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수 칼럼] 개혁세력 결집하고 국민설득 나서야

▲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

“내가 대통령으로 있는 한 재벌개혁을 반드시 해내겠다.”(김대중 대통령) “나는 최초로 재벌개혁에 성공한 대통령이 되겠다.”(노무현 대통령) 그러나 두 사람이 대통령직을 걸고 추진했던 재벌개혁은 실패했다. 두 대통령 재임 기간에 대재벌들은 덩치와 문제를 동시에 키웠고, 특히 삼성은 다른 재벌과 정부도 얕잡아 보는 절대강자가 됐다.

‘재벌개혁’이 이번 총선은 물론이고 대선의 최대 이슈가 될 전망이지만, 역사의 거울에 비추어 보면 이번에도 조짐이 좋지 않다. 과거로 돌아가 왜 재벌개혁이 실패했는지 살펴보자. 우선 김·노 두 대통령은 정치와 사회 민주화 과정의 훌륭한 지도자였지 경제 민주화의 지도자는 아니었다. 신자유주의로 초래된 경제위기를 신자유주의적 처방으로 벗어나려 했다. 결국, 최대 재벌 한둘의 문제인 것을 ‘30대 재벌’ ‘10대 재벌’ 하면서 문제를 희석시킴으로써 삼성의 한국 사회 지배를 용인했다.

김대중 정권은 외환위기라는 절호의 재벌개혁 기회를 맞았으나 고삐를 다잡지 못하고, 위기의 주요 원인제공자였던 삼성이 국민 세금으로 삼성자동차 부실을 털어내게 했다. 소위 ‘제3의 길’이라는 ‘생산적 복지’와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은 국민의 경제적·법적 지위를 ‘약화일로’로 몰아갔다.

노무현 정권은 경제부문에 관한 한 ‘삼성에 의한, 삼성을 위한 정권’이었다. 노 대통령 자신이 부산상고 선배인 이학수 삼성그룹 비서실장을 통한 삼성의 오랜 ‘관리대상’이었고, 이광재 등 측근도 열렬한 ‘친삼성’이었다. 정부 경제정책은 물론이고 국세청·검찰·사법부가 거의 삼성이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 그런 괴력의 원천이었던 ‘뇌물 로비’의 실상이 드러난 ‘엑스파일 사건’마저 없던 일로 됐고, 비자금에 대한 조준웅 특검은 삼성의 불법상속을 합리화하는 걸로 끝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재벌개혁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기대한다. 얼핏 보면 여건도 좋아졌다. 무엇보다 양극화의 폐해를 체험한 국민의 여망이 종전과 달라, 재벌 경제체제의 동반자였던 보수정당까지 야당과 경쟁적으로 재벌개혁을 외치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실패를 우려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개혁의 주체와 목표, 다시 말해 재벌개혁 세력이 결집하지 않고, 목표가 선명하게 부각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실패한 전철을 뒤따르고 있는 것이다. 혁명도 주체세력이 있고 혁명공약이 분명해야 성공한다. 영원할 것 같던 쿠데타 세력이 무너진 것 또한 박정희와 전두환이라는 핵이 제거됨으로써 끝났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를 지도자로 하는 여당은 거대재벌과 한마음이니 재벌개혁에 관한 한 어떤 변신도 선거기간의 위장술일 가능성이 높다. 집권한다면 앙시앵 레짐, 곧 구체제의 부활이다. 야당은 어떤가? 민주통합당의 한명숙 대표와 문재인씨는 노무현 정권의 총리와 비서실장이었으니 재벌개혁 실패의 ‘주요임무 종사자’다. 그들 생각이 대통령과 달랐을지 몰라도 노무현의 극복과 대국민 사과가 전제돼야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민주통합당의 지도부 구성과 공천 과정을 보면 부정적 생각을 더욱 굳혀준다. 개혁성향이 높은 시민사회 출신은 최고위원 선거에서 대부분 낙선했고, 공천도 물갈이는커녕 현역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강철규 공천심사위원장은 “재벌의 횡포를 막을 사람을 공천하겠다”고 공언했으나 빈말(空言)이 되고 말았다.

실은 강철규 공천심사위원장 자신이 박근혜 위원장의 최측근인 유승민 의원과 함께 삼성의 자동차 진출에 결정적 공헌을 한 학자로 외환위기에 책임이 있다. 개혁 이미지가 강했던 그가 삼성이 자동차 진출 로비에 목을 맬 때 난데없이 <동아일보> 특별기고(1994년 5월15일)를 통해 삼성차 진입 허용을 주장한 것은 기이했다.

민주통합당이 재벌개혁의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노무현 정부 때 재벌개혁을 추진하다 삼성의 입김 등에 의해 추방된 것으로 알려진 이동걸·이정우·정태인씨를 다시 영입하는 등 개혁세력을 결집해야 한다. 그런데 심상정·노회찬 등 재벌개혁 세력이 다수 포진해 있는 통합진보당과도 후보단일화를 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재벌개혁의 한쪽 주체는 진보언론이다. 과거 재벌개혁이 실패를 반복한 데는 보수적인 정권-재벌-언론의 삼각동맹이 워낙 견고했기 때문이다. 보수언론만 탓할 일도 아니다. 삼성이 광고를 주지 않아 진보 언론의 물적 기반이 취약해진 탓도 있지만, 재벌개혁 관련 의제설정 능력이 매우 모자란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 국면에서도 <한겨레>는 재벌개혁을 선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경향신문>이 ‘재벌개혁’ 시리즈를 시작한 지 11일이 지나서야 ‘0.1% 재벌의 나라’라는 시리즈를 시작했다. 의제설정력을 좌우하는 핵심요소는 누가 일찍 의제를 던지느냐에 있다. 늦게 시작하면 내용도 중복되고 주목도가 떨어진다.

개혁의 목표를 분명히 하는 문제는 개혁의 성패와 직결된다. 삼성의 한국 사회 지배력이 모든 재벌의 총합을 능가하는 상황에서 타깃을 분산시키는 것은 개혁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은 최대 재벌이면서 최소 상속세를 내고 경영권을 승계한 점,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는 점, 거대 언론을 거느리고 다른 언론마저 길들이려 하는 점, 로비를 통해 정치와 경제정책은 물론이고 사법체계마저 좌우하려 하는 점 등 다른 재벌에는 없는 숱한 이유로 개혁의 목표가 될 요건을 갖췄다. 삼성이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측면이 분명 있지만, 한국 사회의 문제점 또한 삼성에서 비롯되는 게 너무 많다.

중요한 것은 진보언론이 재벌개혁을 밀고 나가는 방식이다. 업종 전문화 등으로 잘하는 재벌도 많은데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역공을 초래할 수 있다. 삼성이 미워서가 아니라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개혁을 해야함을 설득해야 한다. 상속세를 제대로 거둬 복지지출을 확대하고,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개혁이 필요함을 알려야 한다. 경제 민주화야말로 가장 좋은 경제 살리기 운동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 이 기사는 <한겨레>와 동시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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