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뽀삐뽀] 충북지역 의료격차 취재기 ③

<단비뉴스>는 특별취재팀을 꾸려 지난 7월부터 충북지역 의료격차 문제를 취재해 총 6편의 영상 시리즈 <삐뽀삐뽀>를 제작했다. 충북은 전국에서 치료가능 사망률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2019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충북 인구 10만 명 중에 46.95명이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조기에 사망했다. 전국 평균인 41.83명보다 5명 정도 많다. 

<삐뽀삐뽀>팀은 1~3편을 제작하며 지역 의료격차를 수치가 아닌 살아있는 이야기로 만났다. 충북 괴산에 사는 임산부가 산부인과에 가기 위해 편도 50분이 걸리는 거리를 오갔고(1화), 81세 할머니가 동네 병원의 오진으로 병을 키웠다(2화). 안과가 없는 충북 단양의 주민들은 안과 진료를 받기 위해 2주에 한 번 의료 봉사를 오는 의사 선생님을 기다려야 했다(3화). 

제1화 충북에서 차 없으면 애 못 낳는 이유
제2화 괜찮다니까 괜찮은 줄 알았지
제3화 단양 군민의 안과의사가 된 김 교수

도대체 왜 지역에는 병원이 적고, 있는 병원마저 사라질까? 해결 방안은 없을까? 취재팀은 4편부터 지역에 병원이 지어지기 어려운 이유와 지역 의료격차의 해결 방안에 집중했다. 지역에 있던 민간병원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들여다봤다(4화). 또 민간병원이 사라지는 지역에서 공공의료가 답이 될 수 있는지(5화), 공공병원만 짓는다고 공공의료가 제대로 확충될 수 있는 건지(6화) 집중취재해 세 편의 제작물에 담았다. 이 취재기는 4~6편의 제작 과정을 다룬다.

제4화 지역에서 민간병원, 왜 안 돼?
제5화 지역민 살리는 숨은 공공의료 찾기
제6화 공공병원 지으면 공공의료 강화될까

‘어쩔 수 없다’에 맞서는 이야기를 찾아서

“가보지 않고선 모른다.” 취재팀이 지난 7월부터 <삐뽀삐뽀> 1~3편을 제작한 뒤 팀원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의료 취약지에 거주하는 지역민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으면서 두 가지 감정이 들었다. 똑같은 보험료를 내고도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의료 이용에 제한이 생기는 데 분노하다가도, 인구가 적은 지역에 쉽사리 병원이 들어서기 어렵겠다는 현실적인 수긍을 함께 했다. 

그러나 ‘지역에 병원이 없는 건 어쩔 수 없다’는 단순한 생각은 지역민을 ‘의료 사각지대’로 더욱 몰아넣을 뿐이었다. 지역민에게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논의를 위해 4편부터 6편까지 지역에 병원이 존립할 수 없는 제도적인 문제와 현실적인 해결 방안을 담아야 했다.

▲ 좌측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제작물 1~3편의 취재에 응해준 이애란, 정예경, 윤명희, 표형은, 유명원, 추명자 씨. © <단비뉴스>

해결 안 된 의제는 낡지 않는다

의료격차는 오래된 문제다. 하지만 해결에 있어서는 진전이 거의 없다. 지난해 공공의대생 증원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지만, 정부와 의협 간의 신경전 끝에 해결책은 오리무중에 빠졌다. 되레 의료격차를 대하는 국민들의 피로감만 높아졌다. 우리는 먼저 의료격차라는 낡고 복잡한 이슈를 새롭게 보여줄 방안을 고민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각자 벤치마킹하고 싶은 뉴디미어 영상을 하나씩 분석해 소개했다. 그 과정을 거쳐 4화의 레고, 5화의 블랙보드, 그리고 6화의 그림을 통한 스토리텔링이 결정됐다.

