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 칼럼]

▲ 제정임 원장

지금은 치솟은 집값 때문에 괴로운 무주택자들이 스스로 ‘벼락거지’라고 한탄하지만 10여 년 전에는 ‘하우스푸어’라는 말이 뉴스거리였다. ‘집 가진 빈민’이라는 뜻인데, 요즘 유행어처럼 ‘영혼까지 끌어 모아’ 집을 산 뒤 대출 갚느라 허덕이는 이들을 말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집값이 떨어지고 아파트 미분양도 속출하자, 팔려고 해도 팔리지 않는 집에서 고통받는 이들이 대거 늘었다. ‘통장에 잠깐 들어왔다 은행으로 직행하는 월급’ 때문에 이들의 ‘삶의 질’은 바닥을 쳤다.

여야 대선 주자들이 ‘부동산 민심’을 잡으려 온갖 공약을 쏟아내는 요즘, 또 한 번 하우스푸어 시대의 먹장구름이 밀려오는 듯하다. 거대 양당 후보가 하나같이 주택공급을 크게 늘리고, 대출 규제와 세금은 낮춰 ‘빚 얻어 집 사기’를 돕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에서 주택공급이 부족해 집값이 올랐으니 공급을 늘려 가격을 잡겠다고 한다. 그러나 국토교통부 통계를 보면 2017~2020년 연평균 주택공급량(다가구 구분, 준공 기준)은 수도권 30만, 전국 61만 가구로 2011~2016년의 각 22만, 53만 가구보다 많다.

김용창(서울대), 정준호(강원대) 교수와 이강훈(참여연대) 변호사 등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대응 과정의 초저금리와 느슨한 대출 등 금융이 더 중요한 변수였다고 말한다. 부동산 시장에 몰린 자금이 집값을 띄우자, 앞으로 더 오를 것이란 기대 혹은 불안감에 대출을 받아 뛰어드는 이들이 늘면서 가격이 급등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미국의 금리 인상과 함께 국내 대출이자도 본격적으로 오를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영끌’로 집을 산 사람들은 늘어난 이자를 감당할 수 있을까. 금리 부담 때문에 주택수요가 줄고 공급 관성에 따라 물량은 쏟아질 때 미분양 사태를 막을 수 있을까. 가계부채가 심각한 상황에서 집값은 떨어지고 원리금 부도가 이어지면 금융위기가 발생하진 않을까.

▲ 올해 3월에 있을 대선을 앞두고 여야 주요 대선 후보들이 공급 확대에 초점을 맞춘 부동산 공약을 내놓고 있다. 사진은 지난 16일 서울 아파트의 모습. ⓒ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원래 국토보유세를 걷어 기본소득을 주겠다는 구상으로 주목받았다. ‘토지이익배당금제’로 개명한 이 정책은 부동산을 많이 가진 이에게 높은 세금을 물려 투기수요를 줄이고 복지를 늘리자는 것이라, 집값 안정과 불평등 개선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비판이 일자 이 후보는 이를 뒷주머니에 넣은 채 공급 확대 공약을 들고 ‘표심’에 구애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을 쉽게 해주겠다, 그린벨트도 풀겠다, 주택 250만호를 짓겠다 등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공급 확대와 함께 ‘세금 줄여주기’에 힘을 싣고 있다.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통합 등으로 보유세를 줄이고, 양도소득세와 취득세도 낮추겠다고 한다. 청년과 신혼부부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80%로 높이는 등 대출 규제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경제학자 아티프 미안과 아미르 수피는 <빚으로 지은 집>에서 주택대출 등으로 가계부채가 지나치게 늘면 빚 갚느라 소비할 돈이 부족해져 총수요 감소와 생산 위축, 실업 등 ‘소비 주도 불황’을 낳는다고 분석했다. 또 부채에 의존하는 성장은 금리 상승기에 경제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데, 피해는 ‘능력 이상의 빚을 진’ 서민에게 더 가혹하다고 강조했다. 두 후보가 귀 기울여야 할 경고다.

서울 등 수도권의 재개발·재건축을 쉽게 해주고, 용적률을 높여 초고층 아파트를 짓고, 그린벨트도 풀어 주택을 대량 공급하겠다는 두 후보의 정책은 시대적 과제와도 충돌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30년도 안 된 아파트들을 갈아엎고 전력 소모가 어마어마한 초고층빌딩을 올리는 게 옳은가. 숲을 늘려야 할 시기에 그린벨트를 없애고 콘크리트 건물을 지어도 되나. 지역소멸을 걱정하는 시대에 수도권 신도시를 더 만들어도 괜찮은가. 저출생 시대에 주택 250만호 신축은 합당한가. 

후보들은 이보다 반지하·옥탑방·고시원 등의 취약계층에게 인간다운 주거를 보장하는 일, 무주택 가구에 고품질의 장기공공임대주택을 충분히 제공하는 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보유세 부담을 점진적으로 높이고, 대출은 ‘갚을 수 있는 수준’으로 관리해서 집이 투기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후위기, 지역소멸, 저출생 대응에 실패하고 하우스푸어 시대를 연 대통령’은 정말 보지 않았으면 한다.


* 이 글은 <한겨레> 1월 18일 자에 실린 [제정임 칼럼]을 신문사의 허락 하에 전재한 것입니다.

편집: 김계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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