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 - <1부> 근로 빈곤의 현장
가락시장 파 배달꾼으로 보낸 14박 15일 (하)
주소 없는 고시원 찜질방 살이, 복지도 소외

 ▲ 물건을 싣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배달꾼들 ⓒ 김상윤

모두가 ‘내 탓’인 서글픈 사람들

 
“일한 지 10년 넘었어. 다 자기 하기 나름이야. 나는 버는 거 술 먹느라 다 써서 남는 것도 없어.”

거여동에 산다는 50세 김씨는 독신이다. 자기는 그냥 ‘쫄’이라며 귀찮게 이 것 저 것 묻지 말라고 했다. 그는 가정이 없다. 가정을 꾸릴 틈이 없었다. 10년 넘게 낮과 밤이 바뀐 작업장에서 일하다보니 사람 만날 시간을 내기 힘들었다. 돈은 술 마시느라 금세 바닥났다. 철야로 12시간씩 일하고 한달 150만원을 받지만 방세, 식비를 해결하고 나면 남는 건 하루 소주 한 두병 값이 전부다. 새벽 한시. 그의 이마엔 구슬땀이 맺혔다. 눈을 부릅뜨고 “아 왜 자꾸 도와주는 거야”라며 내친다. 말을 좀 붙여보려고 그의 일을 돕던 내가 머쓱하게 물러났다. 그는 손수레가 넘치도록 파를 싣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돈에 너무 연연해서 하면 힘들어서 일 못해.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월급이 올라.”
 
홍천에서 온 박씨는 45세로, 이곳에서 일한 지 13년이 지났다. 사업을 하다가 97년 외환위기 때 망해서 이곳에 온 사람들 중 하나라고 한다. 그는 그래도 가정이 있다. 사업할 때 지금 부인을 만났기 때문이다. 여기 일 하면서 아이도 낳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그 역시 한 작업장에 정착하지 못했다. 사장과 싸운 적도 있고, 동료들과 다투다 나온 적도 있다. 지금 작업장에서 일한 지는 1년이 넘었다. 아들은 고등학생이다. 언제쯤 한곳에 정착할지 알 수 없다.
 
“28살 때 빈손으로 서울 왔어. 회사 가서 일 해봐야 남 눈치보고 돈도 얼마 못 받잖아. 이건 자기만 열심히 하면 속편하게 벌어먹고 살 수 있었거든.......”

준수형님의 말이다. 과거형인 이유는 요즘 벌이가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가락시장 같은 도매시장이 몇 곳 없었기 때문에 돈을 쓸어 모을 정도로 장사가 잘되고 봉투치기 일당도 쏠쏠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엔 서울에만도 강서구, 청량리 등 곳곳에 도매시장이 생겨서 나눠먹기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이다. 그는 ‘머지않아 대파도 공장에서 상자에 담겨 나올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야할까?
 
“동생도 머리 써서 돈 벌 생각을 해야지. 몸 써서 돈 벌기 힘들어.”
“나는 친구들도 여기 있고, 몸 쓰는 일도 체질에 맞아서 하는 거지....... 동생은 자기한테 또 맞는 일이 있어.”
“시장이 원래 냉정한 곳이야. 다들 장사꾼이기 때문에 자기 물건 팔아줄 사람들한테나 잘해주지 동생 같은 일꾼들한테는 막 대할 때가 많아.”

 
김씨, 박씨, 준수형님은 모두 ‘자기 하는 만큼 벌어가니 열심히 하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술 먹느라 돈 못 모으고, 제 때 안 나와서 월급 못 받고, 일 못해서 욕먹는 것은 모두 ‘내 탓’이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사회 구조나 제도에 의문을 품는 것은 그들과 거리가 먼 일이었다. 밤새도록 뼈 빠지게 일했는데 겨우 입에 풀칠 할 정도 벌고, 작업장에선 기계 취급을 받고, 다치거나 병이 생기는 경우에도 아무런 보장이 없는 현실에 대해서 그저 자신의 무능과 불운을 탓할 뿐이었다.
 
이들 중에는 드물게 성공한 사람도 있다. 기자가 일했던 작업장의 사장은 면실 뽑는 공장을 하다가 망했던 경험이 있다. 그 때 부하직원 중 한 명의 아버지가 파 도매상을 했다. 쉬느니 자기 아버지 밑에서 일하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에 배달 일부터 시작했다. 몇 년 지나 파 도매상을 차렸다. 지붕도 없는 맨 땅에 파를 쌓아놓고 파는 일이었다. 비가 오면 천막을 치고 겨울엔 그냥 온 몸을 떨어야 했다. 하지만 이젠 번듯하게 지붕 있는 사업장을 갖게 됐다. 그런 그에게도 불안이 있다. 재개발, 현대화의 바람을 타고 가락시장이 변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매섭게 불어 닥치는 ‘현대화 바람’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한 가락시장 시설 현대화 계획은 2018년까지 현대화된 물류시설을 도입하고, 혼잡한 주차시설을 정비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계획대로라면 중도매상들은 모두 지하로 옮기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 가락시장의 농산물 경매장 모습, 시장 현대화를 앞두고 중도매상인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 김상윤