▲ 10월 23일, 4화 제작물을 제작하기 위해 세명대 하늘공원에 모인 취재팀. 폐원한 지역 민간병원을 표현하기 위해 조립한 레고를 부수었다. © 신현우

‘어벤져스’ 급 취재원이 필요해

취재팀은 의료시스템이 정착하기 어려운 지역 사회에는 결국 공공의료를 확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은 90% 가까이 민간의료가 담당하고 있어 OECD 회원국 가운데 공공의료 수준이 최하위권이다. 관련 서적과 논문을 바탕으로 취재팀은 인적·물적 인프라 부재를 중심으로 건강보험 수가 등의 의료 제도,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이 공공의료 실현의 발목을 잡고 있을 거라는 잠정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중요한 건 취재팀의 논리를 확인하는 데 필요한 전문적인 취재원이었다. 우선 의료경영을 연구하는 ‘병원이노베이션연구소’의 소장인 이용균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에게 인프라가 들어서기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강원도 원주에서 국민건강보험 연구조정협력센터 김정회 센터장을, 전북 임실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임감사를 지낸 문정주 씨를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취재의 깊이가 더해졌다. 

▲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제작물 4~6편의 인터뷰에 응해 준 정일용 경기도의료원장, 이용균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 김정회 국민건강보험공단 연구조정협력센터장, 최성호 제천·단양 공공의료강화 대책위원회 사무국장, 나백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 문정주 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임감사. © <단비뉴스>

병원의 소리, 듣기 어려워

우리는 4화에서 지역의 민간병원을 운영하기 어려운 점을 다루기 위해 지역 민간병원의 원장급 의료진을 섭외해야 했다. 하지만 지역 민간병원 의료진들은 언론에 노출되기를 꺼렸다. 4화 제작물에서 다뤘듯이 환자가 적은 지역의 민간병원은 운영을 위해서라도 비급여 영역에서 진료비를 늘려야 한다. 병원 운영 방식을 허심탄회하게 토로해 줄 사람을 찾기가 힘든 것이다. 

어렵사리 단양 서울병원에서 근무했던 직원과 연락이 닿았지만, 취재원은 병원 관계자의 미움을 살까 봐 끝내 인터뷰를 거절했다. 시간은 흘러 마감이 코앞에 닥쳤다. 우리는 수도권으로까지 눈을 돌려야 했다. 그때 만난 취재원이 정일용 경기도의료원장이다. 정일용 원장은 수도권에서 근무했지만 민간병원과 공공병원 두 곳에 모두 몸담았기 때문에 두 기관의 운영 방식의 차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1988년 문을 연 단양 서울병원은 경영난을 이유로 2015년에 폐원했다. 자물쇠로 걸어 잠긴 철문 뒤에 병원 건물이 방치돼 있다. © 유지인

그리고 남겨진 이야기

의료격차에 관한 많은 기사와 논문을 읽고, 전문가들과 만났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이해한 내용들을 다시 확인시켜줬고, 소화하지 못한 정보들은 곱씹어 삼키도록 했다. 우리는 나름의 의료격차 해소의 로드맵을 세웠지만, 이상에 불과했다. 단기적으로는 공공이 민간에 재정을 지원해서 공공의 영역을 민간에서 감당하도록 하고, 장기적으로는 공공병원 설립과 지역의 부족한 지역 의료 인력을 키워내야 한다는 이상과 실제로 지역민들이 처한 현실은 거리가 멀었다. 그만큼 답답함도 커졌다.

숨통이 트인 건 최성호 제천·단양 공공의료강화 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을 만났을 때다. 지난 10월 18일 제천단양 공공의료강화 대책위원회 월례회의 자리에서 최 사무국장을 인터뷰했다. 최 사무국장은 대책위가 지난해부터 해 온 일들과 성과를 우리에게 들려줬다. 제천과 단양 지역의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6월부터 '공공의료 강화 실현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꾸려 공공의료기관 설립 요구를 구체화해왔다. 이들의 노력은 지난 9월 정부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의 합의안에 '제천 공공병원 설립안‘을 포함시키는 성과를 이뤘다.

제작물을 제작하기 전, 지역 의료격차라는 커다란 배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표류 중인 듯 보였다. 제작물을 제작하며 오래 들여다보니 배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이미니, 배 안에는 묵묵히 노를 젓는 이들이 있었다. <삐뽀삐뽀> 시리즈가 의료격차라는 배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등대가 되기를 바란다. 지역 의료격차는 오래된 의제지만 지역민들에게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살아있는 ‘지금의’ 문제다. <단비뉴스>는 앞으로도 지역 의료격차라는 의제가 계속 살아 있는 한 계속해서 취재하고, 보도할 것이다.

● <단비뉴스> 충북지역 의료격차 취재팀 : 유지인 이정민 정진명 조한주 기자 김대호 신현우 이성현 PD


편집: 나종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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