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 쌓인 개인정보 ‘잊혀질 권리’ 공론화

결혼 5년 차 주부 김나윤(30·가명·서울 도봉구)씨는 얼마 전 ‘구글링’(구글로 검색하기)으로 남편의 ‘과거’를 발견하고 ‘놀려먹는 재미’를 쏠쏠하게 봤다. 어린 시절 중고 만화책을 사면서 ‘왜 배송이 안 되냐’고 주문 사이트에 독촉한 남편의 댓글을 발견한 것이다. 구글링은 소개팅을 앞둔 남녀들에게도 유용하다. 연락처와 이름을 구글링 해서 상대방에 대해 미리 파악하는 것은 단정한 옷차림만큼이나 필수적인 사전작업이 됐다. 김호정(28·가명·경기도 의정부)씨는 처음 만난 자리부터 학벌과 큰 키를 자랑하던 상대방이 한 모델지망생 사이트에 겉멋이 잔뜩 든 사진을 올린 것을 보고, 어쩐지 허세 있게 느껴졌던 첫인상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인터넷 포털 누리집의 강력한 검색 기능으로 웬만한 건 다 찾을 수 있는 시대. 하지만 구글링은 첫 만남의 설렘을 앗아가고, 연인의 부끄러운 기억마저 드러낸다.

지난 여름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 구글링은 이름이나 아이디, 전화번호 검색을 통해 특정인의 개인정보 수집이 용이하다. ⓒ진희정

부산지역 대학 출신 강신우(27·경남 사천)씨는 지난달 27일 오전 부산의 한 지역구 국회의원 예비후보 사무실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4월 총선을 준비 중인 후보가 ‘2040세대’의 생각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면서 강씨와 지인들을 초청한 것이다. 대학시절 20대들의 대안언론을 지향한 모임 ‘고함20’의 부산지역 팀장을 맡았던 경험 때문이라고 짐작했지만, 연락처를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했다.

기억도 나지 않는 과거에 어딘가 남긴 연락처와 글을 낯선 사람들이 보고 전화했으리란 것이 꺼림해, 구글링을 해봤다.

“이름과 지역을 넣어 검색하니 전화번호가 나왔고, 다시 이름과 전화번호를 넣으니까 집주소가 나왔어요. 언젠가 쇼핑몰에 환불요청하면서 남긴 거던데, 당시엔 이게 이런 식으로 나올 줄 몰랐죠. 전화번호도 자주 활동하던 인터넷카페나 학교 홈페이지에 받을 연락이 있어서 올렸을 텐데, 그거랑 상관없이 활용되니까 섬뜩하네요. 구글은 페이지가 저장되는 거라, 제가 올렸던 글을 나중에 지운다고 해도 소용이 없고, 또 다 지울 수도 없잖아요. 온라인에 제 전화번호가 이렇게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줄 몰랐어요.”

한 중소 유통업체에서 일하는 정민수(46·경북 구미)씨 역시 올해 새로 구입한 스마트폰에서 예전에 쓰던 응용프로그램(앱)과 전화번호, 메모가 그대로 나타는 것을 보고 마음이 불안해졌다.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구글 계정으로 이용하니까 정보가 어느 정도 공유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새 핸드폰에도 자동으로 나오는 걸 보니까 뭔가 찜찜하더라고요. 전화로 이용한 정보도 구글 자체 계정 컴퓨터서버에 기록되고 저장된다는 소리잖아요. 누군가가 일일이 확인하고 있진 않겠지만, 확인하려들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감시받는 느낌이랄까?”

“남기고 싶지 않은 개인정보 지울 권리 주어야”

지난해 발생한 인터넷 상의 개인정보 유출사고는 4월 현대캐피탈 175만 명, 7월 SK커뮤니케이션즈 운영 포털사이트 ‘네이트’ 회원 3500만 명, 11월 넥슨 온라인 게임 ‘메이플스토리’ 회원 1320만 명 등 엄청난 규모였다. 2008년 1월 ‘옥션’ 해킹으로 1863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이래 4년 동안 발생한 굵직한 피해 사례만 모아도 1억2000여 만 건. 온 국민이 두 번은 ‘털린’ 셈이다.

 

▲ 지난해에는 인터넷 상에서 개인정보 대량 유출사고가 잦았다. 4월 '현대캐피탈'을 비롯해 SK커뮤니케이션스가 운영하는 포털 '네이트', '넥슨' 등 굵직한 피해사례만 모아도 전 국민의 개인정보가 모두 유출된 것과 맞먹는다. ⓒMBC KBS SBS 네이트

“최소한 제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민등록번호, 계좌번호는 인터넷 어딘가에 떠돌아다니고 있다고 생각해요. 더군다나 요새는 SNS가 활발해서 세세한 내용까지 다 기록되고 순식간에 퍼지잖아요. 공개된 공간이란 걸 알고 트윗을 쓰지만, 그 글에 대한 책임 말고 다른 이유로도 언제나 신상이 털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땐 트위터가 제일 유용하게 활용되겠죠? 저 혼자 아무리 주의하고 조심하려고 해도 인터넷 상에서 정보유출은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일이 돼 버렸으니까, 독이 될 줄 알면서도 사용하는 거죠.”

