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소수자다] ① 피부색

 

자신을 차별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혐오와 차별은 공기처럼 은은하게 퍼져있다. 사람들은 은연중에 누군가를 차별하고, 스스로도 차별받는다. 우리 모두 어떤 면에서건 ‘소수자성’(minority)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단비뉴스>는 2030 청년들이 지닌 소수자 문제를 심층 취재하여 보도한다.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석 달 동안 겉모습 때문에 차별받아온 다섯 유형의 청년을 50명 이상 만났다. 그들과 동행하거나 대화하며 일상에서 벌어지는 차별의 순간을 기록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밝힌 소수자 가운데 한 명은 취재에 참여한 기자라는 점을 미리 밝힌다. 실명 보도를 원칙으로 했으나, 2차 가해를 막기 위해 일부는 가명을 활용했다. 얼굴 비공개를 요청한 경우 사진과 영상에 모자이크를 덧입혔다.

성별, 소득, 지역, 학력 등의 구분 짓기에서 벗어나는 일은 이해와 공감에서 시작한다. 서로를 향한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이때, 청년 세대부터 ‘우리 안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연대의 주체가 되자고 제안한다. 11명 청년들의 이야기가 소수자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② 사회가 만든 죄인, 나는 비만인입니다

③ 술 마셔서 붉어진 게 아니에요

 

 

 

2014년 겨울, 네팔에서 고용허가(E-9) 비자로 한국에 들어왔다. 네팔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살고 있다. 현재 청바지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전에는 인천 와이어 공장과 경기도 평택 플라스틱 공장, 충남 천안 나사 공장 등에서 일했다. 그동안 임금 체불, 욕설, 폭행 등을 당했지만 네팔에 있는 부모, 아내, 그리고 두 아들을 위해 버텼다. 한국에서 겪은 차별의 이야기를 담아 노래 가사를 쓰고 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주민에게 불러줄 노래다. 고향에 돌아가면, 네팔의 인권 신장을 위해 일할 생각이다.

 

2016년 아프리카 말리에서 왔다. 말리는 ‘시간이 멈춘 들판’이라 불리는 사하라 사막 서부에 있다. 아버지가 말리 공항 관리자여서 부족함 없이 살았다. 대저택이 있었고 운전기사, 관리인 등 고용인 4명을 두고 있었지만, 내전을 피해 한국에 왔다. 고향 친구가 공부하기 좋은 곳이라고 한국을 소개했다. 현재 경기도에 있는 대학에서 도시공학을 공부하고 있다.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서울의 한 피자집에서 일한다. 직접 피자 메뉴를 고안할 정도로 피자집에서 일하는 것을 즐기고 있다. 깔끔한 턱수염은 그의 특징이다.

 

 

 


 

 

 

※ 아래 타임라인은 오자 씨와 레오 씨의 경험을 하루로 압축․재구성한 내용입니다.

 

 

 

▲ 오자 씨가 집에서 바라보는 서울 시내 모습이다. ⓒ 윤재영

 

08:00

오자 씨가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끝없이 들어오는 사람들에 몸이 밀려 손잡이를 잡았다. 그는 지하철을 타면 대부분 서서 간다. 출근길에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없는 편이기도 했지만, 버스나 지하철에서 신경질 내거나 눈치를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얼마 전 평택에서 오산으로 가는 지하철에서도 그랬다. 맞은편에 앉은 할아버지가 대뜸 호통을 쳤다. “네팔 사람이면 네팔로 가!” 네팔 사람들이 코로나에 많이 걸렸으니 옮을 수 있다고 할아버지는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더구나 오자 씨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한국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10:00

“오자야!” 청바지를 만드는 공장에 도착한 오자 씨를 직장 동료들이 찾는다. 그의 이름에는 존칭이 붙지 않는다. ‘오자 형’이나 ‘오자 씨’도 아니다. 직장뿐 아니라 음식점 등 어디서든 반말을 듣는다. 생김새로 놀림 받은 적도 있다. 오자 씨의 콧등은 조금 튀어나와 있다. “코가 왜 그렇게 커.” 팀장이 지적했다. 오자 씨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말을 삼켰다. ‘이렇게 태어난 것뿐인데….’ 한국에 오기 전, 그는 인도에서 일했다. 인도에서는 아무도 오자 씨의 생김새를 말하지 않았다. 피부색이 어둡다고 수군거리지 않았다.

