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26일 막 내리는 연극 <철로>

KTX 민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정부가 지난 12월, 2015년 개통 예정인 수서발 KTX 운영권을 민간에 넘기겠다고 발표하면서부터다.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과연 'KTX 민영화'는 정부 주장대로 국민에게 전보다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

“민간과 공공이 서로 경쟁해야 요금도 저렴해지고 서비스도 향상된다.” (국토해양부)
“민간기업 속성상 이익만 추구하다 보면 요금은 올라가고 사고도 늘어난다.” (코레일)

▲ 지난 4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KTX 민영화 저지 및 철도공공성 강화 철도노동자 1차 총력 결의대회'에서 철도노조의 한 조합원이 피켓을 들고 있다. ⓒ 철도노조

지난 10일 개막한 연극 <철로>는 이 질문에 명쾌하게 답한다. 극작가 데이비드 헤어는 민영화 이후 잇단 고속열차 추돌사고를 소재로 철도 민영화 사업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영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극작가 헤어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디 아워스> 같은 영화 각색자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지난 2008년, 극단 ‘풍경’ 박정희 대표의 각색과 연출로 서울연극제에서 첫 선을 보인 뒤 연출상과 남자신인상을 타기도 했다. 극단 ‘풍경’이 창단 10주년을 맞이해 다시 무대에 올리는 이 작품은 지금 현실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영국은 아름다운 나라죠. 노동당 정부는 열차 사업만 빼고 다 잘합니다."
"영국의 철도조직이 멍청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죠. 요리사랑 웨이터랑 접시닦이가 각각 다른 회사에 소속된 레스토랑과 똑같습니다. 정말 멍청하게 운영하는 거죠.”

연극은 대구에 사는 한 작가가 자료수집을 위해 여행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그는 런던의 지하철에서 젊은이들이 영국 철도에 대해 비난하는 것을 듣고 작품의 영감을 얻는다. 1996년부터 이뤄진 영국 철도 민영화는 대표적인 민영화 실패 사례로 꼽힌다. 영국 정부는 경쟁구조를 통해 효율성과 서비스 질을 높이겠다고 했지만 여러 갈래로 쪼개진 회사가 남긴 건 잇단 대형사고였다. 극은 철도 사고와 관계된 다양한 계층의 사람을 만나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당시 사고들을 되짚는다. 철도 민영화 사업은 이들의 증언처럼 사람들을 집어 삼키는 '블랙홀'과 같다.

▲ 연극 <철로> 공연포스터. ⓒ 인터파크 플레이디비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블랙홀'은 패딩턴 사고와 해트필드 사고다. 1999년 런던 패팅턴 역 근처에서 열차가 충돌해 31명이 사망했다. 신호시설 부족이 원인이었다. 2000년에는 시속 185km로 달리던 열차가 탈선해 70명이 다치고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조사 결과 민간 철도관리업체 레일트랙으로부터 유지·보수 업무를 맡은 외주회사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선로 균열을 방치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아무도 책임을 떠맡으려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그것을 수습하는 데는 패턴이 있었습니다. 사고, 조사, 권고. 추후 행동은 없었죠."

그뿐만 아니라 영국 철도는 민영화 이후 5년간 운임이 150% 올랐다. 당시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 보도를 보면, 민영화의 실상이 어떻고, 그 후유증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민영화 이후 영국의 철도 승객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오래 열차를 기다리고, 열차 안은 더욱 혼잡하다. 업계에서는 '줄인다'는 말만 들려온다. 인력 감축, 서비스 저하, 심지어 노선 축소까지. 매달 비용초과, 개선 약속 불이행, 실적 미달, 서비스 저하에 대한 소식만 들려온다."

결국 영국 철도는 민영화 8년 만인 2002년 다시 공영화됐다. 연극은 말미에 이르러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로 이어진다. 작가가 인터뷰 자료를 가지고 한국에 돌아온 날, 부인이 지하철 사고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원작을 비틀어 재구성한 이유에 대해 박 연출가는 "연극이 우리 사회에도 각성의 계기가 되길 바랐다”고 말했다.

▲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배우들이 열연을 하고 있다. ⓒ 인터파크 플레이디비
극 전개 방식에 아쉬움도 남는다. 배우들은 등장과 퇴장 없이 모두 무대를 지키고 있다. 대신 자신의 인터뷰 순서가 되면 바퀴가 달린 의자를 타고 무대 중앙으로 나오는 식이다. 하지만 배우 16명이 44명의 역할을 소화하다 보니 등장과 퇴장이 잦아 산만함을 준다. 또 빠른 대사 전환은 관객들이 극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느끼게 한다.

연극 <철로>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민영화는 국민을 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극에 등장하는 대사들이 관객에게 강렬하게 와 닿는다.

"누구나 민영화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하지만 정치가들은 단호했죠. 그들의 생각은 이랬던 거죠. '좋아요, 완벽하지 않을지는 모릅니다. 흠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린 거기에 대해 재검토하진 않겠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한번 봅시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고요.'"

 

▶ 연극 <철로>: 2월 26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평일 오후 8시, 토요일 오후 3시·7시, 일요일 오후 4시. 티켓가격 2만원. 공연문의 02-889-3151, 3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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