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지배력 편법 확장 막게 총선 공약으로 규제 추진
[두런두런경제] 김광진 제정임의 경제카페

김광진(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진행자): 요즘 재벌개혁이 정치권의 화두 중 하나가 되고 있는데요, 여야가 모두 총선공약으로 순환출자 규제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우선 순환출자라는 게 무엇인지부터 알아볼까요?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출자라는 것은 사업을 위해 자금을 내놓는 것을 말하고, 순환출자란 3개 이상의 회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로 출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A기업이 B기업에 출자하고, B기업은 C기업에, 그리고 C기업은 다시 A기업에 출자를 하는 형태죠. 이렇게 되면 A기업은 손쉽게 B와 C기업을 지배할 수 있게 되고, 실제로는 돈이 들어온 게 없어도 장부상 자본금이 늘어납니다. 이런 순환출자는 우리나라 재벌총수일가가 그룹 전체자본금 중 5%도 안 되는 적은 돈으로 수십 개 계열사에 대해 압도적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장치가 되고 있습니다. 현대기아차 그룹이 대표적입니다. 현대모비스가 현대차에, 현대차가 기아차에, 기아차가 현대모비스에 다시 출자하는 방식으로 순환출자가 이뤄졌습니다. 삼성도 최근 연결고리가 다소 느슨해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순환출자구조입니다. 현대중공업 한진 동부 현대그룹 등도 순환출자로 총수의 계열사 지배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전체자본금의 5%로 수십 개 계열사 지배하는 총수일가

김: 순환출자 말고 상호출자라는 용어도 있는데, 이 둘은 어떻게 다른 겁니까?

제: 상호출자는 두 기업이 서로 출자를 하는 것입니다. A기업이 B기업에 자본금을 내고, B기업은 A기업에 자본금을 내서 서로의 주식을 보유하는 방식이죠. 순환출자는 3개 이상의 기업이 간접적으로 상호출자를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호출자, 순환출자는 기업끼리 서로 경영권을 보호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실질적인 출자 없이 가공자본으로 계열사 수를 손쉽게 확대하는 데 악용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계열사들이 이렇게 상호출자로 엮이면 한 기업의 경영이 부실해질 경우 연쇄 도산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그래서 현행 공정거래법은 합계 자산 5조원 이상의 대기업집단에 대해 상호출자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각 기업들의 복잡한 순환출자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규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 

김: 그렇다면 최근 정치권에서 순환출자 규제 얘기가 나오는 것은 아무래도 재벌들이 이를 통해 쉽게 계열사를 늘리면서 경제력집중이 점점 심화하는 현실을 개선하겠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제: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재벌의 핵심적 문제 중 하나는 그룹전체로 볼 때 극히 일부 지분을 가진 총수 일가가 순환출자 등의 방식으로 수십 개의 계열사를 지배하면서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쉽게 새로운 계열사를 만들고, 일감을 몰아줘서 손쉽게 덩치를 불리는 것이죠. 그래서 소수 재벌에게 나라 전체의 경제력이 점점 집중되고, 중소기업 자영업자 등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는 양극화가 고착되고 있습니다. 이런 순환출자구조는 한 계열사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룹전체를 위험에 노출시킬 가능성이 높고, 97년 외환위기 때 경험했던 것처럼 국가경제의 리스크도 높인다는 의미에서 우려의 대상이 됩니다. 

정치권 "규제를 통해 재벌기업의 문어발 잘라내야"

김: 그런데 순환출자 규제에 대한 여야의 입장이 같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먼저 여당인 새누리당의 경우 신규출자에 대해서만 순환출자를 막겠다는 얘기죠?

제: 새누리당은 아직 당론이 확정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 쪽에선 ‘기존의 순환출자는 인정하되 새로운 순환출자는 못하도록 규제하겠다’고 밝히고, 다른 쪽에선 순환출자 규제 가능성을 부인합니다. 처음에 순환출자 규제를 거론했던 나성린 새누리당 정책위 부의장은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하라고 한다면 기업들의 부담이 너무 클 것이므로 신규출자에 대해서만 순환출자를 금지해서 무분별한 확장을 막는 방안을 총선 공약으로 마련 중”이라고 언론에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이에 대해 “일부 의원의 아이디어일 뿐”이라고 의미를 축소했습니다. 아마도 새누리당 안에서 총선 민심을 고려해 보다 적극적인 재벌규제를 주장하는 쪽과 규제를 반대하는 쪽이 대립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 반면 야당인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확실하게 순환출자 금지를 총선공약으로 내세우겠다는 입장이죠?