 

 

▲ 서울의 한 피자집으로 출근하는 레오 씨. 그는 학교-알바-집을 반복한다. 새로운 한국 사람을 만나는 건 최대한 피하고 싶다. ⓒ 김지윤

 

 

13:00

대학생 레오 씨는 서울 이태원역 4번 출구 앞 카페에 앉았다. 카페라떼를 마시며 온라인 수업 링크를 클릭했다. 비대면 수업이라 동기들과 말 한 번 섞어보지 못했지만, 차라리 편했다. 한국에 온 지 2년 만에 한국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생겼다. 한국인 여자 친구를 사귀고 있던 레오 씨는 그녀의 친구에게서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영어로 말했다. “black monkey!” 검은 원숭이라는 말을 레오 씨는 난생 처음 들었다. 함께 있던 여자 친구는 오히려 그녀의 친구 편을 들었다. 얼마 뒤, 레오 씨는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 오자 씨가 길을 가면 사람들이 쳐다보거나 무시를 당하기 일쑤다. 가게에서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면 인사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 윤재영

 

 

15:00

오자 씨의 일은 청바지 원단을 재봉틀 기계에 넣고 빼는 것이다. 오후가 되면 손목이 아프다. 사장님과 동료들은 항상 “빨리빨리”라고 말했다. 빨리빨리 청바지를 만들다 손목 통증이 생겼다. 하지만 참고 일할 수밖에 없다. 예전 인천 공장에서 60킬로그램(kg)짜리 와이어를 옮기다 허리를 다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2주간 일을 쉬어야 한다는 병원 진단서를 회사에 제출했다. 욕설을 듣고 폭행을 당했다. 공장의 부장이 외쳤다. “쉴 거면 당장 너희 나라로 가!” 부장은 CCTV가 없는 곳에서 오자 씨를 발로 찼다.

 

 

▲ 오자 씨가 인천 공장에 있으면서 들었던 욕설을 녹음한 파일이다. 당시 오자 씨는 이 파일을 들고 고용센터를 갔지만, 영상이 있어야 확인 가능하다는 답변만 들었다. ⓒ 머드수던 오자

 

 

18:00

오자 씨는 야간작업 전,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향했다. 지금은 종종 한국인 동료와도 밥을 먹지만, 예전 충남 천안에서 일할 때는 그러지 못했다. 어느 날, 공장 문밖에서 사장이 하는 말을 들었다. “삼겹살 먹으러 가자.” 고생했으니 회식하러 가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한국 직원들에게만 했다. “외국 애들한테는 얘기하지 마.” 사장이 덧붙였다. 사장과 사장의 아내, 한국인 노동자들은 일제히 공장을 빠져나갔다. 오자 씨, 그리고 오자 씨와 같은 이주노동자들은 함께 가지 못했다.

 

 

 

▲ 비닐장갑을 착용한 레오 씨의 손. 레오 씨는 비닐장갑을 꼈음에도 손님에게 '더럽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 김지윤

 

 

19:00

수업을 마치고 피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던 레오 씨는 자신의 손을 멍하니 쳐다봤다. 조금 전 손님 세 명이 가게를 떠나며 남긴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시커먼 손이 너무 더러운 것 같아요.” 피자 만들기 전에 손을 씻었고 비닐장갑도 착용했다고 레오 씨는 손님에게 설명했다. 그 말을 듣고도 손님은 주문을 취소했다. “그쪽이 만드는 피자는 먹을 수 없네요.” 그의 손은 검었다. 피부색이 검다고 더러운 존재로 취급한 것이다. 그 말을 떠올리는 레오 씨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20:00

레오 씨가 화난 감정을 삭이고 있을 때 다음 손님이 들어왔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매장 입구에서 손 소독제를 바르고, 피자 한 판과 콜라를 주문했다. 레오 씨는 손님의 신용카드를 건네받았다. 손님의 손과 레오 씨의 손이 살짝 닿았다. 손님은 표정을 찡그리며 손 소독제를 다시 발랐다. 레오 씨는 1시간 전에 주문을 취소한 손님의 말이 떠올랐다. ‘내 손이 더럽다고 느낀 걸까?’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오자 씨가 출퇴근 길에 있는 횡단보도 앞의 모습이다. ⓒ 윤재영
오자 씨가 출퇴근 길에 있는 횡단보도 앞의 모습이다. ⓒ 윤재영

