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인권·동물권 기록활동가 홍은전

“나는 경이로운 존재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들, 신문에서 자신의 비참을 드러내어도 좋다고 허락해준 사람들은 모두 이 세상의 거대한 비참과 불의에 저항하는 기적 같은 존재들이다. 내가 쓴 글들은 모두 그들에 대한 존경과 감탄에서 나온 것들이다. 나는 그들이 부디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싸우는 사람이 사라졌다는 건 세상의 차별과 고통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세상이 곧 망할 거라는 징조이기 때문이다.”

홍은전(42) 작가는 지난해 출판한 책 <그냥, 사람>의 ‘들어가는 글’에 이렇게 썼다. 2015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한겨레>에 쓴 칼럼 60편을 모은 이 책은 최근 8쇄를 찍었다. <시사IN(인)>을 포함한 여러 간행물에서 지난해 그를 ‘올해의 저자’로 꼽았고, 전주시는 ‘전주 올해의 책’으로 <그냥, 사람>을 선정했다. 이에 앞서 그는 2001년부터 13년간 서울 동숭동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교사로 활동하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노란 들판의 꿈>(2016)으로 엮어냈다. 

또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에서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 등 국가폭력피해 생존자, 4·16 세월호 참사 유가족 등을 만난 후 생생한 증언을 모아 공저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2018)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2019)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2019)에 담았다. 차별받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투쟁을 기록하는 홍은전 작가를 지난 6월 23일 서울 당산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고 17일 문자로 추가 인터뷰했다. 

이기는 것도, 지는 것도 싫었던 사범대생

서울 당산동의 한 카페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는 홍은전 작가. ⓒ 임예진
서울 당산동의 한 카페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는 홍은전 작가. ⓒ 임예진

사범대 4학년 때, 그는 교사 임용고시를 앞두고 괴로워했다. 엄청난 경쟁 속에 동기들은 공부에 몰두했지만, 그는 누군가를 이기기도 싫었고 자신이 지는 것도 싫었다. ‘1년만 방황하자’며 찾아간 곳이 노들야학이었다. 노들은 그가 살아온 세계와 완전히 달랐다. 홍 작가는 노들을 “이 세상과 다른 중력의 공동체”라고 표현했다. 정규교육에서 소외된 중증장애인들은 정해진 진도도, 시험도 없는 이곳에서 경쟁 대신 인간의 존엄과 연대에 관해 이야기했다. 버려진 섬에서 꽃이 피듯 ‘국가가 버린 곳’에서 ‘진짜 교육’이 펼쳐졌다. 노들야학에선 교사 20~30명이 학생 50~60명을 이끈다. 

“이런 게 교육이지 싶었어요. 제가 사범대를 다니면서 배운 교육 과정 안에는 장애를 가진 아이는 존재하지 않았거든요. 노들에서 우리의 교육은 수업 자체보다 몇십 년 동안 집에 있던 사람들을 데리고 나와서 거리에 나가게 만드는 것이었어요.”

차별받은 사람이 저항하는 존재가 되는 일은 전혀 당연한 일이 아니다. 홍 작가는 “움츠러들고 주눅 드는 게 더 자연스럽다”며 “그러라고 하는 게 차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이 세상의 불의에 투쟁하는 건 ‘기적 같은 일’이라고 했다. 그걸 가능케 한 건 어떤 특별한 계기가 아니라 켜켜이 쌓인 경험이다. 그는 “모꼬지(단체놀이) 가고, 술 마시고, 수업하고, 상담하고, 싸우고 또 화해하고, 그 사람 집에 가서 부모를 데리고 나오고, 같이 술 마셨다고 부모에게 욕먹고 그런 모든 과정이 해낸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과 단절된 꽃동네(국내 최대 노숙인·장애인·노인 복지시설)에서 10년 넘게 산 사람이 시설을 나와 국회 앞에서 ‘장애인 차별하지 말라’고 발언하는 ‘경이로운 일’은 긴 시간이 만든 신뢰 관계 속에서 일어났다.

