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김인회·문재인 '검찰을 생각한다'

사극 '뿌리깊은 나무'에서 노무현을 보다

SBS의 <뿌리깊은 나무>가 인기다. 이 사극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집현전 학사의 연쇄살인 사건을 그린 이정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 사극의 인기비결 중 하나로 ‘노무현 코드’를 꼽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세종 이도 역할을 맡은 한석규에게서 노무현 전 대통령 모습이 떠오른다고 한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대신들에게 “이런 우라질”이라고 호통을 치거나 “왕 노릇 못해먹겠다”며 왕답지 않은 말을 내뱉는 모습 등이 꼭 닮았다.

▲한석규, 장혁, 신세경 주연의 SBS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포스터.

책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를 보면 이들의 주장에 더 공감하게 된다. 검찰개혁을 반대하는 평검사들과 대화를 하던 노 전 대통령의 모습에서, 한글 반포 반대 시위를 하는 사대부들을 설득하겠다며 대궐 문 앞에 자리를 깔고 그들 하나하나와 대화를 나누는 이도의 모습이 떠오른다.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사법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뚝심은, 백성들도 자기 의견을 개진할 권리를 갖게 해야 한다며 10년도 넘게 한글 창제를 해온 이도의 진정성과 다를 바 없다.

이처럼 닮은 둘의 결말은 전혀 달랐다. 이도는 세계적인 발명품 한글을 창제한 위대한 ‘세종대왕’으로, 노 전 대통령은 대검 중수부의 무자비한 수사로 자살한 비운의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았다. 세종은 개혁에 성공했고, 노무현은 좌절했다. 검찰뿐 아니라 기득권세력에 칼을 들이댄 개혁가들은 개혁에 실패하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 고려 말의 신돈과 조선 중엽의 조광조도 그랬다. 그러나 그들의 개혁을 실패로만 단정지을 수 있을까?

<뿌리깊은 나무>가 흥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내년 5월에 서거 3주년을 맞는 노 전 대통령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왜 자살을 택해야만 했을까?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부터 참여정부의 검찰개혁까지, 이 책은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 한글 반포 반대 시위를 하고 있는 사대부를 대화로 설득하는 이도. ⓒ <뿌리깊은 나무> 캡처

검찰개혁 총대 맨 변호사 출신 여성 법무장관

대한민국의 검찰 권한은 막강하다. 법치주의 덕분에 검찰이 통치의 핵심이 됐는데, 그렇잖아도 막강한 권력에 수사권과 기소권까지 모두 행사한다. 검찰은 형사절차 전반의 주재자이자 지배자다. 수사 착수와 수사방법 선택, 구속영장 신청과 기소 여부를 결정하고 공판·재판 진행까지 맡는다. 형사재판 말고도 국가를 대리해 법률적 권한을 행사하고, 수사와 재판과정의 브리핑과 공소제기 전 피의사실·소환사실 공표 등 비제도적 권한까지 갖는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검사권한의 초 집중 현상이다.

이런 검찰 권력을 감시할 시스템이 취약한 것도 이들의 권한을 키우는 데 한몫했다. ‘벤츠 검사’ ‘스폰서 검사’ 등 수치스런 사건이 이런 시스템의 부재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들은 정치권력의 요구에 부응하며 권한을 적극 확대해왔다. 역사상 권력형 비리 사건은 주로 정권 변동기에 발생했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지는 권력은 수사 받고 떠오르는 권력은 수사 받지 않아 온 관례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검찰의 본질은 국가나 시민사회의 ‘형벌권 실현’에 있다. 그래서 검찰 권력이 커지면 그만큼 국민의 인권이 침해되고 민주주의가 저해될 확률이 높아진다. 검찰사법이라 불릴 정도로, 검찰과 경찰의 권한이 매우 컸던 일본 식민지 시절을 보면 알 수 있다. 1986년 일어난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과 같은 고문과 가혹행위가 당시에는 일상일 정도로 성행했지만, 이들을 도와줄 ‘인권 변호사’는 적어 국민의 인권은 땅에 떨어졌다.

참여정부가 처음으로 본격적인 검찰개혁을 시도한 이유였다. 그 첫 신호탄으로 노 전 대통령은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한다. 강 장관은 변호사 출신에 낮은 기수, 그리고 여성이란 한계를 지녔다. 검찰 내부에서 강조되어 온 조직순혈주의와 관료이기주의, 그리고 기수중심주의와 남성중심주의까지 모두 깨는 인사조처였다. 검찰개혁을 향한 참여정부의 큰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 방송 '대통령과 평검사의 대화' 화면 캡처.

