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자와 파격 뉴스, 오픈 스튜디오 눈길
[종편 개국 프로그램 분석] ② 예능.오락

종편 채널들이 내놓은 예능 프로그램들을 보면 대체로 기존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에서 본 듯한 프로그램들이 많았다. 채널A의 <글로벌 한식 토크쇼, 쑈킹>(이하 쑈킹)은 QTV에서 방영 중인 <수미옥>을 쏙 빼닮았다. 진행자가 김수미라는 점과 게스트에게 요리를 대접하면서 진행하는 토크쇼 형식도 똑같다. 요리하고 음식을 먹으며 게스트와 대화를 나누는 설정은, 요리하느라 토크에 집중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수미옥>을 뛰어넘는 프로그램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는 보조 진행자로 발탁된 탁재훈과 신현준의 입담과 재치가 얼마나 잘 발휘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 QTV <수미옥> (왼쪽), 채널A 홈페이지에 있는 <글로벌 한식 토크쇼, 쑈킹> 사진 (오른쪽), Mnet<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화면 캡처 (아래).

TV조선의 <데이팅 인 더 다크(Dating in the Dark)>도 ‘암전’, 곧 어둠 속에서 짝짓기가 진행된다는 점을 빼면 ‘남녀 데이트 프로그램’의 형식이라는 점에서는 SBS <짝>과 같은 포맷이다. 현재 Mnet에서 방영 중인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에도 어둠 속에서 짝을 찾는 코너가 있다.

서바이벌 아이돌 가수 육성 프로그램인 JTBC의 <메이드 인 유>는 세계적 아이돌 가수를 육성하겠다는 기획의도를 내세워 참가자의 나이를 만 25세 이하로 제한하고는 있으나, SBS의 <일요일이 좋다-K팝 스타>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MBN의 <듀엣>은 유명 작곡가와 가수가 한 팀을 이뤄 신곡을 발표하면서 경연을 펼치는 프로그램이다. 역시 신곡을 발표한다는 점만 다르지 MBC의 <나는 가수다>와 유사하다. 비슷한 형식이라도 조금만 콘셉트를 바꾸면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태어날 수 있는 장르가 예능이라고는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 방송과 다른 발상의 신선한 프로그램을 기대한 시청자들은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  

신ㆍ구 개그맨들 기회 살릴 수 있을까?

최근 한국의 예능계는 ‘개그쇼’ 열풍이 불고 있다. <개그콘서트>는 ‘달인’, ‘봉숭아학당’ 등 인기를 누리며 장수했던 코너들을 잇달아 폐지했지만 ‘애정남’, ‘사마귀 유치원’, ‘비상대책위원회’ 등의 새로운 코너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요거 애매~합니다’, ‘아주 이뻐~’ 등의 수많은 유행어를 만들어 내면서 KBS2의 <개그콘서트>는 24% 안팎의 시청률과 함께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이에 맞서 MBC와 SBS도 개그 프로그램을 다투어 개편하는 등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SBS는 <웃찾사2>에 이어 박준형과 강성범을 진행자로 내건 공개 코미디쇼 <개그 투나잇>을 새롭게 선보였다. MBC는 <하땅사>의 차기작 <테마게임2(가제)>을 기획하고 있고, tvN은 개그맨 경합 프로그램인 <코미디 빅리그>의 시즌1이 예상 이상으로 큰 성공을 거둔 뒤 시즌2를 의욕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 왼쪽부터 tvN<코미디 빅리그>, KBS<개그콘서트>, SBS<개그투나잇>.

이런 개그쇼 바람은 4개 종편에도 이어졌다. 채널A는 90년대와 2000년대를 대표하는 개그맨들이 함께 만드는 <개그시대>를 내놓았다. 최양락 남희석 심현섭 등을 영입해 신구 개그맨이 함께하는 무대를 꾸민다. 개성이 강한 선후배 개그맨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가 성패의 관건이다.

