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소수자다] ② 비만

 

자신을 차별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혐오와 차별은 공기처럼 은은하게 퍼져있다. 사람들은 은연중에 누군가를 차별하고, 스스로도 차별받는다. 우리 모두 어떤 면에서건 ‘소수자성’(minority)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단비뉴스>는 2030 청년들이 지닌 소수자 문제를 심층 취재하여 보도한다.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석 달 동안 겉모습 때문에 차별받아온 다섯 유형의 청년을 50명 이상 만났다. 그들과 동행하거나 대화하며 일상에서 벌어지는 차별의 순간을 기록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밝힌 소수자 가운데 한 명은 취재에 참여한 기자라는 점을 미리 밝힌다. 실명 보도를 원칙으로 했으나, 2차 가해를 막기 위해 일부는 가명을 활용했다. 얼굴 비공개를 요청한 경우 사진과 영상에 모자이크를 덧입혔다.

성별, 소득, 지역, 학력 등의 구분 짓기에서 벗어나는 일은 이해와 공감에서 시작한다. 서로를 향한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이때, 청년 세대부터 ‘우리 안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연대의 주체가 되자고 제안한다. 11명 청년들의 이야기가 소수자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① 얼굴색이 다른 나도 같은 사람입니다

③ 술 마셔서 붉어진 게 아니에요

 

 

 

키 163센티미터(cm). 몸무게는 100킬로그램(kg)을 넘나든다. 체질량지수(BMI) 37로 고도비만이다. 혜영 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고도비만이었다. 혜영 씨에게 어머니가 하는 이야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살 빼.” 중학생 때는 한약을 먹었다. 고등학생 때도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았다. 번번이 속이 메슥거렸다. 미성년자가 먹기에 너무 독한 약이었다. 혜영 씨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PD를 꿈꾼다. 올해 여름부터 방송국 시사 프로그램의 FD로 일하고 있다. 고된 일인데다 통근에 왕복 4시간이 걸리지만 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정규직이 되려면, 살을 빼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된다.

 

올해 3월, 공기업 입사를 꿈꾸는 공시생이 됐다. 177cm에 120kg, BMI 38.3으로 고도비만이었지만 6개월 동안 감량해 현재 99kg(BMI 31.6)가 됐다. 엄마와 단 둘이 살면서 매일같이 라면을 먹었고, 그 무렵부터 살이 찌기 시작했다. 순한 성격의 상우 씨는 아이들의 표적이 되어 어두운 학창 시절을 보냈다. 대학에 진학하고 만난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계속 우울하게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살찐 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대해주는 친구들 덕분에 우울한 학창 시절을 극복해 공부할 수 있었다. 이제 다시 문제가 생겼다. 고도비만인 몸이 취업 시장에서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점을 상우 씨는 알고 있다. 

 

161cm에 97kg, BMI 37.42로 고도비만인 대학원생이다. 평균 체중이던 민지 씨는 고시원에 살면서 우울증을 겪었고, 그 무렵부터 반복적으로 폭식하는 식이 장애가 생겼다. 최근 1년 동안 살이 30kg 가까이 불었다. 대기업과 공공기관 등의 인턴 경력, 해외 교환학생 이력, 높은 어학 점수 등 각종 ‘스펙’을 쌓았지만 매번 면접에서 떨어졌다. 가족과 친구들은 민지 씨에게 “살을 빼기만 하면 취업할 수 있다”고 말한다. 혼자서 벗어나기 힘든 질병이 비만이라는 걸 민지 씨는 알고 있다. 그래도 민지 씨는 나태한 자신을 자꾸 질책한다.

 

 

 


 

 


※ 아래 타임라인은 혜영 씨와 상우 씨, 민지 씨의 경험을 하루로 압축․재구성한 내용입니다.

 

 

 

07:30

혜영 씨 눈을 뜬다. 잠을 깊게 자지 못해 완전히 깨어나기까지 오래 걸린다. 코를 골아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다. 비만인은 비강이나 기도에 살이 찐다. 잘 때 숨쉬기가 힘들고 잠을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그래도 혜영 씨는 출근 준비에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세수, 양치질, 머리감기까지 20분이면 끝난다. 화장은 하지 않는다. 화장을 해도 살이 쪘느니 어쩌니 하는 소리만 듣는다. 옷은 입어야 한다. 옷장을 열었다. 또래에 비해 옷가지가 적다. 작은 서랍장에 사계절 옷이 다 들어간다. 여름옷은 비슷한 형태에 색만 조금씩 다른 상의 여덟 벌과 하의 세 벌이 전부다. 적당히 옷을 걸쳐 입는다.