넥슨 개인정보유출 사건 때도 피해를 봤다는 고준수(28·충북 청주)씨 말대로, 기업이나 포털사이트 회원의 개인정보 대규모 유출사건뿐 아니라 과거에 올린 글이나 사진이 피해를 낳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과거에 남긴 트윗이 공개돼 자질 논란이 벌어진 한나라당 이준석 비상대책위원의 경우나 연예인들의 과거사진 공개는 특정인의 개인정보나 과거 행적을 찾아 인터넷에 퍼뜨리는 ‘신상털기’의 대표적 사례. 공인은 물론 일반인에게도 이 같은 피해가 확산되자, 온라인상의 개인정보를 삭제할 수 있도록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SNS나 인터넷 웹페이지에 남긴 글과 사진을 일괄적으로 삭제해주는 온라인 서비스가 각광을 받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인터넷에 남긴 흔적을 사후에 대신 지우거나 관리해주는 미국의 '디지털 장의사' 서비스 '라이프인슈어드닷컴(www.lifeensured.com)', SNS 계정과 함께 정보를 없애주는 ‘웹2.0 자살기계’(suicidemachine.org)와 ‘세푸쿠’(seppukoo.com). ⓒ공식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인터넷에 남아있는 자신의 과거 흔적을 지워달라며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누리꾼 90여명이 구글 유럽지사를 상대로 청원을 했다. 미국에서는 세상을 떠난 사람이 인터넷에 남긴 흔적을 대신 지워주는 ‘디지털 장의사’가 등장했다. 해당 사이트에 가입한 회원이 사후 자신의 인터넷 계정을 어떻게 처리할지 유언 형태로 남기면, 사망신고가 접수되는 대로 생전 요청에 따라 인터넷에 남긴 흔적을 삭제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거대 인터넷서비스업체들은 개인정보를 보호하려는 사용자들과 달리 거꾸로 가고 있다.

지난 24일 구글은 자사가 운영하는 모든 서비스의 개인정보를 통합해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구글검색, 구글맵, 지메일, 구글플러스, 유튜브,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등 60여개 서비스에서 따로 수집해온 개인정보를 하나로 합치겠다는 것이다. 구글은 사용자가 관심을 가질만한 소비 제품의 유형을 파악하는 등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하지만, 개인정보 과다 노출로 인한 사생활 침해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유럽연합은 ‘잊혀질 권리’ 보장 법안 추진

 

▲ 24일 구글은 자사가 운영하는 60개 서비스에서 따로 수집해온 개인정보를 하나로 통합해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구글

최근 유럽연합(EU)은 인터넷에 올린 글과 사진 등 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사용자 개인이 갖고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를 보장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25일 개인정보 침해자에게 막대한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데이터보호법 개정안을 확정하면서, 이용자가 자신과 관련해 ‘합법적 근거 없이 획득된 정보’를 삭제하도록 서비스사업자에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명문화했다. 이 규정이 강제력을 갖게 되면 요청을 받은 서비스업체가 개인정보를 완전히 삭제해야 하지만,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정보기술 업체들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잊혀질 권리’의 법제화에 반대하는 측은 미국 수정헌법에 근거한 표현의 자유를 내세운다. 로널드 징크 마이크로소프트 유럽연합 최고운영책임자는 <월스트리트 저널>을 통해 “광범위한 인터넷에서 개인의 일부 정보만 지우는 게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의문”이라면서 “인터넷의 잊혀질 권리는 언론자유와 역사기록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의정부에 사는 김호정씨는 과거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올린 게시물의 삭제를 거부당한 경험을 떠올리며 “잊혀질 권리야말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말했다.    