서울시농수산물공사 민원실 정충남 과장은 “더 좋은 물품을 값싸게 공급하기 위해 중도매인들 끼리 인수합병을 통해 규모화를 이룰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15년 전부터 세 명 이상의 중도매상인들이 점포를 합쳐 운영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한 달에 6000천만 원 이상의 매출을 내지 못하는 작업장은 퇴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중도매상인은 3~5년에 한 번씩 시장에서의 영업허가권을 갱신하는데, 영업능력이 떨어지는 경우 퇴출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이렇게 가락시장의 시설이 자동화되고, 영세한 점포들이 합쳐지거나 퇴출될수록 포장, 배달, 하역일꾼들의 일자리도 점점 불안해질 것이다.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으로 가락시장의 파 배달꾼처럼 고용계약을 맺지 않고 장기간 임시직, 일용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는 전국적으로 490만 명이나 된다. 이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소장이 ‘2010년 3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서 총 828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는 우리나라 전체 비정규직의 약 60%를 차지한다. 내 경우처럼 장기임시근로자이면서 단순노무직에 있는 4인 미만 작업장 근로자는 180만 명으로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21%를 차지한다. 가락시장 임시직 근로자의 임금은 150~160만원 수준이다. 작년 가구당 월 평균 소득이 344만 3천원인 것을 감안하면 이들은 중위소득 50%미만의 저소득층에 속한다.
  
가락시장 중도매인들은 청과법인과 계약을 맺고 있어 4대 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지만, 그들 밑에서 일하는 임시직 근로자들은 자의 반, 타의 반 보험에 들지 않는다. 대개 근로계약서조차 쓰지 않는다. 번거롭기도 하고, 사용자나 근로자가 반씩 돈을 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다. 1년 이상 일한 사람들은 고용주인 중도매인들이 보험에 가입시키는 경우가 있다고 하나 역시 의무사항은 아니다. 작업 중 다치거나 고용주 사정으로 실직했을 때, 아무런 대책이 없다. 이런 현실은 우리나라 취업자 2600만 명 중 36%만이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에 가입돼 있다는 통계에 드러난다.

그들에게도 ‘오아시스’가 필요하다.

이들 중 상당수가 빈곤층이지만,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빈곤층 지원 제도의 혜택을 보기 힘들다. 가락본동, 가락 1 ‧ 2동 주민센터, 경기동부 고용지원센터에 문의해본 결과 가락시장 내 임시직 근로자들은 거주지 주민센터 등에서 생활상담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주민센터는 등록된 주소지를 기준으로 주민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고시텔이나 찜질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주소지 등록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의료급여, 바우처(복지서비스구매권), 취약계층 생활모니터링, 차상위계층 생활모니터링 제도와 같은 공공서비스는 주거환경이 불안정한 임시직 근로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인 셈이다. 더 나은 일자리를 갖고 싶다고 해도 고용지원센터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 고용보험료 납입자가 취업 지원의 주 대상인 까닭에 보험료가 부담되는 근로빈곤층은 ‘논외’가 된다.
 

▲ 가락시장과 바로 이웃하고 있는 고층 아파트촌. 일부 시장노동자들은 가까운 동네에서 살 형편이 되지 않아 고시원과 찜질방 등 임시주거를 전전하느라 복지혜택에서도 소외되고 있다. ⓒ 김상윤

저소득 장기 임시직 근로자들은 살 집을 마련하기도 유지하기도 어렵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태완 부연구위원의 ‘워킹푸어 가구의 주거실태 및 정책적 함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위소득 50% 미만인 근로빈곤가구들의 소득에서 전 ‧ 월세 등 임대료가 차지하는 비율, 즉 월 소득대비 임대료 비율이 30%를 넘는 가구가 20%나 됐다. 중산층 이상에서는 이 비율이 3.9%에 불과했다. 김 연구원은 “소득이 낮은 계층은 주거로 인한 부채가 많은데다 신용불량으로 금융이용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교통사고 등 각종 재해, 아이의 학비마련, 주택 보증금 충당과 같이 급한 뭉칫돈이 필요할 때 이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사실상 없다는 뜻이다. 김 연구원은 근로빈곤가구들이 비정기적인 고용상태에서도 주거 안정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농사에는 저수지가 필요하다. 비가 적게 오더라도 저수지 물이 있으면 논밭을 적실 수 있다. 반대로 저수지가 없는 곳은 가뭄에 버티기 어렵다. 일본에서 그동안 관심 밖에 있던 ‘반(半)빈곤’을 사회 중심이슈로 부각시킨 유아사 마코토는 빈곤문제의 핵심을 ‘저수지(다메)의 부재’로 본다. 몸이 아파도, 일하다 사고가 나도 기댈 곳이 없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다보니 저축은 꿈도 꾸기 어렵다. 주소지가 불분명해 실업수당을 받기도 힘들다. 일본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다메’가 없는 곳에서 인생 농사를 짓는 이들이 많다. 떠들지 않고 묵묵히 살아가기 때문에 눈의 띄지 않을 뿐이다. 그들 다수가 희망 없이 시들어가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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