 

 

▲ 혜영 씨의 신발들. 오른쪽 부츠와 구두는 거의 신지 않는다. ⓒ 이혜영 제공

 


08:00

혜영 씨는 종점 근처에 산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앉을 수 있다. 빈자리에 앉은 혜영 씨의 눈에 검은 운동화가 들어온다. 혜영 씨가 신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신발이다. 비만인이 대개 그렇듯 혜영 씨의 발은 볼이 넓고 등이 높다. 구두를 신으면 매우 불편하다. 몸무게 때문에 무릎에도 무리가 많이 간다. 어쩔 수 없다. 운동화를 신을 수밖에.

 

09:30

공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상우 씨가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120kg이었을 때는 뛰는 건 엄두도 못 냈다. 조금만 걸어도 발목과 무릎 관절이 아팠다. 남들 시선도 문제였다. 초고도비만인 시절, 큰맘 먹고 집 근처 산에 오르던 상우 씨는 지나가던 아저씨에게 혼이 났다. “젊은 게 이렇게 살쪄서 어떡하냐” “발이 불쌍하다” “먹는 걸 줄여야 살 빠진다” 필터를 거르지 않은 말이 거침없이 쏟아졌다. 수모를 겪은 뒤 일주일 동안 집에만 있었다. 뚱뚱하지 않았다면 그런 소리를 듣지 않았을 거라고 상우 씨는 자책했다.

 

 

▲ 최민지 씨는 살이 찌고 나서 겪은 시선과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다. ⓒ 나종인

 

 

12:00

상우 씨는 샤워를 하고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김치찌개를 먹자고 했다. 친구가 공깃밥 두 개는 자기가 먹겠다며 3인분을 시키자 했다. 금방 찌개가 나왔다. 직원 아주머니가 공깃밥 두 개를 상우 씨 앞에 뒀다. “아, 이거 제 건데.” 친구가 말하니 직원이 상우 씨에게 덩칫값 못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좋아하는 김치찌개였지만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14:00

대학원생인 민지 씨는 얼마 전 백화점 상품권을 선물 받았다. 모처럼 좋은 옷 한 벌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화점에 갔더니 직원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손님께 맞는 사이즈는 없을 것 같아요” “입어보셔도 안 맞을 거예요” “늘어나요!” 서울에서도 규모가 큰 백화점 여성복 매장을 모두 다녔지만, 민지 씨에게 맞는 사이즈의 옷은 한 벌도 없었다. 44, 55, 66 등 사이즈는 한정적이었다. 민지 씨는 터키색 시폰 원피스 한 벌만 샀다. 당장 입을 수는 없다. 언젠가 살을 빼면 입게 될 지도 모른다. 그렇게 막연하고 허망한 생각으로 상품권을 결제해버렸다.

 

16:00

방송국에 출근한 혜영 씨는 회사 선배의 심부름을 하러 다른 사무실로 갔다. 그럴 때면 혜영 씨는 매우 조심한다. 살금살금 걸어간다. 우연히 유튜브 댓글에서 ‘쿵쾅’이라는 표현을 봤다. 살찐 이들을 비하하고 공격하는 말이었다. 그 뒤로 예전보다 더 소리 없이 걸으려 애쓴다. 마른 체구의 동료들이 뛰어다니거나 소리를 크게 내며 걸어 다니는 것을 혜영 씨는 매일 본다.

 

 

▲ 온라인 활용도가 높아진 지금, 비만인은 인터넷에 떠도는 혐오 발언에 쉽게 노출되고 상처받는다. ⓒ 이혜영 제공

 

 

19:00

대학원생 민지 씨는 저녁 식사를 기다리며 인터넷 커뮤니티를 살폈다. 그러다 어느 글에 마음을 푹 찔렸다. ‘쟤네는 저 몸을 해가지고 뭐가 좋다고 먹고 있냐.’ 운동하기 싫을 때 일부러 뚱뚱한 여자가 음식을 먹는 영상을 본다는 내용이었다. 바로 아래에는 ‘뚱뚱한 사람의 패션 영상은 옷이 안 보이고 그냥 한 덩어리로만 보인다’는 글이 있었다. 못난 사람들이 인터넷이라고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거라고, 잊어버리자고 민지 씨는 되뇌었다. 그러나 이런 말은 가슴에 깊이 박혀 사라지지 않는다.