 

▲ 유럽연합이 '잊혀질 권리'의 입법을 추진중이다. EU 정보보호법 개정안 내용을 정리한 표. ⓒ진희정

 
김씨는 7년 전 어떤 게시물 내용에 반박하는 댓글을 올렸다가 한 누리꾼과 설전이 벌어졌고, 상대는 아이디를 검색해 김씨가 인터넷에 올린 글마다 욕설과 비난 일색의 댓글을 달았다. 김씨는 당시 유학을 준비하면서 궁금했던 것들을 네이버 ‘지식인’ 서비스에 올릴 때 게시판에 신상정보를 남긴 게 걱정돼 관련 글들을 삭제요청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른 누리꾼들이 답변을 남긴 지식인 게시글은 삭제할 수 없다는 거예요. 제가 직접 답변자한테 사정을 말하고 동의를 구해도 어렵다고 했어요. 제가 올린 글이지만 누군가 답변을 달면, 그 글의 저작권은 더 이상 저한테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지만 결국 신상이 털리는 건 저고요. 그 이후로 모든 계정은 최대한 비공개로 설정하고, 인터넷 상에서는 개인 신상에 대해 아예 언급 안하려고 노력해요.”     

네이버는 여전히 답변이 등록된 질문 게시물을 질문자와 답변자의 공동 게시물로 보고, 답변이 없는 경우에만 삭제를 허용한다. 다만 이용자의 ‘잊혀질 권리’를 보장하는 임시방편으로, 질문자의 아이디를 비공개로 설정할 수 있게 했다.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는 이용자들은 통제권을 잃어버린 자신의 글과 정보들이 악용될 가능성을 우려하지만 관련 업계는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다.  

지금 쓰고 있는 웹페이지나 SNS의 글들이 앞으로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지 짐작할 수 없고, 온라인상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으며, 훗날 되살아날 때 ‘공개’가 아니라 ‘폭로’의 성격에 가까울지 모른다고 의식하는 순간 표현의 자유는 위축될 것이다. 그러면 각자에게 유리한 내용만 남을 것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일기장을 검사하는 선생님과 몰래 들여다 볼 부모님을 의식해서 칭찬받을 일만 잔뜩 적지 않았던가. 

망각의 미덕, 정보의 소멸시효가 필요하다

 

▲ 12월4일 ‘채널4’에서 방영한 영국 옴니버스 드라마 <블랙 미러> 1편은 트위터·페이스북 등 SNS가 지배하는 세상을 풍자하고 있다. 공주를 납치한 인질범이 총리에게 '생방송 텔레비전에 나와 돼지와 성교하라'고 협박하자 인터넷과 SNS 여론은 실시간으로 뒤바뀐다. ⓒ영국 ch4

세계 최초로 ‘과잉기억증후군’ 진단을 받은 미국 여성 질 프라이스는 14살 이후 벌어진 일상을 거의 완벽하게 기억한다. 12살이던 1978년 자신의 기억력이 남들보다 세밀하다는 것을 처음 자각했고, 전례를 찾을 수 없는 그녀만의 독특한 기억력을 설명하기 위해 지난 2000년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새 단어가 만들어졌다. 그녀는 자전소설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를 통해 텔레비전에 뜬 날짜 자막만 봐도 특정 날짜에 먹은 저녁식사까지 기억해내는, 과거와 현재 두 개의 시간을 동시에 사는 삶의 고단함을 호소했다. 어린 시절 받은 상처나 남편을 잃은 기억 등 불행했던 일들을 생생하게 떠올리며 살아야 하는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 과잉기억증후군을 앓고 있는 질 프라이어스의 자전 소설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와 빅터어 마이어 쇤베르거 교수의 <잊혀질 권리>. 두 책 모두 완전한 기억이 만들어내는 개인적이고도 사회적인 불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북하우스, 지식의 날개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의 불행은 지워지지 않는 기록들로 넘쳐나는 지금의 인터넷 환경과 비슷하다. 영국 옥스퍼드대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 교수 역시 지난해 발간한 저서 <잊혀질 권리 (Delete)>를 통해 망각의 미덕을 강조했다. 그는 적절한 망각이야 말로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은 건전한 의사결정을 가능케 한다고 지적했다. 완벽한 기억은 총체적 감시사회를 만들고, 이로 인해 개인의 자유에 기반한 프라이버시가 침해된다는 논리다.

쇤베르거 교수는 온라인에서의 정보인권 보장을 위해 데이터 삭제를 요구할 권리와 함께 디지털 정보를 처음 저장하는 사람이 정보의 소멸시효를 미리 설정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시간이 약이듯 망각이 자유로운 토론을 가능하게 하고 화해와 용서의 기회도 준다는 의미에서.

‘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일반화하고, 개념화한다. 덕분에 무엇보다 중요한,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다시 얻는다. (중략) 권력과 시간의 접점에서 영원한 기억은 공간적·시간적 원형감옥이라는 유령을 만들어내어, 모든 사람이 지속적으로 자기검열에 빠지도록 한다. 무엇보다도 포괄적인 디지털 메모리는 역사를 붕괴시키고 제때 행동할 수 있는 우리의 판단 능력을 손상시킨다.’

- 쇤베르거 <잊혀질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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