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배우의 슬픈 삶을 웃음에 버무린 ‘장진의 리턴 투 햄릿’

영화 <여배우들>이 스크린 뒤 여배우들의 삶을 ‘리얼’로 보여줬다면, 연극배우의 리얼은 <리턴 투 햄릿>이 맡았다. 장진 감독이 극본과 연출을 맡은 이 작품은 연극 대중화를 목표로 지난 2004년 시작된 ‘연극열전’의 4번째 시리즈 개막작으로 지난해 12월 9일 첫 무대를 열었다. 

▲ 장진의 <리턴 투 햄릿> 공연 포스터. ⓒ 인터파크 플레이디비

연극 ‘햄릿’의 마지막 공연을 앞둔 분장실. 여기서 배우들의 서열은 단순하다. 스타와 스타가 아닌 자. ‘서태지와 아이들’ 식으로 이름을 붙인다면 ‘스타와 아이들’이라고 할까. TV 스타가 되어 주인공 역을 꿰찬 왕년의 방자 ‘민’(서주환 분)은 예정보다 늦게 도착하고, ‘스타가 아닌’ 배우들과 사사건건 부딪친다.

장진 감독은 서글프면서도 코믹하게 이런 현실을 풀어낸다. ‘순수’와 ‘예술’이라는 말로 포장되는 연극은 겉보기에 그럴 듯하지만 거기 목숨 걸고 사는 사람들의 삶은 쓰디쓰다. 형식적으론 ‘오디션’이라는 선발절차를 갖추지만 주연배우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바닥에선 베테랑 배우지만 대중이 알아주는 스타가 아니기에 ‘진우’(김원해 분)가 살아가는 일상은 처량하다. 아픈 아내를 걱정하면서도 무대를 지켜야 하는 ‘지욱’(장현석 분)의 삶은 서럽다.

▲ 동숭아트센터 아트홀에서 열린 연극 <리턴 투 햄릿>, 배우들이 열연을 하고 있다. ⓒ 인터파크 플레이디비

알고 보면 배우는 ‘끼’와 재능을 다투는 일이 아니며,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에 좌우되는 삶이라는 것을 이들은 보여준다. 진우 역의 배우 김원해가 읊조리는 대사는 이들의 한숨, 혹은 신세타령으로 들린다.

“된장(분장) 바르고, 술 조금, 절망 조금. 된장 바르고, 술 조금, 절망 조금....... ”

장 감독은 연극쟁이들의 이런 현실을 보여주며 언론의 문제도 은근슬쩍 꼬집는다. 공연 자체보다 ‘스타 배우’에만 주목하고, 날카로운 비평 대신 스타에 대한 찬사로 가득한 기사들. 스타가 아닌 배우들은 극중 대사를 통해 ‘우린 자본획득에 이용되는 소품일 뿐’이라고 자조한다. 

그렇다고 공연 분위기가 무겁고 어두운 것은 아니다. 제목에 연출자 장진의 이름을 내세운 데서 눈치 챌 수 있듯, 장 감독의 독특한 색깔이 연극에 그대로 묻어난다. “죽느냐 사느냐 고것이 문제구마이~.”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풀어낸 햄릿은 마당극 형식을 빌렸다. 진지할 줄 알았던 햄릿이 구수한 사투리로 대사를 칠 때, 관객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 <리턴 투 햄릿> 출연 배우들의 단체컷. ⓒ 인터파크 플레이디비

장진의 햄릿은 원작을 새롭게 해석했다기보다 ‘창조적’으로 풀어냈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특히 레어티즈의 목을 겨누었던 햄릿의 칼을 의인화해서 진술을 요구하는 장면은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커다란 칼을 쓴 분장으로 배우 강유나가 등장하자 해설을 맡은 ‘도식’(조복래 분)은 “햄릿이 언제 레어티즈를 찔렀냐”고 집요하게 묻는다. 그러나 칼의 대답은 단 하나. “모릅니다. 기억이 안 납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이다.

영화에서 ‘장진 식 코미디’라는 브랜드를 확보한 장 감독은 연극에서도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한바탕 웃고 나면 진한 여운이 감도는 이야기 한 판. 장진의 매력을 햄릿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배우들의 넉살에 한껏 웃다 자리에서 일어설 때쯤, 귓전엔 장 감독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비극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삶이 때론 비극이라구!”

▶ 장진의 리턴 투 햄릿: 오는 4월 8일까지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화수목금 8시/ 토일 3시, 6시 공연. 티켓가격 3만~5만원. 매주 화요일은 공연종료 후 장진 감독과 수다를 떠는 있는 이벤트가 있다.(구정연휴는 이벤트 제외) 공연문의 02-766-6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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