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㉓ 기후정의버스, 새만금과 태안을 가다

지난 12일 아침 7시 서울 방배동 사당역 1번 출구 옆 공영주차장.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둑한 거리에 회색 후드티셔츠와 검은 패딩, 노란색 바람막이 등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은 손팻말이나 깃대, 깃발 등을 들고 있어 출근 버스를 기다리는 직장인들과는 확연히 달라 보였다.

이들은 ‘탄소중립위원회 해체 및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기후위기 전북비상행동’ ‘발전노조 발전비정규직대표자회’가 함께 준비한 '기후정의버스가 간다'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새만금 신공항 반대’와 ‘석탄발전소의 정의로운 전환’을 외치기 위해 서울에서 전북 전주와 군산, 충남 태안을 거쳐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15시간의 일정이었다. 

멸종위기종 서식지 새만금에 신공항 추진 

버스가 3시간여를 달려 먼저 도착한 곳은 전북 전주시 전북도청이었다. 서울에서 버스를 탄 28명과 부산, 대전, 그리고 전주 현지에서 합류한 참가자 등 40여 명은 오전 10시 30분이 되자 ‘기후붕괴 불러오는 신공항 건설 반대한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펼쳤다. 그리고 군산 새만금공항 건설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참가자들이 든 손팻말에는 ‘수라갯벌 보전하고 신공항 철회하라’ ‘멈춰라! 죽음의 신공항’ 등의 문구가 적혀있었다.

▲ 기후정의버스 참가자들이 12일 오전 전북도청 앞에서 새만금신공항 건설계획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강훈

국토교통부가 지난 9월 발표한 제6차 공항개발 계획에 따르면 새만금을 포함해 부산 가덕도, 대구 등 전국 10곳에서 신공항 건설이 추진된다. 구체적 건설 일정이 명시되진 않았으나 기존 지방 공항의 이용률이 낮은 상황에서 또 신공항을 대거 건설하는 계획에 환경단체들은 반발하고 있다. 이현정 탄중위해체공대위 집행위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막대한 양의 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에 비행기를 타는 일조차 수치스럽다고 이야기하는 기후위기 시대에, 더 이상의 공항은 우리나라에 필요 없다”고 말했다. 

한승우 전북 녹색연합 새만금살리기위원장은 신공항이 들어설 새만금 수라갯벌의 생태적 가치를 강조했다. 그는 “수라갯벌에는 36종 이상의 법적 보호종이 살고 있다”며 “수라갯벌을 공항으로 만들게 아니라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해서 생태계를 보호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새만금 신공항 건설사업 전략환경영향평가서 초안에 따르면 수라갯벌에는 멸종위기 1급 야생동물인 저어새, 흰꼬리수리와 멸종위기 2급인 흰발농게, 금개구리 등 40종 이상의 법정보호종이 살고 있다. 또 김종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팀이 지난 7월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갯벌은 연간 승용차 11만 대가 뿜어내는 수준인 탄소 26만톤(t)을 흡수해, 갯벌 보존은 기후위기 대응에도 매우 중요하다.  

▲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한승우 전북 녹색연합 새만금살리기위원장. ⓒ 강훈

갯벌 늘려야 할 시기에 거꾸로 가는 정부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은 새만금신공항 예정지인 군산 수라갯벌로 향했다. 군산공항 입구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어 들어가자 6킬로미터(km)까지 뻗은 수라갯벌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들이 햇빛을 받아 금색으로 반짝였다. 참가자들이 각자 준비한 장화를 신고 갯벌로 들어서자 해홍나물 군락이 긴 갈대 아래에서 수줍은 듯 발그레한 모습을 드러냈다. 

 
군산 새만금 수라갯벌을 둘러보는 기후정의버스 참가자들과 갯벌 생태계의 다양한 모습. ⓒ 강훈, 탄중위해체공대위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공동단장은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한국의 갯벌이 등재됐지만 보호지역이 너무 작아 한번 반려된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재심사에서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한 유네스코는 2025년 열리는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까지 갯벌 지역을 확대하고 개발 사업을 억제하라는 조건을 붙였다. 오 단장은 “갯벌을 없애면서 5년 내에 재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어불성설”이라며 새만금공항 건설계획을 비판했다.  

석탄발전소 퇴출은 노동자·주민 지원책과 함께 

참가자들은 다시 버스에 올라 태안으로 향했다. 오후 4시 30분, 태안터미널 맞은편에 버스를 세우고, 태안 석탄발전소 노동자 등 총 200여 명이 함께 집회를 시작했다. 참가자들은 각각 ‘내가 김용균이다’ ‘발전소 폐지 고용대책이 먼저다’ 등의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국가가 책임지고 일자리 보장하라” “녹색성장 어림없다 지금 당장 기후정의” 등의 구호를 외쳤다.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는 집회를 진행하는 기후정의버스 참가자들과 석탄발전소 노동자들. ⓒ 강훈

이태성 발전비정규직 전체 대표자회의 간사는 집회에서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였지만, 정작 전환 당사자인 발전소 노동자들과 대화하려는 시도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며 “과연 이게 공정과 정의를 이야기하던 정부가 맞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최용우 발전노조 위원장은 “석탄발전소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빠르게 사라져야 하는 것에는 노동자들도 동의를 하고 있다”며 “다만 기후정의라는 관점에서 일방적인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힘을 합쳐달라”고 말했다. 그는 석탄발전소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고용보장 대책을 위한 논의기구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하고 집회 진행도 맡은 이현정 탄중위해체공대위 집행위원은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기후위기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석탄발전소와 공항은 기후위기 최전선 지역”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자와 농민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게 바로 기후정의”라며 “기후위기 최전선에서 싸우는 이들과 공감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기후정의버스를 조직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또 정부가 만든 탄소중립위원회가 기후위기 당사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산업계 입장을 중심으로 탄소중립계획을 짜고 있기 때문에 탄중위해체공대위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고 김용균 씨 어머니도 태안 집회에 참여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일본인 유학생 타카노 사토시 씨는 “연구자의 사회적 책임을 지키기 위해 탄중위해체공대위에 참여했다”며 “탄소중립위원회를 만들고 탄소중립을 논하면서, 다량의 탄소를 배출하는 신공항을 짓기 위해 탄소를 흡수하는 갯벌을 매립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업재해로 숨진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활동가는 현지에서 집회에 합류, “아들이 사고를 당한 태안에 올 때마다 마음이 아프지만, 노동자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다시 왔다”며 “발전소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기후정의버스 참가자들이 모든 일정을 마친 후 12일 저녁 10시 서울 사당역에서 해산하고 있다. ⓒ 강훈

편집: 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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