 

20:00

방송국 일을 마친 혜영 씨는 다시 전철을 타고 집으로 향한다. 친구와 카카오톡으로 얘기하다 자연스레 취업 얘기가 나왔다. 친구 역시 혜영 씨와 비슷한 고도비만이다. 살부터 빼자고 서로 이야기했다. ‘살찐 사람은 면접을 통과하기 어렵다’는 말이 취업 시장에 나돈다. 뚱뚱하다고 지적하는 면접관을 혜영 씨는 만난 적이 없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구해지지 않던 아르바이트 자리를 마침내 구했던 일을 혜영 씨는 기억한다. 20kg 정도 체중을 줄인 직후였다. 방송국에도 뚱뚱한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비정규직이었다. 모든 비정규직이 비만인 건 아니지만, 혜영 씨가 지난 석 달 동안 방송국에서 일하며 마주친 모든 비만인은 비정규 계약직이었다.

 

 

 


 

 

 

 


혜영 씨에게는 속옷이 많지 않다. 빅사이즈 여성 속옷을 파는 매장이 많이 없을뿐더러, 매장이 있어도 사이즈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밑가슴둘레가 100cm가 넘어가는 브래지어는 속옷 가게에서 팔지 않는다. 인터넷으로만 구할 수 있다. 가격도 비싸다. 평균 사이즈보다 항상 추가 금액이 붙는다. 얇은 지갑 사정에 부담이 갈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민지 씨는 임부용 하이탑 팬티를 샀다. 배꼽까지 덮는 팬티다. 배가 나온 임산부들이 주로 입는 면 소재의 속옷이다. 다른 속옷을 입으면 허벅지 살이 쓸리기 때문에 임부용 팬티가 민지 씨에게도 편하다.

 

혜영 씨의 옷장에는 살 빼면 입으려고 구매한 검은 블라우스가 걸려있다. 아직 한 번도 입어보지 않았다. 비만인이 입는 옷은 예쁘지 않다. ‘몸이 들어가는지’가 중요하므로 맵시는 고려되지 않는다. 그나마도 구하기 힘들다. 4XL, 6XL 등 다양한 사이즈의 옷이 구비돼 있는 북미나 유럽과 달리 한국의 옷가게에는 혜영 씨 몸에 맞는 옷이 거의 없다. 인터넷으로 주문할 때면 사이즈가 맞지 않아 반품하는 일이 많다.

 

상우 씨는 매주 줄자를 들고 허리, 허벅지, 팔, 목둘레를 잰다. 다이어트 시작 전 허리둘레는 135cm였다. 지금은 114cm다. 한국 사회 기준으로는 여전히 뚱뚱하다. 올해 초 어느 중소기업의 면접을 본 뒤, 상우 씨는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면접관이 물었다. 업무 능력에 대한 질문이 아니었다. “먹는 걸 좋아하나보네요.” 상우 씨는 겨우 웃음을 지으며 그렇다고 답했다. 면접관은 또 먹는 이야기를 했다. “만약 입사하면, 먹는 걸 좀 줄여야겠어요. 석 달이면 20kg은 뺄 수 있죠?” 이틀 뒤, 불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상우 씨의 겨드랑이에서는 냄새가 조금 난다. 겨드랑이 냄새는 체중과 관련이 없다. 중학생이던 시절, 주변의 여학생들은 ‘뚱뚱해서 냄새가 난다’며 상우 씨를 수군거렸다. 하루 두 번 샤워하고, 데오드란트를 사서 온몸에 바르고 다녔다. 그래도 ‘돼지’니 ‘육수’니 하는 놀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른 남학생들은 축구를 하고 와서 땀을 많이 흘려도 냄새난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상우 씨는 그날의 일을 잊지 못한다.


