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 정희진 박사
주제 ① 탈식민주의와 한국의 남성성

여성들의 차이가 젠더 문제라고?

여성학과 평화학 강사로 유명한 정희진 박사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투명한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가 사회현상을 분석할 때 안경을 쓰고 볼 수밖에 없어 객관적 현실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성 문제, 서울과 지방 문제 등 우리 주변에 산재한 많은 문제들은 이러한 렌즈의 존재 여부를 알지 못해 생기는 갈등이다.

▲ 정희진 박사와 함께한 세명대저널리즘스쿨 특강. ⓒ 이슬기

사람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오류 중 하나로 정 박사는 서울과 지방 사람의 인식 차이를 든다. 가령, 서울 사람에게 대전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지만 제주도 사람이 느끼는 거리는 전혀 다르다. 제주도와 대전 사이 직항로도 없는 터에, 대전이 가깝다고 단정짓는 것은 서울 중심적인 사고방식이고 인식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성과 남성 간 차이는 계급 차이라고 인식하면서, 왜 여성들 간 차이는 젠더 문제라고 하는가? 그것은 성 문제를 여성에 국한된 문제로 시야를 좁히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현상에 대한 잘못된 진단들은 결국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렌즈에 대한 성찰 부족에서 기인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나는 이분법을 경멸한다, 왜냐하면 내가 룰을 만들기 때문이다’라는 스티브 잡스의 명언이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는 철학에 기반을 둔 것처럼, 인식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시각을 포용할 수 있는 렌즈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쁜 남자>의 한기와 <빈집>의 태석

 

▲ 영화 <나쁜 남자> 와 <빈집> 포스터.

한국의 페미니즘도 렌즈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는 구조적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는 우리 사회 성 문제에 대한 본질적 이해는 탈식민지주의 한국 남성성의 독특한 특징으로 이해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기덕 영화 <나쁜 남자>의 주인공 한기(조재현)와 <빈집>의 태석(재희)은 비슷하지만 다르다. 둘 다 사회적으로 가진 게 없는 남자라는 점에서는 같다. 반면 한기는 자신을 모욕한 여주인공을 사창가로 끌고 가는 등 여자를 억누르지만, 태석은 매일 맞고 사는 아내(이승연)와 연대해 폭력 남편에게 대항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정 박사는 이처럼 약한 남성이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나쁜 남자>의 한기처럼 약자를 억압하면서 자신을 강자와 동일시하는 것, 그리고 <빈집>의 태석처럼 약자와 오히려 연대해서 강자에 대항하는 것으로 말이다. 그는 한국의 남성성은 '한기'를 닮았다고 말했다.

외적 침입 때 여성을 지켜주긴커녕 팔아버린 한국 남성

"한국 남성들은 중국이나 미국 등 강대국에게 억압받으면서, 자신은 언제나 피해자라고 생각해왔죠. 그러면서 여성이나 장애인 등 약자와 연대하기보다 이들을 억압하면서 강대국과 동일시하는 쪽을 택했어요. 상대적으로 약자라 느끼는 동남아 사람들을 대하는 한국인의 태도에서도 이런 남성성을 찾아볼 수 있죠.”

그는 이상의 <날개>와 김정현의 <아버지> 등 우리나라 소설을 설명하며 또 다른 한국 남성성의 특징을 설명했다. 이상의 <날개>는 아내가 일본 남성에게 몸을 팔아 번 돈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자책하고 괴로워하는 주인공의 심리가 잘 드러난 소설이다.

공녀에서부터 정신대까지 역사가 보여주듯, 한국 남성은 외적이 침입했을 때 여성을 지키기보다는 여성을 파는 쪽을 택했다. '엄마와 누나를 잘 지키라'고 아들에게 당부한 뒤 자신은 총을 들고 도적과 맞섰던 서부영화의 아버지와는 대조적이었다. 정 박사는 이런 한국의 남성성을 이해하면 대외관계나 한국의 사회문제를 풀어나가기 쉽다고 말했다.

성매매는 성 말고는 팔 게 없는 여성의 노동

"성매매를 젠더 문제로 봐야 할까요? 아니면 계급 문제라고 생각해요?"

▲ 정희진 박사가 쓴 <남성성과 젠더>.

대답하는 사람이 없자 그는 “부자 남성과 가난한 남성 간 문제는 계급 문제로 보면서 여성은 젠더 문제로 보는지 알 수 없다”고 운을 뗐다. 성매매는 성 말고는 자원이 없는 여성들이 하는 노동이라며, 이는 가진 게 있는 여성과 그렇지 못한 여성 사이에서 오는 '계급'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남녀고용평등법이 시행됐다고 여성의 지위가 올라간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남녀고용평등법은 모집, 채용, 임금, 승진 등에서 여성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영선, 나경원 등 정계에 진출한 여성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파출부 일을 하는 등 대다수 여성들이 5인 이하 사업장의 비공식 업체에서 근무한다. 그는 남녀고용평등법의 수혜 대상은 극히 제한적이라면서 역설적으로 여성 간 지위 격차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 간 계급 차이로 문제를 풀어가려는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사회교양특강>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개설되고 서울 강의실에서 일반에 공개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인문교양특강I>은 강재호, 이택광, 심보선, 이현우, 정희진, 오동진, 고미숙 선생님이 맡는데,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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