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실장

 저널리즘스쿨의 특강은 <인문교양특강> <사회교양특강> <저널리즘특강> <문사철특강>으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거야말로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저널리즘특강>은 보도와 칼럼, 방송제작, 매체창업 등을 통해 한국사회의 담론형성과 의사소통에 크게 기여해온 분들이 진행해왔습니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언론사의 핵심간부와 논객들이 한 특강을 <단비뉴스>가 중계합니다. 단, 공개를 원하지 않는 몇 분의 강의는 제외됩니다. <저널리즘특강>은 지난 2008년에도 개설된 적이 있는데 강사와 강의내용이 중복되는 것은 내용을 종합했습니다. 이 특강은 우리 저널리즘에 대한 생생한 경험담도 흥미롭지만, 학생이 쓴 기사를, 함께 강의를 들은 이봉수 교수(특강 진행자)가 데스크를 봄으로써 ‘강연/연설기사 쓰기’ 수련을 겸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특히 언론인이 되고자 하는 학생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편집자>

사람을 판별하는 일곱 가지 색깔

<리딩 피플: Reading People>. 자신의 저서 제목처럼 ‘사람을 읽는’ 기자,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실장을 저널리즘특강에서 만났다. 전북 사투리 억양을 섞어 조곤조곤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그의 강의도 대화하듯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그는 “상대방 때문에 화가 날 때도 맞대응 하지 말고 인류학자가 되어 상대방이 왜 화를 내는지 관찰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한 번도 크게 화낸 일이 없을 것 같아 보였지만, 질의응답을 할 때는 ‘사람을 읽는’ 날카로운 눈매가 느껴졌다.
 

▲'어떤 취재든 기본은 인터뷰'라고 강조하는 황호택 위원 ⓒ김종석

황 실장은 기자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인터뷰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맞선, 고민상담, 환자문진, 증인신문 등도 일종의 인터뷰이고, 사람을 잘 읽어내는 것은 인터뷰의 기본이자 핵심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을 판별하는 ‘일곱 색깔’로 용모, 바디랭귀지, 목소리, 커뮤니케이션 스타일, 의사소통의 내용, 행동, 환경을 들었다. 특히 사회경제적 배경이 이런 데 영향을 많이 미친다고 말했다. 인종, 종교, 출신지역, 경제적 배경, 성적 취향, 직업, 문화와 같은 요소들이다.

“오제이 심슨 사건과 1992년 LA흑인폭동의 원인이 된 로드니 킹 사건의 무죄판결은 변호인이 ‘일곱 색깔’을 이용해 배심원을 잘 골랐기 때문입니다.”

당시 변호인은 인종이나 경제적 배경 등을 근거로 피고인에 대한 편견을 가질 법한 배심원을 평결에서 제외해줄 것을 요청했다. 황 실장은 인터뷰 기사를 쓸 때도 ‘일곱 색깔’을 묘사해 독자들이 인터뷰이(인터뷰대상자)에 대해 판단할 수 있게 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인터뷰에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설명했다. 육하원칙에 따라 취재원에게서 정보를 캐내는 것이 '뉴스 인터뷰'라면, 6하원칙을 넘어서서 진실과 함께 인간적인 면모를 전달하는 것을 '퍼서낼러티 인터뷰(Personality Interview)'라고 한다. 그가 오랫동안 <신동아>에 연재해 온 ‘명사 인터뷰’는 전형적인 ‘퍼서낼러티 인터뷰'라 할 수 있다.

“대공황이 궁금할 때 수천 개 사실(fact)를 읽는 것보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읽는 것이 훨씬 가슴에 와 닿습니다. ‘명사 인터뷰’는 6하원칙만으로는 부족한 사람의 체취를 전하고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게 합니다.”

그는 ‘명사 인터뷰’를 기사이면서 가장 문학에 가까운 글, 말하자면 '보도문학'이라고 정의했다. 원고지로 보통 100~200매에 이르는 심층 인터뷰 기사는 소위 '글발'이 없으면 쓸 수 가 없다. 그러고 보니 최일남씨나 <월간 조선>의 인터뷰어 오효진씨, 그리고 이탈리아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인터뷰어인 '오리아나 팔라치'도 소설가였다. 이처럼 인터뷰어에게는 기본적으로 빼어난 글 솜씨가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상대의 마음 속 생각을 끄집어내는 능력이다.