 

 

21:00

늦은 밤, 야간작업을 마친 오자 씨는 서울 동묘앞역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중년 여성이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헬스장 할인 전단지를 돌렸다. 아주머니는 오자 씨 앞까지 왔다. 그러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뒤를 돌아갔다. 신호등 앞 사람들 손에는 전단지가 하나씩 들려 있었지만, 오자 씨는 전단지를 받지 못했다. 한국에서 지낸 8년 동안, 오자 씨가 거리에서 받은 전단지는 두세 장뿐이다. 누구에게나 건네는 전단지조차 오자 씨의 손에는 쥐여지지 않았다.

 

 

▲ 지하철을 기다리는 레오 씨. 그는 지하철을 기다리고 타는 동안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지 않으려 계속 핸드폰을 했다. ⓒ 김지윤

 

 

02:00

자정을 넘겨 피자집 문을 닫을 시간이 되자, 레오 씨는 사장에게 저녁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 피부가 검다는 이유로 주문을 취소한 손님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장은 오히려 레오 씨를 혼냈다. “그냥 손님들 보는 앞에서 손 한 번 다시 씻고, 피자 새로 만들면 되잖아요. 왜 말다툼을 해요?” 레오 씨는 화가 났다. 하지만 월급을 받는 아르바이트생이라 반박하지 못했다. 레오 씨는 많은 말을 입속에 삼켰다. 마감하는 가게의 테이블만 닦았다.

 

03:00

집에 돌아온 레오 씨는 지쳐 침대에 누웠다. 타고난 그대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은 작은 원룸뿐이다. 원룸을 나서면, 사람들은 피부색으로 레오 씨를 정의했다. 친구들한테 연락이 왔다. 같이 클럽에 가서 놀자고 했다. 가지 않겠다고 레오 씨는 답했다. 한국 사람들과 부딪치는 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었다. 어둠 속에서 혼자 핸드폰을 보다, 레오 씨는 잠이 들었다.

 

 

 


 

 

 

 

 

올해 초, 오자 씨는 거리에서 삿대질을 당했다. 처음 보는 할아버지가 손가락질을 했다. “야! 너는 이렇게 얇은 마스크 쓰면 안 돼! 너 때문에 코로나 걸려!” 오자 씨는 의료용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길가는 사람 아무한테나 할아버지가 삿대질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 뒤로 오자 씨는 KF 마스크만 착용한다. 비용이 부담스럽지만 어쩔 수 없다. KF 마스크를 쓰고 나선 거리에는 얇은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얇은 마스크를 트집 잡아 그들에게 삿대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만 원짜리 스마트폰 삼각대는 오자 씨가 아끼는 물건이다. 라이브 방송을 시작하면서 구매했다. 오자 씨는 소셜미디어 ‘틱톡’으로 한국에서 일하는 네팔 이주노동자들과 이야기 나눈다. 주말에는 100여 명, 평일에는 60명 정도가 오자 씨의 라이브 방송을 보러 들어온다. 오자 씨는 그들에게 고용허가제를 비롯한 법과 제도를 네팔어로 설명해준다. 

 

오자 씨는 한국에서 겪은 차별을 공책에 적는다. 몇몇 경험을 다듬어 노래로 만들려고 작사를 하고 있다. “우리도 사람이에요. 기계가 아니에요. 우리도 노동자예요. 노예가 아니에요. 차별하지 마세요.” 공책에 한글로 적은 노랫말이다. 차별하지 말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올 연말에 작곡을 마무리하고 세상에 노래를 내놓을 것이다.

 

레오 씨는 피자집과 학교에 갈 때 택시를 자주 이용한다. 다른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사람들이 자신을 피하는 상황을 겪기 싫기 때문이다. 지하철 자리에 앉을 때, 좌석버스를 기다릴 때, 사람들은 레오 씨를 피했다.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시선은 그러려니 한다. 그러나 더러운 사람처럼 여기고 피하는 것에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차라리 조용히 혼자 다니는 것이 좋다. 요즘에는 오토바이를 살까 고민 중이다.