기록작가는 ‘두 번째 사람을 쓰는 사람’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은 한 칼럼에서 홍은전 작가를 ‘두 번째 사람’이라고 썼다. 세상에는 장애인, 세월호 유가족, 화상경험자,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 생존자 같은 ‘첫 번째 사람’이 있다. 그리고 첫 번째 사람의 통곡 소리를 듣고 시뻘게진 눈을 보는 사람, 그들의 손을 맞잡고 같이 울어주는 사람이 두 번째 사람이다. 첫 번째 사람이 도와달라며 손을 내밀 때 소매가 잡히는 자리. 그것이 무서워서 사람들은 세 번째, 네 번째 자리로 도망친다고 고 연구원은 설명했다. 

그 글을 눈물을 삼키며 읽었다는 홍 작가는 자신을 ‘두 번째 사람을 쓰는 사람’이라고 정정했다. 그는 “글을 쓰는 동안 소매가 잡히지 않았다”며 “공개된 자리에서 증언을 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은 첫 번째 자리에서 두 번째 자리로 옮겨간 것”이라고 말했다. 발언을 한 사람이 두 번째 사람이고, 자신은 두 번째 사람의 이야기를 전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슬프고 고통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써주라는 제안을 했던 사람들, 동료 집단들이 진짜 두 번째 사람”이라고 말했다. 

무엇을 쓸 것인가는 무엇을 사랑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홍 작가는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쓴 글의 핵심 키워드가 ‘관계’라며, 항상 글 속에 자신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문제 자체에 관해 쓰는 것이 아니라 그가 본 사람과 그 사람과의 관계 속에 투영된 자신에 관해 쓴다는 것이다. 

“장애 당사자도 있지만 그 앞에 선 비장애인으로서 ‘나’도 있잖아요. 그 사람이 없었다면 나는 내가 비장애인이라는 걸 인식하지 않았겠죠. 우리 고양이들과 함께 있으면 저는 인간이에요. 상대에 따라 저의 정체성의 변하는 거예요. 장애 운동과 동물 운동 모두에서 저의 위치는 기득권자예요. 잠재적 가해자고, 동물 문제가 훨씬 더 그렇지만 착취의 수혜자고. 이렇게 저를 인식하는 것이 되게 좋아요”

▲ 홍은전 작가가 <한겨레>에 쓴 칼럼을 묶어서 낸 책 <그냥, 사람>. ⓒ 봄날의책

고양이 두 마리 입양 후 동물권으로 관심 확장

홍 작가는 2년 전 터널 앞에 버려진 고양이 카라를 친구 부탁으로 잠깐 맡았다가 입양까지 하게 됐다. 얼마 뒤에는 학대당한 고양이 홍시를 입양했다. 이후 그의 관심은 ‘탈육식’과 동물권 운동으로 확장됐다. 남편과 둘 뿐이었던 식구가 넷으로 늘면서 막막하고 당황스러운 순간도 있었다고 한다. 고양이는 소리 없이 다니고, 애정 표현이 조용히 와서 ‘슥’ 비비는 것인데, 그걸 모르고 움직이면 뜨거운 걸 엎기도 하고 고양이들의 발을 밟을 수도 있다. 그는 살금살금 다니다가 ‘왜 내가 내 집에서 도둑처럼 살아야 되나’하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고양이와 함께 살기 위해선 힘 조절을 해야 한다는 걸 받아들였다. 

“힘 조절이라는 건 내가 가진 능력을 안 쓰겠다는 게 아니라 가진 힘을 다른 방향으로, 안 쓰는 방향으로 쓰는 거예요. 그것도 되게 힘들거든요. 그걸 배워가는 게 저에게는 중요한 과제인 것 같아요.”

