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기자학교] 고교생 정치 교육 실태와 방향

지난달 24일, 교육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을 발표했다. 이를 토대로 한 새 교육과정이 이듬해 하반기에 확정되면, 2009년생부터 순차적으로 적용된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개정안에 포함된 ‘민주시민교육’을 두고 말이 나왔다. 민주시민교육을 초·중·고교 모든 교과 내용에 반영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정치적 편향성을 심어줄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교육부가 민주시민교육 활성화 종합계획을 내놓은 2018년에도 “‘시민’이 이념적 프레임을 대변하는 용어로 비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시민’ 교과를 만드는 것은 자칫 학교의 정치화와 교육 편향을 부추길 우려도 있다”는 성명을 발표한 적이 있다.

토론 없는 주입식 정치 교육이 정치 무관심 불러

그러나 일선에서 일하는 교사들 중에는 교총 의견에 반대하는 이가 많다. 충북 제천 한 고등학교에서 사회 과목을 가르치는 김모 교사는 “정해진 내용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는 학생들이 민주주의의 기본인 타협과 토론, 비판하는 능력을 키울 수 없고, 곧 정치 무관심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제대로 교육하려면 정책을 두고 학생들과 토론해야 하는데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는 정치 편향으로 보일 수 있어 난처하다”고 말했다. 

▲ 지난 7일 제천 한 고등학교에서 김성태 기자가 김모 사회과 교사와 인터뷰하고 있다. ⓒ 김성태

학생들 역시 지금 교육 과정으로는 시민으로서 권리를 알고 누리기 힘들다고 답했다. 취재진이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3일까지 충북 제천시 고교 재학생 5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과반인 29명(55.8%)이 학교에서 제공하는 정치·시민 교육이 충분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응답 이유로는 ‘학생 자치회의나 전교 회장 선거가 있지만, 자치회의 결과가 학교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회의 시간이 금연교육 등 다른 수업으로 대체되는 경우도 있다’ ‘학교 정치 수업은 일방적이어서 흥미롭지 않다’ ‘정치와 법이 선택 과목이라 일부 학생들만 공부한다’ 등을 들었다. 정치 시민 교육이 대학입시에 중요하지 않다 보니 교육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제대로 된 청소년 정치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교육과정에서 정치 교육은 ‘사회’ ‘도덕’ ‘정치와 법’ 등 소수 과목에서만 이뤄진다. 국민의 4대 의무나 선거의 4대 원칙 등 민주국가에서 가르칠 만한 기본적인 내용은 포함돼 있지만, 말 그대로 교과 공부에 그칠 뿐이다. 그나마 정치와 시민의 권리 등을 가장 깊이 다루고 있는 ‘정치와 법’은 고등학교 사회 선택과목이어서, 선택하지 않으면 아예 배우지 않는 학생도 있다. 정치와 법을 선택하지 않은 학생이 평소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각 정당이나 후보의 정책도 이해하지 못한 채 투표장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 1월 ‘18세 선거권 시대의 교육적 의의와 과제’ 포럼에서 경인교대 장준호 교수는 “정치 교육을 단기운전교습 정도로 생각하면 안 된다”며 “속성으로 불법과 합법, 투표방법은 알려줄 수 있지만 ‘자기 의견’의 형성을 가능하게 하는 시민역량은 단기간에 길러지지 않기에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장기간 체계적으로 시행될 수 있는 정치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 ⓒ 그래픽: 조한주

정치 교육 대상뿐 아니라 정치 참여자인 유럽

해외는 어떨까? 독일 청소년은 정치 교육을 받아야 할 대상일 뿐 아니라 정치에 적극 참여한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소속한 기독교민주연합(CDU)에는 청년연합(Jugend Union)이라는 정치 조직이 있다. 14살부터 35살까지 활동할 수 있는 이 청년연합 회원수는 12만여 명으로, 유럽 최대 청소년·청년 정치 조직이다.

또, 독일에는 ‘U18 프로젝트’라는 제도도 있다. 국적과 상관없이 독일에 사는 모든 18세 미만 청소년이 실제 선거 9일 전 똑같이 투표소에서 모의투표를 한다. 단순히 투표 방법만 익히는 게 프로젝트 목표는 아니다. U18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청소년은 이 투표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정치적 모순을 판독하는 방법과 정당별 차이 등을 학습하고 토론하며 자신의 정치적 선호를 인식하고, 정당별 정책과 질문들을 비교한 다음 투표를 한다. 정치 참여를 직접 경험하며 정치적 관심을 높이는 것이다.

핀란드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정치 교육을 실시한다. 실제로 치러지는 선거 제도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자신이 선호하는 정당과 정책을 고르게 한 다음 이유를 설명하게 하는 등 세밀하게 정치 교육을 한다. 교사가 정치에 관해 이야기하면 안 되는 ‘정치 무균실’이나 마찬가지인 한국과 달리 핀란드 교실에서는 교사와 학생들이 어우러져 정책에 관한 의견들을 나눈다.

▲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100여 일 앞둔 지난달 25일 대구 서구 중리동 경덕여자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선거를 알리고 투표를 독려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내년 3월 9일에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는 선거권 연령이 만 18세로 바뀐 뒤 처음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다. ⓒ <연합뉴스>

비판·감시 위해 적극적 정치 교육 이뤄져야

지난해 4월 15일 치러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한국은 선거연령을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낮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선거연령이 만 19세였지만 간신히 국제적 기준을 맞춘 것이다. 청년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는 분위기를 타고 최근에는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피선거권 연령 제한을 사실상 철폐하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달 10일, 국민의힘은 국회의원 피선거권 연령을 만 25세에서 만 18세로 낮추는 법안을 발의했다. 김민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역시 지난달 12일 피선거권 연령을 선거연령과 동일한 만 18세로 하자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참정권을 확대하는 세계 추세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제대로 된 정치 교육 없이 선거권이나 피선거권만 누린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김 교사는 “고등학생 정도면 곧 사회 주체가 될 텐데 정책 관련된 토론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채 사회에 나간다면 시민으로서 비판과 감시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며 “정책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보다 실용적 정치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비슷한 의견을 가진 학생도 있었다. 충북 제천의 한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은 “정치 얘기를 꺼내면 부정적 시선도 같이 따라오는 문화가 있어 정치에 관해 토론은 물론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사라지는 것 같다”며 “올바른 정치관을 지닐 수 있도록 (학교에서도) 정치 얘기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 김성태·조건우·최세진 기자는 제천제일고 2학년, 이하랑 기자는 제천고 2학년 학생입니다.

* 취재·첨삭지도: 조한주(단비뉴스 유튜쁘랜딩팀장), 이봉수(단비뉴스 초대 발행인)


사단법인 <단비뉴스>는 고교학점제 도입에 맞춰 제천교육지원청과 함께 이번 2학기에 4기째 '미디어 콘텐츠 일반' 공동교육과정을 운영해왔습니다. 매주 화요일 저녁 7시부터 3시간씩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진행된 이 과정은 미디어는 물론 팬데믹, 다문화사회, 위험사회 등 학생들 자신이 처한 사회환경을 이해하는 주제 강연과 글쓰기 강연을 9차례 하고, 미디어 제작 체험을 2차례 해봄으로써 진로모색에도 도움을 주도록 설계됐습니다. 이제 그 결과물을 <단비뉴스>에 연재하니 그들의 눈에 비친 지역사회와 학교의 모습을 기사와 영상으로 확인하세요. (편집자)

편집: 김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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