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마다 지원사업 남발… 중복에 탁상공론도

"한국어 교재로 수업을 하다 보면 외국인 학생들뿐 아니라 우리 선생들도 투덜댈 때가 많아요. 한국어를 잘해도 쓰기 어려운 연습문제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의 나라와 한국의 종교적 차이에 대해 쓰시오'라는 문제가 있는데 한국인도 쓰기 어려울 겁니다. 교재에 오자는 또 왜 그리 많은지……"

여성가족부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김경진(34)씨는 한국어 교재의 문제점부터 지적했다. 사회통합프로그램 운영기관인 경기글로벌센터 송인선 대표는 "정부에서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불만을 물어본 적이 없고, 건의할 만한 곳도 없다"며 "각 부처에서 한국어 교재 개발과 보급에 쓰는 돈만 매년 10억이 넘는데 한 부처에서라도 제대로 교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어 교재 문제는 최근 쏟아지는 다문화정책의 수많은 문제들 중 하나일 뿐"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 국내 체류 외국인 현황(꺾은선그래프)과 다문화 가족 현황(막대그래프). ⓒ 서동일

지역별수업과 순회수업이 차이라고?

한국은 다문화 사회가 된 지 오래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이 120만 명을 넘었고, 다문화가족도 25만 가구를 넘어섰다. 그에 따라 정부도 다문화가족 지원사업들을 쏟아내고 있다. 지원되는 예산만 보더라도 2007년 103억원에서 올해 940억원으로 폭증했다. 한국 사회와 외국인의 사회적 통합을 돕고, 원활한 정착을 지원한다는 목적이다. 하지만 중복사업이 많아 예산 낭비가 심각하고, 진행중인 사업이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불만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 자료와 각 부처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서를 분석한 결과, 여성가족부 고용노동부 법무부 등 10개 부처와 각 지자체의 다문화가족 지원 관련 정책이 상당 부분 중복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 부처별 다문화가족 관련 사업중복 내용. ⓒ 서동일

고용노동부는 '결혼이민자 취업지원 민간위탁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결혼이민자들의 구인·구직 상담과 취업 알선이 목적이다. 하지만 이는 여성가족부의 '결혼이민자 취업연계사업'과 목적이 같다. 고용노동부 고용서비스정책과 직원은 "고용노동부 사업에 관해서는 설명해줄 수 있지만 다른 부처 사업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의 '다문화정착을 위한 지도자교육' 또한 여성가족부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업무와 중복된다. 현지인을 통해 다문화가족의 조기 적응을 돕는다는 취지가 유사하다. 행정안전부 자치행정과 관계자는 "자세한 내용은 비교해봐야 알겠지만 여성가족부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지역마다 자율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우리는 같은 과정으로 전국 순회수업을 하는 게 차이라면 차이"라고 말했다.

"일하러 가야 하는데..." 평일에 다문화 행사

시·도 지자체 사업도 정부와 중복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시는 41억, 경기도는 시·군비를 합쳐 71억을 다문화가족 관련 사업에 쓰고 있지만 '다문화 이해의 장' '사회적응지원' 등 정부 사업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 부처별 다문화가족 지원사업 규모 합계. ⓒ 서동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이란주씨는 "더 큰 문제는 '놀이동산 가기' '피자 만들기' 등 겉핥기 행사가 많다는 건데, 체험행사를 되풀이하는 게 현지인과 이주민의 사회적 통합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문화가족의 생활 패턴을 고려하지 않은 다문화 행사도 많다. 베트남 출신 결혼여성이민자인 짠티디엡(25ㆍ경기 부천)씨는 행사에 참여 못한 아쉬움을 서투른 한국어로 말했다. "행사를 한다고 하는데 월요일, 화요일이었어요. 평일은 일해요. 시간 없어서 못 가요"

사회통합프로그램 운영기관의 한 관계자는 "평일에는 일 때문에 참석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도 공무원들이 자기네 편하려고 주말을 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정빈 교수(성결대 행정학부)는 총괄기구 부재에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문화정책 관련 위원회만 셋입니다. 다문화가족정책위원회, 외국인정책위원회, 외국인력정책위원회. 논의되는 내용도 비슷하고 위원들도 중복되는 데가 많습니다. 이를 통합하지 않는 한 사업의 중복과 비효율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겁니다"


 

* 이 기사는 <한국경제> 기자 채용 서바이벌 게임인 '나는 기자다 2011' 본선 2차 경연에서 '외국인'을 주제로 쓴 것입니다. 서동일 기자는 1,2,3차 경연을 모두 통과했으나 채용일정이 겹쳐 <동아일보>에 입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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