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와 함께 무너지는 가정...의료복지 튼튼해야 경제도 지속 성장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 4부] 대안 좌담

양호근(단비뉴스 피디): ‘아프면 망한다’ <단비뉴스>가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을 집중 조명한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 시리즈 중 근로빈곤, 주거불안, 보육전쟁에 이어 네 번째로 다룬 의료기획의 주제입니다. 말 그대로 아픈데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고통 받는 서민들의 이야기를 취재했습니다. 난치병에 걸려 엄청난 치료비가 들지만 정부와 사회로부터 변변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을 만났고,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삶을 지탱하기 힘든 가정도 찾아갔습니다. 환자에게 별 도움이 안 되는 보험회사를 취재할 때는 화가 치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직접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로부터 뒷얘기를 들어보고 대안도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먼저 정혜정 기자, 소아난치병으로 힘겨운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만났죠?

중산층도 갑자기 들이닥친 병 앞에선 속수무책

정혜정(단비뉴스 기자): 네, 저는 소아난치병으로 가정이 거의 무너진 사례를 취재했는데요, 취재하는 내내 마음이 많이 무거웠습니다. ‘미토콘드리아 근병증’이라고, 몸에 힘이 점점 떨어져서 걷는 것은 물론이고 밥 먹는 것, 아니 물 한 모금조차 스스로 마시기 힘들게 되는 난치병입니다. 11살짜리 남자아이와 10살짜리 여자아이 남매가 이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아이 엄마는 아픈 아이들 때문에 남편, 시댁하고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약값도 처음에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고요. 아픈 아이를 안고 눈물 흘리던 아이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양: 네, 난치병으로 아이 키우기도 힘든데, 가족 친지 등 주변으로부터도 외면당한다면 그야말로 벼랑에 내몰리는 심정일 것 같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일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임종헌 기자, 장애아를 키우는 부부를 만나고 왔죠?

▲ 임종헌 기자
임종헌(단비뉴스 기자): 네, 저는 장애아를 키우고 있는 젊은 부부를 취재했습니다. 제가 아는 후배의 동생이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데요, 정부보조금이 턱없이 적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취재를 하게 됐습니다. 자폐아를 키우는 부모들의 모임도 가봤는데 우리나라의 장애아동복지가 너무 열악하다고 울분을 토하더군요. 알아보니 정부지원금은 많아 봐야 한 달에 22만원이었습니다. 그 지원금으로 일주일에 고작 한두 번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실 자폐나 지적장애 같은 경우 놀이치료, 음악치료, 미술치료, 인지치료 등 치료의 종류가 상당히 많아요. 나머지 치료비는 아무리 비싸도 모두 부모가 부담해야 하는 거죠. 치료비로 일 년에 집 한 채가 날아간다는 얘기도 있더군요. 아프면 망한다는 말이 실감되더라고요.

양: 건강한 아이를 키우는 데도 돈이 많이 드는데, 아픈 아이 키우는 부모는 오죽하겠습니까. 일단 아프면 큰돈이 드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비하기 위해 민영보험에 가입하는데요, 민영보험사는 아픈 사람을 두 번 죽이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이준석 기자, 대체 왜 그런 겁니까?

▲ 이준석 기자
이준석(단비뉴스 기자): 네, 저는 민영보험의 실태와 문제점을 취재했습니다. 여러분은 보험에 가입할 때, 약관을 세세하게 읽나요? 모든 것을 읽고 다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보통은 보험설계사를 믿고 가입하거나, 광고에서 말하는 보장내용을 보고 가입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 잘 읽어야겠습니다. 막상 아팠을 때 뒤통수를 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난 한 여성은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져서 수술을 받았는데, 기대했던 보험금을 못 받았습니다. 까다로운 보험 약관 때문인데요, 보험사의 얘길 들어보니 당초 설계사가 설명한 것과 달리 ‘거의 사망에 가깝거나 사망해야’ 돈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이더랍니다.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열 가구 중 여덟 가구가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습니다. 보험 서 너 개는 기본으로 들고, 한 달에 보험료로 빠지는 돈이 평균 30만 원에 가까웠습니다. 제가 만난 어떤 사람은 위험한 곳에서 일하기 때문에 한 달에 100만 원을 보험료로 꼬박꼬박 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사람들이 마지막 보루로 보험을 드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약관 등을 핑계 삼아 지급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양: 네, 아플 때 보장받으라고 있는 게 보험인데, 대체 누구를 위한 보험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사회에선 사실 누구든 중병에 걸리면 망하기 쉬운 게 현실입니다. 윤성혜 기자, 잘 살다가도 아파서 가정이 무너진 사람들을 만나고 왔죠?

