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기지 건설 위해 제주 강정 용암바위 제거 시작...주민 등 격앙

‘쾅!’

7일 오전 11시 20분쯤 제주도 강정마을의 용암너럭바위 지대인 구럼비 해안에 폭음이 울려 퍼졌다. 제주해군기지 시공사인 삼성건설과 대림건설이 기지건설 부지 일대에서 구럼비를 부수기 위한 화약 발파 공사를 강행한 것이다. 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은 전경버스로 길을 막아선 경찰병력과 대치하다 20여 명이 연행됐다.

 

▲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건설부지 일대 구럼비 바위에서 7일 발파 공사가 강행됐다. ⓒ 박경현

새벽부터 긴장감....경찰력으로 봉쇄 후 여섯 차례 발파

강정마을에는 이날 새벽 3시쯤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해군과 전경들이 강정마을에 들어와 발파 공사를 위한 폭약 운반 작업을 시작하자 마을회관의 사이렌이 울리고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강정마을 주민 50여 명과 환경단체 등의 활동가 80여 명은 마을로 들어오는 진입로를 차량으로 막고 쇠사슬로 몸을 감는 등 강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경찰이 투입된 지 30여 분만에 강제 해산됐다.
 
시공사측은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의 화약보관소에서 화약 800kg을 강정마을로 운송, 오전 11시20분부터 오후 5시 20분까지 모두 여섯 차례 발파했다.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해군 측의 발파 공사 강행 계획을 듣고 이날 오전 9시쯤 긴급호소문을 통해 ‘건설공사를 일시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묵살됐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와 민주통합당 정동영 국회의원도 이날 아침 6시 15분 김포공항에서 첫 비행기로 제주에 도착, 발파 현장을 찾아 작업 중지를 요청했지만 오후 2시로 예정된 발파를 오후 4시로 잠시 미뤘을 뿐 막지 못했다. 이날 작업은 구럼비의 주변부에 집중돼 구럼비 자체가 아직 크게 파괴되진 않았으나 바위에 구멍을 내는 등 사전작업으로 상당한 손상이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 강정마을 어귀 다리에 전경이 배치돼 주민과 활동가의 출입이 통제됐다. ⓒ 김승태

“어릴 때부터 놀멍 지내던 아름다운 곳인디...” 울부짖는 주민들 

발파가 시작되자 주민과 활동가들은 전경들에게 가로막힌 진입로 일대에서 거세게 항의했다.

마을 주민 중 60대 초반의 한 여성은 “(구럼비 바위는) 내가 어릴 때부터 놀멍(놀면서) 지내던 아름다운 곳인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해군기지를 짓겠다고 한다”며 “폭파를 당장 중단하라”고 울부짖었다.

소형 배인 카약을 타고 구럼비 바위로 다가가 발파 작업을 막으려 했던 활동가 4명은 경찰에 연행됐다. 또 기지건설 부지를 둘러싼 철망 안으로 들어가 바위 폭파 작업을 지연시키던 20대 여대생 2명이 한 때 경찰에 억류되기도 했다.

 

▲ 제주해군기지건설 시공사가 구럼비 바위 폭파를 강행하자 마을 주민들이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 김승태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 “특별대책위 만들어 해결하겠다”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는 이날 오후 5시쯤 제주에 도착, 해군기지건설 반대에 앞장서 온 천주교 제주교구 강주일 주교를 면담한 후 강정마을을 찾았다. 한 대표는 "정치가 잘못 됐다는 것을 실감하고, 강정마을 주민들께 죄송하다"며 "민주통합당은 특별대책위를 만들어 문제 해결을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또 "강정마을에서 인권유린이 일어나고 있고, (시위 과정에서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350여 명의 범법자가 생겨났다"며 "야권통합 때문에 오늘은 올라가지만 금요일에 다시 강정마을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7일 오후 6시 30분께 강정마을을 방문해 주민들과 대화를 나눴다. ⓒ 박경현

한편 해군과 시공사측은 앞으로 3개월에서 길게는 5개월 동안 약 42톤의 화약을 동원, 구럼비를 모두 폭파한 뒤 기지건설을 본격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계획은 해군기지에 훨씬 적합한 것으로 평가된 화순과 위미에서 주민 반대로 건설이 무산된 후 강정주민 1900여 명 중 87명만 참석한 마을투표에서 졸속 동의를 얻어 추진된 것이다. 이후 강정마을의 상당수 주민들이 강력한 반대의사를 밝히면서 공사를 강행하려는 해군 측과 큰 갈등을 빚어왔다. 강정마을의 구럼비 해안은 제주도가 지정한 ‘절대보전지역’으로 생태적,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나고 경관이 아름다워 국내외 환경운동가들이 ‘천혜의 자연자원을 콘크리트로 뒤덮는 기지건설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

김미화 등 문화계·학계·법조계 인사들이 7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제주해군기지건설 강행 중단, 평화적 해결 촉구 비상시국회의 결의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결의문을 통해 “제주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드러난 총체적인 부실과 문제점, 그리고 심각한 인권탄압과 사회갈등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끝내 제주해군기지 건설 강행 방침 재천명했다”며 “주민들의 정당하고 절박한 외침을 억누르고 탄압하는 데 국민이 부여한 공권력을 남용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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