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 가상의 선수 박만수 연기한 마동석, 그가 진짜 배우인 이유

작년 한 해 그만큼 바빴던 배우가 몇이나 또 있었을까. 내로라하는 여러 '명품조연' 배우들이 고군분투 했던 2011 극장가에서 마동석이라는 배우 역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영화 <퀵>으로 한 여름을 더욱 뜨겁게 보냈던 그는 단편 영화 <무대는 나의 것>을 통해 새로운 면모를 살짝 보이기도 했고, 곽경택 감독의 <통증>에선 당당히 주연의 자리에 서 보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출연작에서의 모습도 훌륭했지만 <퍼펙트게임>은 그에겐 또 다른 분기점이 될 듯하다. '신 스틸러' 면모가 강했던 마동석이 이젠 영화의 한 축을 이끌어 갈 수 있는 배우라는 점을 분명히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해태 타이거즈 가상의 타자 박만수로 분한 마동석은 이 영화가 스포츠 영화에서 드라마가 농밀하게 담긴 영화로 자리 잡는 데 분명 혁혁한 공을 세웠다.
 

▲ 영화 <퍼펙트게임>에서 해태 타이거즈의 백업포수 박만수(동점홈런을 날리는 가상인물) 역을 맡은 배우 마동석. ⓒ 이정민

"야구선수 그것도 홈런타자가 꿈이었어요. 수비는 말고 홈런만 죽자 쳐내는 지명타자요. 하하! 어렸을 때 야구도 좀 했었죠. 이번 영화를 통해 그 꿈을 이룬 겁니다. 그런데 프로의 모습은 분명 다르더라고요. 양 어깨와 팔이 축 쳐질 만큼 스윙 연습을 했어요. 야구를 몸에 붙게 하자는 취지였지만 정작 문제는 스윙이 아니라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의 동작들이었죠. 야구선수들은 늘 하는 거지만 연기하는 사람 입장에선 가장 어색한 게 바로 타석에 들어설 때 선수마다 다른 특유의 습관을 표현하는 거였죠."
 
연봉 300만원을 받는 퇴물 야구 선수로, 그리고 단칸방이 달린 치킨 집에서 하루 벌어 입에 풀칠하는 어려운 살림을 이끌어 가야하는 가장으로서의 박만수는 늘 자신 없고 흔들리는 눈빛을 지닌 인물이었다. 하지만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 달라져야했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기회를 얻은 박만수를 연기하기 위해 마동석은 박만수 특유의 습관을 만드는 것부터 고민한 것이었다.
 
그는 배트를 자신 있게 올리면서 다리 한 쪽을 여는 오픈 스탠스로 '무언가 해낼 것 같은 자신감'을 표현했다. 여기에 박만수 특유의 주눅 든 느낌을 위해 심판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고 양간 웅크리는 자세를 더했다. 이 모습에 박희곤 감독 역시 흡족해했다는 후문은 덤이었다.
 
<퍼펙트게임>에서의 박만수는 해태 타이거즈 선수라지만 일종의 가공인물이다. 다른 배우들이 나름 현존했던 실제 선수들을 맡은 반면 박만수라는 인물은 영화의 드라마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였던 것이다. 이에 대한 어려움을 물으니 "시나리오에 다 나와 있으니 분석만 하면 되죠"라며 대수롭지 않게 답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했다"면서 나름의 생각을 전하기도 했다.
 
"형편이 어렵고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등 상황이 안 좋긴 하지만 열정은 가득한 친구였어요. 후배인 선동렬을 부러워하면서도 야구로 보여주겠다는 생각에 꽉 차있는 친구라고 생각했죠. 저와 굉장히 많은 부분이 비슷한 친구죠. 특화된 상황이 아닌 일반적인 감성이라 더욱 조심스럽게 공감을 줘야 했어요. 내가 납득을 해야 관객을 설득할 수 있으니 최대한 상황에 몰입하려 했죠."