 

 

 


 

 

 

1. 비만인은 취업하기 힘들다 → 사실

2019년 8월 27일 방영된 KBS <시사기획 창> ‘나는 뚱뚱합니다’ 편에서는 패션 디자이너 채용에서 키와 허리둘레 등 신체 사이즈를 제시하도록 돼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또, 유튜브에 최근 한 달 이내 1편 이상 영상을 올린 초고도비만 유튜버 26명을 직접 조사해봤더니 20명이 무직이거나 빚이 있다는 내용을 업로드한 것으로 나타났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려 공부한다는 한 초고도비만 유튜버는 카페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갔는데, 전화 통화할 때는 긍정적이었던 사장이 자신을 만나자마자 1분 만에 면접을 끝냈다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2015년 한국보건경제정책학회에서 실시한 <비만이 취업 준비 및 취업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의 연구를 보면 체중에 따라 취업률이 다르게 나타났다. 비만인 경우 취업 상황이 좋지 않았다. 비만 여성 대졸자의 경우, 대기업이나 공기업 사무직 등 ‘괜찮은 일자리’에 취업한 비율은 6.25%로 나타났다. 다른 조건이 같을 때 과체중(17.65%), 적정체중(15.63%), 저체중(11.86%)에 비해 크게 낮았다. 비만인 남자 대졸자의 취업률은 40.2%였는데, 저체중 및 적정체중(54.74%), 과체중(53.93%)에 비해 낮았다. 일자리의 질을 나타내는 ‘괜찮은 일자리’ 지표에서도 저체중 및 적정체중 32.85%, 과체중 37.08%, 비만체중 12.2%의 순으로 나타났다. 종합하자면, 비만인 여자는 ‘괜찮은 일자리’를 얻기 힘들었고 비만인 남자는 일자리 자체를 얻기 힘들었다.


 

2. 한국에서 뚱뚱한 아나운서는 없다 → (대체로) 사실

미디어는 더 이상 ‘비만’을 직접적인 혐오의 대상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대신 비만인을 아예 등장시키지 않는다. 한국의 방송사들이 아나운서를 채용할 때, 외모를 평가한다는 것은 상식에 가깝다. 아나운서 취업 준비생 A씨(24)는 취업을 준비하려고 간 학원에서 “얼굴이 넙데데하다. 성형을 하고 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A씨는 최근 수술 대신 경락과 윤곽 시술을 받으러 다닌다. 국내 여자 아나운서 가운데 비만인 사람은 없다. KBS 홈페이지 여자 아나운서 47명 가운데 키와 몸무게 등 프로필이 공개된 경우를 살펴보면 몸무게가 50kg이 넘는 사람은 없었다. 키는 160cm에서 177cm까지 다양했지만, 프로필에 적힌 몸무게는 최소 46kg에서 최대 50kg이었다.

같은 공영방송인 영국의 BBC는 다르다. BBC 홈페이지에 프로필이 공개된 앵커와 아나운서 등 여성 출연자 42명의 키와 몸무게를 조사해보니, KBS와 달리 50kg 이하 몸무게를 가진 사람이 없었다. 여성 출연진들의 몸무게는 최소 53kg에서 최대 79kg까지 다양하게 분포돼 있었다. 키가 157cm에 몸무게 55kg인 출연자 레이첼 버든(Rachel Burden)의 또 다른 프로필에는 그녀의 몸무게가 “average(평균)”이라고 표기돼 있었다. 한국의 성형외과 사이트 등에서 볼 수 있는 이른바 ‘미용 몸무게’를 기준으로 할 때, 키가 157cm인 레이첼 버든은 평균이 아니라 과체중이다. 그녀의 키에 맞는 미용 몸무게는 그의 체중보다 10kg이나 적은 45.6kg이다. 한국 여성 방송 출연자들은 ‘미용 몸무게’ 공식을 충실하게 따른다. KBS 여성 아나운서 가운데 키에 해당하는 미용 몸무게를 초과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비만 여부를 규정하는 잣대도 한국의 기준이 세계 평균보다 더 엄격하다. 한국 기준으로 BMI 30 이상이면 고도비만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은 좀 더 관대하다. WHO는 BMI 25 초과 30 미만은 과체중, 30 이상은 비만, 35 이상은 고도비만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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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이예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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