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널스툰' 그리는 신현아 간호사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간호사 등 의료인력 부족과 취약한 공공의료시스템 문제가 중대한 사회 현안으로 떠올랐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는 지난해 9월 파업을 예고했다가 ‘의료진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정부 약속을 믿고 철회하기도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에 ‘널스툰’(간호사+만화)을 그리는 신현아(30) 간호사는 시간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는 현장에서 간호사들이 느끼는 고충을 몇 컷의 그림으로 표현한다. ‘오늘의 간호사’(@today_nurse) 계정에 연재되는 널스툰은 2년여 만에 4300여 명의 구독자를 확보했고, 민감한 주제를 다룰 때마다 1000여 개의 ‘좋아요’와 100여 건의 댓글이 달리는 등 공감을 얻고 있다. 신 간호사를 지난달 7일 경기도 의왕시의 한 카페에서 만나고, 지난 7일 문자로 추가 인터뷰했다.  

“코로나 병동 간호사 지금의 세 배는 필요”

▲ 코로나19 병동 파견 간호사로 일하는 신현아 간호사. 일반 병동도, 코로나19 병동도 모두 간호사가 부족한 게 현실이다. ⓒ 최태현

“가치 있는 일이어서 지원했는데, 업무강도를 견디기 어렵기도 해요. 방호복 입으면 소리도 잘 안 들리고 행동도 둔해지거든요. 온몸이 땀에 젖는데 집에 가면 바로 잠들어버리죠. 머리도 제대로 안 돌아가고, 말도 제대로 안 나올 것 같고. 다른 병원이나 부서는 인력이 부족해서 간혹 휴일 없이 열흘 연속 일하기도 해요.”

신 간호사는 지난해 7월부터 경기도의 한 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에서 파견직 간호사로 6개월 동안 일했다. 이보다 5개월 전에는 경기도 지역 한 의료원에서 파견직을 수행했다. 코로나19 병동 근무를 두 번이나 한 것이다. 신 간호사가 최근까지 일한 곳은 코로나19 병동 중에서도 중환자실이었다. 이곳에 오는 환자는 대개 스스로 호흡하지 못한다. 몸 밖으로 빼낸 피에 산소를 공급하는 ‘에크모’ 장치나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한다. 더러는 의식이 없기도 하다. 지난 연말 거리두기 완화와 오미크론 변이 등으로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코로나19 병동은 남는 자리가 거의 없어졌다. 

“간호사가 지금보다 세 배는 필요해요.” 

신 간호사는 코로나19 사태 초기나 2년 가까이 지난 지금이나 의료현장에서 간호사 인력 부족 문제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근무수칙에 따르면 한 근무조 간호사 절반이 방호복을 입고 음압병동에 들어가 환자를 돌볼 때 나머지 절반은 밖에서 환자 상태를 원격으로 모니터링하고 사무를 본다. 환자가 이상 반응을 보이면 병동 안에서 활동 중인 간호사에게 지시를 내려준다. 역할은 2시간마다 교대한다. 이들을 총괄하는 간호사도 있다.

그런데 실제 현장에 투입되는 간호사는 한 근무조에 5명이 전부다. 활동 2명에 모니터링 2명, 총괄 1명. 결국 활동 간호사 2명이 중환자 10명을 돌보는 꼴이다. 환자 대 간호사 비율로 따지면 5 대 1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중환자 병동이어서 비율이 높은 편이다. 일반 병동은 수십 대 1까지 내려간다. 그는 환자 10명이 있는 중환자실을 담당하려면 같은 시간대 근무 중인 간호사가 아무리 못해도 10명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간호 인력 부족으로 방치되는 중환자들 

“코로나19 일반 병동 환자도 사실 거의 준중환자예요. 일반 병동 하나에 40명을 수용하는데, 금방이라도 인공호흡기를 착용해야 할 준중환자가 10명 정도는 되죠. 여기서도 병동 안에서 활동하는 간호사가 두 명이에요. 한 병동 안에 병실은 10개나 되니까, 간호사는 1호실에서 활동 중인데 3호실에서 비상이 걸리면 제때 대응을 못 하는 거예요.”

▲ 신현아 간호사는 간호인력 부족과 열악한 처우 때문에 ‘태움’ 등 부조리한 관행이 이어지고 환자도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 최태현

보건의료노조 등은 ‘간호인력인권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 병동은 간호사 한 명이 환자를 12명까지, 중환자실은 최대 2명까지 돌보도록 정해 엄격히 지키자는 것이다. 병원이 이 기준을 위반하면 벌금형이나 징역형을 내릴 수 있게 하자는 내용도 있다. 현행 의료법 시행규칙은 한 병원에 고용된 간호사와 연평균 1일 입원환자 수 비율이 1 대 2.5가 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행을 강제할 처벌 조항이 없다. 

