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 - 근로 빈곤의 현장 4편
특급호텔 하우스맨 15일의 고군분투기 (상)

대한민국에서 가진 것 없이 사는 사람들은 불안하다. 비참하다. 뼈 빠지게 일해도 벌이는 겨우 입에 풀칠 할 정도. 그 일자리에서마저 언제 ‘정리’될지 모르는 비정규직 신세다. 저축할 형편이 못 되니 번듯한 내 집은 꿈도 꾸기 어렵고, 재개발 전세값 상승 여파에 셋방살이도 좌불안석이다. 아이를 기를 형편이 안 돼 출산을 포기하거나, 보육 부담에 다른 꿈들을 접어야 한다. 큰 병이라도 나면 집안이 풍비박산, 거리로 나앉기 십상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손 댄 사채 빚 때문에 인생까지 저당 잡히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단비뉴스>는 정부와 기성 언론이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수백만 명 가난한 한국인의 삶에 바싹 다가가기로 했다. 그들이 처한 현실을 생생히, 끈질기게 드러냄으로써 그들의 고통과 한숨에 사회가 공명하게 하고, 대안을 모색하도록 할 것이다. 첫 주는 근로 빈곤의 현장을 학생기자들이 직접 체험하고 쓴 취재 기록으로 시작한다. <편집자>

“하우스키핑 하우스맨, 상윤 씨이~”

무전기가 진동했다. 귀보다 손이 먼저 반응했다. 종이를 꺼내 ‘오다(order)’를 받아 적었다.

“핸드 타올 2장은 14층에, 소프트 패드는 24층에, 침대 스커트는 18층에 올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1705호 커튼 봉 수리도 부탁해요. 또......”

주문이 밀어닥쳤다. 바로 받아 적었지만, 헷갈렸다. “수신!” 옆에 있던 경력 2년의 대성(가명, 28)씨가 무전기를 낚아채며 응답했다. “일단 수신이라고 답한 다음, 내선 전화로 다시 확인하세요.”항상 웃는 그였지만, 이럴 땐 단호했다. 하우스맨에게 ‘오다’를 받는 건 생명처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2일 서울의 한 고급호텔에서 하우스맨 일을 시작했다. 총 15일간 회색 제복을 입고 4명의 동료와 함께 호텔의 ‘야전 부대’로 뛰었다. 드라마 '부자의 탄생‘에서 지현우는 VIP룸을 들락날락 하며 지배인 딸과 연애도 하는 하우스맨이지만, 현실의 하우스맨은 그와 한참 거리가 멀다. 소모품 배달, 가구 옮기기, 쓰레기 처리, 린넨(수건, 침대보 등 섬유류) 정리 등 객실관리 전반을 도맡는 ’잡부‘일 뿐이다. 손님에겐 ‘투명인간’처럼 눈에 띄지 않아야 할 존재다. 1년 365일 중 하루라도 이들이 없으면 호텔이 안 돌아가지만, 대부분 파견 업체에 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 신세다. 

면접날, 객실관리 총책임을 맡고 있는 하우스키핑 부장은 “여기서 열심히 일하면서 더 큰 꿈을 꾸라”고 격려했다. 50대 중반의 그녀는 “최선을 다하면 멋진 호텔리어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공허한 말인가를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반복 또 반복...기계처럼 노예처럼  

수많은 ‘오다’를 처리하는 데는 요령이 필요하다. 경력 4년차인 경민(가명, 27)씨가 몸으로 보여준다. 지하 2층에 있는 물건들을 엘리베이터에 실어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면서 주문이 있었던 층에 하나씩 떨어뜨린다. 맨 위 층에 도착하면 계단으로 내려온다. 떨어뜨린 물건을 적재적소에 배달한다. 2개뿐인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한번 놓치면 10분씩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민첩하게 움직여야 한다. 조금만 늦으면 싫은 소리가 쏟아진다. 하지만 일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우왕좌왕, 여러 번 위아래 층을 오르내리느라 다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들어온 지 한 달 남짓 된 우중(가명, 30)씨의 주머니는 온갖 종이들로 뒤죽박죽이다. 층별 창고에 보관된 물품 목록, 하우스맨 일일 업무 목록, 포크와 나이프 같은 소품들의 사진과 이름 등이다. 그는 객실에 들어가는 네 종류의 스푼을 구별할 줄 모른다. 매번 사진과 비교해 모양을 맞춰 갖다 주지만, 더러 실수를 해서 다른 하우스맨을 고생시킨다. 경민 씨가 한마디 했다. “우중 씨, 머리보다는 몸에 배게 하세요.” 자주 만져보면서 몸에 익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 호텔에 들어가는 수십 개의 물품을 다 알 수 없기에 프린트물을 보고 수시로 확인한다. ⓒ 김상윤

