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100일, 그들은 왜 외면받았나

작년 12월 1일 개국했던 종합편성채널이 9일 출범 100일을 맞았다. 2009년 7월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된 미디어법을 근거로 선정된 종편은 예상했던 대로 보수신문인 <조선>(TV조선), <중앙>(JTBC), <동아>(채널A), <매경>(MBN)에 돌아갔다. 종편은 출범 후에도 채널연번제, 의무재전송, 기업과 광고 직거래 허용, 중간광고 허용, 프로그램 편성 규제 완화, 방송발전기금 납부 유예 등 각종 특혜를 보장받았다. ‘글로벌 미디어’ 육성과 방송 다양화, 외주제작 활성화를 통한 방송산업 경쟁력 강화가 특혜의 명분이었다.

종편은 백일을 맞았지만 ‘글로벌 미디어’는커녕 평균 0%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안방 미디어’의 체면조차 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유아사망률이 높았던 옛날에는 신생아가 백일을 넘기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잔치를 했다. 그러나 종편은 워낙 장래가 불투명하니 스스로도 그럴 기분이 아닌 듯하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종편으로서는 차라리 외면하고 싶을지도 모르는 ‘불편한 진실’을 다시 들춰보자. 

▲ 종편 4개 사 로고. ⓒ <MBN> <JTBC> <TV조선> <채널A> 

초유의 개국 사고로 ‘준비 안 된 방송’ 각인

작년 12월 1일, 종편은 첫날부터 유례없는 방송 사고를 내면서 역설적으로 그들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4개사에서 동시 방송한 기념식 첫 화면부터 영상이 끊기는가 하면, 이명박 대통령의 축사 일부는 나가지도 않았다. 프로그램 진행자들 또한 매끄러운 진행을 하지 못하고 서로 호흡이 맞지 않아 한동안 침묵을 지키는 등 자질 논란까지 일었다. <TV조선>은 개국특집 방송에서 약 10분간 화면의 절반이 위아래로 분할되는 대형 사고를 쳤다. <채널A>에서는 약 30분간 오디오가 나오지 않았고, <JTBC>는 박근혜 전 대표 인터뷰에서 오디오 녹음장치를 켜지 않아 재녹화를 하는 실수까지 저질렀다.

이들이 보여준 남다른 보도행태는 첫날부터 네티즌들에게 비아냥의 대상이 됐다. 종편 4사는 첫날 일제히 보수의 아이콘이자 차기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인터뷰했는데, 특히 <TV조선>은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라는 자막을 삽입해 비웃음을 샀다. 이 말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한동안 아부의 최상급 표현으로 유행했다. <TV조선>은 또 “피겨 선수 김연아가 개국 첫날 일일 앵커로 활약”한다며 <조선일보> 1면에 홍보했지만, 단순한 개국 축하 메시지로 드러나 낚시질 논란을 불렀다.

<채널A>도 종편의 초반 이미지 구축에 한몫했다. 선정적 보도가 그것이다. <채널A>는 개국 첫 특종 뉴스로 "강호동이 23년 전 야쿠자 행사에 동원돼 참석했다"는 소식을 자신 있게 내걸었다. 단독입수했다는 당시 영상까지 공개하며 마치 강호동이 야쿠자의 일원으로 활동했다는 뉘앙스를 풍겼지만 이는 강호동측에 의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채널A>는 방송인 A의 음란 동영상을 뉴스에 싣기도 했다. 그의 사생활이 담긴 동영상은 인터넷 곳곳에 퍼졌고 <채널A>는 이 내용을 연일 메인뉴스에서 방송했다. 특히 영상과 A의 나체 사진을 모자이크처리만 한 채 그냥 내보내 빈축을 샀다.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채널A>의 강호동 야쿠자 연루설 보도화면, <TV조선> 개국특집에 출연한 박근혜 전 대표와 문제의 자막. ⓒ <채널A> <TV조선> 화면 캡처

0%대 시청률에도 ‘내가 제일 잘 나가’

종편 개국과 함께 ‘조중동매’ 네 신문사도 덩달아 바빠졌다. 자사 종편이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는 홍보성 보도를 신문 주요 지면에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시청률 1위를 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기준이 다 다르다. 시청률은 날짜와 조사기관에 따라 달라지고 전국가구와 유료방송가구 등 조사대상에 따라 또 달라진다. 그리고 채널 전체 평균 시청률인지 아니면 특정 장르를 대상으로 한 것인지, 특정 장르라 하더라도 몇 시에 방영된 것을 기준으로 한 것인지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가 도출된다.

이처럼 다양한 방식의 시청률 조사기준을 적용한다면 종편 4사의 프로그램이 한번쯤은 모두 1위로 측정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종편의 시청률 자랑이 민망한 이유는 정작 다른 데 있다. 종편 4사 모두 시청률 1위를 자랑했지만 분명한 것은 평균 시청률이 채 1%가 안 된다는 사실이다. ‘도토리 키 재기’라는 속담이 꼭 맞다.