종편 중 유일하게 신인 개그맨을 공개 채용한 MBN은 <개그공화국>을 선보인다. MBN 1기 공채 개그맨 15명이 직접 무대를 꾸려갈 예정이다. 경험 있는 개그맨이 없는 상황에서 과연 개그 프로그램이 성공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일이다. JTBC는 개그 프로그램으로 <개구쟁이(가제)>를 편성했으나 자세한 사항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 MBN 1차 공채에 합격한 15명의 신인개그맨(왼쪽), MBN 개그맨 공채 모집 영상 캡처.

가장 눈길을 끄는 프로그램은 TV조선의 <10PM>이다. 개그맨과 기자가 함께 만드는  ‘시사 풍자쇼’라는 점에서다. 매주 시사이슈를 선정하여 ‘시사 몰래 카메라’, ‘국무회의’ 등의 코너에서 풍자로 풀어내겠다고 한다. <개그콘서트>의 ‘비상대책위원회’나 ‘사마귀 유치원’ 등에서 보듯 세태를 풍자하는 개그 코너는 지상파 개그 프로그램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코너에 불과하다.

<10PM>은 프로그램 전체를 ‘시사 풍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0PM>의 최초 시도가 어떤 결과를 맺을지는 알 수 없으나, 이 프로그램이 얼어붙은 풍자 코미디의 지평을 넓혀줄 수도 있다. 다만 보수 매체의 풍토 속에서 풍자가 어떤 방향으로 이루질 지가 궁금한 대목이다. 또한 심현섭, 김늘메 등 주요 출연진이 시청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예전 인물들이라는 점과 그들에게 시사와 정치를 충분히 소화할 역량이 있을까하는 의문 등이 풀어야 숙제로 보인다.
 

▲ <이수근 김병만의 상류사회> 홈페이지 화면 캡처.

개그쇼는 아니지만 ‘풍자’에 방점을 찍은 버라이어티쇼도 있다. JTBC는 이수근과 김병만이 텅 빈 집에서 시청자가 보내주는 택배 물품만으로 상위 계층의 삶을 흉내내는 풍자 버라이어티를 편성했다. <이수근, 김병만의 상류사회>가 새로운 기획이라고는 하는데 어떤 내용을 담을지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아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영돈 PD '민원해결사' 변신

채널A는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 근처 동아미디어센터에 오픈 스튜디오를 개장했다. 사방이 유리로 둘러싸여 있어 시민 누구나 생방송 현장을 볼 수 있다. 미국 뉴욕의 NBC 방송국을 벤치마킹했다. NBC 오픈 스튜디오는 통유리 너머로 길거리를 지나가는 시민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고, 시민들도 스튜디오 안에서 진행 중인 생방송을 그대로 지켜볼 수 있다.

채널A는 이 오픈 스튜디오를 이용해 <생방송 김성주의 모닝카페>를 제작할 예정이다. 지상파에서는 시도하지 않던 것이다. 진행자 김성주 아나운서가 스튜디오 안과 밖을 오가며 출근길 시민들을 만나는 설정이다. 제작진은 청계·광화문 광장과 청계천, 광화문 역 일대를 자유롭게 오가며 ‘생생한 생방송’을 전하겠다고 밝혔다. KBS에서 <소비자고발>을 제작했던 이영돈PD가 정은아 아나운서와 함께 진행하는 <생방송 지금 해결해 드립니다> 역시 이 스튜디오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시민들의 민원을 해결해주겠다는 의도로 기획된 이 프로그램은 청계 광장에 설치된 신문고와 스튜디오를 오가며 진행된다.
 
JTBC의 <연예특종 서바이벌(칸타빌레)>은 서바이벌 형식의 연예정보 프로그램이다. 탁재훈과 강지영 아나운서가 진행할 이 프로그램은 10개의 뉴스 중 SNS를 통해 시청자에게 호응을 얻은 7개 뉴스만 방송으로 내보내는 형식이다. 지상파 토론 프로그램에서 단지 시청자의 의견을 소개하거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순위 투표에만 기여하던 SNS의 활용 폭을 넓힌 경우다. 