"명사로 대접받는 사람들은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만 드러내려고 하는 공적 자아(Public Self)가 발달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공격적인 질문을 받더라도 절대 실언을 하지 않고 요령껏 피해나가려고 하죠. 자기 검열을 통해 절제된 생각만 들려주려는 사람들로부터 진솔한 이야기를 이끌어 내려면 세심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인터뷰 대상자에게 가장 친밀한 장소는 그의 집이다

그는 명사들의 '공적 자아'를 뚫고 들어가 감춰두었던 사실과 꾸미지 않은 생각을 끌어내는 그 만의 노하우를 공개했다. 첫 번째는 '편안하고 친밀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저는 인터뷰 약속을 대략 오후 4시쯤으로 잡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상대의 집에서 하자고 하죠. 인터뷰를 두어 시간 하다 보면 식사 때가 되는데, 우리나라 인심에 비추어 밥 때가 됐을 때 그냥 가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럴 때 그냥 집에서 먹던 밥을 달라고 해서 격의 없이 함께 식사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부인에게 폐도 끼치면서 친밀해지죠. 밖에서 식당 밥을 먹어도 함께 식사를 하다 보면 좀 더 가까워지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때로는 술을 마실 수도 있고요."

그는 상대의 집에서 인터뷰를 할 경우 재산 정도나 집안 분위기 등을 쉽게 알 수 있어 그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집에서 만나기가 어렵다면 그 사람의 일터도 좋다. 사무실의 분위기라든가, 책장에 어떤 책이 꽂혀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그 사람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노동운동가 이수호씨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하월곡동의 26평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것을 보고 ‘치부는 없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의 집에는 그의 취미, 종교, 문화, 가족관계, 보수적인지 화려한지, 실제적인지 사치를 즐기는지, 이기적인지, 깔끔한지, 유행을 좇는 사람인지 등등 거의 모든 정보가 널려 있습니다.”

그는 유명인과 인터뷰할 때, 대중음식점에 만나는 것은 피하라고 조언했다. 별도의 방이라면 모르지만 공개된 곳에서는 자칫 주의가 분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언젠가 영화배우 박중훈 씨와 커피숍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여성들이 몰려와 너무 사진을 찍어대는 통에 박중훈 씨가 화를 내고 어수선해졌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박중훈에게 배운 한 수: 주변 사람을 통한 인물 파악

인터뷰 대상의 마음을 열게 하는 그의 두 번째 노하우는 철저한 사전조사다. 영화배우를 인터뷰하러 간 사람이 그가 출연했던 영화와 배역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든지, 국회의원을 만나러 가서 어느 위원회에 소속된 지도 모른 채 질문을 던지는 것은 상대에 대한 모욕으로까지 받아들여질 수 있다.

"사전준비를 많이 해야 불필요한 질문 없이 핵심적인 내용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기자가 준비를 철저히 하고 사람을 만나면 상대도 진지해집니다. 예전에 조용필씨를 인터뷰할 때 보니까, 워낙 인터뷰를 많이 해 봐서인지 처음엔 심드렁하더군요. 그런데 주변 사람들로부터 꼼꼼히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전에 어떤 언론도 묻지 않았던 질문들을 했더니 자세가 확 달라지더군요."

“박중훈씨를 만났을 때도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앞에서는 나에게 잘해주기 때문에, 상대방을 판단할 때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본다’고 하더군요. 한 수 배웠습니다.”

황 실장은 인터뷰이의 주변 사람들을 통하면 본인 입으로는 들을 수 없는 정보를 취재할 수 있게 된다며 주변 인물 취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터뷰이의 말보다는 행동으로 판단하라는 조언도 했다. 그는 어떤 회장님이 ‘지역, 학벌을 배제하고 평등하게 하자’고 해놓고 실제로는 자기 후배, 학벌을 보고 뽑는 경우가 있더라고 전했다.

골프선수 최경주 씨를 인터뷰 했을 때도 '사전 준비' 덕을 톡톡히 봤다. 사실 최경주 선수의 경우 아주 '실패한 인터뷰'가 될 뻔 했다. 교통난으로 황 실장이 약속시간에 15분 늦게 도착하자 최 선수가 마음이 상해 '20분밖에 시간을 내 줄 수 없다'며 냉랭한 태도를 보였다. 겨우 20분 동안 나눈 얘기로 심층 인터뷰기사를 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황 실장은 낙망하지 않고, 최 선수에 대해 사전 조사한 자료를 일부러 탁자 위에 높이 쌓아 놓은 채 인터뷰를 시작했다. 특히 언론이 늘 물어보는 얘깃거리는 제쳐놓고, 가까운 사람들을 사전 접촉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사실들을 토대로 질문을 던지자 최 선수 표정이 풀리기 시작했다. 결국 인터뷰는 45분을 훌쩍 넘겼고, 최 선수와 후원회원들의 저녁식사 자리에도 합석하게 됐다.