 

검찰의 반발은 거셌다. 노 전 대통령은 이를 평검사와 직접 대화하는 자리로 풀어가려 했다. 그것이 2003년 3월 9일, TV로 생중계 된 ‘대통령과 평검사의 대화’다.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은 대통령이 나설 문제가 아니라며 반대했지만 허사였다. 문 전 수석은 “이게 일종의 노 대통령 캐릭터”라고 했고, 이병완 전 비서실장은 “문제가 터지면 우회를 안 하려는 성정이 여실하게 드러난다”고 회고했다. 다행히 강 전 장관은 이 일을 계기로 국민에게 노출되어 팬카페까지 생길 정도로 지지를 얻게 된다. 강 전 장관은 이 책에서 “여성인데다 변호사 출신으로 검찰개혁의 지지기반이 없는 제가 장관직을 수행하는데 그 일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검찰개혁 무산시킨 중수부의 수사권 남용

검찰은 원래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행정부 소속인 검찰은 사법부인 법원의 재판에 불만이 있을 때마다 상소하는 역할을 한다. 검찰은 이처럼 본질적으로 비정치적인 법원을 정치적인 이유로 견제하기 위해 탄생했다. 저자는 검찰 개혁을 하는 데 검찰의 정치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그들의 정치적 중립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참여정부는 어느 정부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중요시했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검찰 개혁을 두고 ‘검찰 길들이기’라든지 ‘검찰 장악’이라는 의혹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선 참여정부는 검찰청법을 개정한다.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에 대한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하고, 검찰인사위원회를 자문기구에서 심의기구로 격상시켜 검찰 인사의 공정성을 제고하는 방법 등을 모색했다. 검찰 조직을 민주적으로 구성해 정치권력의 사적 요구에 대응할 수 없도록 하려는 제도개혁이었다.

검찰에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맡긴 것도 같은 이유였다. 검찰이 여·야를 구분하지 않고 정경유착을 수사하게 했다. 검찰의 성역 없는 수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자금 공개 약속과 이행으로 가능했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고 회상한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정경유착이라는 거악을 척결하자 대검 중수부의 역할이 국민적으로 인정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검찰 개혁의 중요한 대상인 대검 중수부가 신뢰를 받으면서 국민 여론은 ‘검찰을 굳이 무리해서 개혁해야 하는가’로 흘러갔다.

참여정부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가장 중요시했기에 이를 개의치 않고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신설과 검경수사권 조정, 법무부 문민화 등 검찰 개혁 과제들을 꾸준히 추진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청와대와 정치권이 검찰개혁을 하는 데 불리한 지형을 형성하게 됐다. 검찰개혁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약해지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저자는 아쉬웠다고 평가한다.

▲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표지.

‘끝없는 줄다리기’ 검경 수사권 조정

올해 김준규 전 검찰총장이 수사권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자진 사퇴를 한 것은 검찰이 수사지휘권을 그만큼 양보하기 싫어한다는 반증이다. 참여정부 시절에도 그랬다. 검찰은 경찰의 독자적 수사권을 인정하게 되면, 경찰에 대한 통제가 어렵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인권에 취약하므로 인권 전문가인 검사가 수사 초기부터 깊숙이 개입해 인권 측면에서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사권을 둘러싼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저자는 개혁의 주체세력이 직접 검경수사권 조정을 추진하지 않고 두 기관의 합의에 맡긴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권력기관의 개혁은 그들 스스로 시도해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권력기관 개혁은 권력기관의 지지 속에 정치권력이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이 책은 주장한다. 비록 합의에 이르진 못했지만, 검경수사권 조정이 국가적 과제로 상정되었다는 것 자체가 의의가 있다고 평가한다.

검경수사권 조정은 검찰의 권한을 분산하는 측면에서 검찰개혁의 중요한 과제다. 수사지휘권 때문에 한국 검찰은 경찰과 철저하게 상명하복 관계를 이루고 있다. 검찰개혁을 통해 검찰의 권한이 분산·견제되면 공권력 행사가 더 객관화할 수 있고 냉정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공권력 행사 과정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다 잘 보호할 수 있게 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개혁은 수사권한의 총량이 줄어드는, 두 권력기관 사이의 평등한 관계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검찰과 경찰의 합의에만 의존하기보다 검찰과 경찰 이외에 여러 기관과 전문가, 국민의 직접 참여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정부의 검찰개혁은 실패한 걸까

저자가 “이 책을 노 전 대통령 영전에 바친다”고 책 서두에 적은 것처럼, 이 책은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정책이던 검찰개혁의 ‘회고록’ 성격이 강하다. 참여정부 검찰개혁의 당위성과 과정, 의의 등을 4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상세하게 정리했다. 하지만 마냥 잘했다고만 하지는 않았다. 실패한 부분은 인정하고 앞으로 개혁해야 할 방향까지 꼼꼼하게 짚었다.

관련 인사들의 인터뷰를 충분히 실어 당시 상황을 상세히 묘사해 신뢰성을 높였다는 점에서도 돋보인다. 이는 두 저자인 문재인노무현재단 이사장과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참여정부 시절 각각 대통령 비서실장과 사법개혁위원회 기획추진단 간사였던 덕분이다. 게다가 김종빈 검찰총장의 사퇴에 얽힌 숨겨진 이야기 등, 개혁 현장에 있는 사람만 알 수 있는 뒷이야기까지 충실히 담아 독자들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를 찾은 추모객들. ⓒ 황상호 

미국산 쇠고기의 문제점을 다룬 <PD수첩> 제작진과 촛불집회 참가자들, 정연주 KBS 사장,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수사와 기소부터 용산참사 사건에 대한 부실·편파 수사 논란까지, 다 적기도 힘들 정도로 검찰의 권한은 여전히 남용되고 있다. 이처럼 참여정부의 검찰개혁은 미흡했고 실패했다.

하지만 최초로 검찰개혁을 추진했다는 점과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철저히 보장했다는 점, 그리고 대검 공안부를 축소하고 그 위상을 낮췄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참여정부는 검찰개혁의 문을 열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개혁은 단기간에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책은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혁방향을 제시해 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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