 

피자집에서 일할 때, 레오 씨는 위생장갑을 절대 벗지 않는다. 손님에게 ‘흑인이라 더럽다’는 얘기를 들은 뒤부터 더욱 위생장갑을 챙긴다. 가게 주방은 공개돼 있다. 손님들은 레오 씨가 어떻게 피자를 만드는지 지켜볼 수 있다. 레오 씨는 투명 유리 케이스 앞에서 보란 듯이 위생장갑을 착용한다.

 

휴일이나 수업이 없는 날에도 레오 씨는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밖에 나가면 한국 사람들과 불편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 뻔하다. ‘학교-피자가게-원룸’만 오고 간다. 영 심심하면, 어린이용 작은 축구공을 갖고 작은 마당으로 향한다. 혼자 공을 통통 차며 트래핑(Trapping) 한다. 그러노라면, 마음 터놓고 지낼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1. 한국 미디어에는 유색인종보다 백인이 더 많이 등장한다. → 사실

2014년 7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총 177부가 방영된 JTBC <비정상회담>은 한국에 살고 있는 세계 각국의 청년들이 다양한 주제를 토론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각 나라의 가치관과 문화가 반영된 출연진들의 답변은 한국 사회의 문화적 상대성과 관련된 여러 논의를 불러왔다. 그러나 그러한 상대성 논의에서 유색인은 빠져 있었다. <비정상회담>에 출연한 역대 외국인 패널을 보면 압도적으로 백인이 많았다. 총 31명의 외국인 패널 가운데 동아시아인이나 백인이 아닌 사람은 아프리카 가나 출신의 샘 오취리를 포함해 4명이었다. 문화의 다양성을 표방한 프로그램인데도 선진국으로 꼽히는 국가 출신의 백인 패널이 훨씬 많았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 외국인의 리얼 한국 여행기를 보여주는 MBC every1 예능프로그램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도 마찬가지다. 2017년 6월 1일 파일럿으로 시작했을 때부터 현재 방영되고 있는 시즌2까지 모두 35개국에서 온 외국인이 출연했다. 그 가운데 절대다수는 백인이었고, 흑인 등 유색인종은 7개국이었다. 심지어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출연자도 백인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백인보다 유색인종이 5배 이상 많은데도 미디어에는 백인이 더 많이 등장했다.

 

2. 한국의 미디어는 백인을 긍정적, 유색인을 부정적 이미지로 전달한다. → 사실

한국 언론은 아프리카를 대체로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세이브더칠드런과 한국외대가 2012년 9월부터 2013년 8월까지 중앙일간지, 지상파 방송, 종합편성채널 등의 기사를 분석한 ‘한국 미디어의 아프리카 재현 방식과 수용자 인식 조사’ 연구에 따르면, 아프리카는 외국인 납치 및 인질사건이 발생하는 위험한 곳으로 묘사됐다.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피부색이 어두운 유색인도 부정적으로 묘사됐다. 2017년 7월 한국방송학보에 게재된 ‘한국 텔레비전 다문화 프로그램 속 다문화 구성원 및 외국인의 이미지’라는 제목의 논문을 봐도 방송에 등장하는 유색인과 백인의 이미지는 확연히 달랐다. 연구진은 2003년부터 2016년까지 다문화를 다룬 프로그램에서 피부색에 따라 어느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사람으로 재현되는지 분석했다. 상·중·하 가운데 ‘하’ 수준의 경제력으로 재현된 백인 출연자 비율은 2%였지만, 유색인은 16.9%였다. 유색인은 백인보다 8배 정도 더 많이 ‘가난한 사람’으로 묘사된 것이다.

인종에 따라 청결에서 차이가 있을 거라는 편견도 있었다. 위의 같은 연구에서 청결도를 1점에서 5점까지로 매겼을 때, 유럽과 북아메리카 출신이 4.7점으로 잘 가꾸고 깨끗한 그룹에 들어갔다. 반면,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지역은 4.1점이나 3.8점 등 상대적으로 지저분한 그룹에 속했다. 또한 피부색이 어두운 사람들은 난민 등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고, 피부색이 밝은 백인들을 전문기술인력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는 동남아 등에서 고용허가제로 들어오는 이들의 상당수가 고학력자들이다. 이민정책연구원은 이주민 가운데 대졸 이상 고학력자가 70%가 넘는다고 밝혔다. 한국에 오는 이들의 학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높은 수준이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위원장은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네팔인 대부분은 대학생, 학교 교사, 경찰관, 공무원 등 고학력자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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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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