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기자학교] 알수록 궁금해지는 의림지의 비밀

사단법인 <단비뉴스>는 고교학점제 도입에 맞춰 제천교육지원청과 함께 이번 2학기에 4기째 '미디어 콘텐츠 일반' 공동교육과정을 운영해왔습니다. 매주 화요일 저녁 7시부터 3시간씩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진행된 이 과정은 미디어는 물론 팬데믹, 다문화사회, 위험사회 등 학생들 자신이 처한 사회환경을 이해하는 주제 강연과 글쓰기 강연을 9차례 하고, 미디어 제작 체험을 2차례 해봄으로써 진로모색에도 도움을 주도록 설계됐습니다. 이제 그 결과물을 <단비뉴스>에 연재하니 그들의 눈에 비친 지역사회와 학교의 모습을 기사와 영상으로 확인하세요. (편집자)

제천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면, 몇 번은 의림지에 오게 된다. 봄에는 의림지와 붙어 있는 솔밭공원에서 그림대회에 참가하고, 여름에는 현장체험학습을 위해 의림지를 찾는다. 가을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오리배를 타는가 하면, 겨울에는 의림지에서 썰매를 타거나 빙어낚시를 해보기도 한다.

학교 수업에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3대 저수지는 제천 의림지,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라고 배운다. 그중 의림지는 현재까지 유일하게 논밭에 물 대는 기능이 살아있는 저수지다. 제천에서 의림지는 어떤 구실을 할까? 역사가 길어 흔적도 많이 남았다. 지난달 18일 의림지를 찾아갔다. 의림지역사박물관에서 문화관광해설사에게 설명을 들은 뒤 의림지와 솔밭공원을 살펴봤다. 미리 의림지에 관한 문헌과 논문 100여 쪽을 읽었다.

비룡담-의림지-솔방죽의 합리적 저수체계

▲ 12일 의림지에서 드론을 띄워 찍은 사진. 의림지 너머로 보이는 들판이 청전들이다. 의림지 가운데 순주섬이 보인다. ⓒ 김주원

제천 의림지는 북쪽으로 3킬로미터(km)가량 떨어진 용두산에서 발원한 저수지다. 해발 871미터(m) 용두산에서 피재 계곡을 따라 흐르는 계곡수가 제2의림지(비룡담)에 모인다. 1970년에 지어진 제2의림지는 의림지에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하고 수질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보조 저수지다. 여기에 모인 물은 솔밭공원을 따라 남쪽으로 흘러 의림지에 도달한다.

의림지는 해발고도 320m로 비교적 높은 곳에 있다. 그 아래 있는 청전들은 고도가 20~30m 정도 낮다. 완만한 고도 차이 덕분에 의림지에 모인 물은 안정적으로 주변 농경지에 공급될 수 있다. 청전들은 고대부터 농사를 지어오던 곳이다. 의림지가 천혜의 담수 공간이자 저수효과를 띠는 이유다. 의림지 서쪽 작은 저수지에는 폭포와 분수가 있다. 산책로에서 작은 아치 모양의 ‘무지개다리’에 올라서면 오른쪽에 넓은 의림지가 있고, 왼쪽에 작은 저수지가 보인다. 솔밭공원을 따라 물이 내려오는 통로다.

▲ 용두산에서 흘러온 물이 의림지를 거쳐 가는 과정을 설명한 사진. 2013년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에서 만들었다. ⓒ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가파른 피재계곡을 따라 흐른 물은 솔밭공원에 이르면 유속이 느려진다. 물과 함께 내려온 토사가 쌓이면 제방 위로 물이 넘칠 수 있다. 의림지는 피재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와 일직선상에 자연 암반을 바탕으로 만든 여수토(餘水吐)가 있다. 이 시설 덕분에 집중호우 때 의림지로 유입되는 물이 급격히 불어나면 농경지를 보호할 수 있게 설계돼 있다.

무지개다리에서 100m쯤 가면 깊은 협곡으로 물이 쏟아지는 용추폭포와 마주친다. 불투명한 유리 다리는 사람이 올라서면 아래가 훤히 보이게 투명해진다. 용추폭포를 통해 쏟아진 물은 하소천을 따라 8km쯤 흐른다. 하소천 초입에 청전(靑田)들이 있는데 말 그대로 들에 가뭄 들 이유가 없었으니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 의림지에 모인 물이 청전들과 하소천으로 향하는 길목에 용추폭포가 있다. 위쪽 유리 전망대는 지난해 8월 개방했다. 전망대 위에 올라가면 발아래로 물줄기가 세차게 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 최승주

청전들에는 솔방죽과 뒤뜰방죽이 있다. 의림지에서 내려오는 물을 가두었다가 주변 농경지에 공급하는 ‘아들 못’(저류지)이다. 오늘날에는 의림지와 청전들의 해발고도가 20~30m 정도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이는 퇴적층이 쌓인 결과다. 조선시대에는 해발고도 100m쯤 차이가 났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의림지와 청전들 사이 해발고도 차이가 커서 ‘어미 못’ 의림지에서 곧바로 관개하기 어려운 탓에 아들 못으로 한 번 흘려보낸 다음 아들 못에서 다시 관개하는 방식으로 활용된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어미 못과 아들 못의 이중구조는 현재까지 학계에 보고된 적 없는 독특한 방식이다. 실제로 그런 역할을 했는지는 향후 연구 과제이다.

