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절대 안 한다던 법정영화, 그가 '석궁 교수' 택한 이유는?

배우 안성기가 변했다. 아니 변해야 했다. 그는 "내가 맡은 인물이 주인공이라고 미화되거나 매력 있게 되거나 하면 영화가 주제와는 멀어지겠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촬영에 들어가기 한 달 전부터 법정 용어 가득한 대사를 익히기 위해 차를 타면서도 대본을 손에 놓지 않았다고도 했다. 올해로 데뷔 55년째를 맞은 안성기는 여전히 진화 중이었다.
 
이러한 변신이 참 신선하다. 그간 대부분의 작품에서 나타났던 특유의 부드러움은 사라지고 건조한 외곬수의 면모가 드러났다. 2007년 일어난 '석궁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사건 당사자인 석궁 교수 역을 맡은 배우, 안성기를 10일 만났다.

 

▲ 영화 <부러진 화살>의 김경호 교수 역을 맡은 배우 안성기. ⓒ 이정민

 
절대 안 한다고 했던 법정영화, 왜 또...
 
"이미 한 차례 법정 영화를 찍었던 경험이 있어요. 그때 진짜 혼쭐이 났죠. 변호사 역할이었는데 그 이후로 다시는 법정 영화 안 한다고 말하곤 했어요. 그런데 이번엔 피고 역을 맡았네요. 그냥 피고가 아니라 웬만한 변호사를 제켜 놓는 피고였어요. 옛날 생각도 나고 마음 단단히 먹었죠."
 
1998년 강우석 감독의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이라는 영화를 찍은 뒤 법정 영화를 쳐다보지도 않던 안성기였다. 생소한 용어의 난무 등 과거에 겪었던 여러 어려움을 뒤로 하면서 그가 <부러진 화살>로 다시금 법정으로 돌아온 이유, 게다가 허구가 아닌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재조명하는 영화로 돌아온 이유는 결국 시나리오의 힘이었다. 

 

▲ 안성기씨가 1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저예산 영화라는 점은 그동안도 계속 해왔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면서 안성기는 "시나리오 자체가 재미있었다"고 결정 배경을 전했다. 여기에 <남부군>(1990) <하얀전쟁>(1992)으로 이미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정지영 감독에 대한 신뢰도 한 몫 했다. 소재가 실화인데다 사법부와 대학교육당국의 오만함을 지적한다는 설정에 부담을 가질 법도 했지만, 안성기의 경우는 달랐다고 한다.
 
"그 사건을 제대로 밝혀야겠다고 시작한 게 아니라, 시나리오 자체가 너무 완성도 있었고, 영화로 만들 가치 있다 생각해서 바로 하자고 한 거죠. 작업을 하면서도 재미있었던 건 아이러니함이었어요. 극 중 교수가 법에게 그렇게 당하면서도 법은 아름답고 수학과도 같다는 지론을 펼치잖아요. 스스로 법을 공부해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하는 모습에 흥미를 느꼈어요."

<부러진 화살> 본 아내 반응은?
 
지난해 열린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에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된 <부러진 화살>은 상영 직후 몇 분 동안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당시 순간을 안성기는 "부산 영화제에 십 몇 년 째 다니고 있는데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면서 "혹시 사람을 동원한 게 아닐까 했을 정도로 놀랐다"라고 회상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한 충격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아내의 말.  
 
"제 와이프가 부산에서 영화를 보고 나선, 제 영화 중 손에 꼽을 수 있는 영화였다고 하더라고요. 내심 기분이 흐뭇하면서도 한편으론 '아니 예전에는 내가 그렇게 못했나?'하는 생각도 들었다니까요. 하하!"