▲ 2년 전 가족이 된 고양이 카라와 홍은전 작가. ⓒ 홍은전

약한 존재 앞에서 힘 조절을 한다는 그는 ‘부끄럽다’는 말도 자주 했다. 그가 쓴 칼럼 중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다는 ‘꽃님 씨’ 얘기를 할 때도 그랬다. 꽃님 씨는 전라남도 영광에서 태어났으나 바다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중증장애인이었다. 그는 서른여덟에 장애인시설에 들어갔다가 3년 만인 2006년 8월 그곳에서 벗어났다. 인권활동가들과 함께 낯선 서울로 온 꽃님 씨는 어렵게 얻은 자유를 사랑했다. 그는 그 자유를 자신만 누릴 수는 없다며 매달 받는 장애인 수급비 50만 원 중 20만 원씩을 10년간 모아 2천만 원을 ‘탈시설 운동을 위해 써달라’며 기부했다. 

홍 작가는 무심코 꽃님 씨를 무시하거나 면박을 줬던 기억을 떠올리며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그가 2천만 원을 들고 왔을 때 ‘이 사람이 나한테 복수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꽃님 씨에 관한 글을 두 번 썼지만 “여전히 청산할 부끄러움이 있어 한 번은 더 써야 한다”고 말했다. 

▲ 꽃님 씨가 장애인 탈시설 운동을 위해 기부한 ‘꽃님 기금’ 전달식에 함께 한 홍은전 작가. ⓒ 홍은전

무거움을 견디고 읽어주길 바라는 이야기 

홍은전 작가의 <그냥, 사람>을 읽은 사람들은 ‘책이 너무 무겁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한다. 그는 “무거움을 견디고 읽어달라”고 답한다. 무거움을 무거운 대로 받아들여야 진짜 희망을 말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동물 착취에 반대하는 비거니즘 활동가 김한민 씨는 환경운동에 관해 “세상은 '나 하나쯤이야' 하고 비관하는 '어차피족'과 '최소한 뭐라도 해보자’고 희망을 말하는 '최소한족'으로 나뉜다”고 말한 일이 있다. 홍 작가는 모든 사회운동이 어차피족과 최소한족의 싸움이라며 “어차피족은 어차피 아무것도 안 하기 때문에, 최소한족이 무조건 이긴다”고 말했다. 

“‘그런다고 세상 안 바뀌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저는 ‘싸우는 만큼 세상은 바뀌어’라고 말하고 싶어요. 내가 조금 하면 조금 바뀌는 거고 열심히 하면 열심히 한 만큼 바뀌는 거고. 싸우면 싸우는 만큼 세상은 변한다는 걸 제가 정말 경험적으로 본 거예요.”

지난 4월 경기도 김포시의 장애인거주시설 ‘향유의 집’이 폐쇄된 것도 ‘탈시설 운동’을 벌여온 ‘최소한족’의 작은 승리였다. 운동 12년 만에 처음으로 장애인시설이 문을 닫은 것이다. 그 역사적인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달려갔던 홍 작가는 “텅 빈 시설을 보니 기적같았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정부는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을 통해 내년부터 2024년까지 시범사업을 통해 관련 법령을 개정하고 2041년까지 시설 장애인들의 지역사회 전환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장애인 편의시설이 설치된 공공임대주택 공급, 주거유지 서비스 개발, 장애인 일자리 확충 등을 통해 독립생활을 위한 사회적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내용이다. 

▲ 중증장애인들이 2009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탈시설 권리보장을 위한 노숙농성을 벌이는 모습. ⓒ 홍은전

홍 작가는 지난 7월 정혜윤, 김한민, 이슬아, 정세랑 등 시인·소설가·예술가·학자·활동가 34명과 함께 책 <절멸>을 냈다. 창작집단 이동시(이야기와 동물과 시)의 기획으로 발간된 이 책에는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 등으로 ‘절멸’ 위기에 처한 동물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장애인야학 교사에서 인권 기록활동가를 거쳐 이제 동물권 활동가로 세계를 확장하고 있는 홍 작가는 ‘행동하고 기록하는’ 자신의 삶에 확신을 보였다.

“누구나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어떠한 것을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반드시 바뀐다. 반드시 이긴다.”


편집: 정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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