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 오동진 영화평론가
주제: 한국영화의 현주소와 비평의 태도

"영화는 아주 이상한 매체예요. 평균 2시간짜리 영화 한편이 사람을 바꿉니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놀랍고 충격적인 것이 바로 이런 부분이죠.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대중과 오랫동안 같이 갈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도가니>같은 영화를 계속 찍어야 하는가? 아니면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를 따라가는 영화를 찍어야 하는가?"

영화가 지닌 힘을 믿는다면, 그리고 현재 한국영화가 위기에 직면했다는 말에 동의한다면 오동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는 27살 때부터 3년간 3800여 작품을 봤다고 한다. 그 편력을 영화 전문기자이자 평론가의 밑천으로 삼았던 그였다. 한국 영화판을 꾀고 있는 그가 한국영화계를 위기로 진단했다.

‘종합병동’ 한국영화, 무엇부터 손 봐야 하나

위기를 직시해야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법. 오 위원장은 영화와 관련한 법제적 환경과 함께 담당자들의 태도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또 영화진흥위원회 같은 기구의 공정한 예산관리와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한 미래지향적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영화진흥위원회 같은 데가 좀 더 공격적으로 뭔가를 해야 되는 시기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원회가 국가 예산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확보해야 하고, 그 예산을 시혜적이 아니라 공정하고도 효율적인 태도로 영화 쪽에 재분배해줘야 해요. 누구를 이유 없이 소외시켜서도 안 되겠죠."

▲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들이 오 위원장의 강연을 귀담아 듣고 있다. ⓒ 양호근

한국은 대략 2200개 스크린을 갖고 있다. 오 위원장은 그 이상은 공급과잉이라면서 현재 수준 이상 시장을 확보하려면 해외에서 뛰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산업적 측면에서 문제를 진단한 것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문화제국주의'다. 2006년 불거졌던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를 떠올려 보자. 할리우드 영화에 대해 우리 역시 문화 자국보호 논리를 내세웠다. 오 위원장은 문화적 주권을 지키면서도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코즈모폴리터니즘(세계동포주의)을 회복할 때라고 말했다.

"미디어 구조를 개편해야 해요. 버릴 건 버려야 됩니다. 영화는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망할 수밖에 없어요. 극장에서 50%를 가져가고, 배급사에서 나누고, 또 이렇게 저렇게 나누다 보면, 손해 보는 장사가 되는 거죠. 물론 부가산업을 통해 멀티유징(multi-using: 다중사용)을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DVD, VHS, 방송, 캐릭터, 음반, 음원 등 부가 판권들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해외시장 개척과 함께 오 위원장은 VOD(video on demand: 통신망 연결을 통해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영상을 원하는 시간에 제공해주는 맞춤영상정보 서비스) 시장 개발을 강조했다. 현재 대중과 가장 밀접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향후 가장 커질 시장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다. 없어졌다가도 우후죽순으로 뻗어가는 불법 다운로드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VOD시장의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오 위원장은 현재 1200억 정도의 VOD시장을 4000억 정도로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그는 상영관과 부가판권의 매출 비율 역시 현재 8.5:1.5에서 6:4정도가 되게 시장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영화선진국들의 매출 비율이다.

상영관 매출이 비대한 상황은 영화제작자들로 하여금 극장 흥행에 ‘올인’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런 구조는 결국 극장에 걸 만한 기획영화나 상업영화만 대우받고 예술영화나 저예산영화는 상대적으로 밀려나는 악순환을 만든다. 오 위원장의 방안은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시장구조를 보면 상업영화보다 비상업영화에 대한 지원이 더 많이 이뤄져야 합니다. 장르영화나 상업영화는 이야기가 크게 달라지지 않아요. 캐릭터나 배우만 바뀔 뿐이죠. 새로운 영화가 나오기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산업적•사회적으로 충격을 줄 수 있는 힘은 저예산이나 예술영화에서 나옵니다. 미국의 유명한 저예산영화  감독인 짐 자무시를 보세요. 굉장히 저예산인데 산업영화의 규칙을 깨뜨리는 작품들이 많아요. 재미있는 사실은 그런 영화가 내포한 의미들이 사람들을 바꾸고 미국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거죠. 이렇게 서서히 바꿔나갈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영화는 사회와 호흡하는 창으로 생각해야 해요. 다양성과 열린 소통으로 나아가야죠."