정부가 보건의료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여 만든 합의안 5가지 중 3가지가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와 신규 간호사 교육 전담 간호사 확대, 야간 간호료 확대 등 간호사 관련 사안이었다. 강연배 보건의료노조 홍보실장은 <단비뉴스> 전화 통화에서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는 오는 3월 정부가 지원금을 지급해 몇 개 병원에서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간호사 만족도를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사 결과 등을 바탕으로 2025년까지 실제 법제화를 마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면허 있는 간호사 중 절반만 실제 근무   

간호사 인력이 이렇게 부족한 가운데, 신 간호사는 인스타그램 만화를 통해 ‘간호대 증원 반대’를 주장했다. 대한간호협회가 지난해 8월 간호대 정원 확대를 요구하는 성명을 낸 것과 상반된 행보다. 신 간호사는 신규 간호사 수가 지난 2010년 1만 1000여 명 수준에서 10년 만인 2020년 2만 명 수준으로 약 2배가 됐다고 지적하며 “간호대 정원은 부족하지 않다”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통계 2021’에 따르면 우리나라 간호대 졸업자는 인구 10만 명당 51.4명으로 OECD 평균 31.9명보다 많고 독일 43.9명보다도 많다.

문제는 면허 소지자 가운데 실제 일하는 비율이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한간호협회 ‘간호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면허증이 있는 간호사는 41만 5000명이지만, 실제 의료현장에서 일하는 수는 21만 5000명으로, 전체의 52% 수준에 불과하다. ‘OECD 보건통계 2021’을 보면 ‘현직’ 간호사 수는 2019년 기준 국내 인구 1000명 당 4.2명으로, OECD 평균 7.9명의 절반가량이었다. 독일은 11.8명이다. 이렇게 ‘장롱’에 들어간 면허가 많은 것은 열악한 근무 여건 때문에 중간 연차 간호사들이 계속 임상을 떠나서다. 신 간호사는 신규 간호사 급증으로 현장에서는 1 대 1 교육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1 대 1이어야 할 임상 교육이 1 대 2가 되더니, 1 대 3이 돼요. 교육해야 할 중간 연차는 이 비율이 늘어나니까 힘들어서 퇴사하고, 그럴수록 정부는 신규 간호사를 늘리니까 이 비율은 또 더 늘어나요. 악순환이 ‘장롱면허’만 키우죠.”

신 간호사는 임상 근무 여건부터 나아지지 않으면 간호대에서 아무리 많은 간호사가 배출돼도 역효과만 난다고 지적했다. 그는 “코로나19 병동 파견 등으로 (현장에) 복직한 간호사들은 거의 20~30대”라며 “나와 비슷한 연차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파견 간호사들은) 신규 간호사 교육까지 3~4인분의 역할을 요구받다 그만둔 사람들”이라며 “이 사람들을 다시 임상으로 들여오게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불규칙한 3교대 근무로 건강 해치기도 

▲ 간호사 증원의 악순환을 표현한 신현아 간호사의 만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비유를 썼다. ⓒ 신현아

신 간호사는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환자당 간호사 수 법제화를 강조했다. 병원은 비용을 줄이려고 간호사를 최대한 적게 고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더 많은 간호사를 의무적으로 채용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당장 높은 사직률의 원인이 되는 불규칙한 3교대 근무를 없앨 수 있다. 주말 없이 연속해 돌아가는 낮, 저녁, 야간 3교대 근무는 간호사들의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꼽힌다. 휴일 없이 열흘 연속 근무하기도 하고, 야간 당직근무만 사나흘씩 잇달아 할 때도 흔하다. 한 달 동안 휴일이 6일만 주어지기도 한다.

“거의 못 자다가 한 달에 이틀 정도 미친 듯이 자요. 곰처럼 자요. (웃음) 20시간 정도 잔 적도 있어요. 동료 간호사들도 수면 검사를 받으면 대부분 수면 장애로 나와요. 비의존성 수면제를 먹기도 하는데, 성분이 알레르기약이랑 비슷하거든요? 그래서 수면제가 없으면 알레르기 증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걸 먹는 거예요. 동료들도 그런 얘기를 해서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싶더라고요.”

신 간호사는 “영양제를 종류별로 10알 정도는 먹는 것 같다”며 “많이 먹으면 간에 안 좋으니까 간에 좋은 영양제도 먹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고질적 ‘태움’도 결국 인력 부족 탓 

신현아 간호사는 2017년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근무 시작 2주 만에 간호계의 괴롭힘 문화인 ‘태움’으로 위기에 몰렸다. “넌 간호사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월급 받을 양심은 있으세요?” 선배 간호사가 내뱉는 말이 가슴에 박혔다. 6개월 뒤에는 선을 넘는 괴롭힘에 질려 사직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선배 간호사들은 과중한 업무에 신입 교육 부담까지 더해지자 공격적 언행을 일삼는 것 같았다. 2년여 태움에 시달리던 그는 인스타그램에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4개월 정도 후인 2020년 3월 퇴직했다. 