심지어 최 선수는 식사 후에도 1시간 반이나 시간을 더 내주었다. 덕분에 그는 읽을거리가 아주 풍성한 인터뷰기사를 쓸 수 있었다. 고정 독자들로부터 "지금까지 읽은 인터뷰 중 가장 재미있었다"는 반응이 나왔을 정도였다. 그는 이런 반전을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의 하나로 '어떤 경우에도 개인적인 감정을 억누르고 냉정을 유지하는 것'을 들었다.

"만일 최경주 선수의 첫 반응에 자존심이 상해서 싫은 소리로 맞서거나 인터뷰를 포기했다면 기자로서 자격이 없는 겁니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바짓가랑이라도 붙들어서 인터뷰는 성사시켜야 하는 거지요. 여러분, 어쨌거나 인터뷰 약속에는 절대 늦지 마세요."

‘폭탄 질문’은 맨 나중에

상대방이 마음을 여는 인터뷰의 세 번째 노하우는 '폭탄 질문', 즉 파괴력이 크지만, 상대가 극구 피하고 싶어하는 질문은 맨 나중에 하라는 것이다.

"상처를 들추어내는 질문을 안 받고 싶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기자가 폭탄 질문을 포기해선 안되지만, 상대가 화를 내고 일어서서 나가버려도 괜찮을 만큼 취재가 다 됐을 때,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 요령입니다."

평생 갈 수 있는 신뢰를 쌓아라

황 실장이 조언하는 네 번째 노하우는 취재원들과 평생 갈 수 있는 신뢰를 쌓으라는 것이다. 대부분 사회 명사들은 기자에게 평생 뉴스의 원천이 된다. 잘 나갈 때는 물론이고, 그렇지 못할 때도 그들은 뉴스의 초점이 될 수 있다. 이런 이들과 언제든지 속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인간관계를 쌓는 것은 기자에겐 중요한 자산을 만드는 일이다.

그러려면 약속을 꼭 지키는 자세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했던 이야기를 양해 없이 써버린다면 다른 취재원에게도 소문이 나서 '믿을 수 없는 기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 정말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신의를 지켜야 한다.
 

▲ 황 위원은 "인터뷰를 할 때는 취재원이 신이 나서 이야기를 풀어 나갈 수 있도록 진지하게 경청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종석

자신의 명석함을 과시하면 상대방이 입을 다문다

다섯 번째 노하우는 '잘 듣는 것'이다. 황 실장은 “ABC 나이트라인 진행자 테드 코펠은 자신의 명석함을 과시하는 인터뷰를 최악의 인터뷰로 꼽았다”며 “흔히 송곳 같은 질문을 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자기 방어와 얼음벽을 깨고 인터뷰이가 편안해져서 안 해야 할 말까지 다 하도록 만드는 것이 좋은 질문”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할 때는 가급적 자신의 말은 줄이고 상대방이 얘기를 많이 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가끔 보면 질문은 3분 하고 답변은 1초 하게 만드는 기자들이 있는데, 아주 어리석은 태도입니다. 기자의 질문은 '마중물' 정도에 그치고 상대의 얘기를 열심히 들어주어야 알맹이 있는 인터뷰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초보기자의 경우 상대의 답변에 집중하지 않고 다음에 무슨 질문을 할까 궁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게 되면 추가질문을 통해 의미 있는 얘기를 유도해 낼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는 늘 상대의 말에 집중하면서 마음속 얘기들이 술술 나오도록 추임새도 넣고 보충 질문도 해야 한다고 황 실장은 강조했다.

황 실장은 마지막으로 "사소한 것이라도 상대방의 공감을 이끌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탄광 노동자를 인터뷰 할 때는 평범한 점퍼를 입고 가고, 최고경영자를 인터뷰할 때는 깔끔한 정장을 하는 등 상대의 입장과 취향, 관심을 배려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황 실장이 풀어주는 '성공적 인터뷰의 노하우'를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니, 어쩌면 이것들은 사람간의 모든 만남과 소통에 기본적으로 적용될 만한 '인생의 지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윤성혜 류정화 김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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