'1분 30초 리포트 룰' 깨고 심층성 강화
 
JTBC는 메인 뉴스를 밤 10시, 채널A는 8시30분에 편성한다. MBN은 SBS와 같은 8시에, TV조선은 9시에 지상파와 대결을 벌인다. 네 방송사 뉴스 편성시간이 겹치지 않아 종편사 간 직접적인 대결은 이뤄지지 않는다. TV조선을 빼면 시간대부터 지상파와 차별화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 JTBC 뉴스 소개 동영상 캡처(왼쪽), 채널A 뉴스 로고(오른쪽), 조선TV 홈페이지 화면 캡처(아래).

뉴스 형식도 종편만의 색깔을 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JTBC와 채널A는 ‘1분 30초 리포트 룰’을 깼다. JTBC는 뉴스 한 꼭지를 4-5분에 담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지상파와 차별화를 꾀하고 심층성을 강화하려는 포석이다. 또한 불합리와 부조리를 고발하는 <탐사코드J> 등을 편성해 ‘심층성’을 시사 프로그램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기존 지상파 시사 프로그램의 코를 납작하게 할 만큼 품질을 보여줄까? 신문의 뉴스 생산 경험이 방송에 잘 접목된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채널A는 각 분야 선임기자(CC, Chief Correspondent)가 뉴스 전면에 나선다. 이들이 중심이 되어 제작하는 ‘CC 리포트’로 채널A만의 뉴스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또한 뉴스가 끝난 뒤 연예정보 프로그램을 배치해, 지상파 스포츠 뉴스와 차별화를 꾀했다. 이처럼 종편 뉴스는 ‘심층보도’와 ‘파격’을 통해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심층성은 방송이 인터넷의 속보성을 이길 수 있는 카드이다. 이를 통해 인터넷에 빼앗긴 뉴스 소비자를 어느 정도 되찾아 올 수 있을까?  

콘텐츠 다양화로 종편 허가 목적 충족해야

4개나 되는 종편 채널을 허가한 정부는 한국 미디어의 글로벌화, 콘텐츠의 다양화를 그 목표로 제시했다. 종편 채널이 그런 기대에 부응하려면 기존 지상파의 프로그램들과 다른 형식과 내용의 작품들이 풍성하게 쏟아져 나와야 한다. 세계 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다양하고 개성적인 프로그램들 말이다. 무엇보다 지상파, 케이블 프로그램들과 격심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신설 종편들은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드라마와 예능, 교양, 뉴스 장르 모두에서 기존의 지상파, 케이블을 넘어설 만한 프로그램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 알려진 종편 4사 드라마들의 기획의도와 주요 내용, 출연진, 제작진을 훑어보면 톱스타와 초대형 규모에 의존하는 관행도 지상파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시사 풍자 영역을 개척하려는 일부 예능 프로그램과 뉴스 리포트의 룰을 깨는 파격적 보도 프로그램, 오픈 스튜디오의 활용과 SNS를 적극 도입하려는 시도는 그나마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아이디어들이다. 그러나 기존 프로그램 형식을 그대로 베낀 듯한 인상을 주는 예능 프로그램이 꽤나 눈에 띄었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지상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출연진과 내용 때문에 실망할 시청자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지상파의 콘텐츠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면 한꺼번에 4개 종편을 허가한 정부의 정책 판단을 성토하는 여론이 비등할지 모른다. 

일부 채널이긴 하지만 개국 이후 프로그램 라인업이 아직 정비되지 않았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개국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도 준비 부족을 우려해야 하는 사태 또한 미디어 정책이 졸속으로 추진되었음을 반증한다. 자체제작 프로그램과 재방송 비율이 어느 정도일지, 해외 프로그램을 들여와 공백을 메우지나 않을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개국 이후에도 종편만의 색깔을 보여줄 프로그램을 더 많이 개발하고 이를 꾸준히 발전시켜 시청자의 선택권이 더욱 풍성해 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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