"영화 찍고 후회하면 무슨 소용?"..."이 악물고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간 알려진 대로 마동석은 격투기 선수 마크콜먼과 케빈 랜들맨의 트레이너 출신에 연예인 트레이너 경험이 있는 배우였다. 고등학교 시절 미국으로 건너 가 트레이너로 활동하던 그가 한국에 다시 돌아와 배우의 꿈을 키우기 시작한 것은 2002년 무렵이었다. 같은 연배의 동료들에 비해 턱없이 느린 출발이었지만 말 그대로 우직하게 걸어갔다. 강한 인상에 특유의 성실함으로 좋은 작품을 만나왔고 매번 그는 말 그대로 치열하게 임했다.
 

▲ 마동석이 영화에서 아들에게 야구선수로서 당당하고자 했던 가장의 슬픈 모습을 표현해 보이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 이정민

"배우가 영화를 찍고 후반 녹음을 하고 이후 홍보일정에 참여를 하면 다들 손을 떠난 거라면서 다음 작품을 준비하잖아요. 주연을 맡은 배우들은 물론이겠지만 다른 배역의 배우들도 어느 정도는 영화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영화를 다 끝내놓고 후회하면 늦는 거니까 찍을 때 안 놓치려고 하는 자세가 중요하죠."
 
영화 <비스티 보이즈>(2008) 이후 그를 찾는 작품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와 김상만 감독의 <심야의 FM>을 마친 이후 주연급 작품들이 많이 들어왔고 실제 제의를 받고 고민하던 작품도 있었다. 만약 그가 주연 자체에 욕심이 있는 배우였다면 <퍼펙트게임>이나 차기작인 <범죄와의 전쟁>에선 못 만났을 게다. 비슷한 시기에 이들 작품이 한꺼번에 출연 제의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역할의 비중보단 흥미가 가는 작품을 하는 거예요"라고 덧붙이던 그는 진짜배기 배우였다. 인터뷰 중 한때 악역 전문 배우로 활약하지 않았는가라는 물음에 마동석은 "아직 극악무도한 연기는 안 해봤다"면서 그는 여전히 여러 배역에 열려 있는 자세를 내비췄다.
  
"좋은 작품 오래 오래 하며,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배우 되겠다"
 

▲ 마동석이 2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영화에서 홈런을 치고 보여줬던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 이정민

그간 해왔던 작품은 다 기억난다던 얘기 도중, 기자에게 '대출 전화'가 왔다. 이 광경을 목격한 마동석은 "대출 하면 또 <통증> 얘기를 안 할 수 없는데"라며 너스레를 보이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향후의 목표를 물었다. "좋은 작품을 오래오래 하는 게 목표다"라는 짤막한 대답에 많은 여운이 담겨있었다.
 
굴곡 없는 인생 없다지만 그에겐 드라마 <태양을 삼켜라> 촬영 중 척추를 크게 다쳐 연기를 못 할 뻔했던 아찔한 경험이 있었다. 한때 배우로서 생활을 연명하기도 벅찼던 때가 있었다. <퍼펙트게임>에서 만수의 가정환경이기도 했던 '치킨집' 역시 그의 지난 생활을 투영할만한 소재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달랐다.
 
"어려울 때 생각이 많이 났죠. 좋은 작품을 오래 한다는 목표에 덧붙이자면 영화를 하다보면 많은 사람을 알게 되잖아요. 서로 도움을 받거나 끌어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앞으론 제가 조금 더 좋은 연기 보여주면서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배우가 되고 싶은 꿈이 큽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당거래>로 터닝 포인트가 됐고 <통증> 역시 애착이 많이 갔지만, <퍼펙트게임>이 가장 큰 터닝 포인트 될 것 같아요. 감동을 줄 수 있는 여운이 있는 모습이잖아요."
 
올해 역시 그는 바쁠 예정이다. 2012년 그는 황정민, 엄정화 주연의 <댄싱퀸> 엄태웅, 정려원의 <네버엔딩 스토리> 최민식, 하정우의 <범죄와의 전쟁>에도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작년에 이어 쭉 달려 나가는 마동석을 기대해볼만하다.


* 이 글은 오마이스타 이정민 기자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재학중인 이선필 기자가 오마이스타에 보도한 기사를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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