박정희, 이건희 등 특정인물 우상화 논란

종편의 특정인물 우상화도 눈에 띈다. <채널A>는 개국 초부터 드라마 ‘인간 박정희(가제)’를 기획하고 있다. 올 4월 방영 예정인 이 드라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조명한 50부작 드라마로, 타이틀에 드러나듯 박정희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KBS>의 ‘이승만 다큐’가 논란이 되었던 만큼 이 드라마가 박정희의 공과를 어떻게 묘사하느냐에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4월 총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을 TV드라마로 집중 조명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정치적 논란이 되고 있다.

<MBN>은 신년특집 다큐멘터리로 ‘한국의 거인들’을 다뤘다. 대기업 1편은 이건희, 2편은 정몽구 등 대기업 총수들의 리더십을 담았다. 특히 ‘이건희 편’의 기획의도와 초점이 삼성의 초고속 성장과 세계에서 갖는 위상, 이 회장의 학창시절과 리더십에 맞춰져, 삼성의 그늘은 외면한 채 자사 광고 확보를 위해 대기업 총수 띄우기에 앞장서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MBN>은 후편 제작을 위해 다른 대기업들과도 접촉중인 것으로 알려져 종편의 재벌 띄우기는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 <MBN> 신년특집 다큐멘터리 '한국의 거인들' 화면. ⓒ <MBN> 화면 캡처

기대했던 종편 드라마도 줄줄이 몰락

종편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드라마의 경우 지상파에서 보기 힘든 톱스타, 스타급 작가와 연출진 등 화려한 라인업에 내심 기대했던 시청자도 있었다. 하지만 종편은 화려한 출연진 외에는 볼 게 없는 밋밋한 드라마를 만들어 시청자의 기대를 무너뜨렸다. 종편의 빈약한 콘텐츠는 그나마 있던 시청자마저 이탈하게 만들었다. 조명이나 미술 등 소소한 부분에서도 지상파 수준에 못 미쳐 작품의 전반적인 수준을 떨어뜨리고 있다.

<TV조선>의 ‘한반도’가 대표적이다. 화려한 블록버스터에 스타마케팅을 앞세워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지만 시청률은 기대 이하다. '한반도'는 첫 방송에서 종편 드라마의 첫 회 시청률 중 가장 높은 1.649%로 출발했지만 갈수록 내리막 시청률을 보이며 지금은 1%대도 아슬아슬하게 지키고 있다. 2월 막내린 <JTBC> ‘발효가족’도 마찬가지. 송일국, 박진희 등 연기파 배우들을 내세웠지만 마지막 회에서는 0.694%로 첫 회에 비해 반 토막 난 시청률을 기록했다. <JTBC> '신드롬' 역시 종편 신드롬이 되지는 못 했다. 최근 안방극장에서 큰 화제를 모았던 '브레인'에 이어 의학 드라마 흥행 신화를 이어갈 수 있을지 관심을 모았지만 시청자 반응은 싸늘했다.

▲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TV조선> '한반도', <JTBC> '신드롬', <JTBC> '발효가족' 포스터. ⓒ 각 방송사 공식 홈페이지

종편의 드문 용자 ••• 살아남은 프로그램들

드물지만 소리없이 강한 작품도 있었다. <JTBC>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와 <TV조선> '고봉실 아줌마 구하기', <채널A> '천상의 화원 곰배령' 등은 마니아층을 형성했고, 높은 작품 완성도를 보여줬다. 특히 <JTBC> ‘빠담빠담’은 노희경 작가 특유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묻어나는 대사, 판타지 드라마라는 실험적 요소와 아름다운 영상미가 잘 결합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자체 최고 시청률은 2.186%에 그쳐 역시 종편 드라마의 한계를 보여줬다.

▲ <JTBC> '빠담빠담'의 포스터. 지난 2월 호평 속에 막을 내렸다. ⓒ <JTBC> 공식 홈페이지

독특한 컨셉트로 살아남은 예능도 있었다. <JTBC> '김병만 이수근의 상류사회'가 그것이다. '상류사회'는 시청자들의 택배를 받아 김병만, 이수근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지상파에서 보지 못한 신선한 소재로 종편 프로그램 중ㆍ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상류사회'를 보는 또 하나 재미는 택배맨 안재현이다. 9등신의 훤칠한 키에 새하얀 얼굴로 택배를 하는 그의 모습에 푹 빠진 시청자가 많다. <MBN>의 '뱀파이어 아이돌'도 K팝 추종자인 뱀파이어를 주인공으로 한 독특한 스토리로 종편 프로그램 중에서는 그런대로 인기를 끌었다.

<KBS> <MBC> <YTN> 3사의 파업을 했는데도 종편의 평균 시청률은 0.5%를 넘지 못하는 수준이고, 많은 프로그램들이 조기 종영되는 수모도 겪어야 했다. 무엇보다 기존 지상파의 한계를 지적하며 자신 있게 방송계에 입성했지만 지상파 프로그램의 재탕, 삼탕이라는 지적도 많다. 더군다나 올해 두 번의 선거를 맞아 종편이 ‘조중동매’의 보수적 논조를 더욱 강하게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00일을 두고 미래를 단정하기는 이를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왜 시청자들로부터 가혹한 진단이 내려졌는지 제대로 반성하지 않는다면, 그들 중 몇은 6세까지인 유아기를 넘기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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