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포지엄] ‘문화예술의 자생성 확보를 위한 흐름들’

“홈리스는 당신이 오페라 하우스를 나올 때 피해 다니는 사람들이다.”

10년 전, 영국의 한 신문에 실린 정치가의 발언이 노숙자들을 분노하게 했다. 그들은 이 발언에 대항했고, 자신들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당시 런던에서 뮤직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던 맷 피콕(Matt Peacock)은 이런 현실에서 노숙자들을 도와 ‘스트릿 와이즈 오페라’를 창설했다.

‘스트릿 와이즈 오페라’와 같은 흥미진진한 사회적 기업 이야기를 지난 달 29일 인천아트플랫폼 공연장에서 들을 수 있었다. 인천문화재단에서 열린 문화예술 협력 네트워크 심포지엄은 '문화예술의 자생성 확보를 위한 세 가지 큰 흐름'이라는 주제로 사람들을 맞이했다.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커뮤니티 비즈니스, 협동조합의 세 가지 세션으로 사회를 건강하게 지속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이었다.

오페라 캐릭터에 몰입해 자존감 회복

 

▲ '스트릿 와이즈 오페라’ 대회협력 매니저인 엘리노어 레이몬트씨가 발제하고 있다. ⓒ인천문화재단

‘스트릿 와이즈 오페라’ 대회협력 매니저인 엘리노어 레이몬트의 첫 번째 발제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자선 예술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었다. 이 오페라는 노숙자가 오페라를 만남으로써 최고 수준의 작품을 만들고, 그들의 작품이 유산으로 남겨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란다. 오페라는 노숙자와 노숙자 생활을 경험한 사람들, 노숙자 센터의 스태프들이 목표를 높이 설정하고, 자기 능력의 한계에 도전하게 하면서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시도를 한다.

길거리에서 잠자는 사람도 고급 문화인 오페라 공연을 직접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은 놀라운 시도다. 노숙자들은 오페라의 스토리와 캐릭터에 몰입하면서 삶에 있어서도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시범 프로젝트를 펼친 것을 시작으로 현재 영국 전역의 11개 노숙자 센터에서 주간 음악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매주 음악을 도구로 삼아 노숙자들의 삶을 진전시키고자 했던 목표를 조금씩 이루어가는 것이다.

지난해 540회 워크샵 프로그램에는 노숙자 생활을 경험한 5백여 명이 함께 작업에 참여했다. 그 가운데 신규 참여자는 291명이었다. 대중 공연을 28회 했고, 극장 순회공연을 23회 했다. 참여자 중 58%가 처음 참여했다는 사실은 노숙자들에게 새로운 주거지가 마련되면 노숙자 지원사업에서 벗어나 각자의 길을 찾아간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주간 워크숍을 진행하는 것 말고 정기적으로 하는 오페라 순회공연은 대중 앞에서 당당히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노숙자들이 자존감을 얻고 새 삶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다.

 

▲ 심포지엄에 참여한 사람들이 '스트릿 와이즈 오페라'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인천문화재단

이 밖에도 극장, 박물관, 갤러리, 페스티벌 등 지역의 예술∙문화 기관과 조직에서 참여자들의 일자리를 구해주는 직업연수사업도 벌이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2008년에는 그들의 오페라 작품이 담긴 영화 <마이 시크릿 하트(My Secret Heart)>가 만들어져 20만 명이 관람했다. 2010년 작품 <우화(Fables)>는 단편영화-오페라 4편으로 구성된 필름 오페라(Film opera)인데, 그해 런던의 스피탈피즈 윈터 페스티벌에서 라이브 시사회를 할 때까지 140여명의 스트릿 와이즈 공연자들이 그 과정에 참여했다.

문화예술과 사회적 기업의 행복한 만남

이처럼 문화예술이 사회적 기업과 섞이면, 새로운 시각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노숙자에게 주택을 제공하는 것만이 답이라는 사회 통념에서 벗어나 ‘스트릿 와이즈 오페라’와 같은 아이디어를 꺼내 놓으면 노숙자들이 삶의 총체성을 회복하게 해 진짜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사회적 기업 ‘노리단’ 또한 전혀 다른 시각에서 사회 문제에 접근한다. 청년에게 일자리와 높은 월급을 제공하면 그만이라는 통념을 뒤집고 살아가는 경험을 제공해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노리단 류효봉 대표와 사단법인 씨즈 청년단 김종휘 단장의 발표와 토론은 청년과 지역을 연결하는 창의 허브로서 사회적 기업을 통해 다르게 말하고, 다르게 행하는 것의 가치를 깨닫게 해 주었다.

 

▲ 노리단 대표이사 류효봉씨가 사회적 기업 노리단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인천문화재단

노리단은 청년들이 성장을 통해 자기주도적인 새로운 조직모델을 만들어가는 기업이고, 문화예술의 광범위한 영역에서 사회적 기업의 정체성을 담아내고 있다. 다양한 문화예술사업으로 이름을 알려온 노리단은 지난 5월 다문화∙다국적 노래단 '몽땅'을 만들었다.

토론에 참여한 김종휘 단장은 “사회가 어쩌면 ‘문제의 해결’을 원하는 것이 아닐 수 있고, 문제를 완전히 재정의하는 것이 답일 수 있다”고 말했다. 오페라처럼 문턱이 높다고 생각되는 것을 일반 관객과의 만남으로 전환하고 노리단처럼 새로운 형태의 공연 공간에 청년층을 데려오는 것은 자선의 눈길을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상호작용을 일으킨다는 주장이다.

점심식사 후 ‘몽땅’의 공연과 함께 이어진 '마을기업&커뮤니티 비즈니스'와 ‘협동조합’의 발제도 흥미로웠다. 일본에서 일용직 노동자들만 거주해 공동화 현상이 심각했던 '고토부키초'를 재생하고 부산에서 ‘회춘 프로젝트’를 통해 점점 늙어가는 지역을 살린 사례 등은 생생한 간접경험이었다.

 

▲ 다문화 노래단 ‘몽땅’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인천문화재단

어린이를 위한 ‘극단 라바라카’ 공연과 황덕신 대표가 공연으로 풀어낸 한국 책 이야기도 참여 속에 함께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희망을 얘기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연극 공연을 해온 ‘극단 라바라카’ 총감독 로베르토 프라베티는 발제를 마치며 칠레의 민중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말을 인용했다.

“지식과 아이디어는 그것을 만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것이다.”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을 위해 함께 만들고 함께 즐기는 지식과 아이디어의 공유모임!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이 우리 사회를 살맛 나는 곳으로 바꿔나갈 모멘텀들이 아닐까?

 

▲ (왼쪽부터)로베르토 프라베티, 황덕신, 이병준, 서광일씨가 토론을 하고 있다. ⓒ인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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