▲ 윤성혜 기자
윤성혜(단비뉴스 기자): 네, 중산층이었다가 병이 나는 바람에 재산을 다 잃고 마음에도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취재했습니다. 고혈압으로 쓰러진 뒤 4년째 반신마비로 살고 있는 분을 만났는데요, 집까지 팔았지만 병원비가 계속 밀리고 있는 처지였어요. 병원비를 못 내니 재활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몸은 점점 더 굳어가고 있었어요. 당뇨병 합병증으로 실명한 분도 만났습니다. 음악학원을 운영하던 분인데, 몸이 아프니 학원도 결국 문을 닫고 치료비는 계속 나가고,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처지가 됐습니다. 자기 같은 장애인에 대해 정부가 고속도로 통행료할인 같은 쓸 데 없는 혜택 대신 실질적인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한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슬픈 현실이 나에게도 닥칠까 두렵다” 뜨거운 독자 반응

양: 네, ‘아프면 망한다’는 말이 다시 한 번 가슴에 와 닿습니다. 열심히 취재한 기사인 만큼 독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는데요, 취재하면서, 혹은 기사가 나간 후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이 있나요?

▲ (왼쪽부터) 이준석 정혜정 양호근 임종헌 윤성혜 왕범준 기자. ⓒ 주상돈

이: 우선 저는 취재를 했던 분들께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없었던 것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또 하나 답답했던 부분은 민영보험의 문제에 대해 잘 인식하지 못하는 분들이 아직 굉장히 많다는 겁니다. 국민건강보험 하나만으로는 중병에 걸렸을 때 치료비가 해결되지 않으니, 불안한 마음에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하고는 약관도 확인하지 않은 채 철석같이 믿고 있다는 거죠. 특히 어르신들이나 형편이 어려운 서민들 중에 이런 분들이 많았습니다. 기사가 나간 후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는데요, 전직 설계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분은 ‘보험 상품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판매하는 설계사도 많은 게 현실’이라고 털어 놓더군요.

윤: 제가 취재했던 분은 기사가 나간 후 ‘너무 고맙고 수고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제가 경제적으로나 정책적으로 도움을 드리진 못했지만 그분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수 있었다는 데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많은 독자들도 우리나라 의료체계에 부족함이 많다는 걸 공감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한 독자는 “슬픈 현실이고 나에게도 닥칠까 두렵다”고 댓글을 달았더군요.

양: 네, 저도 완전 공감합니다. 정혜정 기자, 기사가 나간 후에 독자들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떤가요?

▲ 정혜정 기자
정: 네, 기사를 읽고 많은 분들이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되기를 바라는 댓글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일부 독자들은 제가 취재한 여성의 시댁 식구들을 비난하는 글을 올려서 당황스러웠어요. 원래 기사에서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은 의료체계의 문제였는데, 취재원의 고립된 처지를 설명하기 위해 시댁 얘기를 한 부분에 대해 일부 독자들이 과도한 반응을 보인 것이죠. 취재원도 기사를 읽고 난 뒤에 혹시 시댁이랑 감정이 더 악화되면 어쩌나 좀 걱정스럽다고 하더군요. 그 때는 ‘내가 이 얘기를 왜 썼나’하는 후회가 되더라고요. 그래도 취재원을 돕고 싶다는 독자들의 연락이 몇 차례 왔고, 실제로 도움을 받았다는 취재원의 얘기를 듣게 돼 마음이 조금은 풀렸습니다.

임: 저는 장애아 부모들의 이야기를 듣고 돌아올 때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장애아동이야말로 우리나라 복지 체계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폐아 어머니 중 한 분이 “돈 20만원 지원받으려고 가난을 입증해야 하는 우리가 거지처럼 느껴졌다”라고 말하셨는데, 그 말이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사실 돈 20여 만 원은 그들에게 병원 다니는 차비 정도에 불과하거든요. 수백, 수천만 원까지 드는 치료비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죠. 기사가 나간 후에 자폐아동 커뮤니티 등에서 ‘앞으로 장애아동이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게 노력해 달라’는 부탁이 있었습니다.

세금 인상 하더라도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하는 방향으로

양: 네, 사실 몸이 아픈 사람들은 마음에도 상처가 있기 마련이라 저희 기사가 그분들의 상처를 다시 들춰내는 게 아닌지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면, 세상이 좀 변해야 할 텐데요. 지금부터는 우리나라 의료복지체계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대안을 토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왕범준 기자, 복지선진국의 제도와 우리나라의 현실을 비교했죠?

▲ 왕범준 기자
왕범준(단비뉴스 기자): 네, 의료복지 선진국들을 취재하면서 상대적으로 우리의 의료체계가 얼마나 미흡한지 실감했습니다. 먼저 공공병원의 비중에서 차이가 납니다. 캐나다와 영국, 스웨덴 등 복지 선진국의 경우 병상수를 기준으로 전체 병원의 90%가 공공병원, 즉 국공립병원입니다. 의료민영화가 진전된 미국도 공공병상이 30% 수준이죠. 하지만 우리나라의 공공병원 비중은 10% 남짓입니다. 공공병원은 민간병원과는 달리 과잉진료가 덜하고 공익적인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공공병원의 비중을 점차 늘려나가야 할 것입니다. 또 국민건강보험과 같은 공공의료보험의 의료비 보장 정도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60%에 불과한데, 의료복지 선진국들은 대부분 90%를 넘습니다.

