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이슬기

▲ 이슬기 기자.
컨베이어 벨트 위 나사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그것을 조이는 노동자들의 손은 바쁘다. 잠시 한 눈 팔면 나사가 기계 속으로 들어가고, 어느새 나타난 공장장이 노동자의 머리를 쥐어 박는다. 무성영화 <모던타임즈(modern times)>의 한 장면이다.

기계처럼 일한 주인공은 기어이 나사 조이는 강박관념에 빠져 공장 안을 지나가던 여자의 엉덩이에 달린 단추를 조이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이것마저 웃음으로 승화한 그는 전설의 희극배우이자 감독인 찰리 채플린이다. 영화 속 그는 과도한 노동으로 급기야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이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만다. 거리를 방황하다 시위 군중에 휩싸여 감옥에 갇히고 결국 떠돌이로 전락하게 된다는 비극적 결말을 담았다.

▲ 영화 <모던타임즈>의 한 장면. ⓒ 영화 <모던타임즈> 갈무리

당대 현실을 반영한 비극에도 관객들은 영화보는 내내 웃음을 터뜨린다. 주인공 찰리가 화장실 한편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한쪽 벽 대형 스크린에 나타난 자본가의 불호령에 냅다 공장 안으로 달려가는 장면 등이 그렇다. 하지만 75년 전에 만들어진 이 영화가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서류를 당장 보내라는 상사의 스마트폰 독촉 메시지에 휴가지에서도 일을 하는 회사원의 모습, 이른 시간 가축처럼 공장으로 끌려가 온종일 휴식 없이 일하는 노동자들, 그리고 그들을 감시하는 자본가의 모습에서 현재 한국의 모습이 오버랩되기 때문은 아닐까.

▲ 주인공 찰리가 자동급식기계로 밥을 먹으려 하고 있다. ⓒ 영화 <모던타임즈> 갈무리

자동급식기계를 설치해 점심시간에도 계속 나사를 조이도록 한 영화 속 사장님의 무자비한 얼굴에서, 점심시간도 아껴 영어공부와 같은 자기계발을 하도록 독려하는 회사 간부의 모습이 겹쳐진다. 한 회사에서는 점심 시간도 아끼기 위해 각자 자리에서 도시락을 꺼내먹는다고 한다. 이전만큼 노동을 하지 않아도 먹고살 만큼 과학 기술이 발전했지만 현재 우리나라 노동자는 엄청난 양의 노동을 강요받고 있다. 2009년 기준 한국 연간 노동시간은 OECD 30개국 중 1위다.

일은 많이 하지만 노동자들이 느끼는 불안은 더 커졌다. 노동자들은 쉼 없는 쳇바퀴를 돌지만 10대에는 사교육, 20대에는 청년실업, 30-40대에는 내 집 마련, 그 이후에는 노후에 대한 불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등 서점가를 강타한 자기계발서는 하나같이 자투리시간도 아껴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라고 말한다. 경쟁사회에서 끊임없이 일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먹고사는 것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버틀런트 러셀은 <게으름을 위한 찬양>에서 사람이 여유 있게 살 권리를 주장한다. 여유 부리는 시간에 내 생계는 누가 챙겨줄까? 그 질문에 그는 '국가'라고 답한다. 경쟁사회에서 더 열심히 일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것은 개인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생산조직 시스템을 조금씩만 바꿔도 현재 구조를 그대로 두고 더 놀 수 있다고 말한다.

모두에게 기본소득이 보장되어 일에서 해방된다면 어떨까? 여성해방은 육아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사람들의 구매력이 늘어나 내수가 증진되고 이것이 기업의 이윤 창출로 이어질 것이다. '억울하면 출세해서 부자 되라'는 말은 오히려 불안만 키울 뿐이다. 브라질은 이미 시민기본소득법을 통과시켜 전체 인구 1/4에게 혜택을 주었고, 칠레의 여성 대통령 미첼 바첼레트는 무상급식, 보육, 의료 지원 정책을 펼쳤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 할 것 없이 복지를 들고 나왔다. 얼마 전까지 복지는 포퓰리즘이라고 외치던 사람들까지 말이다. 그들은 기업의 이익을 중소기업과 노동자와 나눠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선거 때만 떠들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후퇴하고 마는 게 과거의 불문율이었다.

취업이 안 되는 청년들이 뼈빠지게 일해도 88만원 세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 현실을 노동자들이 자기의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이번에야 말로 99%의 단합된 목소리로 선거 혁명을 이뤄야 한다. 혁명의 구호는 '게으름부릴 자유를 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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