영화기자는 폭넓게 그물을 던져야 하는 어부

영화는 물론 고유한 작품, 그 존재만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힘이 있지만 영화 저널리스트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영화도 그 파급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오 위원장이 영화 기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곳이 이 지점이다.

"저널리스트는 영화가 갖고 있는 의미를 대중에게 전달해주는 파이프라인이라 정의할 수도 있어요. 의미 있는 영화를 발견하는 시선이 매우 중요하죠. 영화 한 편을 어떻게 해석하는가는 저널리스트에게 달려 있는데, 폭넓은 지식과 인식이 있어야 중요한 맥락을 짚을 수 있습니다. 역사적, 사회적, 국제적 관계를 아울러 맥락을 잡으려면 신문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세계 곳곳의 문제들을 깊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 대중이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이해할 수는 없다. 오 위원장은 이때 중요한 안내자 역할을 해야 하는 이가 바로 저널리스트라고 했다. ⓒ 양호근

오 위원장은 기자가 대중을 가르치거나 교화하려는 태도를 가져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대중이 자각할 수 있게 그물망을 던지고 대중 스스로 고기를 낚을 수 있게만 해주는 게 기자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영화기자는 어부인 셈이었다. 어디에 물고기가 많은지 기자가 알아야 좋은 장소에 그물을 던질 수 있다. 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걸쳐 폭넓은 지식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많이 알아야 그만큼 볼 수 있는 것도 많기 때문이다.

"기사를 쓰는 것은 기능적인 일입니다. 이 기능은 빨리 배우느냐 늦게 배우느냐의 문제지 누구나 다 배울 수 있는 부분이죠. 속도 차이는 있겠지만 기능성은 언젠가 다 똑같아진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기사를 써낸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는 당장 기사나 글을 빨리 쓰고 잘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만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핵심을 들여다보는 통찰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이것은 곧 풍부한 에피소드와 연결된다. 이 풍부함은 기자의 기능성이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영화가 전하는 사회적 메시지 포착이 핵심

"모든 일을 직접 경험할 수는 없죠. 이런 점에서 영화는 무엇보다 훌륭한 대체 수단이 됩니다. 때로는 어떤 언론보다 영화가 대중에게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죠. 무라카미 류가 레닌의 '혁명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을 패러디해 '혁명은 상상력에서 나온다'라는 말을 남긴 것도 같은 맥락일 겁니다. 영화의 상상력이 한 개인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영화가 가진 놀랍고도 충격적인 힘이죠."

때때로 영화인들은 영화의 힘을 알기에 작품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기도 한다. '메카시즘의 공포'에 반기를 들었던 조지 클루니의 <굿나잇 앤 굿럭>이나 '문화 콘텐츠 사전심의제에' 불만을 품은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이 대표적인 예다. 오 위원장은 영화의 폭력과 선정성이 바로 사회적 억압과 탄압에 대항하는 영화인들의 무기라고 말했다.

단지 해당 작품을 영화로만 받아들이고 이해했다면 앞서 언급한 메시지들은 절대 보이지 않는다. 그 영화가 나온 시기의 정치적 환경과 국가 시스템을 잘 이해한 기자들이 있었기에 위와 같은 해석이 가능했던 것이다. 대중이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이해할 수는 없다. 오 위원장은 이때 중요한 안내자 역할을 해야 하는 이가 바로 저널리스트라고 했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사회교양특강>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개설되고 서울 강의실에서 일반에 공개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인문교양특강I>은 강재호, 이택광, 심보선, 이현우, 정희진, 오동진, 고미숙 선생님이 맡는데,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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