조향행 문화관광해설사는 “의림지에 관한 최초 기록은 조선시대에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조선시대 ‘세종실록지리지’에 의림지가 “400결의 농경지에 물을 공급한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오늘날 면적으로 환산하면, 최대 772헥타르(ha) 정도다. 조 해설사는 “조선시대에 의림지는 제천의 농경지 가운데 대략 71%에 물을 공급했다”면서 “당시 충청도에서 한 저수지가 논밭에 물을 대는 관개 비율은 10%밖에 되지 않은 것에 견주어 상당히 높은 수치”라고 설명했다.

의림지와 풍납토성의 공통점

조 해설사는 “의림지가 순채와 공어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의림지에는 순주섬이 있다. 순주섬은 수련과의 수초인 순채가 많이 자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의림지의 물오리들이 쉬는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궁중에 진상할 정도로 순채는 제천의 특산물이었다. 1972년 집중호우가 쏟아져 의림지의 제방이 무너지면서 물이 다 빠졌다. 이때 순채도 휩쓸려가며 자취를 감췄다. 현재는 제천 홍광초등학교 연못에서 순채를 복원하고 있다.

▲ 의림지에 있는 유일한 섬인 순주섬. 버드나무가 몇 그루 있고, 주로 물오리가 쉬는 곳이다. ⓒ 권희연

공어는 깨끗한 물에 주로 서식한다. 내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작은 물고기라는 뜻으로 공어(空魚)라고 불리기도 하고, 조선시대 고종황제에게 별미로 진상할 만큼 ‘위로 바치는 귀한 물고기’라는 뜻을 담아 공어(貢魚)라고도 한다. 정확한 명칭은 빙어다. 겨울철이면 꽁꽁 언 의림지에서 빙어낚시를 즐기는 시민들로 붐빈다. 그러나 의림지에 큰입배스와 파랑볼우럭 등 생태계 교란 어종이 늘면서 이 또한 위협받고 있다. 2017년 국립중앙과학관 연구팀이 의림지에 서식하는 조류를 조사한 결과, 10마리 가운데 약 4마리는 생태계 교란 어종이었다.

▲ 의림지역사박물관에 마련된 빙어낚시 체험장. 행복기자학교 기자들(앞쪽 두 여학생)이 체험하고 있다. ⓒ 최태현

조향행 문화관광해설사는 “의림지는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는지 확실치 않다”면서 “삼한시대에 축조되었다는 설도 있고, 신라 진흥왕 때 악성 우륵이 개울물을 막아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고 설명했다. 2000년과 2009년, 2012년에 걸친 세 차례 지질학적 조사 결과, 최소한 삼국시대 말기에서 통일신라시대(800~90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조사에서 의림지 제방과 퇴적층은 ‘부엽공법’으로 지어진 것을 확인했다. 부엽공법은 토성, 제방, 선착장 등 대규모 토목구조물을 만들 때 잎사귀와 점토를 교대로 쌓는 고대 토목기술이다. 김제 벽골제와 서울 풍납토성이 같은 방식으로 지어졌다.

의림지와 관련된 다양한 지명

제천시에는 저수지와 얽힌 지명이 많다. 제천(堤川)도 ‘둑의 내’를 뜻한다. 제방과 하천을 뜻하는 한자어를 합해 제천이라 불린다. 조선시대에는 제주(堤州)로 불렸다. 냇물을 막아 제방을 만든 고을을 뜻한다. 고구려는 제천 지역에 내토군(奈吐郡)을 설치했다. 내토(奈吐)는 흙으로 둘러쌓은 냇둑을 의미한다. 신라 경덕왕은 ‘토’(吐)를 제방을 뜻하는 ‘제’(堤)로 바꾸어 내제(奈堤)라고 고쳤다.

흔히 전라도를 호남, 충청도를 호서 지방이라고 부르는데, 호수(湖)를 기준으로 각각 남쪽과 서쪽에 있다는 뜻이다. 명칭의 유래가 확실치 않지만, 조선시대 자료를 보면 호서와 호남의 뜻이 나온다. 한국고전번역원 데이터베이스에서 조선 후기 학자 이긍익이 쓴 <연려실기술>을 보면, "전라도 김제 벽골제를 경계로 전라도를 호남이라 부르고, 제천의 의림지를 기준으로 충청도를 호서라고 한다"는 구절이 있다.

▲ 지난달 18일 조향행(왼쪽) 문화관광해설사가 행복기자학교 최승주(가운데)∙권희연(오른쪽) 기자에게 해설하고 있다. ⓒ 최태현

그보다 좀 더 이른 시기에 조선 중기 문신 허목이 1662년에 쓴 기행문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신림의 남쪽은 횡령인데 호서 제천현의 경계이다. 횡령 너머는 가령이고, 그 남쪽이 의림지다. 본디 영서와 호서의 경계는 큰 못이었으나 제천 너머의 고을에 호서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은 이 못 때문이다." (<기언> 제24권 중편)

제천 의림지가 있는 곳은 모산동이다. ‘못 안’을 발음이 비슷한 한자어로 옮겼다고 알려진다. 오늘날에도 모산동을 중심으로 ‘안과 밖’을 나눠 ‘안모산’, ‘밖모산’으로 나누어 부른다. 고구려 때 제천의 이름이던 내토는 ‘내토시장’ ‘내토 초등학교’ 등으로 흔적이 남아있다. 제천 시내 남쪽에 있는 ‘천남동’(泉南洞)은 의림지 남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권희연 최승주 진사랑 최지윤 기자는 제천여자고등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

* 취재·첨삭지도: 최태현(단비뉴스 청년부장), 이봉수(단비뉴스 초대 발행인)


편집: 임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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