 

▲ "누구든 신인의 때가 지나면 느슨해질 순간이 옵니다. 그때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해요. 인기에 흔들림 없이 작업에 집중하고 행복해 하는 사람은 주위에서 보기에도 좋아 보여요." ⓒ 이정민

1957년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 이후 안성기는 말 그대로 외길 인생을 걸었다. 한 눈 팔지 않고 배우의 삶을 살아온 그는 어느덧 8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작품 수만 중요한 게 아니다. 후배들에게 존경받고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명배우이자 인간적인 면모가 더욱 빛나는 배우이니 말이다.
 
"영화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게 심적으로는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 같아요. 정년이 없잖아요. 사업하는 친구들은 이미 다 정년이 지나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이들도 있죠. 체력이 좋지 않으면 연기 제대로 할 수 없으니, 꾸준한 운동을 해나가는 것도 도움이 되고 있어요. 나이가 들어도 노쇠하단 느낌이 들면 안 됩니다. 노쇠한 역할을 맡아도 연기처럼 해야지, 그걸 진짜로 해버리면 힘이 없어 보이죠. 하하! 힘은 늘 비축하고 있어요. 달리기와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고 있습니다."

"영화 흥행이요? 지금도, 아무도 몰라요"
 
인터뷰 도중 그에게 전화가 왔다. 영화 제작자 이춘연 대표의 전화였다. 모 사이트에서 영화 <부러진 화살>과 안성기가 출연하는 또 다른 영화 <페이스 메이커>가 네티즌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영화 1, 2위에 뽑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995년에 <영원한 제국>이라고 그 영화가 설문에서 올해 가장 보고 싶은 영화로 뽑혔는데 꼴찌를 했어요. 보고 싶은 영화였지, 보지는 않았던 영화였죠. 김범수의 '보고싶다'가 갑자기 생각나는데요? 하하하! 50여년을 연기했지만 흥행은 지금도 몰라요. 아무도 모르는 거죠. 그거 맞추면 CJ든 롯데든 어디서든 절 데려가려 하겠죠."
 

 

▲ 1957년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 이후 안성기는 말 그대로 외길 인생을 걸었다. 한 눈 팔지 않고 배우의 삶을 살아온 그는 어느덧 8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 이정민

 

안성기에게 후배들을 비롯해 영화인들 모두가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배우로 항상 지목 받는 것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최근 <페이스 메이커>로 만난 김명민 역시 "안성기 선배가 현장에 있는 것만으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고 좋았다"고 전한 바 있다. 정지영 감독 역시 "안성기씨가 있었기에 어려운 여건에서도 스태프들과 다른 배우들이 몸 사리지 않고 즐겁게 작업했다"고 말했었다.

"일단 같이 섞이는 거죠. 물 스미듯이 편안함 주는 게 중요해요. 나이 들어서 가만히 구석에 앉아 있으면 분위기는 무거워집니다. 후배들도 눈치를 보고요. 스태프들과 후배 틈에 스며들어 선배라는 부담을 주지 않고 재미나게 지내려고 해요. 현장에서도 뭐 재미있는 게 없을까 생각을 하죠. 작년에 하지원씨, 오지호씨와도 했고 올해 김명민씨를 만났지만, 아직도 함께 작업해보지 못한 후배들이 너무 많아요. 더 많은 후배와 작업 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영화를 변함 없이 할 수 있었던 건 영화 찍는 순간을 위해 모든 걸 아낌없이 준비했기 때문이라고 봐요. 제 목소리가 좋다 하지만 처음엔 가늘고 높았어요. '목소리가 노랗다'는 말을 많이 들었죠. 계속 연습하면서 보다 낮게 굵게 만든 거예요. 누구든 신인의 때가 지나면 느슨해질 순간이 옵니다. 그때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해요. 인기에 흔들림 없이 작업에 집중하고 행복해 하는 사람은 주위에서 보기에도 좋아 보여요. 프로같이 보여서 같이 일하고 싶어지죠. 일의 핵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 이 글은 오마이스타 이정민 기자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재학중인 이선필 기자가 오마이스타에 보도한 기사를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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