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태(세명대 미디어창작학과 교수/한국저작권위 표절위원회 위원)
요사이 지적재산권, 특히 저작권(copyright)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이를 침해한 사람들에 대한 제재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저작권법은 친고죄 성격이 있어서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명백하더라도 저작권자의 고소가 있어야 벌할 수 있기 때문에, 과거에도 표면화되지 않았을 뿐 많은 침해사례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에 괜찮았다는 생각에 설마하는 심정으로 슬그머니 저작권을 침해하는 사람들이 많아 걱정스럽습니다.

저작권은 문화산업 전반에 걸쳐 적용되는 광범위한 권리이지만, 여기서는 언론 분야로 한정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원래 언론인은 게이트키퍼이자 커뮤니케이터로서, 수용자들에게 다양한 정보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을 하다 보니 수많은 저작물을 참고하지 않을 수 없죠.그런데 현실을 보면 언론인들이 기사작성 등의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저작권에 신경을 쓰는 일은 드문 것 같습니다.

불행히도 자신의 원고를 담은 매체가 발행 또는 방송되고 나서, 누군가로부터 저작권을 침해당했다는 이의가 제기되었을 때, 뒤늦게 관련 조문을 찾아보느라 허둥거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법률상의 문구만 보아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하고 대처해야 하는지 해답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으로 저작권법에 관해 해설해 놓은 전문서적을 구하게 되는데, 아무리 이론적으로 뛰어난 연구서라 하더라도 개개인이 직면한 현실적 문제들을 해결해 주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연구서들의 내용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법규와 실무 사이의 적용 문제가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특히 판단이 곤란한 문제가 저작권 침해사건이 생겼을 때 그 부당성을 판별하는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흔히 생각하는 방법이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조정제도를 이용하거나 법원을 통해 판결을 받아내는 것인데, 그럴 경우에도 가해자 피해자 모두에게 저작권 지식을 바탕으로 한 판단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전통사회에서는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는 속설이 통했고 글 도둑 또한 도둑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죠. 설혹 자기 글이 도둑맞은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체면상 드러내 놓고 싸우는 것을 피하는 분위기라 법정까지 가서 흑백을 가리려는 적극성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또 재판을 하게 되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데다 명예와 직결되는 지적 소산인 저작물을 금전적으로 파악하고 싶지 않다는 의식도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저작권 관련분쟁이 적극적, 법률적 해결이 아닌 소극적 항의나 합의에 의해 해결되는 경향이 두드러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저작권을 침해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기에 엄연한 범법행위를 저지르는 것일까요? 저작권 침해자들의 유형에 대해 일본의 저명한 출판인 미마사카 다로우(美作太郞)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저작권 또는 저작권법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죄가 된다는 생각이 없이 침해행위를 저지르는 경우입니다. 지식인 혹은 문화인을 자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드문 경우라고 하겠죠.

둘째, 저작권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자기가 일부 이용하는 것은 침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예컨대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자기 저작물에 쓸 때 인용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무런 표시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저작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인용의 조건을 모르고 있으며, 그러한 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저작권 침해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학창시절에 리포트를 작성하면서 출처표기 없이 이 책 저 책 베끼기 바빴던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합니다.

셋째, 저작권 또는 저작권법에 관해서 일단 이해의 폭이 넓고, 침해란 어떤 것인지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버젓이 침해행위를 저지르는 경우입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아무도 자기의 침해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만일 침해사실이 드러나더라도 당당히 싸운다는 뻔뻔한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도용하면서 어구와 표현에 약간 손질을 해놓고,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례가 바로 이런 경우죠. 이른바 지식인 또는 문화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나타나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언론인은 어떨까요?

저작자나 언론실무자 모두 저작권에 관한 이해와 함께 법규에 관한 지식, 그리고 그것을 현실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특히 추상적이고 애매한 규범들을 급변하는 현실 속에 합리적으로 적용하려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따라서 언론인들을 상대로 지속적인 홍보와 실무사례 중심의 교육이 절실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입니다. 요즘은 시민기자, 블로거 등 사실상의 언론활동을 하는 층이 넓어지고 있으니 꼭 기성 언론인만 염두할 필요는 없겠죠? 앞으로 이 코너를 통해 언론인이 꼭 알아야 할 저작권의 핵심 내용들을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할 계획이니,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김기태/세명대 미디어창작학과 교수, 한국저작권위 표절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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