요령과 반복이 필요할 뿐, 하우스맨 일에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은 환영받지 못한다. 한번은 대성씨가 벽면 세척액을 유리창 닦이에 묻혀 바르는 대신 분무기로 뿌렸는데, ‘대박’ 이었다. 세척액이 벽에 골고루 묻고 바닥에도 떨어지지 않아 훨씬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호텔 간부들은 ‘하던 대로 하라’고 면박을 주었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돼요.” 대성 씨가 자조하는 말투로 내 뱉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설 자리는 없고, 단순 노동의 끝없는 반복일 뿐이었다.

‘생활의 달인’ 이라 더 슬픈 그들

반복은 ‘달인’을 낳는다. “저도 ‘생활의 달인’에 나가면 잘 할 수 있겠죠?” 커튼 작업을 하다 대성 씨가 말했다. 아주 숙련된 솜씨를 가진 생활인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빠른 손놀림으로 보통 사람 2배의 일을 해낸다. 경민 씨도 ‘슈퍼맨’이다. 엔지니어링 팀이 해야 하는 기기 수리까지 척척 해낸다. “기술팀도 바쁜데, 괜히 다시 오다를 내리면 서로 힘들잖아요.” 그런 생각으로 4년을 일했다.

“그런데, 그들이 달인이라서 슬퍼요.” 민수(가명, 30) 씨가 말했다. 그들이 두 몫을 하니, 경영자는 지금 인원으로도 충분히 호텔이 운영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그 ‘달인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겨우 최저임금을 웃도는 쥐꼬리 봉급일뿐이다. 

하우스맨은 한 달 동안 일하고 108만 5천 원을 번다. 보름 꼬박 일한 돈을 모으면 이 호텔에서 가장 저렴한 방을 ‘하룻밤’ 이용할 수 있다. 하루 9시간, 한 달에 22일 정도 일을 하니 시급으로 따지면 5500원꼴이다. 최저임금인 4110원보다 천원쯤 많지만, 한 시간을 일해도 호텔 미니바에서 파는 7000원짜리 콜라 한 캔을 사 먹을 수 없다. 경민 씨는 경력 4년이지만, 그와 나의 월급차는 겨우 5만원이다. 비정규직이라 경험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삭신은 쑤시고, 환청에 시달리고

▲ 룸어텐던트를 지나칠 때면 진한 파스냄새가 난다. ⓒ 김상윤
“아이고, 삭신이 쑤시네......” 하우스맨과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룸어텐던트, 방청소 아주머니들은 수시로 통증을 호소했다. 1인용 침대 하나가 있는 방을 1단위로 했을 때 이들은 보통 10단위씩을 청소하는데, 체력이 달려서 힘들어한다. 대개 40~50대인 그녀들의 팔목에는 예외 없이 파스 패치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며칠 일하다 힘들어 휴가를 내는 사람도 많다. 그러면 기본급도, 성과급도 줄어든다.

20대 젊은이라고 해서 건강에 문제가 없는 게 아니다. 대성 씨의 손은 유독 까만데, 손금에 늘 흰색 가루를 묻히고 있다. 벽면 세척제 성분이다. 벽의 때를 벗겨내기 위한 것이지만 약품의 오렌지 향 때문에 악취 제거 용도로도 많이 쓴다. 성분이 독해서 손이 갈라진다. 세척액에는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인체에도 나쁜 페놀성분이 들어있어서 원액과 물의 비율을 1:20으로 하도록 안내문에 적혀있다. 그러나 호텔에선 1:1로 섞어서 ‘독하게’ 쓴다. 그래야 냄새제거가 확실하기 때문인가 보다. 
 

 ▲ 하우스맨은 담뱃갑 두배만한 크기의 무전기를 항상 허리춤에 차고 다닌다. 일하다보면 자주 떨어트려서 테이프로 무전기를 칭칭 감았다.  ⓒ 김상윤
일을 시작한지 2개월 된 민수 씨는 무전기 환청 때문에 잠을 설친다. 무전기가 울릴 때마다 주문을 받아 적느라 바짝 긴장하다 보니, 잠자다가도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아 벌떡 일어나곤 한단다. 그는 3주째 감기를 앓고 있다. 먼지가 많은 작업 환경 때문이다. 특히 린넨 정리를 할 때 먼지가 많이 나는데, 호텔에서 지급하는 일반 마스크는 별 도움이 안 되고 답답하기만 해 직원들 대부분 쓰지 않는다. 대성 씨가 한마디 했다. “민수 씨, 조금만 더 하면 적응될 테니 걱정 말아요.” 잠이 덜 깬 얼굴로 민수 씨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렇다. 일단은 적응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몸은 서서히 망가질 것이다.

