대에 못 미치는 사례가 꽤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해결해야 할 숙제 산적…피해 집단이 납득하고 만족할만한 대책 마련 시급

김: 한미FTA 시행을 위해서는 원산지 규정 등과 관련해서 중소기업들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하던데, 발효를 앞두고 각 분야의 준비는 잘 진행되고 있는지요.

제: 중소기업들이 원산지를 인정받기 위한 준비를 아직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문제가 꽤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FTA의 관세인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협정에서 요구하는 원산지기준의 충족, 관련 서류의 구비 및 보관 등 자격요건을 갖춰야 하는데, 홍보가 부족했던 탓인지 일부 중소업체들은 한국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만약 원산지 기준 위반으로 걸리면 관세혜택 몰수는 물론 상대국 바이어와의 수출 거래가 단절되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니 대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정부간의 준비협상 과정에서도 아직 확실히 정리되지 않은 이슈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기업형수퍼마켓(SSM)의 확장을 규제하는 유통과 상생법 등이 FTA와 충돌하는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이 아직 논의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발효 이후에도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많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김: 한미FTA로 이익을 보는 쪽과 피해를 보는 쪽이 있다면, 피해를 보는 집단에 대한 대책이 철저히 마련돼야 할 텐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제: 말씀드린 것처럼 한미FTA로 경쟁력 있는 수출대기업들은 이익과 성장의 기회를 더 갖게 된 반면 농업, 제약 등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산업분야와 중소기업, 자영업자, 노동자 등은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FTA의 수혜집단이 희생하는 집단에 대해 그 혜택을 나눌 수 있는 체제를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조세제도를 통해서든, 산업 정책을 통해서든 세밀한 대안이 마련돼야 하는데, 지금까지 정부가 나름의 대책을 세웠지만 이해당사자들이 납득하고 만족할 만한 대책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고 대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기사는 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와 제휴로 작성했습니다. 방송 내용은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3월 14일 다시 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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