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김주원 기자

부동산은 내구재, 즉 재화인가 아니면 주식·채권과 같은 자산인가. 주택 공급에서 정부와 민간이 각각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 따지려면 이 문제부터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대표적 부동산인 주택은 재화보다 자산의 성격이 강하다. 일을 해서 모은 돈으로 집을 사면 재산보존 수단이 되고, 집값이 오르면 차익을 얻는 재산증식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집을 갖고 있으면 결국 값이 오르더라’ 하는 집단적 기억은 ‘부동산 불패신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은 <경향신문> 기고에서 소스타인 베블런이 쓴 <영리사업의 이론>을 인용해 한국 부동산의 특수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베블런은 재화와 자산의 구분이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핵심이라고 봤다. 재화는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반면 자산은 ‘미래의 수익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소유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거래하는 자산시장의 움직임은 재화의 수요공급 균형을 따지는 경제원론과는 전혀 다른 ‘미래 수익성에 대한 예측’에 지배된다. 홍 소장은 우리나라 부동산이 ‘쥐고 있으면 언젠가 대박이 터지는’ 자산의 측면이 강하다고 봤다.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주택을 자산으로 보면서 가격상승을 기대할 때, 정부와 민간은 다른 역할을 맡아야 한다. 정부는 자산이 아니라 재화인 집, 즉 쫓겨날 걱정 없이 안락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국민에게 제공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많은 사회초년생들이 일자리가 몰린 수도권에 살면서 비싼 주거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반지하·옥탑방·고시원 등의 취약시설에 머물고 있다. 연인들이 결혼을 미루거나 신혼부부가 아이 낳기를 포기하는 일이 집 때문에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이들이 적정한 임대료를 내고 안정적으로 거주하면서 미래를 위해 돈을 모을 수 있도록, 장기공공임대주택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다만 현재의 일부 공공임대주택처럼 너무 좁고, 접근성이 떨어지고, 기반시설이 취약한 상태로는 곤란하다.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에게 공급되는 공공임대 ‘행복주택’은 2020년 말 공실률이 8.2%였는데, 입지나 규모, 시설 등 ‘품질’이 낮아 인기가 없는 곳이 있다고 한다. 공공임대에 살면 빈곤층으로 보는 사회적 낙인도 심각하다. 정부는 공공임대주택의 물량을 늘리면서 품질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 많은 사회초년생이 반지하·옥탑방·고시원 등의 취약 시설에 머무는 만큼, 정부는 이들이 적정한 임대료를 내고 안정적으로 거주하며 미래를 위해 돈을 모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써야 한다. ⓒ 연합뉴스

지난해 9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장기공공임대주택 재고 추이’에 따르면 우리나라 공공임대 주택 재고는 2020년 약 170만 호로, 전체 주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8% 정도다. 여기에는 5년이나 10년 임대처럼 일정 기간 임대 후 분양하는 27만 호도 포함돼 있어 엄격한 의미의 ‘장기공공임대’는 비중이 더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10% 내외이고 네덜란드는 35%를 넘는다는 것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도 최소 10%는 되도록 장기공공임대주택을 시급히 늘릴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공공임대 재고는 또 주로 60제곱미터(㎡)(약 18평) 미만에 집중돼 있고, 공공임대아파트만 분리해서 지은 곳도 많아 ‘가난한 동네’로 쉽게 낙인이 찍힐 수 있는 구조다. 다자녀 무주택자 등의 수요를 반영해 공공임대도 중형을 짓고,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섞어 다양한 소득계층이 함께 살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 벽이 갈라지거나 물이 새는 등 시설이 허술한 공공임대주택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한편 민간은 소비자가 원하는 곳에 팔릴 만한 주택을 공급하는 일에 주력하면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농촌과 비수도권 도시 등에 빈집이 125만 호(2019년 기준)나 된다. 집의 절대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원하는 인기 지역에 공급되는 주택이 적은 게 가격폭등의 배경이었다. 여기에는 ‘인기 지역에 사 두면 크게 값이 오른다’는 자산시장의 논리가 작용했다. 정부가 공공임대를 충분히 공급하면 무주택자들의 ‘패닉바잉(가격이 더 오를까봐 서둘러 사는 것)’이 줄면서 부동산 자산시장의 거품도 꺼질 것이다. 정부는 재건축·재개발을 막는 불합리한 규제를 풀어주는 정도로 민간 주택공급의 활력을 살려주면 된다. 

유력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처럼, 5년 간 수백만 호의 주택을 쏟아내는 방식은 부동산 투기열풍에 이은 미분양 사태 등 경제 불안정만 부추길 것이다. 정부는 장기공공임대주택을 확충하고 민간은 실수요에 맞춰 분양주택을 공급하는 분업이 ‘자산보다는 재화’로서 집의 위상을 되찾으며 국민의 삶도 풍요롭게 하는 길이다.


편집: 김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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