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함께 고민하는 공간 ‘이그나이트’ 카페 김선경 대표

 “지역마다 노인정은 있는데 청년정은 없잖아요. 노인정은 일할 힘이 없고 갈 데 없는 노인들을 위해 공동체가 만들어준 공간입니다. 일자리와 갈 곳이 없는 건 청년들도 마찬가지예요. 청년들이 모여서 놀고 먹고 수다도 떨고, 강연을 듣거나 토론하고 공부하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 김선경(28) 씨. ⓒ 양호근
갈 곳 없는 청년들을 위해 카페를 열었다는 김선경(28) 청년이그나이트 대표. 김 대표는 지난 2009년 12월 서울 명륜4가에 보증금 1000만원, 월세 100만원 짜리 15평 남짓한 공간을 얻어 카페 이그나이트를 만들었다. 사회체험 연합동아리 ‘대학희망’에서 만난 대학생 및 졸업생 4명과 ‘등록금, 취업경쟁 등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자주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고 의기 투합한 결과다. ‘불을 붙인다’는 뜻의 ‘이그나이트(ignite)’로 이름을 지은 것은 청년들의 삶에 열정과 희망을 점화해 보자는 뜻이라고 한다. 같은 달 27일 이들의 생각에 관심을 갖고 모인 10여명과 함께 ‘청년이그나이트’라는 이름의 단체도 만들었다.
 
김지하 시대 청춘들은 왜 학림다방에 모였나

“카페에서 할 수 있는 놀 거리와 배울 거리가 뭔지 고민했어요. 단순 강연형식이 아닌, 맥주나 커피를 즐기면서 파티처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죠. 카페 문을 연 첫 날에는 공무원이 되고 싶은 친구들을 위해 전국공무원노조 교육연수실장을 초청해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곳을 청년들이 취업정보를 공유하고 심리상담과 강연회에 참여하고 토론도 하는, 즐겁고 유쾌한 활동이 지속적으로 열리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학림다방. ⓒ 양호근

김 대표는 영국 전통의 ‘펍(pub)’문화와 서울 대학로의 ‘학림다방’에서 영감을 받아 이 카페를 구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15세기경 영국에서 생겨난 펍은 술집의 일종으로, 수많은 문학작품과 영화가 탄생한 곳이다. 당대의 시인들이 아름다운 시를 구상하고, 학자들이 열정적으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1956년 서울 대학로에 문을 연 학림다방은 젊은이들이 모여 철학•문학•예술을 논하던 공간이었다. 김지하, 천상병, 황지우 시인 등 젊은 지성인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전국민주학생연맹이 첫 모임을 갖는 등 대학생들의 시국토론장소로도 자주 활용됐다.

이그나이트 카페는 평소 저렴한 가격에 음료와 요기거리를 팔고, 다양한 행사를 조직하거나 청년 모임에 장소를 임대하기도 한다. 커피와 녹차 2000원, 소주 맥주 3000원, ‘한미FTA반대 유기농 샐러드’와 ‘스펙따윈싫~오뎅탕’등 재미있는 이름의 안주가 각 8000원씩에 팔린다. 김 대표와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일을 하는데,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이 청년이그나이트의 활동 경비로 쓰인다. 요즘은 이 카페에서 청년들의 정치참여, 사회참여에 대한 토론이 많이 이뤄진다고 한다.

▲카페 이그나이트 메뉴판. ⓒ 이지현

20대의 정치 참여, 작은 봉사로 시작할 수도 

“20대의 정치참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치참여는 투표를 통해 할 수도 있고 하루 봉사활동을 통해서도 할 수 있는 겁니다. 이런 생활 속의 참여가 실제 정치라고 생각해요. 일상의 작은 행동들이 우리 사회를 바꾸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니까요.”

청년이그나이트는 지난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온라인상에서 20대의 투표참여 독려운동을 벌였다. 지난해 6월에는 카페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 자녀를 위한 후원모임을 가졌고, 9월부터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서울 상도4동 재개발지역에 벽화를 그려주기도 했다. 이어 12월에는 종로구의 독거노인 가정 80곳을 찾아 일주일치 밑반찬을 배달하는 ‘몰래산타’ 활동도 했다.

▲지난 2010년 겨울 청년이그나이트는 청년들과 전태일 열사를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 양호근

이런 일로 언론에 거론된 때문인지 김 대표는 지난 1월 주간지 <시사저널>에 청년비례대표 유력 후보의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제 이름이 올라간 것 자체가 부끄럽죠. 고2때부터 선거연령 인하운동도 하면서 나름대로 정치적 삶을 살았지만 지금의 제가 청년들을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그나이트와 같은 모임은 누구나 만들 수 있어요. 청년을 위해 제대로 활동한 것도, 바꾼 것도 없는 제가 청년비례대표에 언급된 건 그만큼 청년들을 위해 제대로 활동하는 이들이 없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요?”

김 대표는 선거를 앞두고 청년 관련 정책을 쏟아내는 정당들에도 한 마디 했다. 반값등록금, 주거문제, 취업문제 등 청년들의 고민이 많지만 이것이 청년 문제로만 다뤄져선 곤란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부동산, 주택문제 전체에 근본적 해법이 되도록 접근해야 청년들의 문제도 제대로 해결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카페 이그나이트 내부. ⓒ 양호근

그는 팟캐스트 <나는꼼수다>의 예를 들며 정치권이 ‘의제설정의 대중화’를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람들이 ‘비정규직 철폐’, ‘주거비용 인하’ 등의 구호보다 왜 ‘쫄지마’에 더 열광하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나꼼수처럼 대중의 분노를 읽고 의제를 설정하는 힘과 대중적 접근 방법들을 정치권이 더 고민해야 합니다.”

왜 아픈지 알아야 청춘이다

김 대표는 20대가 ‘스펙(자격조건)’ 쌓기와 개인의 성공에 눈이 멀어 전체 사회를 보지 못하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정치참여의 시작은 투표라고 강조했다.

“김난도 교수가 <아프니까 청춘이다>고 책에 썼지만, 청춘이니까 아픈 거라고 넘기지 말고 왜 아픈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사실 친절하신 이명박 정부 덕에 지금은 이전보다 훨씬 많은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 갖게 됐어요. 하지만 지금보다 더 많은 청춘들이 투표로 목소리를 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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