이: 네, 아주 단순하게 말해서 우리나라는 병원비가 1만원이 나왔다면 건강보험에서 6000원을 내주고 4000원을 본인이 낸다는 말이죠. 그런데 중요한 건 의료행위 가운데 국민건강보험에서 내주는 급여항목이 있고 내주지 않는 비급여 항목이 있다는 겁니다. 암과 같이 큰 병의 경우는 치료법도 다양하고 치료과정도 길어 비급여 진단이나 치료가 많이 포함됩니다. 이럴 때는 본인부담금이 높아져 ‘아프면 망한다’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중병에 대비해 많은 국민들이 따로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는 것이죠. 이런 이중 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가 시급합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라는 단체에서는 모든 국민이 한 달에 1만 1000원 정도를 더 내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9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현재 선진국 중에는 독일, 영국, 스웨덴처럼 세금이나 공공보험으로 강력한 의료복지체계를 갖춘 나라가 있고 미국처럼 민영화, 즉 시장에 의료를 맡긴 나라가 있습니다. 영화 ‘식코’에서도 볼 수 있듯이 미국처럼 의료민영화를 확대하는 것은 돈 없는 사람에게 더욱 절망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고 국민 건강을 국가에서 책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를 위해 어느 정도의 보험금 혹은 세금 인상을 감수할 필요가 있겠죠.

▲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 시리즈 중 '아프면 망한다'편에 참여, 취재한 후 좌담회를 진행 중인 단비뉴스 기자들. ⓒ 주상돈

아파도 망하지 않게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점

윤: 우리나라는 질병을 예방하는 시스템이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아프다 싶으면 바로 대형병원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서 쏠림 현상도 심하고 건강보험재정 낭비도 심합니다. 영국처럼 주치의제도를 도입하면 질병 예방에 중점이 두어져 환자의 건강도 좋아지고 건강보험재정도 절약될 것입니다. 제가 취재했던 당뇨병 환자의 경우, 당뇨병인줄 알면서도 제대로 관리를 못해 합병증으로 인한 장애를 두 가지나 얻었습니다. 주치의와 상담하고 병을 관리할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 장애를 안고 살게 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정: 저희 팀이 함께 취재한 백혈병 여대생은 어렸을 때 발병했는데, 성인이 된 후 재발하자 의료지원이 더 이상 이뤄지지 않았어요. 물론 국가재정에 한계가 있으니 의료지원금을 무한정 줄 수는 없겠지만 환자의 나이에 따라 일률적으로 지원을 하거나 끊을 게 아니라 가정형편 등을 고려해서 지원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난치병 환자의 경우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에 가려 해도 큰 병원은 거의 서울에 있습니다. 서울의 집값은 또 오죽 비쌉니까? 어렵게 수도권으로 이사 온다고 해도 병원까지 가는 교통이 문제라 어려움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양: 기사에 달린 댓글과 관련해서도 생각해 볼 부분이 있죠?

정: 저희 기사 댓글에는 ‘한미FTA로 의료 민영화가 본격화할까봐 두렵다’는 의견도 있었는데, 경제자유구역에서 영리병원이 도입되기 시작하면 의료민영화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솔직히 걱정입니다. 또 어떤 분은 저희가 대안과 관련해서 스웨덴을 모델로 거론한 것을 보고 ‘소득수준에 차이가 있는데 스웨덴과 비교할 수 있나’하는 의견을 올리셨어요. 그런데 스웨덴이 보편적 의료복지체계를 도입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60여 년 전, 지금보다 훨씬 못살 때였어요. 그 때 스웨덴의 1인당 국민소득을 현재 가격으로 환산하면 1만 달러 정도로, 지금 우리의 절반수준이죠. 잘 살기 때문에 보편적 의료복지체계를 갖출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튼튼한 의료복지를 갖춰 나갔기 때문에 점점 더 잘 살 수 있게 됐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임: 장애아와 관련해서 정부의 경제적 지원과 교육적 배려가 확대되어야 합니다. 독일의 경우 장애 정도에 따라 1인당 매달 25만~80만 원의 지원금이 나온다고 합니다. 의료가 시장화된 미국에서도 공교육 대상이 되지 않는 0세부터 2세 장애아동 교육을 무상으로 지원하고요, 장애학생에게 수업료를 면제해줄 뿐만 아니라 교과 재료비도 보조해줍니다. 학교생활에 있어서도 차별을 받지 않도록 다각적으로 배려한다고 하네요. 우리나라도 장애아동들이 제대로 치료받고 교육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일반학교 교육과정에서 장애아를 ‘우리 중 하나’로 자연스럽게 인식하도록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 양호근 PD
양: ‘아프면 망한다’는 말은 ‘돈 없으면 망한다’는 얘기와 같죠. 아프면 가정이 무너지고 망하도록 방치하는 게 아니라 끝까지 챙겨주고 도와주는 나라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복지 선진국에서는 당연히 누리는 것을 우리는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단비뉴스>는 더 열심히 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 기사가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을 눌러주세요. (로그인 불필요)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