하우스맨과 홈어텐던트들이 주로 이용하는 직원 엘리베이터 벽에 누군가 ‘힘들다’는 낙서를  써놓았다. 하루 종일 달음박질하다 엘리베이터에 타면, 저절로 긴 한숨이 나온다. 그래, 나도 힘들다…….
 

 


팬티차림에 화들짝.....하인처럼 부려도 웃어라

호텔에서는 하우스맨에게 ‘투명인간처럼 행동하라’고 가르친다. 필요할 때 재빨리 서비스를 하되, 거치적거리면 안 된다.  

K호텔은 장기투숙객을 위한 레지던스 형 호텔이다. 고객은 사업차 방문한 서양인, 아랍인부터 카지노를 즐기러 온 일본인, 마카오, 중국인 등 외국인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하루에 최소 50만 원짜리 방에서 자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하고, 속옷도 세탁을 맡기며, 아이들을 돌볼 보모를 현지에서 데려오는 사람들이다.

돈이 많은 만큼 남을 의식하지도, 배려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많다. 세탁물 배달을 하러 가보면 팬티만 입고 문을 여는 손님 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많다. 방에서 흐드러지게 파티를 한 뒤 하우스맨을 불러 그 자리에서 설거지를 시키는 경우도 있다.

“아랍 손님은 하우스맨을 하인처럼 부리기도 하니까 잘 대처하세요.” 경민 씨가 일러줬다. 그렇다고 기분 나쁜 표정을 지어선 안 된다.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고객들은 호텔 측에 즉각 ‘컴플레인(항의)’을 한다. 고객은 누릴 권리가 있고, 하우스맨은 받들어야 한다. “손님에게는 웃음을 주고, 스스로에게는 가시를 박는 일”이라고 경민 씨가 말했다.

하우스맨들은 이런 스트레스를 아주 소박하게 푼다. “추억의 퐁퐁 한번 타실래요?” 지하 린넨실. 대성 씨가 씨익 웃으면서 린넨 카트 위로 올라간다. 호텔에서 하루 동안 쓴 수건, 침대시트 등은 사과박스 9개 크기의 카트 11개를 가득 채운다. “머리 조심하면서 무릎으로 린넨을 꾹꾹 누르면 돼요.” 트램펄린에서 뜀뛰기를 하듯 그가 폴짝거릴 때마다 카트 속 린넨의 부피가 점점 줄어든다. 동시에 엄청난 먼지가 날린다. 그의 속눈썹이 하얗게 셌다. 카트에서 내려온 그는 거듭 물을 들이켰다. 스트레스는 좀 풀렸는지 몰라도 그의 호흡기는 더 상했을 것이다.

지하3층은 하우스맨들의 유일한 휴식처다. 주차장 구석진 곳에서 담배를 물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BMW가 번쩍 번쩍 광채를 내며 서 있었다. “조심하세요, 2억짜리입니다.” 하우스맨 월급으로는 15년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살 수 있는 차다. 대성 씨는 자동차에 관심이 많아 어지간한 차 이름과 가격을 줄줄이 꿰고 있다. 하지만 정작 값싼 국산중고차도 살 형편이 못 된다. 그는 대신 쓰레기 카트를 킥보드처럼 밀고 다닌다. “그래도 카트를 타고 나면 피로가 풀려요.” 종일 구두를 신고 뛰느라 퉁퉁 부은 발을 쓰레기 카트에 얹고, 그는 번쩍이는 BMW 옆을 조심스럽게 지나갔다.


▲ 세탁소에 보낼 카트수가 제한되어 있기에 하우스맨은 초과된 린넨을 꾹꾹 눌러서 카트에 담는다. ⓒ 김상윤
▲ 쓰레기 카트를 잘못 끌다보면 차에 부딪칠 수 있기에 주의를 해야한다. ⓒ 김상윤

 

 

 

 

 

 

 

 

 

 

 


 

 


특급호텔 하우스맨 15일의 고군분투기 (하)
“영어 못 하면, 그냥 멍한 표정을 지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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