“‘오늘의 간호사’라는 이름은 부르기 쉽기도 하고, 하루하루 일상을 어떻게 지냈는지 기록하자는 의미에서 붙였어요. 그림은 잘 못 그려요. 자주 그리고 자주 소통하는 게 돼야 하는데, 뜨문뜨문 올리게 돼요. 5살 때 배운 게 전부예요. 그래서 사람도 온전하게 못 그려서 상반신까지만 그리잖아요.” (웃음)

그의 부모는 태움이라는 표현을 쓰며 간호사 사회를 비판하면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며 걱정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용기를 냈다. 익명으로 간호사 만화를 그려 인기를 얻은 계정은 꽤 있었지만, 이름을 걸고 간호계를 비판하는 사람은 없었다. 널스툰 활동 1년 만에 실명을 공개하고 대중 앞에 섰다. 

▲ 신현아 간호사는 SNS 활동 1년 만에 모습을 직접 드러내고 소통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병동 파견 간호사 일을 시작하면서 간호인력 문제가 크게 대두된 때였다. 그는 “누군가는 이름을 걸고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신현아

지난달 경기도 의정부의 한 병원 기숙사에서 1년 차 오모(23) 간호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병원에서 제공되는 월 10만 원의 식비 가운데 고작 몇 천 원만 썼을 정도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 정황이 있었다. 유족은 태움 의혹을 제기했다. 선배 간호사가 ‘너의 차트는 가치가 없다’며 오 간호사가 작성한 환자 관리 문서를 던지는 등 모욕을 줬다고 주장했다. 또 사직하려 하자 병원 측에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겠다며 퇴사를 막으려 했다고 주장했다. 

2019년 병원간호사회 조사를 보면 신규 간호사 45.5%가 1년도 되지 않아 다니던 병원을 그만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 간호사는 “병원 측도 간호사 인력이 여유로웠으면 원할 때 그만두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알고 보면 태움도 교육조차 제대로 해줄 수 없는 열악한 근무 환경 때문에 발생한다는 얘기다.   

시민은 잠재적 환자, 전문가로 간호사 존중해야

신 간호사는 “누구든 삶의 어떤 순간에는 병원을 가게 돼 있다”며 “결국 간호사의 이야기는 모두의 삶과 직결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는 태움을 얘기하고 싶었는데, 생각할수록 태움은 간호사 사이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고 돌아봤다. 간호사의 업무능력을 무시하는 의사, 간호사를 수족처럼 부리려는 환자에 의한 태움도 많았다는 것이다. 

“제가 간호사가 됐다니까 아빠부터 ‘간호사는 의사 따까리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제가 듣고 있는데도.” 결국 간호사가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가 가장 큰 문제였다. 간호 인력이 전문 의료인이 아니라 다시 뽑아 쓸 수 있는 소모품으로 취급되고, 좀처럼 처우 개선이 되지 않는 이유도 어쩌면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나가겠다며 간호사에게 난동을 피우다 의사가 나타나자 고분고분해진 일화를 그린 만화. 가장 공감을 많이 받은 게시물이다. ⓒ 신현아

“코로나19 환자는 물론 모든 환자가 간호사가 많이 돌봐줄수록 소생할 확률이 높아져요. 혈압이 떨어지면 바로 승압제를 써준다든지, 인공호흡기 호흡수를 최적의 상태로 자주 조절해주면서 자발적 호흡 연습을 계속 시켜줘야 환자 상태가 좋아지거든요. 그런데 간호사가 부족하면 너무 바쁘니까 의료기기가 내는 웬만한 전자신호는 다 무시해요. 전에 있던 파견병원에서는 중환자실에 들어왔다 살아나가는 환자를 못 봤어요. 그래서 코로나 걸리면 원래 다 죽는 줄로 잘못 알았을 정도였어요. 환자들이 이 점을 알았으면 해요. 결국 환자의 생명을 지킬 사람은 간호사예요.”

‘국경없는의사회’ 해외 의료봉사 꿈 

새해가 되면서 파견 간호사 계약이 종료된 신 간호사는 당분간 휴식을 취한 뒤 미국 간호사 면허시험에 도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엔클렉스(NCLEX-RN)라고 불리는 이 시험은 올해부터 국내에서도 응시가 가능해졌다. 신 간호사는 “원래 간호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가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일하고 싶어서였다”고 말했다. 국제비정부기구(NGO)에서 일하는데 미국 자격증이 필수는 아니지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면허증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첫 직장에서 사직할 당시 간호사를 아예 그만둘 생각이었지만, ‘전쟁터 같은 소용돌이 속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코로나19 병동 파견 근무를 지원했다고 한다. 감염이 우려되긴 했지만, 코로나19 전담병원에서는 방호복이 잘 지급돼 오히려 더 안전하다고 느꼈다고. 그는 “방역 최일선에서 일하면서, 원했던 직업이었는데 채워지지 않은 게 많았을 뿐 결국 이 길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간호사를 계속하는 한 널스툰을 통해 지금처럼 소식을 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 지난 2019년 신현아 간호사가 경기도 의료봉사단의 일원으로 필리핀 의료서비스에 참여한 모습. 그는 “해외 봉사를 하면서 간호사로서 꿈이 선명해졌다”고 말했다. ⓒ 신현아


편집: 정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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