제: 그렇습니다. 민주통합당은 기존 순환출자까지 해소하는 내용의 규제안을 당론으로 정한 상태입니다. 순환출자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기존 순환출자주식에 대해서는 단계적으로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안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통합진보당도 기존 순환출자의 해소를 포함한 순환출자 규제를 재벌개혁 로드맵의 일환으로 제시했습니다. 두 야당은 이와 함께 지난 2009년 폐지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부활시켜서 재벌의 출자를 총량적으로 규제하는 방안, 재벌기업이 업무연관성 없는 계열사를 늘릴 때 세부담을 높이는 방안,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 등도 함께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재벌이 무분별한 ‘문어발’을 일부 정리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보입니다. 세부적 정책 내용과 강도에는 차이가 있지만 두 야당은 ‘재벌개혁’을 기치로 선거에서 공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김: 이런 정치권의 움직임에 대기업들은 당연히 불만스러워 할 것 같은데요, 재계는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다른 나라에 없는 규제를 왜 하나’ 하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죠?  

제: 맞습니다. 안 그래도 유럽재정위기와 중동 불안 등으로 기업경영환경이 어려운데 정치권이 재벌개혁이니 뭐니 해서 대기업을 괴롭힌다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순환출자 해소에 신경을 쓰다보면 경영에 차질이 생기게 되고, 경제성 높은 미래 산업에 대한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또 경영권 방어가 어려워져서 해외기업에 인수합병될 위험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해서 대기업의 사업 활동에 차질이 생기고 국제경쟁력이 떨어지면 중소기업들도 어려워지고 결국 국가경제 전체에 피해가 갈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 단체들도 ‘선거철마다 유행처럼 재벌을 때리는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나라 재벌들이 순환출자를 해소하려면 수십조 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하고 있는데, 근거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다른 나라에는 없는 규제를 왜 하나’ 하는 불만도 나오는데, 우리나라 재벌만큼 심각한 경제력집중을 보이는 집단이 외국에는 없다는 것도 감안해야겠죠. 

재벌들의 '경제 독재' 막기 위해 재벌개혁 단행해야

김: 경제력집중을 막기 위해 개혁을 하다가 대기업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면 안 된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요, 재벌개혁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야당은 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제: 통합민주당과 진보통합당은 ‘개별 대기업의 경쟁력’과 ‘재벌총수의 지배력’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기업의 경쟁력은 높이되, 부당한 방법으로 재벌총수 일가가 지배력을 확장하는 건 막자는 게 핵심이라는 설명입니다. 지금처럼 재벌계열사들이 순환출자로 얽혀 있으면 한 계열사의 부실이 그룹 전체의 부실로 쉽게 확대될 수 있고, 총수와 가족이 소유한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다른 계열사와 주주들의 이익이 침해될 소지가 높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결국 순환출자 해소 등을 통해 재벌그룹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는 것이 개별 계열사들의 경쟁력을 높이고 다수 주주와 종업원에게 이익이 되며,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막아서 나라경제의 균형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입니다. 민주통합당의 유종일 경제민주화특별위원장은 “정보공유라든지 자본과 기술의 집적 등 그룹경영시스템의 장점은 살릴 필요가 있지만 소수 지분을 가진 총수 일가가 대대손손 경영하는 지배구조는 아무런 합리성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순환출자도 문제지만 저는 재벌들의 독과점 문제도 심각하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 맞습니다. 소수 거대 기업들이 중요한 시장을 독과점적으로 지배하는 문제도 심각합니다. 정유와 전자 등 일부 산업에서 몇몇 재벌들이 담합해 소비자들을 골탕 먹이고 폭리를 취한 일이 드러나기도 했죠. 독과점 문제도 포함해서 재벌 대책이 종합적으로 수립, 집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불법행위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단속이 강화되어야 하고 사법부의 엄격한 처벌도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문제가 돼도 과징금을 물고 끝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경영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 등 엄격한 법집행이 필요합니다.  


* 이 기사는 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와 제휴로 작성했습니다. 방송 내용은 2월 8일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다시 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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